이름: 길벗
2008/3/22(토) 22:51 (MSIE6.0,WindowsNT5.1,SV1,.NETCLR2.0.50727,.NETCLR3.0.04506.30) 211.189.191.211 1024x768
조회: 3862
독서토론-과학과 종교 사이에서-진화론과 기독교  
제5장 진화론과 기독교
2008년 3월 23일 길벗
헉슬리와 윌버포스의 논쟁
1860년 다윈의「종의 기원」발표로 촉발된 세간의 관심 속에 다윈을 지지하는 헉슬리와 진화 이론을 반박하려는 윌버포스가 영국 옥스퍼드 박물관에서 벌어진 유명한 설전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현장은 영국 과학진흥협의회 석상이었는데 노예해방에 앞장섰던 혁신적 성향이었던 조류학자이기도 한 윌버포스 주교는 당시 학술원 부원장이기도 했는데 "당신의 조상은 어느 편이 원숭이란 말이오? 아버지 쪽이오, 아니면 어머니 쪽이오?" 라는 경솔한 질문으로 오늘날까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다윈의 「종의 기원」
처음 발표되었을 때 '자연 선택에 의한 또는 생존경쟁에서 혜택 받은 종족의 보존'이라는 부제가 붙어 유럽을 뒤흔들었던 이 책은 1809년 영국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다윈이 5년간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탐험하면서 모은 자료들을 3년간 정리 연구한 끝에 나온 산물이었다. '자연선택설'에 따르면 적자 생존의 법칙에 따라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또한 자연 환경에  적응하여 다른 생물종과의 생존경쟁에서 이긴 생물종만이 지상에 남는다. 이 차이는 후손으로 갈수록 커져서 마침내 당초의 생물과는 크게 차이가나는 새로운 생물이 탄생되는 것이다.
이보다 한발 앞서 월리스는 말레이군도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투병하는 중에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고 1858년 '적자생존' 이라는 창안하게 되어 다윈을 놀라게 했으나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기조로 삼고 있는 '적자생존' 이론의 선각자임을 내세우지 않고 양보함으로 다윈의 이름이 빛을 보도록 기여했다.
진화론의 계보
다윈당시 하나님의 창조는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 오전 9시라는 조셉 라이트풋의 주장이 일반화된 것이 현실이었다. 1785년에 발표된 제임스 허턴의 동일과정설은 라이엘의「지질학의 원리」에서 완성되어 다윈에게 결정적 단서를 준다. 고생물학의 창시자 퀴비에는 생물은 진화해 왔고 결코 불변이 아님을 토설했으나 격변설을 고집했다.
마르크스는 획득형질의 유전을 인정하고 진화이론으로 용불용설을 주장했다.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은 사회주의자들과 자본주의자들 모두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한다.
다윈의 후예들
1995년 진화론에 관한 주목할 만한 저술들을 보면 진화론자들도 극단적 다윈주의자(진화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성격이 강하며 개체는 생식을 위해 존재한다고 본다)와 자연주의자로 나눌 수 있다.
① 도킨스 「에덴밖의 강」, 「이기적 유전자」:- 극단적 다윈주의자
② 나일드 엘드리지 「다윈의 재발견」:- 자연주의자, 자연선택이란 보다 나은 기록을 다음세대로 넘겨주는 기록 보관역할을 하는데 불과하다. 단속적 평형설(고래), 나나니벌, 말벌과 난초
③ 대니얼 데넷 「다윈의 위험한 생각」:- 극단적 다윈주의자, 다윈의 이론은 정신, 의미, 인간의 위상 등 모든 가정을 다 없애는 '만능의 산(universal acid)'으로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④ 마이클 비히 「다윈의 블랙박스」:- 자연주의자, 다윈의 진화론에 의문을 제기. 미소영역 생물학(세포: 다윈의 블랙박스)에서의 지능적 디자인으로 볼 때 다윈의 진화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역시 생명의 기원은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름   메일   관리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답변/관련 쓰기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