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6/3/19(토)
오랜 대망  

군대의 도성아, 군대를 모아라! 우리가 포위되었다! 침략군들이 몽둥이로 이스라엘의 통치자의 뺨을 칠 것이다.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당신의 백성을 원수들에게 그대로 맡겨 두실 것이다. 그 뒤에 그의 동포, 사로잡혀 가 있던 남은 백성이,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그가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그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이름이 지닌 그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의 떼를 먹일 것이다. 그러면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이를 것이므로, 그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미가 5:1-5>



싸우는 세계

 지난 10월, 제20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금강산에서 2박 3일간 열렸습니다. 약 2백 분의 이산가족이 분단 60여년 만에 극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반백년을 기다린 만남치고는 너무도 짧고 아쉬운 상봉이었습니다. 결혼한 지 7개월만인 1950년 헤어졌다가 팔순 노인이 되어 만난 부부(아내 이순규, 남편 오인세)의 사연은 눈물겹습니다. 남편은 “열흘만 훈련받고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전쟁터로 나간 뒤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임신한 아내는 뱃속 아들을 낳아 키우며 혹시나 남편이 돌아올까 봐 한 번도 이사 가지 않고 살았답니다. 그 사이 남편은 야속하게도 북한에서 재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생애 마지막 만남이 될 공산이 큰 이번 상봉에서  하룻밤도 같이 자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습니다. 지난번 이산가족 상봉을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리조사를 했더니 대부분이 이전보다 더 우울하고 불안해졌다는 소식도 보았습니다. 상봉의 기쁨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고 생이별로 가족 서로에 대한 걱정이 더욱 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상봉의 소원을 이룬 사람들은 아직 기약 없이 순서를 기다리는 6천여 이산가족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그들 50% 이상이 80세 이상이라 언제 사망할지 모를 처지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 중에 상봉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사망하신 이산가족만도 12만여 명에 달합니다. 이처럼 분단의 비극과 고통, 상처는 여전합니다.

비단 이 나라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는 무서운 전쟁의 늪에 갈수록 깊숙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지난달 14일 발생한 끔찍한 파리테러로 1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세계 언론이 연일 떠들썩하였습니다. 하지만 테러가 발생한 국가가 프랑스였고 그 도시가 수도 파리였기 때문에 더 크게 주목받았을 거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얼마 전 파리테러보다 훨씬 더 끔찍한 대량 학살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데도 그동안 세상은 너무도 조용하였다며 그 불편한 진실을 알려줍니다. 그것을 일부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유엔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이 2001년 아프간을 침공한 이래 민간인 사망자만 1만 8천여 명에 달하고 작년에도 어린이 714명, 여성 298명을 포함한 시민 6,849명이 사망하였습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지금까지 민간인 사망자는 5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시리아 인권감시소(SOHR)의 발표에 의하면 미군과 동맹군이 개입한 이래 시리아 전쟁으로 올해 10월까지 최대 34만 명이 사망하였답니다. 더욱이 시리아 난민은 현재 400만 명이 넘는 실정입니다.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군대 사이의 충돌, 혹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 군대 사이의 교전으로 지금까지 다치고 사망한 사람의 수도 족히 수만 명은 넘을 것입니다. 전쟁과 테러의 원인과 명분은 정치권력, 자본, 종교, 인종, 영토, 이념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분명한 점은 아무런 죄 없는 숱한 민간인이 소수 권력자들의 추악한 전쟁과 테러의 희생양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20세기 2차 세계대전으로 5천 500만 명의 희생자를 낳고도 인류는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어리석은 폭력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폐허더미 시온

 미가는 주전 8세기 웃시아 왕 시대(783-742)에 남유다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이 시대는 다윗-솔로몬 시대 이후 최고의 ‘황금기’라 불릴 정도 남북왕국 모두 외형적으로 나라가 안정되고 번영하던 시기였습니다. 고대 제국의 공백기라 영토가 널리 확장되었고 국제무역도 활발하였습니다. 농업기술 발전으로 밀, 포도주, 올리브 같은 환금작물 생산량이 크게 늘어 왕실과 고관들, 귀족들 등은 해외 수출로 많은 수입을 거뒀습니다. 그들은 풍요로운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제사 때면 온갖 좋은 제물을 골라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언자 미가의 메시지를 살펴보면 장송곡이나 저주에 가깝다할 정도로 싸늘하기만 합니다. 그는 외칩니다. “야곱의 지도자들아, 이스라엘 집의 지도자들아, 곧 정의를 미워하고, 올바른 것을 모두 그릇되게 하는 자들아,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는 백성을 죽이고서, 그 위에 시온을 세우고, 죄악으로 터를 닦고서, 그 위에 예루살렘을 세웠다. 이 도성의 지도자들은 뇌물을 받고서야 다스리며, 제사장들은 삯을 받고서야 율법을 가르치며, 예언자들은 돈을 받고서야 계시를 밝힌다. 그러면서도, 이런 자들은 하나같이 주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신다고 큰소리를 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에게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 때문에 시온이 밭 갈 듯 뒤엎어질 것이며 예루살렘이 폐허더미가 되고, 성전이 서 있는 이 산은 수풀만이 무성한 언덕이 되고 말 것이다.”(3:9-12) 한창 흥청망청 즐거운 잔치를 버리는 중인데 마치 재를 뿌리는 격인 예언입니다. 부강한 나라를 이루어 주변 나라들까지도 부러워하는 마당인데 ‘예루살렘이 폐허더미’가 될 거라니! 이런 예언을 누가 귀담아 듣겠습니까? 다들 미친 예언자의 터무니없는 헛소리로 들렸을 겁니다.

하지만 미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집권자들의 조롱과 멸시, 박해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 왕이 통치하던 시대(주전 715-686)에도 “시온이 밭 갈듯 뒤엎어질 것이며, 예루살렘이 폐허 더미가 되고 말 것”이라는 예언을 계속하였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예레미야 시대에 예레미야의 예언을 옹호하고자 예언자 미가의 사례를 제시한 지방의 장로들의 증언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렘 26:18). 다행히 히스기야 왕의 경우는 신앙심이 깊어 미가의 예언을 달게 듣고 회개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리고자 하셨던 재앙을 거두어 주셔서 히스기야 시대에는 위기를 겨우 넘겼습니다.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멸망하였고 수도 사마리아는 앗시리아의 침략으로 초토화되다시피 하였습니다. 남유다가 앗시리아의 침공을 피해 겨우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미가는 그처럼 기세등등하던 북왕국 이스라엘이 순식간 멸망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본 뒤 예루살렘도 멀지 않았음을 확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오늘 본문 1절에서 “침략군들이 몽둥이로 이스라엘 통치자의 뺨을 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하지만 유다왕국의 왕 가운데 침략군들의 몽둥이로 뺨을 맞은 왕은 성경에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유다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만이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의 응징을 받았고 그의 눈앞에서 두 아들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험한 꼴을 당했습니다. 느브갓네살은 시드기야 왕의 두 눈을 뽑고 그를 채 쇠사슬에 묶어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스라엘 왕 중에서는 구체적 사례를 찾기 힘들지만, 이사야서에 나오는 수난의 종에 대한 다음의 묘사는 “침략군들이 몽둥이로 이스라엘 통치자의 뺨을 칠 것”이라 언급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나는 나를 때르는 자들에게 등을 맡겼고,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겼다. 내게 침을 뱉고 나를 모욕하여도 내가 그것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사 50:6) 한 나라의 왕이 침략군의 몽둥이로 뺨을 맞았다면 그것은 나라가 끝장났다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처럼 미가는 시온 곧 예루살렘이 침략군들에 의해 망하고 말리라는 사실을 예언합니다.


샬롬을 낳다

 그런데 여기서 끝은 아닙니다. 미가는 하나님이 보내실 새로운 통치자가 올 것임을 예언합니다. 놀랍게도 이 통치자는 예루살렘 태생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왕으로 다스리려면 예루살렘 왕의 혈통을 이어받는 게 자연스런 순서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새 통치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 출신입니다. 물론 베들레헴이라면 다윗의 고향이기에 다윗 가문과 연결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에 사는 씨족”을 의미하는데 새 통치자는 유다의 여러 족속 중에서 가장 작은 족속인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가문상으로는 다윗 혈통과 연결된다고 해도 세상적으로는 그다지 내세울 게 없습니다. 가문이나 그의 출신지인 동네는 예루살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 열악합니다. 하지만 새 통치자의 “기원은 그저 다윗 왕에게” 있는 게 아닙니다. 그는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이 성구는 마태가 그의 복음서에서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의 입을 빌어 인용하여 널리 알려졌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 가운데는 참 메시아는 ‘유다 베들레헴’ 출신일 것이라는 믿음이 퍼져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믿음은 요한복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다는 자들이 갈리어 논란을 벌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그리스도일 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말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디윗의 후손 가운데서 날 것이요,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요 7:42)

그러나 예수님이 탄생하신 지역이 어딘지 엄밀히 따지자면 베들레헴이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마가복음이나 사도행전, 요한복음 등에서는 예수님의 출신지를 나사렛이라고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둘 가운데 어느 곳이 실제 고향인지는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언자 미가는 여기서 새로운 통치자가 어디 태생이냐 보다는 그가 사람들이 거뜰떠 보지조차 않던 작고 연약한 시골의 씨족 태생일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모든 참혹한 전쟁을 그치게 하고 이스라엘을 돌보며 그 땅에 ‘샬롬’ 곧 평화를 가져올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바로 미가가 예언한 평화의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모든 전쟁과 갈등을 치유하고 온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복음의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열매들입니다.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대림절 마지막 주일, 평화의 왕 예수께서 이 땅을 굽어 살피시어 평화의 주님으로 다시 오시기를 고대합니다. 지금 우리의 기다림은 예언자 미가의 간절한 희망과는 다른 차원의 기다림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메시아 대망은 평화의 메시아가 속히 오시기를 고대하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심은 복음의 열매인 우리 각자가 평화의 메시아를 잉태하고자 하는 산고를 겪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에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게 만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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