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이형채
2006/12/8(금)
조회: 1341
[민중신학 이야기] 톡서토론 정리  
[민중신학이야기] 독서토론 정리.  
진작에 올린다는 것이........ 많이 늦었습니다.
다들 용서해 주실거라...........^^*

일일이 발언자를 기록할까 했는데 그러고 하다보니 내용과 순서가 잘 정리가
안되서 그냥 발언자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 표시가 한 사람의 발언을 의미 한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토론을 잘 정리해서 적지 못하다 보니 컴퓨터로 옮기는데도 산만하기 그지 없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참, 여기에 정리 되지 않은 내용과 중간에 빠진 날짜는
제가 그날 졸았거나 입원했거나 둘 중 하나 때문에 기록 못한 것입니다.
그것도 양해를 덧붙입니다. ㅋㅋㅋㅋ (이 철면피~~~)

오자나 비문이 발견되면 보시는 분이 먼저 고쳐주세요.
제가 오늘 컴퓨터를 대전으로 보내거든요 ^*


[민중의 책 성서]
1월 18일.

<<토론내용>>

1. 성서에 대한 성직자들의 해석 독점과 이로 인한 성도들의 우민화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 이러한 상황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성서에 대한 학문적, 객관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교리적 접근만이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문자주의와 주관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과거 종교개혁 이후 성서 지상주의는 이러한 성서의 권위적, 주관주의적 해석 경향으로 인해 교단의 분열, 반목으로 까지 이어지기도 하였다.

*민중신학은 성직자가 독점하고 있던 성서를 민중에게 돌려주고자 한다.

2. 민중신학이 정의하는 복음에 관하여.

*민중신학은 예수사건이 가지고 있는 해방적 측면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 예수와 성서가 이야기하는 해방적 측면에 대한 조명이 없었기에 한국 개신교가
보수, 수구화 되고 사회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러기에 민중신학은 지금에도 그 필요성과 사명이 퇴색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한국교회이 그릇된 모습과 근본적인 모순 및 한계에 대하여 가장 날카롭게 지적 할 수 있는 신학이 곧 민중신학이 아니겠는가!

*오늘의 현실에서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동시에 피할 수 없는 패러다임은
‘선택과 결단’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중신학은 이 패러다임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동시에 강요하는 신학이라 할 수 있다. 결코 유행신학이 아니다.
작금 많이 지적되고 있는 신앙인들의 배타성, 실천성에 대한 비판과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과 고민 등을 민중신학이 제공해 주었다.
‘정통’이 가지고 있는 그릇된 모습들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민중신학은 꾸준히 요구해 왔다.

3) 오늘날 민중신학이 유효성에 대하여.

*민중신학이 말하는 민중해방 사건은 지금도 유효하다. 뿐만아니라 강하게 요청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가지고 성서를 바라보고, 질문해야 한다.
현장의 문제들과 함께 씨름하며 질문하지 않는 한 성서는 대답해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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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예수]

1월25일.

<<토론내용>>

1.
* 초대교회시대는 기독론에 대한 논쟁이 불필요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특별히 그레꼬-로마 시대로 흘러가면서 이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논쟁의 시기는 이미 예수는 물론 초대교회 시대와 삶의 상황이 변하였을 때이다. 고로 그 삶의 자리에서 기독론을 정리하는 데는 초기의 내용과 관점이 상실되기 쉬웠을 것이다.
안병무는 지금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오늘날 교회에서 이야기 되어지고 있는 기독론 역시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2. 민중에 대하여.

* 민중에 대하여 지나치게 미화해서는 민중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죄성을 가지고 있고 한계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민중신학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민중의 '자기 초월성'을 부인할 수 없다. 과거 전태일과 그 밖의 많은 열사들이 보여줬던 그러한 자기 초월성은 민중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고 그러기에 민중의 스펙트럼을 비좁게만 볼 수는 없다.

3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관하여.

* 십자가 사건을 안병무 선생님은 집단적 사건으로 보고 있는데...?
* 십자가 사건을 종교적 의미의 대속사건으로만 본다면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전 민중의 고통과 죽음을 볼 수 있어야한다. 예수의 죽음, 전태일의 죽음 등에서 나의 죽음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4.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에 관하여.

* 예수가 메이야적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 예수가 메시야의식은 부활이후에 강하게 등장하고 있는 개념이다. 역사적 예수를 면밀히 살펴본다면 예수가 스스로 메시야임을 언급한 적은 없는 것 같다.

*  구속사적 관점에 익숙한 우리는 구약이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고 있다고 배워왔다. 이러한 관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수 당시까지만 해도 구약은 정경화 되어있지 않았다. 또한 구약 내에서도 일관성있게 메시야를 예언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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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민중의 공동체-교회]

<<토론내용>>

1.
* 민중지향성을 공유하는 다른 종교끼리 통합이 가능하겠는가?

* 그러한 주장은 자칫 종교혼합주의로 흐를 수 있다고 본다. 종교간의 통합 보다는 “연대”가 더 성숙한 모습일 것이다.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해방을 위한 투쟁에 연대하는 모습! 얼마전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며 세 종교의 성직자들이 함께 삼보일배를 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2.
* 교회는 그동안 종교 기득권자들의 전유물이었다는 단정은 정당한 것인가?

* 일면 그렇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지금 그렇다고 교회가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 집단은 아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본래 추구하였던 정신과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그러하기에 교회는 아직까지 해야 할 일이 많다.
* 덧붙여, 왜 교회가 지금의 상황까지 왔는지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는 초기, 원시 그리스도교의 공동체의 모습에 대해, 예수가 원했던 공동체의 모습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3. 오늘날 교회와 그 지도자들의 부패한 모습들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 교회의 부패와 모순은 시간이 갈 수록 계속 심화되 가고 있다. 그러나 성도가 그러한 모습에 실망하여 교회를 버린다는 것은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밖으로 나가서하는 비판은 실제 교회 안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한다.
힘들지라도 안에서 부대껴가면서 개혁을 이루어 가는 것이 보다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4. 일반 사회 운동(과 그 기관)과 교회의 사회 운동의 차이는 무엇이겠는가?

* 안병무는 종말의식의 유무를 들어 설명을 하고 있지만 크게 차이를 두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교회는 하나님의 봉사의 도구로서 존재한다. 교회의 운동도 그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가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끊임없이 물어야하고, 또한 예수가 이루고자 했던 이상을 지금 이땅에 이루고자 노력하는 제자 공동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하나님나라의 전위대가 되어야 한다.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민중사건 속에 존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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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

[죄와 체제]

<<토론 내용>>

1.
* 인간의 한계성을 규명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실패한 인간에 대하여, 그  이유와 결과에대하여 설명하기 위해 성서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 원죄: 구구에게나 죄성은 있다. 다만 이때까지 교회에서는 이 죄성에 대하여 사회적, 구조적인 접근을 하지 않았다. 민중신학이 바로 죄성에 대한 사회 구조적 접근을 한 것 같다.
안병무는 ‘공의 사유화’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죄성이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이때까지 교회는 죄에 대하여 단지 종교적인 개념으로만 가르쳐왔는데 이는 시급히 극복 되어야 할 것이 아닐까.

2.
* 민중신학은 윤리, 도덕적인 죄. 그리고 종교적인 죄의 문제보다는 민중을 억압,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구조악을 죄의 문제로 본다.
* 성서를 살펴봐도 정죄 그 자체를 위해 율법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보호를 위한 것이었다. 율법의 정신은 정죄와 결코 관련된 것이 아니다.

3.
* 우리는 ‘구조악’에 동조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 모두가 정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하에서 이 자본주의의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동시에 소외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말아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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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민중해방과 성령사건]

<<토론 내용>>

1.
* 3,1운동 이후부터 시작되어 70-80년대 극에 달했던 성령운동이 한국교회의 교세 확장에 기여하였고, 지금은 이로인해 그러한 분위기와 내용이 기본적인 성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 그동안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해방적 내용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교세는 커졌지만 이에 비례하여 교회를 사회로부터 게토화, 우경화 시켰다. 안병무는 성령이 교회 밖에서도 활동하고 있다고 본다. 종교적인 울타리 안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역사 안에서도 활동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 같은 입장에서 성령의 신비한 은사와 그 현상만으로- 즉 교회 내의 방언, 신유등 만으로 성령을 이야기 하는 것에 반대한다. 단지 신비한 능력, 현상 뿐만아니라 역사참여적이고 자기 초월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심어주는 것도 성령이 역사라 생각한다.

2.
한국교회의 ‘성령충만’ 문화에 대하여.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으로 본다면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한 자기비움을 배워야지 단순히 가득 채운다는 생각하에 기도만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성령의 할동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교세를 확대하려는 것도 잘못이다.

* 교회사적으로 볼 때 성령운동은 제도권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되살펴 볼 필요가 있다.

3.
* 성령의 역사와 운동의 표현이 (지금은) 교회 내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음은 잘못이다.
나눔과 헌신조차도 교회 안에서는 그친다면 그것은 성령의 온전한 역사하심이라고 볼 수 없다. 성령충만한 사람이 곧 교회 내용(內用)의 사람이 되버리는 경우가 많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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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예수의 민중전기]

<<토론내용>>

1. 예수의 예루살렘 행에 관하여.

* 당시 예수의 가장 큰 적은 성전 지배자들과 성전 이데올로기였다. 예수는 바로 이 성전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예수는 의도적으로 예루살렘으로 갔었다. 복음서의 성전이 찢어진 기사는 곧 성전의 시대가 끝났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2. 근래 북미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하여.

*혹자는 역사적 예수를 견유학파적 성격을 띄는 ‘현자’로 묘사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예수 이해가 가난한 민중의 삶을 변화 시키는 폭발적 기제가 될 수 있겠는가. 오히려 해방자와 변혁에 기투한 사람으로 보는 민중신학, 해방신학의 예수가 더 우리의 삶에 강한 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교회와 성도의 삶의 자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예수를 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기득권의 자리에 있는 사람의 예수상과 고난의 자리에 있는 사람의 예수상은 다를 수 있다. 잘못된 예수상에 기대어 자신의 그릇된 삶을 합리화 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어느 자리에서 예수를 보고 있는가?  

3. 과거의 실패했던 예수가 오늘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이유는?

*예수를 통해 오늘 우리를 극복하는 것이 신앙인의 과제이다. 우리는 배제, 억압, 박탈을 체험하는 민중의 관점으로 예수를 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과 신앙을 성숙시키는데 있어 기존 교회의 관점만으론 부족하다.

*과거 예수의 고난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예수가 저항했던 체제와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예수의 저항과 투쟁을 전승해야 하는 것이, 그것을 삶으로 실천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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