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바위솔
2002/3/2(토) 09:00 (MSIE5.0,Windows98,DigExt) 211.206.128.183 1024x768
어느 바리새인의 전향  
어느 바리새인의 전향


행 9:1~9절



제가 아는 어느 신학교 교수님이 여전도회 행사의 설교 부탁을 받아 갔던 이야기를 들려 주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설교 시간에 "너무 열심히 믿으려 하지말고 살살 믿어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다들 "이게 대체 뭔 소리냐?"는 듯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더래요. 그 교수님이 말하시려 한 바는 이렇습니다. 교회에서 가만히 보면, 열심히 믿는 사람들이 문제를 많이 일으키지 적당히 대충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좋은 뜻에서 균형 있는 신앙을 갖도록 부탁하고자 하신 말씀이셨습니다. 너무 확신 있게 잘 믿는다는 것이 훌륭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때로 그로 인해 분쟁이 일어나거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지 않습니까? "수구"(守舊)가 뭡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양 새로운 이야기나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게 아니겠습니까? 너무 확고하게 잘 믿다보면 수구적인 신앙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일단 보수도 아니고 '수구'가 되기에 이르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가 불가능해집니다. 왜냐면 남의 생각을 충분히 경청도 하기 전에 자기만의 자로 남들을 마구 정죄하게 되니까 그렇습니다. 특히 신앙인들 가운데서 이런 답답한 경우를 자주 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전향하기 전의 바울이 바로 그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율법에 너무나 열성인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십자가에 사형된 예수라는 자를 메시아로 추종하며 율법을 거스리는 그리스도인들을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박해에 가장 앞장선 선봉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초대교회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도 그 현장을 진두지휘한 중심인물이었습니다. 바울의 본래 개인 이력을 살펴보면 매우 화려합니다. 그는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에다 당대 석학이었던 랍비 가말리엘 제자였노라고 밝힙니다. 게다가 유대의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나자렛 예수 추종자들을 색출하여 처벌하자는 안이 논의될 때, 바울 자신도 찬성표를 던졌다(행26:10)고 말한 것으로 짐작컨대 산헤드린 공의회의 의원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니 가히 당시 최고의 엘리트였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을 리가 만무하지요. 자신이 가장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율법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을 테니까요. 우리는 바울이 나사렛 예수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자신이 속한 바리새파 사람들과 늘 논쟁을 벌이며 적대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곳곳에 출몰하며 "예수가 그리스도다"는 불온한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바울에게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이 같은 주장이 진지하게 고려될 사항이 되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 주된 이유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인 지위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거의가 사회적인 약자들이요, 끼니를 제대로 잇기 힘들만큼 가난한 사람들이 태반이었습니다. 이런 민중들이 거짓 메시아를 내세워 추종하던 일은 예수 이전에도 자주 일어났으므로 바울은 아마 그런 엇비슷한 수준에서 이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그리스도인들이 그대로 놔둬서는 안될 만큼 예루살렘에서부터 공공연하게 큰 세를 형성해 나가는 것을 보고는 박해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박해 이유는 율법고수도 명분이지 되겠지만, 그 보다는 더 정치적인 이유가 강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체포하여 처형하기로 결정할 때 대제사장 가야바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민족을 살려야 한다"(요11:49-50)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예수를 처형했던 주된 이유는 민중들의 소요사태로 인해 헤롯 정권의 붕괴와 로마의 혹독한 보복이 있을까 두려웠기 때문이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예수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예루살렘에서 득세하게 된다면 똑 같은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이죠. 어쨌든 바울은 율법과 민족을 위한다는 일념 하에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고 고문을 가해서라도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범죄자들 가운데서 이런 확신범들이 무서운 거 아닙니까? 이런 종류의 사람들에게는 두려울 게 없는 겁니다.


본문에서는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죽음을 통해 이미 피 맛을 본 상태였기 때문에 거칠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내친 김에 대제사장의 위임공문까지 받아서 예루살렘 주변으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까지 색출하여 체포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일단의 무리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서 사울은 갑자기 눈부시게 비추는 빛 가운데서 들리는 부활한 예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바로 이 사건이 유명한 바울의 다메섹 도상의 전향 사건입니다. 보통 "바울의 회심"이라고 할 때가 많은 데, 그 표현을 쓰면 이 사건을 단순히 심리적인 측면으로 해석할 소지가 많게 됩니다. 옛날엔 그렇게 많이 이해하였으나, 지금은 "강자에 속했던 바울이 사회적 약자층으로 전향했다"는 차원에서 "전향, 혹은 소명, 회개"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보는 추세입니다. 바울의 전향 사건에 대한 보도는 사도행전에만 본문을 포함하여 총 3차례(9, 22, 26장) 언급되는 데 내용이 각각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령, 9장에서는 사울과 같이 갔던 사람들이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했고, 22장에서는 함께한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상반된 진술을 합니다. 26장은 예수의 음성 내용이 앞의 두 장과는 달리 자못 길고 자세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더 정확한 진술이냐를 놓고 따질 수 있는데, 모두가 전설적인 요소가 섞여있으므로 그건 여기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엘리트 사울이 자신의 자회적 지위와 같은 모든 걸 "배설물"(빌3:8)처럼 여기고 소수자이자 사회적 약자들이었던 그리스도인 대열에 합류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를 형성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에 속합니다. 바울이 아니었다면, 신약성서의 대다수 책들이 쓰여지지 조차 않았을 뿐더러 그리스도교가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종교가 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전 존재를 변화시켰던 바울의 전향은 "큰 사건"인 것입니다. 전향이라고 하니까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겪은 "전향공작"을 떠올리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최고의 장기수들이 상당수 우리 남한의 감옥에 반 백년 세월을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공산주의 이념을 버리고 전향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투항하라는 고문과 협박, 유혹 등 수 차례 전향 공작을 뿌리쳤던 분들이지요.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목숨처럼 지켜야하는 순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사상이란 그 어떤 불의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던 것이죠. 그만큼 "전향"이라는 건 굉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저는 바울의 다메섹 체험을 "전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게 더 걸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회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회개"는 너무 종교적인 의미로 착색되어 그다지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본디 성서에서 말하는 회개, 즉 헬라어로 "메타노이아"는 철저한 존재의 변화를 뜻합니다. 단순하게 잘못을 빌고 마는 수준이 결코 아닙니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 처음부터 외쳤던 말씀이 "회개하라!"가 아니었습니까? 이것을 자꾸 종교적인 의미로 이해하다 보니 이제는 별 감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향하라!"라고 말하면, 그 말이 담고 있는 무게 때문에 좀더 실감나지 않습니까? 바울의 예에서 보여 주듯이 그리스도교에서 "회개" "전향"은 엄청난 사건이고, 크리스천이 되기 위한 본질적인 요소에 속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서도 변화된 삶을 거부하고, 예수 믿기 전이나 예수 믿은 후나 큰 차이가 없다면 이건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겁니다. 전향하기 전 바울처럼, 정작 봐야할 복음의 진상을 보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하여 자신이 가장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자신은 본다고 하지만, 사실은 눈이 멀어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본다고 하는 자는 보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는 게 하나님 나라의 현실(요9:41)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울이 부활한 예수님을 만났을 때 눈이 멀어 잠시 소경이 된 일은 우리가 되새겨 봐야할 일입니다. 그동안 정작 봐야할 것을 보지 않고 자신이 가장 잘 보고 있는 줄로 착각하며 살았으니 눈이 멀어버린 게 아닙니까?


저는 불교의 걸출한 인물들 가운데 원효 대사를 좋아합니다. 그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일화 하나가 전해 내려옵니다. 원효가 하나의 파계승이되고 거지가 되어 산간 벽지를 배회할 무렵이었습니다. 강원도 어느 절간에 발을 들여놓고는 절간에서 밥짓고, 소제하고, 빨래하는 머슴(불목하니)이 되었습니다. 3년간을 작정하고 일하는 속에서 자신을 죽여가고 있었습니다. 절간에서 젊은 학승들이 아침 저녁으로 옷깃을 여미며 읽는 글은 원효가 해석한 [금강경주석]이었습니다. 원효는 그들을 위해 밥을 짓고 요강을 닦았습니다. 그 절의 주지는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밤낮 먹고 뒹구는 게으른 주지였습니다.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하루에 한 번씩 젊은 중들이 공부하러 들어간 틈을 타서 부엌으로 찾아와 누룽지를 얻어 가는 것뿐이었습니다. 원효는 절간에서 볼 것을 다 보았다 생각하고 새 일터를 찾아 길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절간에서 공부하던 모든 중들이 원효가 떠나는 걸 아쉬워했으나 그 누구보다 섭섭해 한 사람은 주지스님이었습니다. 그는 몇 번씩이나 원효가 떠나면 누가 내 누릉지를 챙겨주나 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원효는 어이없다는 생각을하며 길을 떠났습니다. 근데 자꾸 주지스님이 그 뒤를 계속 따라오는 거였습니다. 한 참을 가다가 주지는 숨이 차니 쉬어가자해서 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닦았습니다. 원효는 희미하게 보이는 절간을 돌아보며 "아무것도 배운 것도 없고 고생만 죽도록 했던 곳"이나 뭔가 끌리는 데가 있었다며 상념에 잠겼습니다. 바로 그때, 돌연 하늘이 터지는 듯 무서운 목소리로 "원효!"하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데, 깜짝 놀라 정신을 가다듬고 사방을 둘러 보았지만 미련하게 보이는 주지 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원효를 부른 건 주지였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지가 자신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효는 주지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주지는 미소를 지으며, "원효, 숨으려면 귀신도 모르게 숨어야지, 나같은 것 한테 들켜서야 어디 살수 있겠소?" 한 마디 던져두고는 말없이 가버리는 거였습니다. 원효는 그 길로 터덜터덜 내려가 염병이 도는 마을로 가서 시체를 묻고 병자를 돌보고 거지와 같이 자기도 하고 도적과 같이 길을 걸으면서 그들을 구해내는 불사신이 되었습니다. 원효는 일생동안 알 수 없는 이 누릉지 스님을 잊지 못했다합니다. <길을 찾은 사람들 : 김흥호 사색 7권 14~15쪽>


우리가 자만에 빠져 눈이 멀어있는 동안, 예수께서는 바울에게 그랬듯이 우릴 호통치듯 지금도 부르십니다. 제대로 눈을 뜨고 다시 세상을 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의 오만함으로 점철된 길을 가지말고, 예수께서 걸으셨던 생명의 길을 걸으라고 하십니다.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예수를 만나셨습니까? 예수를 만났던 그 충격적인 사건은 아직도 우리 안에서 계속되고 있습니까?

  이름   메일   회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답변/관련 쓰기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