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6/3/19(토)
기억의 싸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자기의 왕위를 튼튼히 곧혔다. 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며, 그를 크게 높여 주셨다.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재판관들과 온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각 가문의 족장들을 불렀다. 솔로몬은 온 회중을 데리고 기브온에 있는 산당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하나님의 회막, 곧 주님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회막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궤는, 다윗이 일찍이 예루살렘에 궤를 모실 장막을 치고, 기럇여아림에서 그리로 올려다 두었다. 다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이 만든 놋제단은, 기브온에 있는 주님의 성막 앞에 있었다. 그래서 솔로몬은 회중과 함께 그리로 나아간 것이다. 솔로몬은 거기 주님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제단으로 올라가, 번제물 천 마리를 바쳤다.
                                                                 <역대하 1:1-6>


가려진 진실

 얼마 전 여순사건 연구자인 주철희 박사에게서 손양원 목사님 관련 사진 자료 몇 장을 받았습니다. 그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자료실에서 입수한 자료들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손양원 목사님의 자필 이력서가 있어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현주소가 “부산 초량교회”로 적혀 있고 그 다음 세례 받은 날짜와 평양신학교 졸업, 전도사 사역, 형무소에 들어간 이력 등을 기록하였습니다. 이어 “1945년 8월 17일 옥문이 열리게 되었음,” “1945년 8월 30일, 애양원교회 다시 일봄,” “1946년 2월부터 부산 초량교회 일보는 중,”이라 쓰고 한글과 영문으로 사인을 해놓았습니다. 손목사의 이 이력서에 따르면 그는 8.15 해방 이후 출옥하여 애양원 교회에서 잠시 시무하다가 1946년 2월 부산 초량교회로 임지를 옮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기존에 나온 손양원 목사 관련 연구서들 어디에서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애양원의 손양원 목사 기념관에 들러 전시 천천히 자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서 앞서 말한 손목사의 자필 이력서를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출옥 이후의 이력이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해방되어 감옥에서 나온 것이 마지막 이력인 것처럼 나머지 뒷부분을 잘라 없애고 전시해 놓았습니다.

이게 웬 일인가 싶어 부산 초량교회 역사박물관 담당 장로님과 통화해 손 목사님이 1946년에 그 교회에서 시무하신 게 맞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주기철 목사가 초량교회를 담임하던 시절 성경학원도 운영했는데 손양원 전도사가 그 학원을 다닌 적은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필 이력서에 “1946년 2월부터 초량교회에서 일보는 중”이라 적혀 있다며 주변에 알만한 분들이 있으면 사실 관계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얼마 후 그 장로님은 손목사님의 장녀 손동희 권사에게 물어봤더니 “초량교회에서 청빙 받긴 했으나 애양원 교회 교우들이 한사코 놔주질 않아 실제 초량교회에서 목회하신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였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실제로 그렇다면 손양원 목사가 이력서를 허위로 기재한 게 됩니다. 그해 6월 그가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므로 경남노회 소속 교회에서 시무 중임을 증명하는 이력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양원 교회 입장에서는 손목사님이 출옥 이후 초량교회로 옮겼다가 다시 돌아오신 것으로 알려지면 그게 흠결이 될까 염려했는지 그 대목을 삭제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신화’ 벗기기

이렇게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려진 진실은 얼마나 많을까요? 불편한 내용을 가리는 살짝 정도를 넘어, 누군가가 아예 사실 관계 자체를 허위로 왜곡, 조작한다면 이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사회적 큰 이슈로 부각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한 많은 시민의 우려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역사교과서 논란은 최근에야 불거진 사안은 아닙니다. 2002년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개설된 이래 벌써 십년 넘게 계속 격화되는 문제입니다. MB 정권은 출범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현행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다”며 6종의 교과서의 무려 206곳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지난 2008년 조선일보 류근일 전 주필은 “‘방송 탈환’에 이어 ‘교과서 탈환’ 투쟁에 돌입해야 한다”는 칼럼을 쓴 바 있습니다. 또한 뉴라이트계열 교과서포럼은 친일, 독재를 미화하는 ‘대안교과서(한국근현대사, 2008)’를 펴내 논란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우려한 진보역사학자들이 ‘친일인명사전’(2009)을 발간하자 친일 독재 세력의 반발로 근현대사 논쟁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었습니다. 지금의 국정 교과서 논란은 좌우의 이념대결이 되어선 안 됩니다. 그 보다는 역사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에 더 관심을 기울여 냉철한 반성과 성찰로 내일의 희망을 열어 가야합니다. 당장 권력을 쥐었다고 아무리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해봐야 부질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숨겨둔 것은 언젠가는 드러나고 말기 때문입니다(막 4:22).

권력자들의 역사 왜곡 사례는 성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왕조의 역사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신명기 사가가 기록한 열왕기(상, 하)와 역대기 사가의 역대지서(상, 하)가 그것입니다. 두 책 가운데 신명기 사가의 열왕기가 약 2백여 년 더 먼저 나왔습니다. 역대지서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다음에야 기록된 책입니다. 신명기 사가나 역대기 사가 모두 다윗 왕조와 야웨 신앙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하지만 두 책의 역사 서술은 많은 차이를 보여줍니다. 열왕기는 이스라엘 왕들이 율법에 얼마나 충실한 삶을 살았느냐를 기준으로 그 왕의 공과를 평가합니다. 반면 역대지서는 다윗과 솔로몬 왕을 이상적 군주모델로 제시(대하 29:2)하며 그들이 통치 기간에 행한 잘못이나 부정적 내용들을 모두 덜어냈습니다. 가령 다윗 왕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사건이나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 사건 등에 대해 역대지서는 전해주지 않습니다. 대신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고 죽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다윗의 집안이 훌륭한 가문이었음을 보여주고자 자세한 족보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역대기 사가는 신명기 사가보다 더 많은 자료를 갖고서 책을 썼으면서도 다윗과 솔로몬을 지나치게 미화시킵니다. 이로써 자료가 많다고 해서 역사를 정직하게 서술하는 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랜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유다왕국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살아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이 때문에 다윗과 솔로몬 통치기를 이스라엘의 황금기로 제시해야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다윗과 솔로몬을 이상적 왕으로 미화하고자 사실을 왜곡한 역대기 사가의 역사 서술은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본문은 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각 가문의 족장들을 데리고 기브온 산당에 갔다고 합니다. 그 기브온 산당에는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회막과 브살렐이 만든 놋제단이 있었다고도 말합니다. 솔로몬이 주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에 있음에도 굳이 기브온 산당에 가서 제사한 이유도 모세가 만든 회막과 브살렐, 곧 모세 시대 최고의 기술자가 만든 놋제단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평행 본문인 열왕기상 3장 1절 이하를 보면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을 찾아간 까닭은 “그 산당이 제일 유명했으므로” 거기에 찾아가 항상 제사 드리곤 하였다(왕상 3:4)고 말합니다. 이에 앞서 신명기 사가는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따랐으나, 그도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왕상 3:3)며 약간 부정적인 진술도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회막이나 브살렐이 제작하였다는 놋제단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또한 솔로몬이 왕위에 즉위한 뒤 기브온 산당에 찾아가 주님을 만났을 때 온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각 가문의 족장들을 데리고 갔다는 내용도 나오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주님을 만나는 장면도 중요한 차이를 보입니다. 열왕기는 한밤중 꿈에 주님이 나타났다고 한 반면, 역대기는 꿈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직접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것처럼 나옵니다. 역대기 사가는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한 뒤 기브온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주님께 받은 지혜와 지식으로 이스라엘을 잘 통치하였음을 강조하고자 불리한 내용들을 빼고 살을 붙였습니다.


기억의 전승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된 이후, 기브온 산당 같은 각 지역의 여러 ‘산당’은 우상숭배의 온상과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당에서 드리는 제사는 점차 인정되지 않았고 오로지 예루살렘 성전만이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통로처럼 알려졌습니다. 산당은 깨뜨리고, 헐고, 불사르고 제거해야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데 솔로몬 왕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면 산당을 긍정하는 일이 되기에, 역대기 사가는 거기에 모세가 만든 회막과 브살렐이 제작한 놋제단이 있었다고 둘러댄 것입니다. 만일 열왕기서가 없었다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역대기서의 기록을 틀림없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신명기 사가의 열왕기라고 모두 정확한 역사 서술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신명기 사가도 토라 중심의 평가 사관을 갖고 있기에 그가 하찮게 여기거나 빠뜨린 내용 중 중요한 사실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조차도 왜곡된 내용을 비판적으로 찾고 걸러내야 할 내용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모두 정확한 사실이라고 보면 큰 오산입니다. 표면상의 기록 너머의 진실은 무엇인지를 헤아려 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역사는 단지 흘러간 과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기억이자 내일의 좌표입니다. 어떤 성당의 사제가 미사 집전 전에 한쪽에다 애완 고양이를 매 놓고 미사를 집전하였답니다. 그런데 이게 하나의 전통으로 굳어져 그 후임자들은 왜 고양이를 매 놓아야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따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일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도 시민들이 쓰린 역사를 자꾸 망각하기에 그것을 왜곡하고 조작하여 국민을 영원한 노예로 만들려는 자들이 설쳐 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교의 희망찬 내일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전승을 얼마나 생생히 잘 간직하고 후세에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회개 없이 어영부영 덮어버릴 때 그 과오와 불행은 되풀이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려 올바른 신앙인으로 살고자 한다면 혹시 우리가 잘못 전달받은 신앙전승은 없는지, 또 신앙의 선배들이 전해준 고귀한 유산은 잘 간직하고 있는지 부지런히 점검하고 물어야 합니다. 이런 기억의 싸움에서 주님과 더불어 승리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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