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7/2/17(금)
새 일을 보리라  
너희들의 속량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바빌론에 군대를 보내어 그 도성을 치고 너희를 구하여 내겠다. 성문 빗장을 다 부수어 버릴 터이니, 바빌로니아 사람의 아우성이 통곡으로 바뀔 것이다. 나는 주, 너희의 거룩한 하나님이며,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다. 내가 바다 가운데 길을 내고, 거센 물결 위에 통로를 냈다. 내가 병거와 말과 병력과 용사들을 모두 이끌어 내어 쓰러뜨려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을 마치 꺼져 가는 등잔 심지같이 꺼버렸다. 나 주가 말한다.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들짐승들도 나를 공경할 것이다. 이리와 타조도 나를 찬양할 것이다. 내가 택한 내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었기 때문이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이사야 43:14-21>


네게브의 비전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국제공항 이름은 텔아비브의 벤구리온입니다. 이스라엘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인 다비드 벤구리온(1886-1973)을 기념하고자 붙인 명칭입니다. 벤구리온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고 총리를 두 차례 역임한 정치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가로서 이룬 어떤 큰 업적으로 존경받는 게 아닙니다. 총리를 사임한 뒤 광야에 들어가 한 평생 황무지 개척에 헌신하였고 죽을 때까지 농사를 지으며 검소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국토가 우리나라의 5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더욱이 국토의 60% 가량이 광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갈릴리 지역 이외에는 연간 강수량이 너무나 적습니다. 특히 사해부터 홍해에 이르는 남부의 아라바 지역에는 연간 강수량이 우리나라 강수량의 40분의 1 수준인 30mm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국토도 좁은데 도저히 사람이 살기 힘든 불모지들이 절반 이상인 상황이니 식량자급은 언감생심처럼 보입니다. 한데 놀랍게도 오늘날 이스라엘은 식량 자급은 물론이고 농산물 수출로 연간 38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세계적인 농업 강국입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였을까요?

그 비결은 바로 오늘 본문의 하나님 말씀에 있습니다.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벤구리온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광야 개척자들은 이 말씀에 기초하여 불모지 광야를 농지로 바꾸었습니다. 어느 날 벤구리온에게 찾아온 손님이 물었습니다. “네게브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이 “사막이지요.”라고 대신 답하였습니다. 이 대답을 듣고 벤구리온은 단호히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아닙니다. 우리에게 네게브는 비전입니다.” 히브리어 ‘네게브’(Negev)의 의미는 ‘황무지’로서 요르단 서쪽 팔레스타인의 광야지역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벤구리온은 이 네게브를 ‘불모지’로 보지 않고 이스라엘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모두가 절망과 죽음의 땅이라고 보았던 네게브를 그는 생명이 넘실대는 축복의 땅으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땅으로 가꾸고자 전심전력을 다하여 마침내 고추, 가지, 토마토 같은 농작물이 풍부히 나는 농경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를 위해 바닷물을 담수화하고 지하수를 개발하였으며 무려 400km나 떨어진 갈릴리 호수에서 물을 끌어오기도 하였습니다. 또 우수한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하고자 천적을 이용한 농사를 짓는 등 농업기술 개발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였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데 오늘날 이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어 불모지 광야에 트랙터와 자동차가 드나드는 길이 생겼고 수로가 놓여 농지에 물을 공급한다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라, 새 일을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빌론에 군대를 보내어 그 도성을 치고 너희를 구하여 내겠다. 성문 빗장을 다 부수어 버릴 터이니, 바빌로니아 사람의 아우성이 통곡으로 바뀔 것이다” 이사야가 이 예언을 선포한 시기는 바빌론 포로기인 주전 540년대입니다. 바빌론 제국의 침공으로 유다왕국이 멸망하고 유다 백성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생활한 지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상태였습니다. 한 세대의 기간이 30년이니까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한 지가 벌써 두 세대에 접어든지 한참 지난 뒤입니다. 이처럼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고 나라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거의 잃고 말았습니다. 초강대국 바벨론의 그늘 아래서 운명이려니 생각하며 근근이 살아가는데도 이제 익숙해졌습니다. 설령 바벨론이 멸망하고 또 다른 제국이 들어선다고 해도, 그 나라 왕이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줄 리가 없기에 그저 지금의 삶에 감지덕지하며 사는 게 최선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동안 ‘이집트의 고기 가마’를 잊지 못해 모세와 아론을 들볶았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 때는 가끔씩 고기 구경이라도 하며 살았는데 자유를 얻어 광야로 나오자 고기 한 점 먹기도 힘들다며 아우성쳤습니다. 이게 바로 노예근성이라는 겁니다.

노예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자유인이 되어도 그 자유를 감당하기 힘들어 합니다. 미국에서 노예해방이 이루어졌을 당시에도 많은 흑인이 자신은 노예가 좋으니 그대로 살게 해달라며 주인 노릇하던 백인들에게 매달렸다고 합니다. 해방이 되고나니 어디서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꾸려야할지 너무 막막했기 때문이었지요. 어느덧 바벨론 포로생활에 젖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자유와 해방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조상들의 출애굽 사건도 전설 같은 옛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 다시 출애굽 사건 같은 일이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은 제2이사야 예언자를 그들에게 보내어 “내가 너희를 바벨론에서 구해내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초강대국 “바벨론 성문의 빗장을 다 부수어 버릴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어안이 벙벙할 만큼 믿기 어려운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이 소식만도 놀라운데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다 가운데 길을 내고, 거센 물결 위에 통로를 냈다. 내가 병거와 말과 병력과 용사들을 모두 이끌어 내어 쓰러뜨려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주님이 대체 언제 그랬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출애굽 사건 때에 이집트 파라오의 마병을 바다에 쳐 넣으신 사건에 대한 회고입니다. “그거야 이미 다 흘러간 옛이야기 아닌가요?”라는 볼멘소리가 당장 나올 법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과거 출애굽 사건’이나 추억하고자 이스라엘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신 게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은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출애굽을 능가하는 ‘새 일’을 곧 이루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하시려는 ‘새 일’이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일입니다. 출애굽 사건 때 이스라엘은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새 일을 행해 보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광야의 메마른 땅에 꽃이 무성하게 피고, 시냇물이 흐르고, 큰길이 생길 것(사 35:1-8)이라는 희망을 불어넣으십니다. 출애굽 사건을 능가하는 새로운 일을 행해 보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는 과거 옛 조상들의 출애굽 사건을 돌아보며 자신들의 암울한 처지에 절망하던 이스라엘에 주신 뜻밖의 소망입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절망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새 일을 시작하십니다. “우리 힘과 지혜로는 도저히 어찌해볼 방도가 없구나!”라고 탄식하고 절망할 때에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내십니다.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사용하셔서 수백 년은 계속될 것 같던 바벨론을 힘없이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전혀 예상치 못하였던 주님의 ‘새 일’이 이처럼 펼쳐졌습니다.


소망을 품고서

예언자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하늘 저편으로 살아졌을 때 그의 후계자인 엘리사는 스승이 떨어뜨리고 간 겉옷만을 들고 되돌아갑니다. 이렇게 그가 요단 강 앞에 당도하였을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스승의 그 겉옷을 갖고서 강물을 내리치며 외칩니다. “엘리야의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자 강물이 좌우로 갈라졌고 그는 강을 건넜습니다(왕하 2:14). 이에 앞서 엘리야는 그의 제자 엘리사와 함께 요단 강에 섰을 때 자신의 겉옷을 벗어 강물을 내리쳤고 강이 갈라져 두 사람이 마른 강바닥을 건너간 바 있습니다. 따라서 엘리사가 요단 강을 가르고 마른 강바닥을 건넌 사건은 스승 엘리야가 없는 상태에서 스승과 같은 이적을 처음으로 행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예언자의 시대가 저문다고 해도 주님께서는 그분이 택한 또 다른 사람을 통해 계속 일하고 계심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오늘 분명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이 말씀을 귓등으로 들어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 사건과 바벨론 포로 귀환, 십자가와 부활 사건 따위는 오늘날과 상관없는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형태로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놀라운 새 일을 행하십니다. 절망스런 현실일수록 주님이 행하실 구원의 새 일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주님이 행하실 새 일을 막연히 기다리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가슴에 품고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주님의 일에 기쁨으로 동참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일컬어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막 12:27)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흘러간 과거에, 성경책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셔서 일하십니다. 또 우리를 통하여 그분이 꿈꾸시는 새 일을 펼치고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 소망을 품고서 날마다 구원의 새 길을 열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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