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6/3/19(토)
이정표를 세우라  

나 주가 말한다. 라마에서 슬픈 소리가 들린다. 비통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다. 자식들이 없어졌으니, 위로를 받기조차 거절하는구나. 나 주가 말한다. 이제는 울음소리도 그치고, 네 눈에서 눈물도 거두어라. 네가 수고한 보람이 있어서, 네 아들딸들이 적국에서 돌아온다. 나 주의 말이다. 너의 앞날에는 희망이 있다. 나 주의 말이다. 에브라임이 탄식하는 소리를 내가 분명히 들었다. 주님, 우리는 길들지 않은 짐승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가르쳐 주셨고,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돌아갈 수 있게 이끌어 주십시오. 이제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께 돌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떠난 다음에 곧 뉘우쳤습니다. 잘못을 깨달은 다음에 가슴을 치며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저의 젊은 시절의 허물 때문에 저는 수치와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에브라임은 나의 귀한 아들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다. 그를 책망할 때마다 더욱 생각나서, 측은한 마음이 들어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주의 말이다. 너는 길에 푯말을 세우고, 길표를 만들어 세워라. 네가 전에 지나갔던 길과 대로를 잘 생각하여 보아라. 처녀 이스라엘아, 돌아오너라. 너희가 살던 이 성읍들로 돌아오너라. 너 방종한 딸아, 네가 언제까지 방황하겠느냐? 주님께서 이 땅에 새 것을 창조하셨으니, 그것은 곧 여자가 남자를 안는 것이다.
                                                       <렘 31:15-22>


바라던 항구로

 러시아의 초현실주의 화가 블라디미르 쿠쉬(1965~)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꿈속에서도 보기 힘들만큼 하나 같이 기이하고 신비롭습니다. 가령 코끼리 머리가 나팔로 되어 있는가 하면 파란 하늘 위에서 고래가 헤엄치고 태양이 거대한 알에서 깨어납니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 같은 동화에나 나올 법한 세계를 실감나게 그려낸 그 상상력이 놀랍습니다. 쿠쉬의 여러 작품을 그의 홈페이지에서 살펴보다가 “안전한 피난처로”(To The Safe Haven)라는 제목의 그림 한 장이 퍽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하늘은 먹장구름이 가득 끼어 금방이라도 큰 비가 쏟아질 기세입니다. 사방은 어두컴컴하고 파도는 높은데 작은 돛단배 한 대를 탄 몇 사람이 노를 저어 가는 중입니다. 망망대해를 헤쳐 가다 풍랑을 만났으니 이제 큰 파도가 덮쳐 배를 뒤엎으면 모두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오른쪽에서 환한 광선이 그 배를 비춥니다. 등대는 아니고, 섬의 산봉우리에 우뚝 솟은 양초에서 봉화처럼 불이 타오르는 장면입니다. 그 촛불이 강풍에 꺼지지 않도록 하늘에서 커다란 두 손이 나타나 불을 보호하면서 위태해 보이는 돛단배에 빛을 보내줍니다. 사공들은 이제 살았다는 듯 뱃머리를 돌려 그 섬의 빛을 향해 부지런히 나아갑니다.

이런 장면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익숙합니다. 찬송가 345장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의 가사가 묘사하는 내용과 유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공관복음서는 갈릴리 바다에서 한밤중 돌풍을 만나 죽을 지경에 놓인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구원하시는 장면을 보도합니다(마 8:23-27; 막 4:35-41; 눅 8:22-25). 구약 시편 107편의 시인은 큰 물에서 장사하던 자들이 깊은 바다에서 사나운 바람과 파도를 만나 간담이 녹아내렸고, 이 곤경 중에 주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 광풍을 잠잠케 하여 그들이 원하던 항구로 인도해주셨음을 찬양합니다(시 107:23-30). 선지자 요나가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치다 풍랑을 만나 뱃사람들에 의해 바다에 내던져졌고 심연에서 주께 간절히 기도드려 살아난 사건도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로마로 가고자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항해하던 중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오랫동안 표류하다 가까스로 구조된 바 있습니다(행 27). 이처럼 거친 풍랑을 만나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다 기적처럼 구원받은 사람들 이야기를 성경이 거듭하여 여러 형태로 들려주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인생이 종종 폭풍우가 몰아치고 큰 파도들로 흉흉한 바다의 작은 돛단배와 같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때론 뒤엎기도 하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일깨워 주곤 합니다. 믿을만한 선장도, 해상교통관제센터도, 등대나 나침반 하나도 없는 상태로 먼 바다에서 표류하는 배의 운명이 어찌될지는 자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항해 좌표를 날마다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마련하신 안전한 항구로 노 저어 나아갈 때 비로소 마음의 풍랑이 그치고 인생의 평온이 찾아올 것입니다. 좌표 없는 삶은 불안하고 피곤한 방황의 연속일 뿐입니다.


백년의 기다림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예레미야를 불러 이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한 말을 모두 책에 기록하여라.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반드시 그 때가 올 터이니, 그 때가 되면 내가 포로로 잡혀 간 나의 백성을 다시 이스라엘과 유다로 데려오겠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준 땅으로 그들을 돌아오게 하여,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하겠다.”(렘 30:1-3) 이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귀환과 회복에 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서의 전반적인 내용은 유다왕국과 그 수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그러다보니 희망과 위로, 구원의 메시지가 그리 많지 않고 주님의 준엄한 심판 예고와 경고들, 재앙의 묘사 따위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30장부터 31장까지 내용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멸망하여 황폐한 고향 땅으로 데려와 살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구원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 4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예언자 하나냐와 전혀 상반된 예언으로 격렬히 논쟁하였습니다. 하나냐는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앞으로 2년 안에 바빌로니아가 탈취해간 성전의 모든 기물과 붙들려간 포로를 내가 이곳으로 다시 데려오겠다. 내가 반드시 바빌로니아 왕의 멍에를 꺾어 버리겠다.”(렘 28:2-4)

그러자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예언이 거짓이라는 취지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님께서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오죽이나 좋겠소? 예부터 우리 선배 예언자들은 많은 나라와 큰 왕국에 전쟁과 기근과 염병이 닥칠 것을 예언하였소. 평화를 예언한 예언자는 그 예언이 성취된 뒤에야 비로소 사람들이 그를 주님께서 보낸 참 예언자로 인정하게 될 것이요.”(렘 28:6-9) 예레미야 시대 유다의 거의 모든 예언자는 하나냐처럼 유다와 예루살렘의 평화와 번영을 약속하는 예언을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나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 같이 극소수의 예언자들만이 예루살렘 도성과 유다 왕국에 재앙이 내릴 것이라 예언하였다가 당시 집권자들에게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오늘 말씀에서 에브라임과 유다의 회복을 예언함으로써 그가 줄곧 거짓 예언이라며 비난하던 형태의 예언을 합니다. 이는 예레미야가 그동안의 수난을 견디다 못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달콤한 거짓 예언을 한 게 아닙니다. 그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예언한 때는 이미 유다가 멸망하다시피 하여 몹시 암울한 상태였습니다. 나라를 회복할만한 한 가닥 희망을 찾기조차 힘든 시절입니다. 이런 절망의 시대에 그는 장차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야곱의 집을 옛날 같이 회복시키실 것이라며 구원의 소망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서두는 라헬이 자식을 잃고 라마에서 애곡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라헬은 야곱의 둘째 부인으로서 요셉과 베냐민의 어머니입니다. 그는 야곱 가족이 베델을 떠나 에브랏 곧 베들레헴으로 가던 도중에 베냐민을 낳다가 사망하였습니다. 라헬은 생전에 어떤 자식도 잃은 적 없습니다. 오히려 그가 낳은 두 아들인 요셉과 베냐민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는 슬픔을 당했습니다. 이 사실을 주님께서 모르실 리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라마에서 라헬이 자식을 잃고 애곡소리가 들린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울음소리도 그치고 네 눈에서 눈물도 거두어라. 네가 수고한 보람이 있어서 네 아들딸들이 적국에서 돌아온다.”며 위로하십니다. 결국 라헬의 죽은 아들들이란 ‘에브라임’ 곧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이지만 그의 형 므낫세보다 더 많은 복을 받아 북 왕국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북 왕국의 멸망에 대해 에브라임의 시조모 격인 라헬이 통곡한다는 은유적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 예언을 하였을 즈음에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지 벌써 백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앗시리아 제국은 북 왕국에서 쓸 만한 인재들을 포로로 끌고 가 아시리아와 메대의 여러 성읍에 살게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까맣게 잊힌 북 왕국 포로민들의 탄식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고향 땅으로 되돌아가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길표를 세우라

 포로생활을 하던 에브라임 사람들의 탄원 기도를 보십시오. 그들은 말합니다. “주님, 우리는 길들지 않은 짐승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가르쳐 주셨고,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돌아갈 수 있게 이끌어주십시오.” 송아지, 그것도 수송아지가 시골 외양간을 뛰쳐나가면 동네방네 마구 뛰어 다니며 남의 농작물들을 망쳐 놓기 일쑤입니다. 코 뚫어 길들이기 전까지는 럭비공마냥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관리가 매우 힘듭니다. 에브라임은 지난날 자신들이 이와 같이 ‘길들이지 않은 짐승’과도 같았음을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님을 떠나 방랑하느라 긴 세월 몹시 고단한 생활을 한 뒤인 지금에야 그 잘못을 깨닫고 가슴을 치며 뉘우친다고 말합니다. 지난날 혈기 방자한 젊은 시절 저지른 허물들로 수모와 수치를 겪었다며, 이젠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하니 고향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에브라임은 나의 귀한 아들, 내가 가장 사랑하는(혹은 ‘기쁨을 주는’) 자식”이라 인정하십니다. 그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더욱 생각나 측은한 마음에 ‘애간장이 끊어질 지경’이라는 심경도 밝히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에브라임에게 “이제 돌아오라” 말씀하시며, “너는 자신을 위해 길에 이정표와 푯말을 세워놓아라”고 명하십니다.

고향에 돌아가는 길에 왜 이정표와 푯말이 필요합니까? 그 길을 걸어 포로로 끌려갔는데 말입니다. 다시는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가령 주님께서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하나인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네가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계 2:5)고 말씀하십니다. 잘 가다가 엉뚱한 길에 들어선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면 일단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빗나갔는지 잘 살펴서 다시 본래의 길을 찾아 가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떠나 방황하는 자기 백성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은 나를 잊어버리고, 헛된 우상들에게 분향을 한다. 옛부터 걸어온 바른 길을 벗어나, 이정표도 없는 길로 들어섰다.”(렘 18:15) 떠돌이 방랑생활을 그치고 주님이 이끄시는 영원한 고향,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길은 이정표와 푯말을 세워가며 우리 스스로 개척해 가야합니다. 다시는 험한 바다와 황량한 광야에서 헤매지 않도록 지도를 만들고 길목마다 표식을 해두어야 합니다. 오늘은 ‘겨울의 사순절’로 불리는 대림절 첫 주일입니다. 주님의 성탄과 강림을 기다리는 이 절기에 더욱 주님께 가까이 다가서도록 우리 각자 삶의 이정표와 푯말을 세워 보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고 기뻐하는 자녀’로 거듭나 큰 은혜를 맛보는 기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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