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6/3/19(토)
뿌리에서 오다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자기의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올라갔다. 그 때에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그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되었다.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1-7>



임마누엘! 이 세상에 갓난아기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오늘날 성탄절은 그리스도교의 최대 명절이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4세기 중반에 로마 교회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하고 지키기 전까지는 그리스도교는 성탄절을 크게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교 최대 명절은 부활절이었고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는 절기는 따로 없었습니다. 네 권의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마가복음만 해도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전혀 전해주지 않습니다. 요한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셨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만이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전해줄 뿐입니다. 마태와 누가도 예수님 탄생의 목격자는 아닙니다. 그들은 초기 교회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던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수집하였고 중요하다는 생각에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마태와 누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나셨는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온 세상에 알려지기 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탄생이 당시 그레코-로마 사회 전체의 판도를 바꿀만한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배경을 그저 유대 베들레헴과 헤롯 왕 통치 시대에 국한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는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마 2:1)고 말합니다. 동방박사, 곧 페르시아의 점성가들의 방문을 언급하긴 하나 마태가 전하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배경은 헤롯 왕국, 그것도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 머물러 있습니다. 반면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의 배경으로 공화정 로마의 실권자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을 언급합니다. 새번역 성경이나 천주교 성경 등은 누가복음 2장 1절을 “그 때에(혹은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를 ‘황제’라고 호칭합니다. 16세기 종교개혁가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에서 ‘아우구스투스 황제’라고 처음 번역했는데 그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틀린 번역입니다. 헬라어 성경은 ‘카이사로스 아우구스투’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사실상 ‘황제’였으나 죽을 때까지 공식적으로는 ‘황제’라는 직함을 쓰지 않았습니다. 외형상 로마는 300명의 귀족으로 구성된 원로원이 함께 다스리는 ‘공화정’이었습니다. 왕 혼자서 마음대로 통치하는 군주국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이 너무 커서 로마를 통일한 아우구스투스조차도 ‘황제’로 자처할 순 없었습니다. 그는 다만 ‘제1시민’(프린켑스) 또는 군 통수권을 지닌 ‘호민관’ ‘집정권’의 직함을 갖고서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호칭만 ‘황제’가 아니었지 현실에서 그는 황제를 넘어 ‘신’(神)으로 숭배되었을 정도 절대 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는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의 공식 직함이 ‘국방 위원회 제1위원장’인 것과 유사합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수령, 주석, 왕, 황제로 호칭만 되지 않을 뿐이지 사실상 그와 같은 지위와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주전 27년부터 주후 14년까지 무려 41년간 로마제국을 통치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 청소년 시기를 보내는 동안 아우구스투스는 광대한 로마제국을 다스리는 절대 권력자였던 것입니다.

누가는 아우구스투스가 “온 세계에 호적 등록을 하라”는 칙령을 내리자, 그것을 이행하고자 갈릴리 나사렛에 살던 요셉과 그의 약혼녀 마리아가 고향 베들레헴으로 갔다고 말합니다. 이 당시 마리아는 곧 출산을 앞둔 임산부였습니다. 그런데도 만삭의 몸을 이끌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110km가 넘는 거리를 여행합니다. 군주의 칙령 하나로 온 세상의 평범한 백성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단지 “요셉과 마리아가 이토록 고생하여 아기 예수를 낳았다”는 사실만을 말하고자 이것을 기록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가 굳이 ‘호적 등록’을 말한 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로마 황제가 호적 등록을 하라고 명령한 이유는 물론 세금 징수를 더 많이 하려는 데 있습니다. 식민지 백성들로서는 몹시 못마땅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요셉과 마리아가 그런 불만을 갖고 있었다는 표면상의 증거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명령을 충실히 준행하는 식민지의 가난한 젊은 예비 부부였습니다.

누가가 말하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호적 등록 칙령”에는 지금껏 가려진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입니다. 그의 부친은 평민이었고 어머니는 귀족 출신이긴 했으나 평민계층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부모나 가문으로 보면 카이사르를 이어 로마의 통치자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네 살 때 부친을 여의었고 어머니는 남편 사망 이후 재혼하였습니다. 덕분에 옥타비아누스는 외할머니 손에서 잘라야 했습니다. 한데 이 외할머니의 오빠가 바로 로마의 최고 권력자였던 카이사르였습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지금의 이탈리아 북부)를 정복하고 로마의 독재관(딕타토르)이 되었습니다. 독재관이란 공화정 로마가 국가 비상사태에 임명하는 6개월 임기의 임시 집정관입니다. 독재관은 정치체제를 바꾸는 일을 제외한 모든 사안의 결정권을 홀로 행사하였고 누구도 그 결정에 반대해선 안 되었습니다. 오늘날 ‘독재자’라는 말이 바로 이 독재관에서 나왔습니다. 카이사르는 독재관에 만족치 않고 ‘황제’가 되려다 이를 반대하는 귀족들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카이사르 사후에 누가 그의 후계자가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이때 카이사르가 죽기 6개월 전에 써둔 유언장이 공개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카이사르는 이 유언장에서 그의 후계자로 누이의 외손자인 옥타비아누스를 자신의 제1 상속인으로 삼았고 그를 양자로 삼아 ‘카이사르’라는 성을 이어받게 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후계자 지명이었습니다. 카이사르는 부인과 수많은 애인이 있었습니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이에서는 카이사리온이란 아들도 두었습니다. 그런데도 로마인들이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한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 세웠고 ‘카이사르’라는 그의 성도 부여했습니다. 옥타비아누스 이름이 카이사르 아우구스티누스가 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별 볼일 없던 평민이다가 갑작스레 로마제국의 최고 권력자로 급부상하였고 사실상 ‘초대 황제’가 되었습니다. 호적이 바뀌면서 그는 로마 최고 명문가 카이사르의 아들이 되었고 원로원에서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받아 천하를 다스렸습니다. 이처럼 옥타비아누스는 호적을 바꾸어 평민에서 황제에 오른 인물입니다. 한데 이제 그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호적 등록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 서문에서 자신이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시초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여 보았다”(눅 1:3)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는 예수님의 탄생 배경에 대해 어느 복음서보다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어찌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지를 알려줍니다. 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도 이것을 뒷받침하는 주요 증거 중 하나입니다. 이 족보에서 누가는 예수가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요셉의 아들이었다”(눅 3:23)면서 그 윗대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 아담에 이르고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눅 3:38)라고 끝맺습니다. 즉 예수님은 표면상 아담의 직계 후손이지만 사실은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려줍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종조부인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지목받아 양자가 됨으로써 황제에 오른 사람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친 아드님이시고 그는 장차 하나님의 새로운 왕국을 세우실 분으로 그려집니다. 그분이 태어나셨을 때 사람들은 방 한 칸 내어주지도 않을 만큼 인색하게 굴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아기 예수님이야말로 로마제국을 넘어 온 천하만국을 다스리실 진정한 평화의 왕이심을 선포합니다. 이 예수님과 더불어 폭력이 난무한 이 참혹한 세계를 주님의 나라로 바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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