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6/2/21
언약의 씨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뿐입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이제, 저의 집에 있는 이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아브람이 이렇게 말씀드리니,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아브람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리고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다. 너에게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한 마리씩을 가지고 오너라.“ 아브람이 이 모든 희생제물을 주님께 가지고 가서, 몸통 가운데를 쪼개어, 서로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비둘기는 반으로 쪼개지 않았다. 솔개들이 희생제물의 위에 내려왔으나, 아브람이 쫓아 버렸다.
                                                               <창 15:1-11>



네 번째 약속

선거철이라 총선 예비 후보자들이 유권자의 표를 얻고자 앞 다투어 이런저런 공약을 내놓습니다. “자신의 정재계 인맥을 동원해 중앙정부를 잘 설득해 지역에 큰 예산을 끌어 오겠다.” “가계 부채를 획기적으로 해결해 주겠다.” “도로를 넓혀 교통체증을 해소하겠다.” “청년 일자리를 수만 개 늘리겠다.” 아마 당선만 시켜준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겠다는 후보들도 있을 겁니다. 재작년 초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이 대한변협 강연에서 “(정치인들이) 국민 여러분 ‘내가 당선되면 이런 거 해주겠습니다.’ 여기에 속아 가지고 표 찍어주고, 대통령되고 국회의원 당선됐다”고 말했다가 그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를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다시는 속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좋은 후보자를 가려내려 힘써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 당장 쏟아내는 공약만 볼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달콤한 사탕발림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삶의 이력은 감추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정말 신뢰할만한 사람이라면 당장은 사정상 공약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인내하며 기다려 줄 수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신뢰 관계가 잘 유지되느냐 여부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평소 그 신앙의 자세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출신입니다. 우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중심 도시이자 오늘날 이라크 남서부 지방에 위치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도시에서 아브라함을 이끌어내어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세겜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는 무려 1500km가 넘는 거리입니다. 지금 같이 교통이 발달한 시대에도 이처럼 머나먼 길을 가족들 데리고 자동차로 가라고 하면 선뜻 엄두가 나지 않을 겁니다. 가다가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그 머나먼 길을 떠난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와 조가 롯, 종들을 데리고 미지의 땅으로 과감히 떠났습니다. 대단한 모험을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이 있기 전, 아브라함의 출갈대아 우르 또는 출메소포타미아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 우르를 떠난 건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와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십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고 명성을 크게 떨치게 해주겠으며, 복의 근원이 되게 해주겠다.” 어떻습니까?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런 약속을 하시며 지구 반대편의 듣도 보도 못한 어떤 오지로 떠나가라면 혹시 가실 분이 계신가요? 아브라함 시대 우르는 하나님을 믿던 도시가 아닙니다. 태양, 지하수, 바다, 번개 등 여러 자연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이런 도시 출신인 아브라함은 생소하게 다가왔을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그 약속을 바라보며 길을 떠났습니다.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가 일흔 다섯입니다. 치기어린 젊은 패기로 저지른 일이 아니고 이제 서서히 인생을 갈무리해야할 노년에 떠난 여행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질 기미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세겜과 헤브론에서도 나타나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마” “네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게 해 주마”(창 12:7; 13:14-16)하고 거듭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벌써 네 번째 반복되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을 때면 어떻게 했습니까?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께 제사를 드렸고 두말없이 그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네 번째 약속이 있자 다소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대꾸한 말입니다.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하시더니, 여태 자식 하나도 주지 않으셨으면서 또 무엇을 주시겠다고 그러십니까?” 실은 이런 말이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큰 부자가 되게 해주신 일 말고는 ‘약속과 관련하여’ 눈에 띄게 도와주신 게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리다 못해 그의 종 다메섹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 만들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며 그것을 허락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으로선 상속자도 없이 죽을까봐 무척 조바심이 났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느긋하셨습니다. 훗날 아브라함이 175세까지 장수한 사실(창 25:7)을 생각하면, 아브라함이 너무 조급하게 행동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시간은 우리와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어떤 기도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안달복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득하게 기다리십시오. 적절한 때가 이르면 이루어주실 겁니다.


상속자 다툼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누구냐는 문제는 지금까지 첨예한 논쟁거리입니다. 아브라함의 종교들로 불리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서로 자신의 종교야말로 아브라함의 진정한 상속자라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유대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었을 때 그의 본처 사라를 통해 마침내 이삭이란 아들을 주셨고, 그 이삭이 이스라엘의 선조이므로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적통이라 주장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할례’를 언약의 증표로 처음 받은 선조이고 ‘많은 민족의 아버지’로 부름 받은 분이므로 토라 이전의 유대인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이 주님의 명에 따라 희생 제사로 바치려한 아들은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라며 그들 조상 이스마엘이야말로 진정한 아브라함의 상속자라 주장합니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하자 주님은 천사를 보내 그것을 제지하신 뒤에도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창 22:12)고 말씀합니다.

이슬람교는 이 말씀에 나오는 ‘외아들’과 ‘이삭’은 유대교가 의도적으로 변질시킨 거고 실제로 그 아들은 이스마엘이었다고 믿습니다. 엄연히 이스마엘이란 큰 아들이 있는데도 하나님이 ‘너의 외아들 이삭’이라 말씀하셨을 리 없다는 겁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카바신전을 건립하였고 여기에 아브라함의 발자국이 있다며 그곳을 가장 중요한 성지로 여깁니다. 기독교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임을 자처합니다. 즉 “율법을 지닌 혈통상의 아브라함 자손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으로 사는 모든 사람도 그의 자손”(롬 4:16)이라며,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라 주장합니다(갈 3:29). 요컨대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혈통과 토라 또는 성지 따위로, 기독교는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의 유무로 서로가 진짜 상속자임을 다투는 중입니다. 사실 혈통만을 놓고 엄밀히 따지자면 유대인과 이슬람교 신자라 해서 모두가 아브라함의 실제 후손인 건 아닙니다. 출애굽 사건 당시나 가나안 땅 정착 단계에서 이스라엘은 여러 이방민족과 뒤섞였습니다. 근 천년의 세월을 유랑하고 나라를 재건한 지금은 더욱 그러합니다. 이슬람교의 경우도 중동지역 민족의 일부가 이스마엘 직계 후손인 건 사실이지만 오늘날 무슬림 전체가 그 후손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해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고 하신 약속은 그와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이 많이 나오게 하겠다는 뜻이지 실제로 혈통상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주겠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자꾸 혈통상의 상속자를 세우려하자 그런 시도를 막고 그가 백세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주님께서 아들을 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의로운 후손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창 15:6)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브람이 주님을 ‘믿었다’고 번역된 히브리어 ‘아만’이란 단어는 ‘신뢰하다’ ‘충성하다’ ‘성실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단지 하나님을 맹목적으로 믿었다는 말이 아님을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성실한 신뢰 관계를 맺는 자를 ‘의롭게’ 여기십니다. 모세도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 그가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충실하게 지키면, 그것이 우리의 의로움이 될 것이다.”(신 6:25)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언약을 굳게 신뢰하며 그분 앞에서 성실히 행하는 자를 의롭다고 여기십니다. 아브라함의 상속자는 바로 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혈통이나 전통, 유산 등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처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주님께 인정받은 의로운 모습을 조금도 지니지 않았다면 혈통이나 전통, 유산 등이 다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베드로전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벧전 1:23)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의 씨앗으로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참 상속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삼년 된 암송아지, 암염소, 숫양의 “몸통을 쪼개어 서로 마주 보게”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희생제물을 가로채 가고자 솔개들이 달려들었고 그는 그 솔개를 쫓아냈다고 했습니다. 고대에 언약을 맺을 때 희생제물의 몸통을 쪼개어 놓고 그 사이로 지나간 이유는 그 언약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을 경우 쪼개진 짐승과 같은 형벌도 감수하겠다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과 맺는 이 신성한 언약을 솔개들이 달려들어 가로채려 하였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쫓아냄으로써 그 언약을 살려냅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 앞에서 성실히 살고자 하면 할수록 솔개들 같이 그것을 방해하고 망가뜨리려는 어둠의 세력이 달려들게 마련입니다. 그럴지라도 주님과 맺는 영원한 언약을 깨뜨리고 그 성취를 가로막는 모든 세력을 성령의 검으로 잽싸게 담대히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믿음의 길을 늘 성실히 걸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심으신 의로운 씨앗으로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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