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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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의 회개(발제)  
〈 커피 한 잔의 회개 >           2007.8.26 (밤하늘)

◇ 회개 - 회개는 결코 평온한 일상 속에서 가능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붕괴되는 격정적이고 총체적인 결단과 갱신의 경험. 그러나 동일한 시간, 장소, 형식, 성가대의 동일한 성가, 이 같은 예배를 통해 사람들은 “일상적” 회개를 남발한다. 의전을 통해 격렬한 고통 없이도 자신이 회개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값싼 회개에 불과하다.
회개는 시장의 상품이 되었고 신앙이라는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인 “싸구려 은혜”를 소비함으로써 갱신의 기회를 한 없이 미루고 만다.
저명한 개신교 원로 목사 세 사람의 회개 고백(2005년) - 그들은 다른 영역의 공적 지도자들보다 회개를 훨씬 가볍게 느끼고 있음이 분명. 왜냐하면 수 없는 의전 제도의 연습을 통해 회개를 쉽게 할 수 있었기 때문. 이런 태도는 비단 기독교 지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악성 회개에 탐닉해 현실에 안주, 방관하는 우리 모두의 문제.
유행하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란 노래도 교회가 내놓는 싸구려 사랑에 대한 소비 심리와 멀지 않다.    
※ 무엇보다 기독교 신앙은 스스로 주인공 자리를 벗어 던지고 종이 되었다는 고백에서 시작.
그런데 교회는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갈망에 휩싸임. 그래서 초기의 힘 없는 이들을 옹호했던 혁신성에서 멀어져 로마 권력과 결탁해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어 가진 자들의 종교로 변질. 이런 양상은 한국 개신교의 현재 모습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삶을 조용히 성찰하고 성숙을 위해 애쓰며 어두운 곳을 비추는 촛불이 되기보다 권력에 아부해 특권을 누리며 그 권세를 이용해 사회를 움직이는 주류 세력이 되겠다는 탐욕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다. 부패할 수 밖에 없는 권력에 대항하여 권력의 횡포에 벌거숭이로 노출되기 마련인 민초의 편에 서기보다 그 자신이 이미 버릇없기 그지없는 권력이 되고 말았다.

                          〈  성령의 도구화  〉
◇ 러일 전쟁 - 침체돼 가는 현재의 한국 교회가 복음이 맹렬히 활성화되는 성령의 역사를 염원하며 교회 부흥의 역사적 기원으로 꼽는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됐던 역사적 사건.
이 시기 교회의 대부흥은 1907년 대부흥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1905년 러일전쟁의 직접적 산물. 전쟁의 상흔에 신음하던 평안도 일대 사람들이 몰려간 교회에서 대중들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체감, 뜨거워지는 성령 체험. 이것은 다양한 욕구들로 범람하던 공동체의 이질성이 제거되고 광적인 신앙적 공통 감각의 형성으로 이어짐. 다른 생각은 용납되기 힘들어지고 선교사의 권력은 더욱 확고해짐. 이후 양적으로 비대해진 교회은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력 아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진. 선교의 열정과 산업화의 열기가 이 때문에 가능. 광적인 흥분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신비한 지도자(교회 지도자, 박정희)의 지도 아래 사람들은 차이가 해소되는 경험.
다른 생각, 차이, 배려, 존중은 들어서기 힘들고 오직 한 사람의 지도자를 광적으로 추종하는 분위기가 대세를 장악. 다중성이 획일성으로 전환. 산업화 시대 강력한 카리스마를 믿고 따르기만 할 뿐, 자유가 안기는 부담스런 선택과 책임이라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길 원하는 다중의 마음은 강력한 지도자를 불러들임. 현재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보수화는 다른 생각의 자유로운 경쟁을 혼란으로 이해하고, 차이를 없애서 하나의 목표를 제시하는 지도자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박정희 시대의 “질서”에 대한 염원. 이는 민주화 이후 다원화,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이탈해 간 교회 신자를 되찾기 위해 교회가 바라고 있는 것이 획일화가 지배하던 산업화 시대의 정서라는 것을 드러낸다. 이렇게 산업화와 독재 시대 교회의 부흥은 맥을 같이 할 수 밖에 없다.  

                        〈 한국 개신교의 미국주의  〉
많은 교회들의 주보에 실리는 교회 이미지는 대개 고급스럽고 커다란 교회 외관인 경우가 많음. 대형 교회의 신자가 되고자 한 욕망이 은연중에 표상화된 것. 이 대형 교회적 신앙은 힘에 대한 동경과 숭배. 이것은 다시 한국 기독교의 미국에 대한 선망으로 이어짐.
선발 대형교회, 후발 대형교회 모두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보수적. 후발 대형 교회는 세련되고 부드러운 듯하지만, 내부를 보면 폭력적 요소가 여전.
민주화가 진전되고 소비자본주의의 개인화로 인해 단일 정서로 똘똘 뭉친 개신교에 점점 더 많은 거부감.
그러나 대중 사회의 지지도는 그리 높지 않아도 정치 엘리트 집단 가운데 개신교인의 비율이 압도적이고 권력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높은 집단이 개신교라는 점에서 한국 기독교의 위기는 아직 현실이 아님.
부시 등장 이후 미국 정치에서 보듯 정치에 스민 근본주의적 기독교 요소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질서로 세상사를 도덕적 관점으로만 협소화시키고 민주적 의사소통보다 감정 편향적이고 독선적 신념이 정치 결정에 영향을 끼침. 부시는 근본주의적 종말론을 신봉하는 “메시아적 군사주의자”.  기윤실과 관련 있는 NGO 단체인 기독교사회책임 역시 앞으로 근본주의적 도덕을 정치 의제화할 것으로 예상.  
◇ 친미주의 - 한국 개신교의 맹목적인 친미주의는 ‘힘에 대한 선망’. 식민지 시기 개화는 인종주의적 배경을 지닌 선교사가 주는 선물을 받아 미개한 종족을 벗어나는 것. 기독교적 구원관과 서구의 인종주의는 동일한 구조. 미국의 근본주의는 기독교에 대한 인종주의적 해석.
 신사참배는 근본주의 관점에서 엄청난 종교적 흠결 사항. 여기에서 생긴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적, 즉 새로운 악마를 만들어 낼 필요. 신사 참배에 협력한 자신들을 얼치기 악마로 만들어버릴 진정한 악마, 악의 축. 그 무서운 괴물을 향해 모든 성도들이 단결하여 투쟁하도록 울부짖을 수 있는 그런 악마. 1947년에 조선신학교 학생들이 먼저 김재준의 신학관에 문제를 제기한 것을 필두로 북한에서 공산주의에 패퇴하여 월남한 이후 남한에서 개신교는 정치권력과 함께 공산주의를 악마화하는 데 앞장섬. 김재준 탄핵 등 숱한 이단심탄은 악마에 대한 시대적 열망과 부합.  반공은 근본주의 기독교의 상흔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제.
미 군정청과 남한 기독교의 협력 이후 교회는 신앙의 하나님 나라와 현실적 유토피아 국가로서 미국을 동일시. 미국과 소련을 본격적으로 경험하기 전에 이미 두 나라에 대한 선망과 적대가 고착화.
합동 찬송가에 실린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포함한 미국 대부흥운동기의 수많은 복음성가를 정통 찬송이라 여기는 실태는 한국 개신교가 가장 미국적인 감성의 공간임을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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