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6/3/19(토)
적어도 큰 은혜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너는, 시돈에 있는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에서 지내도록 하여라. 내가 그 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명하여서, 네게 먹을 것을 주도록 일러두었다.” 엘리야는 곧 일어나서, 사르밧으로 갔다. 그가 성문 안으로 들어설 때에,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인을 불러서 말하였다. “마실 물을 한 그릇만 좀 떠다 주십시오.” 그 여인이 물을 가지러 가려고 하니, 엘리야가 다시 여인을 불러서 말하였다. “먹을 것도 조금 가져다 주면 좋겠습니다.” 그 여인이 말하였다. “어른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에게는 빵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뒤주에 밀가루가 한 줌 정도, 그리고 병에 기름이 몇 방울 남아 있을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땔감을 줍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저와 제 아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을 모두 먹으려고 합니다.” 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방금 말한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음식을 만들어서, 우선 나에게 먼저 가지고 오십시오. 그뒤에 그대와, 아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도록 하십시오.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비를 내려 주실 때까지, 그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인과 엘리야와 그 여인의 식구가 여러 날 동안 먹었지만,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도 마르지 않았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되었다.
                                                       <왕상 17:8-16>


사소한 것

 2011년 2월 11일 오후, 경기도 광명역에서 KTX의 탈선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한창 고속 주행하던 중이 아니라 정차를 위해 서행하던 때 생긴 사고라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정말 아찔한 사고였습니다. 기차가 그것도 KTX가 승객을 실은 채 탈선하였기 때문입니다. 왜 사고가 났는지 면밀히 조사하였더니 정말 어이없게도 7mm 너트 하나가 그 원인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코레일이 새벽에 콘트롤박스 노후 케이블 교체 작업을 하였는데 그 인부 가운데 한 사람이 실수로 너트 하나를 제대로 조이지 않아 KTX의 탈선사고를 낳았습니다. 2010년 6월 11일, 고흥 나로 우주센터에서 두 번째로 발사된 우주선은 이륙한지 137초만에 공중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 원인은 1, 2단 분리부위의 8개 볼트 중 하나가 방전으로 오폭을 일으켜 폭발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아주 작고 사소하게 보이는 것 하나라도 실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코끼리 조상격인 매머드는 488만 년 전부터 살다가 약 4천 년 전에 멸종한 동물입니다. 보통 어깨 높이가 5미터 가량이나 되고 어금니 길이는 4미터에 달할 정도 거대한 체구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 매머드 앞에 선 개미 한 마리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개미도 개미 나름이겠지만 그 크기라 해봐야 1cm 안팎에 지나지 않으니 잘 눈에 띄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개미는 매머드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존재한 곤충입니다. 과학자들은 개미가 백악기 중반인 1억 3천여 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진화해 온 것으로 추정합니다. 덩치 크다고 그 생명력도 길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작은 것을 크게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걱정하느냐?”(눅 12:26) 주님은 우리에게 큰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충성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종이라면 그에게 큰 일도 맡기고 하나님 나라의 기쁨의 잔치에 초대하겠다고 하십니다(마 25:21). 우리 눈에 작게 보이는 것이 주님의 눈에는 심히 커 보입니다. 우리 눈에 커 보이는 것이 주님의 눈에는 매우 작아 보입니다. 성서는 도처에서 이런 역설을 잘 보여줍니다.  


가뭄 저주

 엘리야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 때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아합이 다스릴 무렵 북왕국 이스라엘은 남유다에 비해 훨씬 강성한 나라였습니다. 아합은 그의 부친 오므리가 잘 닦아 놓은 기반 위에서 왕국을 더욱 부강하게 발전시켰습니다. 오므리 왕조가 들어서기 전만해도 북왕국 이스라엘은 걸핏하면 쿠데타가 일어나 왕이 바뀌었습니다. 심지어 시므리 왕의 경우는 즉위한 지 불과 7일 만에 그의 군사령관이던 오므리의 반란으로 왕위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오므리 왕의 통치부터 북왕국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 안정을 얻습니다. 오므리는 수도를 사마리아로 정하고 주변 나라들과 화친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맹주노릇을 하였습니다. 그 아들 아합도 아버지의 통치술을 잘 익힌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그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정략결혼으로 주변나라들의 위협 요소를 사전에 없애려 그랬을 테지요. 한데 왕비 이세벨은 보통내기가 아니었습니다. 아합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배후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세벨은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무척 열심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이 ‘엣바알’(“그와 함께 바알이 있다”라는 의미)이란 사실에서 드러나듯 시돈은 바알숭배로 유명한 나라였습니다. 시돈뿐 아니라 가나안 전역은 오랜 옛날부터 바알숭배가 성행하던 곳입니다. 바알종교에 비해 야웨종교는 훨씬 소수에 불과하였습니다. 이세벨은 바알종교를 북왕국 이스라엘의 국교로 삼고 국비로 그 사제들을 적극 양성하는 한편 야웨종교는 박멸하다시피 탄압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외로이 활동한 하나님의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아합왕을 만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는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비는커녕 이슬 한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왕을 만났으면 축복을 하고 그 호의를 구해도 모자랄 판에 이 무슨 저주랍니까? 이처럼 구약시대 예언자들은 하나님 밖에는 두려움을 잘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왕이나 고관, 그 어떤 권력자 앞에서라도 주님이 명하신 말씀을 용감히 선포하였습니다. 그 선포는 자신의 소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흔히 예언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면 “주 야웨께서 말씀하신다.”라는 말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주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한다.”면서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앞으로 몇 해 동안은~”이라 말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신비한 기적을 행하는 자라는 듯 예언합니다. 엘리야의 이런 면은 성서의 다른 예언자들과 구분되지만 그가 하나님의 권위에 힘입어 예언하고 있음은 틀림없습니다. 아합은 이스라엘 출신이기에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내 이세벨의 영향으로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바알에 훨씬 더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예언자 엘리야의 가뭄 저주를 듣고도 그는 콧방귀를 뀌며 전혀 믿지 않았을 겁니다.


최고의 접대

 엘리야는 가뭄 저주를 선포하고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얼마동안 요단 강 동쪽 그릿 시냇가에 은거하였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까마귀가 갖다 주는 빵과 고기를 먹고 시냇물을 마시며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과연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져 곧 극심한 가뭄이 들었고 그릿 시냇물도 다 말라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시돈의 사르밧(사렙다)에 사는 한 과부에게 가서 그 집에서 지내라 하십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시돈이라면 이방나라이자 바알종교의 본산이고 왕비 이세벨의 고국입니다. 주님은 엘리야에게 왜 하필 시돈 땅으로 가라고 명하시는 것일까요? 바알숭배에 여념 없던 시돈왕국을 회개시키려 그러신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엘리야는 시돈의 사르밧에 머물며 그 땅 백성들에게 바알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라며 예언하지 않습니다. 그런 선교적 사명을 위해서 갔다면 애초 사르밧 과부의 집에 머물러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엘리야를 시돈 땅에 보내신 이유는 다른데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표면상 아합왕과 대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바알종교와 싸우고 있습니다. 바알은 가나안 최고의 신이자 폭풍과 비의 신입니다. 시돈을 비롯해 바알종교를 믿던 모든 나라 백성들은 비가 오고 안 오고는 바알 신에게 달렸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이 바알을 잘 섬기면 그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절히 내려 많은 소출을 거두게 해줄 것이라 기대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지금 이런 바알종교의 신앙에 대해 하나님 이름으로 도전장을 던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시돈으로 가서 지내라하신 까닭도 바알종교의 허구성을 드러내기 위한 숨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시돈의 왕이나 귀족 같이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던 자들에게 보내 그들 집에서 머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만큼 극히 가난한 한 과부에게 보내셨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과부도 과부 나름이었습니다. 자녀가 없는 과부라면 수혼제 관습에 따라 그 다음 형제의 아내나 첩이 되어 자식을 낳고 살 권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있는 과부의 처지는 전혀 달랐습니다. 재혼도 생활능력도 없이 자식을 키우며 매우 힘겹게 살아야 하였습니다. 주님은 하고많은 과부들 중에 하필 이 같은 과부를 엘리야로 하여금 만나게 하십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성에 다다랐을 때 이 과부는 땔감을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에게 물과 빵을 청합니다. 과부는 물은 줄 수 있지만 먹을거리라고는 자기 식구 한 끼 먹기도 부족할 정도만 있다며 난감해 합니다. 그 조금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아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죽을 생각이라 하였습니다. 정말 기막힌 처지입니다. 그럼에도 엘리야는 음식을 만들어 자신에게 먼저 가져오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다시 비를 내리시기까지 뒤주의 밀가루나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거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이 순간 여인은 이 낯선 외국인 엘리야가 요구대로 따랐습니다. 엘리야의 말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와 아들은 굶어죽게 될 텐데도 가진 모든 것으로 손님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다음부터 그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엘리야가 그 집 다락방에 기거하는 동안 그 과부 모자를 부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과부는 마지막 남은 적은 양식을 다 드려 낯선 길손을 극진히 대접하자, 그 집은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큰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아들의 목숨이나 다름없는 양식마저 남 대접하는데 기꺼이 내어놓은 그 가난한 과부에게 복에 복을 더하신 것입니다.


누룩의 삶

며칠 전 두 번째 들깨타작을 하였습니다. 두 번째에 더 많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처음 타작할 때의 대략 3분의 1가량 정도 거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밭을 개간해 처음 지은 농사치고 큰 수확이 아닌가 싶습니다. 뿌린 씨앗의 육십 배, 백 배 이상은 족히 되지 않을까 합니다. 들깨 씨는 우리나라 농작물 가운데 아주 작은 씨에 속합니다. 그 작은 알갱이가 땅에 떨어져 깻잎과 무수한 알갱이를 내놓는 것을 보면 겨자씨가 따로 없습니다. 씨앗이 적다고 결코 적은 게 아닙니다. 오천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배를 굶고 있어 그 급식 문제를 의논할 때 제자 안드레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여기에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수용이 있겠습니까?”(요 6:9)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보시고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십니다. “우리 같이 작은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눅 12:32)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겨자씨가 되고 누룩이 된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우린 이미 주님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받은바 은혜를 적다고 불평 마십시오. 적은 것일지라도 사르밧 과부처럼 아낌없이 더 부지런히 나눔으로써 마르지 않는 복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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