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6/3/19(토)
딸들의 곡소리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올 때에, 소구를 치고 춤추며 그를 맞으려고 나오는 사람은 바로 그의 딸이었다. 그는 입다의 무남독녀였다. 입다는 자기 딸을 보는 순간 옷을 찢으며 부르짖었다. “아이고, 이 자식아, 네가 이 아버지의 가슴을 후벼 파는 구나.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것이 하필이면 왜 너란 말이냐! 주님게 서원한 것이어서 돌이킬 수도 없으니, 어찌한단 말이냐!” 그러자 딸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입으로 주님께 서원하셨으니, 서원하신 말씀대로 저에게 하십시오. 이미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원수인 암몬 자손에게 복수하여 주셨습니다.” 딸은 또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한 가지만 저에게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두 달만 저에게 말미를 주십시오. 처녀로 죽는 이 몸,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실컷 울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입다는 딸더러 가라고 허락하고, 두 달 동안 말미를 주어 보냈다. 딸은 친구들과 더불어 산으로 올라가서, 처녀로 죽는 것을 슬퍼하며 실컷 울었다. 두 달 만에 딸이 아버지에게로 돌아오자, 아버지는 주님께 서원한 것을 지켰고, 그 딸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몸으로 죽었다. 이스라엘에서 한 관습이 생겼다.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산으로 들어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애도하여 나흘 동안 슬피 우는 것이다. <사사기 11:34-40>



강요된 선택

 지난달 28일 정부와 일본이 느닷없이 ‘한일 위안부협상 타결’을 발표하였습니다. 정부가 위안부 지원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이 97억 원을 지원하며 이로써 “한일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타결되었다”는 내용이 골자였습니다. 이 같은 소식에 ‘굴욕적 졸속 협상’이라며 ‘원천 무효’를 주장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거셉니다. 저희 교회가 속한 예장통합 교단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1월 4일)하였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는 정부의 일방적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행태와 맞물려 날이 갈수록 국민의 큰 저항을 사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 가까운 선배 목사님 한 분이 굴곡진 현대사의 압축판 같은 자신의 어머님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담담히 쓰신 걸 보았습니다. 수년 전 어머님이 병세가 위중해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평생을 숨겨왔던 본인 이야기를 며느리인 그 목사님 부인에게 들려주셨답니다. 돌아가실 때가 되신 줄 알고 유언처럼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어머님은 일제 강점기 충남에서 빈농의 딸로 태어났답니다. 일제가 조선 처녀들을 대상으로 종군 위안부 강제 차출에 나설 무렵(1937년~45년 이후), 부친은 십대 후반인 딸을 장애인에게 시집보냈습니다. 겨우 해방을 맞았으나 전쟁 통에 남편과 자식을 다 잃고 이십대 후반에 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뒤 가족을 남겨두고 월남한 아홉 살 연상 남성과 재혼하였으나 그 남편마저 70년대 초에 사망해 두 번째 과부가 되었고 온갖 고생을 다하며 홀로 자식들을 키워내셨답니다. 선배 목사님은 이 같은 어머님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한 번도 자신이 선택한 삶이 아니셨다고 했습니다. 일제의 종군 위안부 강제 동원으로 자신의 어머니처럼 간접 피해를 당한 분들까지 다 헤아린다면 그 피해자는 굉장히 많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감히 누가 피해자들에게 아무런 의견도 묻지 않고 일본에 합의할 수 있느냐고 지적하십니다.

일제강점기 ‘정신대’라는 이름의 성노예로 강제로 끌려간 조선 여성들의 규모는 17만에서 2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지역적으로는 경상도에서 가장 많이 끌려갔고 그 다음은 충청도, 경기도, 서울, 전라도 등입니다. 일본인들의 왕래가 잦고 인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강제 동원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일제가 조선 처녀들을 강제 동원한 방법 중 63%가 취업사기로 나타났습니다. 워낙 배고프고 힘들게 살던 시절이라 군수공장에 취직시켜서 돈 벌게 해 주겠다는 미끼로 끌고 간 겁니다. 학교의 일본인 교사나 교장에게 속아 차출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수십 만 명이 종군 위안부나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참혹한 수난을 겪었는데도 이 끔찍한 전쟁범죄는 오랜 세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일본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피해자임을 용기 있게 직접 증언하면서부터 일제의 만행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전까지 피해 할머니들은 너무 수치스럽고 비참해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그저 가슴에 담고 살아오셨습니다. 그분들 잘못이 아님에도 죄인처럼 숨죽이며 모진 세월을 견디며 지내신 것입니다. 현재 남한의 피해 생존자는 마흔 여섯 분이십니다. 북한에도 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계시고 북한도 일제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중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남북이 공동으로 대응해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24년 전 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은 첫 수요시위 때 굵은 베옷을 입고 나오셨답니다. 자신들의 꽃다운 삶은 소녀시절 정신대로 끌려갈 때 이미 사망하였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와 반성만이 이 분들의 한을 풀고 뒤틀린 한일관계를 푸는 열쇠입니다.


서원의 덫

오늘 성서 본문은 사사 입다와 그의 딸 이야기를 다룹니다. 입다는 므낫세 지파에 속하는 길르앗 출신입니다. 그의 부친은 ‘길르앗’이라는 씨족장이었습니다. 입다의 고향 지명 자체가 ‘길르앗’이라 불린 것을 보면 상당히 유력한 가문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요즘 말로하면 가히 ‘금수저’ 급에 속한 집안이라 하겠습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입다의 출세 길은 보장되었을까요? 불행히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길르앗이 창녀와 사이에서 낳은 서자였습니다. 자라면서도 본처 자식들에게 무척 멸시를 많아 받았을 텐데, 부친이 죽고 그 유산을 물려받을 즈음에는 아예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본처가 낳은 형제들이 “너는 유산을 물려받을 자격이 없다”며 그를 집안에서 내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길르앗의 장로들도 가담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산 분쟁이 생기거나 마을에 어떤 사건, 사고가 생기면 장로들이 개입해 관습법에 따라 처리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입다는 므낫세 지파의 변두리인 ‘돕’이란 곳으로 가서 비적떼 두목이 되었습니다. 그는 용맹한 무사라 수하에서 노략질하며 살려는 건달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습니다. 입다는 어느 정도 힘이 생기면 자신을 쫓아낸 집안 형제들에 대해 꼭 앙갚음하겠다며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르앗 장로들이 찾아와 암몬족이 쳐들어와 속수무책이라며 도움을 간청하였습니다. 사사시대 이스라엘에는 상비군이 없었습니다. 적들이 쳐들어오면 지파마다 오합지졸 민병대를 조직해 대처하는 정도였습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와 도움을 청한 까닭은 기존 방식으로는 암몬 군대를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서였을 겁니다. 입다는 비적떼를 거느리고 다니며 늘 일삼아 하는 게 노략질이요 싸움 아닙니까? 장로들은 입다를 지휘관으로 세우면 암몬 군대를 막는데 유리할 거라 여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입다는 “전쟁 땐 지휘관으로 써먹다가 암몬족을 물리치고 나면 내 팽개치려는 속셈 아니냐”는 식으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에 장로들은 “절대 그런 일 없다”며 입다를 길르앗의 통치자로 삼겠다고 공언합니다. 사사는 보통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한데 입다의 경우는 특이하게도 길르앗 장로들이 먼저 그를 지휘관과 통치자로 위촉하였고, 주님의 영은 암몬 군대와 전쟁하기 직전에야 입다에게 내립니다(삿 11:29). 입다는 마지못해 장로들의 간청을 수락합니다. 그 다음에 곧이어 암몬 군대와 나가 싸운 게 아닙니다. 암몬 왕에게 두 차례나 서한을 보내 치열한 외교전을 먼저 펼칩니다. 가급적이면 시간도 벌고 피도 흘리지 않은 채 암몬을 물리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암몬 군대의 상태를 파악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요. 이때 보낸 서한에서 입다는 “우리 사이에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나의 영토를 침범하십니까?”(삿 11:12)라고 말합니다. 그는 왕처럼 ‘나의 영토’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합니다.

어떻게든 암몬 군대를 물리쳐 길르앗 통치자에 오름으로써 지난날 자신의 모든 치욕을 씻어내야겠다는 야심이 엿보입니다. 그는 미스바에서 출병하기 전 하나님께 서원하였습니다. 만일 자신이 암몬 족속을 이기고 돌아오면, 집에서 제일 먼저 맞으러 나온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무서운 내용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서원을 한 것일까요? 사람을 번제물로 주님께 바치려던 사례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그의 독자 이삭을 불태워 바치려다 무산된 사건이 유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방신들을 숭배하느라 자신의 아들이나 딸마저 불살라 바치는 짓을 역겨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신 12:31). 율법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은 이방인들이나 행하는 인신제사의 풍속을 결코 따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예언자 엘리사 시대 모압 왕 메사는 유다와 이스라엘 연합군에 맞서 싸우다 전세가 극히 불리하게 돌아가자 자신의 장자를 죽여 성벽 위에서 번제로 드린 적 있습니다(왕하 3:27). 이처럼 인신제사는 이방인들도 아주 극단적인 상황에 행하던 종교의식입니다. 한데 입다는 그런 풍속을 따라 주님께 사람을 살라 바치기로 서원하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오랜 곡소리

그는 암몬과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때 입다의 집에서 가장 먼저 나와 맞이한 사람은 그의 외동딸이었습니다. 이에 입다는 물릴 수 없는 자신의 서원 때문에 매우 가슴 아파합니다. 딸은 “아버지가 서원하신 대로 저에게 하시라”며 다만 “두 달의 말미를 주어 처녀의 몸으로 죽는 자신을 위해 친구들과 더불어 실컷 울게 해 달라”고 합니다. 사실 이 시대에 아버지의 결정을 물릴 수 있는 자식은 없었습니다. 특히 암몬 군대를 물리친 전쟁 영웅 입다가 길르앗의 통치자로 오르기 위한 희생양을 찾는데 그 딸이 무슨 힘이 있어 아버지를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두 달의 말미를 얻어낸 것만도 매우 이례적인 일에 속합니다. 이름도 나오지 않는 입다의 딸은 친구들과 더불어 산에 올라가 두 달간이나 애곡하였습니다. 그리고 내려와 아버지 입다의 손에 죽어 번제물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소름끼치는 사건입니다.

놀라운 건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아 번제물로 드리려 했을 때 천사를 보내 그것을 막으신 하나님이, 입다가 그의 딸을 죽일 때는 내버려두셨다는 점입니다. 입다는 주님께 서원한 그대로 행하였고 사사로서 후세에까지 큰 명성을 떨쳤습니다. 이 사실을 고려하면 마치 하나님이 입다의 딸을 번제물로 기꺼이 받으신 것처럼 보입니다. 입다가 잘못된 서원을 한 것이나 그 어리석은 서원대로 인신제사를 받은 하나님이나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평가마저 나올 법합니다. 하지만 사사 입다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줄곧 침묵하신다는 사실을 유념해야합니다. 유일하게 “주님의 영이 입다에게 내렸다”(11:29)는 짤막한 언급이 있으나 그 문구는 후대에 덧붙여진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입다의 딸은 그의 친구들과 더불어 두 달이나 애곡하였다는 대목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입다의 딸을 위해 나흘씩 슬피 우는 관습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이 애곡의 관습이 언제까지 지속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부장에 의해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박탈당한 딸들의 한 맺힌 통곡임에 틀림없습니다. 최근 한일 위안부 협상을 보면 이게 고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권력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국민을 그들의 음흉한 야욕이나 채우기 위한 수단쯤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여실이 보여줍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우리 스스로 약자로 여기며 그저 애곡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고한 희생양은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더 이상의 슬픔과 탄식, 애곡이 없는 세상을 위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각자의 소중하고 정당한 권리를 과감히 요구하고 되찾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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