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6/3/20
예수의 표징  

그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에게서 표징을 보았으면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표징 밖에는, 이 세대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땅 속에 있을 것이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부터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마태복음서 12:38-42>



허망한 표징들

 1981년 10월 18일 오전, 여의도 광장에 80만 천주교 신자가 운집한 가운데 조선교구설정 150주 신앙대회가 열리던 중이었습니다. 돌연 동남쪽 하늘 구름 사이로 흰빛의 십자가가 나타나 그것을 본 신도들이 크게 놀라 술렁였습니다. 당시 하늘에 나타난 십자가를 찍은 사진은 기적의 증거로 널리 알려졌고 십자가를 목격한 신도들은 간증도하였습니다. 하늘의 십자가는 2008년 미국 플로리다의 레이클랜드라는 도시에서도 나타나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토드 벤틀리 목사가 야외에서 진행하던 은사집회 현장의 하늘에 갑자기 십자가가 나타나자 거기 모인 수만 명의 청중들은 신비한 기적이라며 흥분하였습니다. 하지만 레클랜드 상공에 나타난 십자가는 홀로그램 방식의 인위적 조작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사실은 ‘서프라이즈’라는 TV 프로에서 8년 전에 다룬 바 있습니다. 여수엑스포 때 큰 인기를 끌어 지금도 가끔씩 상영하는 ‘빅오쇼’를 떠올리면 홀로그램이란 게 뭔지 아실 것입니다. 빛을 이용해 어떤 물체의 형상을 움직이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기법인데 1960년대 군사용으로 개발되어 오늘날에는 각 분야에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 기술을 종교에까지 이용하여 사람들을 현혹한다니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신비한 표적’을 보여주겠다며 무지한 대중을 끌어 모으는 거짓 선지자들은 신약시대에도 심심치 않게 출몰하였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사건 이후 사도들이 많은 표징과 이적을 행하며 복음을 전파하자 대제사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사도들을 붙잡아 옥에 가두고 유대 공의회의 재판에 넘긴 적 있습니다. 이때 사도들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예수가 부활하신 그리도이심”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러자 거기 있던 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는커녕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하자 존경받는 율법사 가말리엘이 의회원들을 타이르며 말합니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서, 자기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하니, 약 사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소.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하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다 흩어져 없어지고 말았소....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오. 이 사람들의 이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망할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여러분은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없소. 도리어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봐 두렵소.”(행 5:36, 38)

가말리엘의 이 같은 설득에 힘입어 사도들은 체형만 당한 뒤 다행히 풀려났습니다. 가말리엘이 말한 ‘드다’라는 거짓 예언자에 대해서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도 언급합니다. 그는 자신이 요단 강을 갈라서 그 땅에 쉽게 들어가게 하는 표징을 행하겠다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말하였답니다. 물론 드다는 그런 표징을 행하지 못하였고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습니다. 요세푸스는 이집트 출신의 한 거짓 예언자에 대해서도 전해줍니다. 그 사람은 속임수로 기적을 행하곤 하여 3만 여명을 끌어 모았고 그들을 데리고 광야를 돌아 올리브 산에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쳐들어가 로마 주둔군을 습격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려 왕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정보를 입수한 로마군이 출격하여 그들 대부분을 죽였고 이집트인 거짓 예언자는 자신을 따르는 몇 사람과 겨우 도망쳤습니다. 초자연적인 표징을 찾는 사람들의 말로가 이렇습니다.


요나의 표징

 드다가 보여주겠다던 요단 강을 가르는 일, 이집트인이 보여주겠다던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리는 일 등은 ‘표징’에 해당합니다. 이 ‘표징’은 ‘이적’과는 다릅니다. 이적은 단지 상식을 넘어선 초자연적 사건에 해당한다면, 표징은 거기서 더 나아가 그런 사건을 통해 신적인 은유나 상징을 드러내는 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일종의 신호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신약시대 많은 유대인은 이러한 ‘하늘의 표징’을 구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식민지배 아래 놓여 유대 독립의 희망을 찾기 힘든 암울한 상황이었으니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순식간 천지개벽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이건 비단 무지몽매한 일반 백성들만의 바람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같이 소위 학식이 있다는 자들조차 표징을 구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에게서 표징을 보았으면 합니다.”라고 표징을 보여주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 사실은 16장 1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더불어 ‘사두개파 사람들’까지 예수님께 와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은 단지 호기심에서 신기한 이적이나 구경하려고 표징을 보여 달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맞는지 그 표징으로 나름 알아보려는 속셈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선생님’(디다스칼레)이라고 정중히 호칭합니다. 단지 예수님을 시험하고 조롱하려는 뜻으로 접근하였다면 굳이 깍듯이 예를 갖추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두 차례 모두 냉담하고 날선 반응을 보이십니다. ‘표징을 보여 달라’는 사람들의 요청 자체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한 것은 그만큼 뭔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였을 겁니다. 그럴듯한 표징을 보여주면 믿고 따르겠다는 의지를 갖고서 표징을 요청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는 모습을 이미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적 정도만이 아니라, ‘반석을 쳐 샘물’이 솟게 한다든가 ‘엘리야의 불’과 같이 거창하고 놀라운 하늘의 표징도 혹시 보여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예수님께 나아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요구에 해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징을 요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게 할한 ‘표징’을 보여 달라는데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니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예수님 자신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표징인데도 그 사실을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기이한 다른 표징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마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하여도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아무리 놀라운 표징을 행하여 보여준다고 한들 그분이 가르치고 행하신 일들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몰라본 자들에게 어떤 믿음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악하고 음란하다는 건 단지 마음이 사악하고 음행을 일삼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실하지 않은 자들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예언자 요나의 표징 밖에는 이 세대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낮과 밤 동안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땅 속에 있을 것”이라 덧붙이십니다. 이 말씀은 물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예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뒤 무덤에 묻히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나의 표징을 그저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낮과 밤을 지낸 사실만을 가리킨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예언자 요나는 니느웨 성읍으로 가서 심판 예언을 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주님의 이 명령이 니느웨 성읍을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원수 니느웨 성읍 사람들이 모두 망하기를 바랐기에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칩니다. 그러다가 그가 탄 배가 큰 풍랑을 만났고 요나는 뱃사람들에게 자신을 바다에 던지면 바다의 풍랑이 잔잔해질 것이라고 합니다. 뱃사람들은 마지못해 요나를 바다에 던졌고 그제야 풍랑이 잔잔해졌습니다. 즉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기 전 다른 사람들을 건지고자 자진해서 희생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살아나 니느웨 성읍에 가서 예언하였고 그 성읍의 모든 사람과 짐승까지 다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대가 받을 표징은 ‘요나의 표징’ 밖에 없다고 하신 말씀은 그의 부활사건도 예표 하지만 그에 앞서 자신이 온 인류를 위한 속죄양으로 죽임을 당할 것임을 은유합니다. 즉 예수님은 새로운 표징을 보여주고자 오신 게 아니고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요나의 표징을 환기시켜 주러 오셨음을 일깨워주십니다.


진정한 변화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니느웨는 고대 앗시아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유다 예언자 요나의 심판 예언을 듣고 어린아이부터 노인, 심지어 가축들까지 다 회개하였다는 사실은 기적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모르던 이방인들입니다. 그런데도 예언자 요나가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고 한 마음 한뜻으로 회개하였습니다. 반면 예수님 시대 유대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한 평생 섬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쳐도 그 완악한 삶의 길에서 돌이키는 자는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놓아 처형당하셨는데도 진정한 회개에 이르는 사람들이 매우 드문 실정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라 경고하고 계십니다. 설령 우리가 전무후무한 표징을 본다고 하더라도 그 표징을 본 뒤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짱 헛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표징은 주님께 나아가게 하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역시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에게 보여줄 표징이라고는 ‘요나의 표징’ 밖에 없다.” 이 주님의 말씀을 오늘 우리를 향한 준엄한 경고로 알아들으십시다. 그리하여 진정한 회개로 삶의 변화를 얻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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