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6/3/19(토)
분별의 능력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여러분이 첫 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내가 여러분 모두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변호하고 입증할 때에, 내가 받은 은혜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 더 풍성하게 되어서, 여러분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지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되기를, 나는 기도합니다. <빌립보서 1:3-11>



맹신의 늪

 수개월 전 어떤 중년 여성 한 분이 우리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대뜸 하는 말이 “자신은 OO교회 다니던 집사인데 기도 중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각 교회를 돌며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전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무슨 서너 쪽 되는 글을 건네주더니 횡설수설하였습니다. 한참을 들어봐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종잡기 힘들었고 정상적인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사이비 이단에 빠져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분 같아 보였습니다. “주신 글은 읽어볼 테니 이제 그만 돌아가시라”고 해도 가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억지로 쫓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럼 알아서 하시라”고 사무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더니 혼자서 한동안 뭐라고 계속 뇌까리다가 제 풀에 꺾여 가버렸습니다. 두고 간 글도 그분의 이야기 못지않게  장황하고 터무니없어 읽다가 말았습니다. 이런 분 말고도 이단 사이비로 알려진 목사들이 더러 자신의 책을 보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교회에 책을 발송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 텐데 그것을 어떻게 다 충당하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대부분 쓰레기통에 던져질 줄 뻔히 알면서도, 다만 그중 몇 명의 목회자라도 받은 책을 읽고 자신의 교설을 신봉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에게 화가 있다며 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린다.”(마 23:15) 실제로 이런 무서운 일들이 이단 사이비뿐 아니라 기성 교회들에서조차 심심치 않게 벌어집니다. 목회자나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나 세속의 성공과 번영, 물질을 추구하느라 어느덧 영적 눈이 멀고 귀가 닫혔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마음이 무엇에 이끌려 잘못을 믿거나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것을 맹신하는 것”을 미신이라 합니다. 흔히 미신에 빠지는 사람은 학력 수준이 낮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일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 박식을 자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얼마든지 미신에 빠져 허우적댈 수 있습니다. 현자 코헬렛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전 3:11) 코헬렛의 이 경구는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허방이 있게 마련임을 일깨워 줍니다. 오래 전 어느 유명한  과학자가 가까운 사람에게 큰 사기를 당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이처럼 자기 전공분야에서는 둘째가라고 해도 서러워할 실력자여도 어처구니없게도 세상물정 모르고 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전혀 이상한, 혹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박식함이 곧 현명함은 아니기에 생겨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이란 이름을 단 미신 혹은 맹신도 많습니다. 2005년 황우석 사태는 그 좋은 사례입니다. 한 용기 있는 제보자와 언론인들에 의해 거짓이 다 탄로 났음에도 황우석 교수의 주장을 끝까지 신봉하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을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이 틀릴 수 있음을 열어놓지 않은 채, 다른 이야기에는 일체 눈과 귀를 닫고 자신의 생각을 옳다고 과신하면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악마는 세상을 무신론과 미신으로 갈라놓는다.”(G. 허버트)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악마에 홀리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합니다.


예수의 창자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감독, 집사, 성도들에 편지를 씁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유럽에 세운 첫 번째 교회입니다. 그는 선교여행 중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한밤중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행 16:9)하고 간청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환상을 보고 가려던 곳을 바꾸어 마케도니아 지역에 들어갔고 그 첫 도시인 빌립보에 복음을 전합니다. 빌립보는 네압볼리 항구에서 로마에 이르는 에그나티아 대로가 관통하는 지역으로서 교통이 발달한 도시입니다. 이처럼 외부세계와 잘 연결되는 도시는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는데도 빠르지만 그만큼 온갖 종교가 번성하게 마련입니다. 실제로 그 당시 빌립보에는 이집트, 시리아, 그리스, 로마 등지에서 건너온 온갖 종교와 그 지방 토속신앙이 어우러져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빌립보교회가 튼튼히 뿌리내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빌립보서를 살펴보면 이 지역에도 벌써 거짓교사들이 침투하여 교회 신자들의 바른 신앙을 위협하였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빌립보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흔들림 없이 나아가도록 권고하고자 이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편지의 서두에서 널리 볼 수 있는 인사말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비록 의례적인 인사말의 형식을 띄고는 있지만, 바울은 그가 빌립보교회를 온 맘 다해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밝힙니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언하여주십니다.”(8절)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새번역)을 다른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개역개정) 혹은  “그리스도 예수의 애정”(주교회의) 따위로 번역합니다. 하지만 본래 의미대로 직역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내장”입니다. 즉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창자 곧 예수의 간, 폐, 심장을 갖고서 빌립보교회를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말하자면 “빌립보교회라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사랑스럽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깊은 애정을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음을 말합니다. 첫째 빌립보교회가 “첫 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였기 때문”이고, 둘째는 “바울이 투옥, 복음을 변호하고 입증할 때 변함없이 함께 동참”해 주어서라고 합니다. 지금 그는 감옥에 갇혀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더욱 간절한 마음을 담아 빌립보교회를 향해 말합니다.


분별하라

그는 빌립보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내용으로 간구하느냐면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 더 풍성하게 되어서, 여러분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알게 되도록”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러분의 사랑’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빌립보교회는 그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적극 협력합니다. 특히 그들은 바울의 옥바라지나 선교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여러분 가운데서 선한 일(혹은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6절)라고 했습니다. 선한 일은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 복음 전파가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완성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세상의 종말로 봅니다. 바울은 그 종말의 날까지 빌립보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갖고서 부지런히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한데 그는 그 사랑에다 ‘지식’과 ‘모든 통찰력’이 더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무엇이 옳고 좋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만 갖고서는 바른 신앙의 길을 걷기에 부족함을 알 수 있습니다. ‘눈먼 사랑’이란 말이 있듯, 사랑은 좋은 것이나 자칫하면 맹목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서 세속의 온갖 유혹에 굴함 없이 그분을 따라 걸으려면 “지식과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정확한 지식,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또는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신앙의 ‘분별력’을 갖추라고 강조합니다. 가령 그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 12:2) 에베소서에서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십시오.”(엡 5:10)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말한 ‘분별’은 정밀하게 조사하고 시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신앙의 덕목 중 하나가 이 같은 ‘분별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기에 이런저런 이단사설에 너무 쉽게 미혹되어 휩쓸립니다. 예수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복음의 진리에 합당한 내용인지를 정밀하게 조사하고 통찰하려는 자세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오시기까지 “순결하고 흠 없이 지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해서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영적인 분별력을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의 키가 자라고 더욱 튼튼히 뿌리내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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