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6/2/28
반면교사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보호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모두 똑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행하는 신령한 바위에서 물을 마신 것입니다.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를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 조상들이 악을 좋아한 것과 같이 우리가 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얼마는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백성들이 앉아서 먹고 마셨으며, 일어서서 춤을 추었다”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들과 같이 우상 숭배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간음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얼마가 간음을 하였고,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나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얼마는 그리스도를 시험하였고, 뱀에게 물려서 죽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얼마가 불평한 것과 같이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멸시키는 이에게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은 본보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고전 10:1-12>


망각한 삼일정신

 내일 모레면 3.1운동 97주년을 맞습니다. 3.1운동의 정신을 담은 기미 독립선언서는 이 나라가 독립국임과 민족의 자주, 자존을 선포합니다. 또한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고, 가엾은 아들딸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않으며, 자자손손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 대주려면 가장 시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일”이라 말합니다. 과연 독립선언서에 적힌 대로 이 나라가 자주 독립을 이루었는지 생각하면 아직 가아할 길이 멀어 보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3.1운동 이후인 1919년 4월 11일에 상해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공포하였습니다. 그 조항을 살펴보면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빈부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임. 제4조 대한민국은 신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신서, 주소 이전, 신체,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 등의 내용이 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백성이 나라의 주인임을 분명히 하고 자유와 평등, 인권 보호를 처음부터 중시합니다. 이는 삼일운동의 독립과 자유, 평등, 평화정신을 잇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라를 새로 만들어 보자고 우리의 조상들이 체포, 고문, 구금, 살해를 당하면서도 목숨 걸고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의 형편을 보면 부끄럽게도 3.1운동의 정신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가령 지난 23일 국회의장이 느닷없이 ‘테러방지법’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하여 그 법안 처리를 막고자 야당 의원들이 벌써 닷새째 무제한 토론을 벌이는 중입니다. 테러방지법은 국정원 출신의 이철우 의원이 22일에 대표 발의하였습니다. 보통은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관련 상임위와 법안 소위 등에서 충분히 시간을 갖고 그 법안의 타당성을 검토한 다음 본회의에서 처리합니다. 한데 테러방지법의 경우는 극히 이례적으로 발의한지 단 하루 만에 본회의에 직권 상정되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 같은 일반인이 봐도 문제투성이입니다. 예컨대 이 법안은 다른 모든 법안에 우선한다고 되어 있고, 국정원이 테러 의심자로 분류한 사람이라면 그의 통장 입출금 내역, 통신 내역 등을 영장도 없이 마음대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크게 침해하는 법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도 방송3사를 비롯한 대다수 언론은 이 법안이 조속히 처리되어야 테러가 방지될 수 있다는 듯 선전하는데 골몰합니다.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19년 8월 11일, 독일은 근대 헌법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헌법으로 알려진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하였습니다. 이 헌법은 언론, 집회, 신앙, 양심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설정하고 의무교육, 사회보장제, 노동력 보호 등을 사회권으로 보장합니다. 이 헌법에 따라 국민 누구나 생존에 필요한 경제적 보장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일은 바이마르헌법으로 이른바 ‘복지국가’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훌륭한 헌법을 가진 독일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과 14년 만에 무법천지의 파시스트 국가로 돌변했습니다. 1933년 2월 27일, 국회 의사당에 의문의 화재가 나자, 이튿날 당시 수상인 히틀러는 ‘공산주의자들이 방화를 일으켰다’며 이 사건을 빌미로 “국가와 민족의 보호를 위한 규정”을 만듭니다. 이로써 헌법이 보장하던 기본권을 크게 제한하였고 ‘국가 반역자를 처벌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긴급 조치를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공산당, 사회 민주당 당원, 유대인 등은 국가 안보 위협 세력으로 낙인 찍혔으며 동성애자, 집시, 장애자, 여호와증인 등은 반사회적 집단으로 체포, 구금되고 처형되었습니다. 법관들은 ‘바이마르 헌법’이나 다른 법률보다는 ‘총통의 원칙’을 더욱 중시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도 점차 나치스의 파시즘 국가와 같이 변화하는 중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이는 새삼스런 일이 아닙니다. 해방 이후, 반백 년 이상 한국은 권위주의 정부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 사이 삼일운동의 고귀한 정신은 까맣게 잊혔고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3.1운동은 기독교인들이 주도하다시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에 따르면 3.1운동 당시 기독교 인구는 20만에 불과하였으나 3.1운동의 주동세력 중 기독교인은 25-38%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전체 인구의 1.3-1.5% 정도 밖에 안 되던 기독교인들이 겨레의 독립을 위해 3.1운동에 주도적으로 대거 참여한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오늘의 한국교회는 보수와 수구세력의 아성이 되어 있습니다. 3.1운동의 독립정신과 사회참여 신앙을 망각하고 어느덧 사회 기득권 세력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는 맘몬숭배에 깊이 빠진 결과입니다.


빗나간 열망들

 오늘 사도 바울은 출애굽 사건을 회고하며 고린도교회에 경고와 권면을 합니다. 그는 조상들이 출애굽 당시에 어떻게 행동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례로 무엇을 교훈해 주시는지를  말합니다. 한국이 일제강점기에 3.1운동을 벌이고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면, 고대 이스라엘은 400여 년간 이집트 노예생활을 하다가 출애굽, 곧 이집트를 탈출하여 해방을 맛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 출애굽 사건을 떠올리며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보호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예민한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길 겁니다. “고린도교회의 구성원은 대부분 이방인일 텐데 홍해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조상들을 왜 ‘우리 조상들은’이라고 부를까?”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여기서 혈통상의 조상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출애굽 사건의 주역인 이스라엘 조상들은 세상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적 조상도 된다는 차원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 기둥의 보호를 받으며 홍해를 건넌 사건을 ‘세례’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신령한 음식’ 곧 하나님이 내려주신 ‘만나’를 먹고 신령한 바위에서 솟아난 물을 마신 사건은 그리스도인이 성찬식 때 먹는 빵과 포도주에 해당함을 암시합니다. 다시 말해 출애굽 사건 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고 만나와 반석의 물을 먹은 사건은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물로 세례 받고 신령한 음식인 성찬을 먹는 일의 한 모형에 해당함을 일깨워줍니다. 이처럼 바울은 출애굽 사건을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안내하는 중요한 하나의 모델로 이해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에 푹 젖어 있다가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하였습니다. 사실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려면 굳이 홍해를 건널 필요는 없었습니다. 더 가까운 육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로 이끌어 건너가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노예의 구습을 벗고 자유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안에서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옛 생활을 벗고 예수님을 모신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와 같은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출애굽의 조상들이 크게 다섯 가지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합니다. 첫째 그들은 악행을 즐겼습니다. 둘째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셋째 음행에 빠졌습니다. 넷째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다섯째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출애굽 조상들은 다 같이 주님이 보내주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호를 받으며 홍해를 건넜고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의 샘물을 맛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죄악을 범하여 광야에서 멸망에 이르고 말았을까요?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온갖 은혜에 만족하지 못하고 탐욕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이 쳐다보지도 말라고 금지하신 선악과를 탐내 따먹었다가 에덴에서 추방당한 사건과 같은 이치입니다. 출애굽의 조상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음식과 자유, 그 이상을 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악행과 음행, 우상숭배, 하나님에 대한 시험과 불평을 하다가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죄란 빗나간 열망”이라 하였습니다. 실제로 출애굽 조상들이 저지른 죄악의 면면을 살펴보면 ‘빗나간 열망’ 곧 탐욕으로 수렴됩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것들을 끝내 얻고자 열망하였기에 그토록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출애굽 조상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본보기를 삼으라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란 누구를 염두에 둔 말씀일까요? 그들은 뒤에서 나오는 소위 ‘강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함을 입었으므로 “맘껏 먹고 마시고 즐긴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버리실 리 없다고 자신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주장하며 무절제한 생활을 함으로써 고린도교회 안에서 ‘약한 자들’에게 큰 시험거리가 되었습니다. 참 신앙인이라면 신앙생활의 해가 더해 갈수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일지 늘 생각하며 더욱 겸손히 절제하면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할 것입니다(빌 2:12).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고전 9:27) 그는 출애굽 조상들이 ‘오만한 착각’에 빠져 파멸에 이른 일을 안 좋은 본보기로 제시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신을 본받을만한 신앙 모델로 내세웁니다. 예컨대 그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고전 11:1)라고 권면합니다. 이렇게 말씀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자신의 몸을 “쳐서 굴복시켰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순례의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품에 안길 때까지 우리는 한눈팔거나 곁길로 새지 않고 주님을 본보기 삼아 부지런히 나아가야 합니다. 처음 주님을 따라나선 때와 같은 한결 같은 걸음으로 늘 겸허히 그분과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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