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6/3/27
그는 우리의 희망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전파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거짓되이 증언하는 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정말로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을 터인데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또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2-22>



기억하라

 재작년 한국교회의 부활절 예배는 그 어느 해보다 침울했습니다. 불과 나흘 전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해 온 나라가 초상집이 된 상태로 부활절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둔 올해라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닙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 작업은 더디기만 합니다. 그동안 숱한 의혹이 제기되고 진실의 일단이 드러나긴 하였으나 이 참사의 원인과 책임소재가 명명백백히 밝혀지기까진 아직 멀었습니다. 사망자 304명 가운데 아홉 명의 주검은 여태 찾지 못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자가 600만 명에 달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특별법도 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노골적인 진실 규명 방해와 이들에게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는 무능한 야당,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세월호 참사는 점차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참사 초기부터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펼침막과 리본이 널리 퍼졌으나, 세월이 흐르는 사이 이 전대미문의 참사는 사람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중입니다. 물론 아직도 광화문 광장과 안산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이 있고 가슴에서 노란리본을 떼지 않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시민들 기억의 바다 속 깊숙이 점차 가라앉는 중입니다. 내일부터 이틀간 서울시청에서는 세월호 특조위 2차 청문회가 열립니다. 그런데도 이 사실은 4.13 총선에 가려 주요 뉴스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이 나라를 좀먹는 암 덩어리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누가 무고하고 앳된 생명들을 희생 제물로 삼았는지 어느 정도 그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대수술로 그 암 덩이들을 신속히 제거하고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해야 하는데 어설픈 봉합으로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세월호 참사사건 즈음에 한국교회가 매년 부활절을 맞는다는 사실은 불행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세상의 불의에 침묵하고 행동하지 않은 우리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를 돌아보고 참 부활의 생명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그 자체가 허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혹한 십자가의 고통과 좌절을 맞보지 않은 상태로 부활의 생명과 영광을 노래한다는 건 임신과 산통도 겪지 않고 예쁜 아기를 얻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네 복음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보낸 마지막 일주일을 비교적 상세히 보도합니다. 그만큼 예수님이 겪으신 수난을 중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수난을 우회한 부활의 영광은 성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빵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신 뒤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해줍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눅 22:19)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이 어떠한 고난과 죽음을 맛보셨는지 성만찬 예식을 거행하여 교회가 늘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리는 일도 진정한 부활의 기쁨을 맞고자 하는 몸부림이자 진통입니다.


부활의 맏물

사도 바울은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부활신앙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 “죽은 자의 부활은 터무니없다”며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나 봅니다. 1세기 그레코-로마사회에 널리 유행하던 각종 신비종교들 중에 오르페우스교나 미트라스교 같이 사후세계를 믿는 종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대체로 내세보다는 부와 명예, 행복 같은 현세적 가치를 더욱 부지런히 추구하였습니다. 아마 그러다보니 사도 바울이 전파한 부활신앙에 대해 교린도 교회 일부 신자들 가운데는 허황된 이야기라 일축하며 믿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교인 중에 부활을 안 믿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조금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바울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경우에도 처음부터 주님의 부활을 믿었던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들은 유대인이었고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부활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전해주자 그 사실을 선뜻 믿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직접 뵙고서야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비로소 확신하였습니다.

‘부활신앙’은 초기 교회를 형성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하였지만 그것을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로 만든 장본인은 바울입니다. 그는 예수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주님이 되시고자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롬 14:9)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그의 신앙 중심에 세웁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고전 15:14)이라고까지 말씀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줄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한 자신도 거짓말쟁이로 판명 나고 말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라고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보면 고린도교회 교인 중에 이미 사망한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 즉 신앙생활 하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주님의 재림과 함께 부활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면 그런 모든 기대와 희망이 허사가 되고 말 것이라 합니다. 사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처럼 확신하며 강조하는 데는 그의 개인적인 신앙체험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그리스도교 박해에 앞장 섰던 인물이었으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 뵌 이후 부활의 그리스도를 전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고 선포합니다. 부활신앙은 예수님 이전부터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부활하신 분은 예수님이 처음이셨습니다. 예수님 말고는 어느 누구도 부활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일컬어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 곧 ‘맏물’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농부들은 ‘맏물’을 거둠으로써 그 해 농사에서 어느 정도의 추수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합니다. 첫 열매가 실하면 곧 거둘 나머지 열매들에서도 풍성한 결실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우리가 부활의 소망을 지니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부활은 영적 각성으로 가능한 ‘영의 부활’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영인 성령을 받아 장차 종말의 날에 변화될 ‘영적인 몸의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활은 썩어 없어질 육신의 소생이 아닙니다. 형체 없는 유령의 나타남도 아닙니다. 기존의 낡은 옷을 벗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몸, 곧 형체를 지닌 상태의 부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자들을 이 신비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해 주셨습니다.


살리는 힘

 바울은 말씀합니다. “만일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고전 15:32) 내일에 대한 아무런 희망 없는 사람들의 삶은 이처럼 막장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자기 배 밖에 채울 줄 모르는 소수 부유층들도 그러하지만 ‘헬 조선’에서 허우적대는 숱한 사람들도 형태만 다를 뿐 극단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죽음에 굴복하는 생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죽은 자’로서 무덤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산 소망’을 갖게 하는 한줄기 생명의 빛입니다(벧전 1:3). 또 부활의 소망은 절망의 현실을 돌파하고 나아갈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비단 한 개인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중병이 들어 죽어가는 사회를 살리는 생명의 원천 같은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이란 말 자체가 ‘일어남’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과 절망의 무덤에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또한 죽음에서, 절망에서, 넘어진 땅 바닥에서, 무덤에서 일으켜 살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런 희망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부활의 산 소망을 품고 죽음의 현실을 넘어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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