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10/04
만인의 종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고전 9:19-23>



백년만의 부활

  지난주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손양원 목사 관련 자료를 찾다가 그 목록에서 “서서평 선교사와 보육원 원생들”이란 사진을 한 장 발견하였습니다. 서서평 선교사가 여수 애양원의 보육원에도 관여하였음을 보여주는 희귀 사진입니다. 서서평 선교사(본명 엘리자베스 쉐핑)는 1912년 식민지 조선에 입국해 주로 호남지역에서 22년간 사역한 미국 남장로교 소속 여성 의료선교사입니다. 그는 근 백여 년간 한국인의 기억에서 까맣게 잊힌 인물이었습니다. 한데 최근 들어 그에 대한 연구서와 논문, 뮤지컬, 세미나 따위가 부쩍 늘고 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한일장신대에서 서서평 선교사의 인성과 영성을 조명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서서평 선교사의 묘는 광주 호남신대 앞 갈멜동산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저는 그 학교를 다녔지만 서서평 선교사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 없습니다. 이제야 그를 조금씩 알아가는 중입니다. 사람들이 왜 백여 전의 서서평을 무덤에서 불러내는 것일까요? 이 시대가 그런 인물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공주의, 물질만능주의, 개인이기주의가 판칠수록 고아와 과부, 나환자, 걸인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서서평의 삶은 더욱 큰 울림을 줄 것입니다.  

서서평 선교사는 1934년 6월 풍토병과 과로, 영양실조가 겹쳐 54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습니다. 식민지 조선과 결혼하였기에 평생 처녀로 살다 갔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광주 최초의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수백 명의 나환자와 걸인이 몰려와 기나긴 장례행렬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외국인 선교사의 장례를 광주 시민 사회장으로 치른 경우는 서서평이 유일할 것입니다. 그만큼 서서평은 일제 강점기 호남지역 민중들에게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사회면에서 서서평의 삶과 죽음에 대해 두 꼭지나 할애해 자세히 전하였고, 다음날에는 장문의 사설로 “위대한 인류애”를 보인 서서평의 삶을 기렸습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특히 이 서서평 양의 사업에 있어서는 다른 보통 선교사와도 달리 보다 더 강한 근심과 보다 더 훌륭한 희생이 있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특히 불운에 우는 여성들을 상대로 일생을 보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들의 한 사람이 되어서 보리밥 된장국에 고무신을 끌고 다니면서 일신의 안일은 초개 같이 알았으니 그 이야기를 듣는 자로 하여금 감읍케 한다. 백만장자의 주택에 지지 않은 광대한 집에 편히 앉아서 남녀 하인을 두고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어떤 선교사들의 귀에 서서평 양의 일생은 어떠한 음향을 가지고 울리는가? 그보다도 값싼 허영에 들떠서 동족의 비참한 생활에는 눈을 감고 오직 개인 향락주의로 돌진하고 있는 수많은 조선 신여성들의 양심에 과연 어떠한 자극을 주고 있을까? ....이국 여성으로서도 이러 하거든 조선의 여성으로서 그 뒤를 따를 자 그 몇몇인가?”
                                           (1934. 6. 29. 동아일보 사설)

서서평은 의사나 목사도 아닌 간호사로 이 땅에 왔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던 고아, 나환자, 과부, 거지, 윤락여성들을 가족처럼 돌보았고 그들을 치료하고 교육시켰습니다. 무려 14명의 고아를 양자와 양녀로 삼았고 38명의 과부를 거두었으며 이일학교(한일장신대학교 전신)를 세워 수많은 여성 지도자를 길러냈습니다. 이름도 없던 많은 여성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자존감과 주체성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자신의 생활비를 다 털어 학교 운영과 빈민 구제를 하느라 그는 선교사 가운데 가장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다른 많은 선교사가 ‘양대인’이라 불릴 만큼 위세를 부리며 살 때, 서서평은 겸허히 조선의 문화를 존중하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독립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그는 “서양 문명으로 지배하지 않고 동양적 삶의 관점에서 더 잘 협력해야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사역한 매우 보기 드문 선교사였습니다.


성공 아닌 섬김

서서평의 좌우명은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였습니다. 그는 이 좌우명대로 살았습니다. 별명이 ‘재생한 야소’ 곧 ‘다시 살아난 예수’이자 ‘빈민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서평 선교사의 이일학교 제자인 오복희 전도사는 이현필 선생과 더불어 개신교 수도단체 동광원의 창립을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동광원은 해방 이후 나환자들과 걸인들, 중증 장애인들을 헌신적으로 돌본 평신도 수도단체입니다. 서서평이 뿌린 복음의 씨앗은 동광원, 한일장신대, 애양원, 여전도회 등으로 두루 흩어져 자라났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이 땅 한반도와 온 세계에 더욱 널리 퍼질 것입니다. 서서평의 섬김과 사랑은 기독교인은 물론 비종교인, 심지어 당시 조선을 지배하던 일본인들에게까지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편하고 근사하게 잘 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조선 땅에 와서 고생을 사서하였고 영양실조로 죽기까지 이 땅의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철저히 헌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지 ‘인류애’라는 휴머니즘만으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모델 삼고 자신을 비워 날마다 그 길을 따르고자 힘썼기에 가능하였던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빌 3:17) 우리가 서서평의 삶을 떠올리는 까닭은 그저 그를 칭송하고 기념이나 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를 본받아 우리도 예수의 복음을 삶속에 구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사의 아버지격인 사도 바울은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 살던 당시만 해도 ‘종’[노예]이 있었음을 유념하고 이 말씀을 찬찬히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자유인과 종’이란 낱말의 어감이 오늘날과는 사뭇 달랐을 것입니다. 노예제 시대 종은 죽기까지 오로지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핵심 역할은 주인의 각종 시중을 드는 일입니다. 1세기 그레코-로마의 신분제 사회에서 종이 자유인이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습니다. 자유인과 종의 신분상 간극이 그렇게 컸습니다. 말하자면 종들을 부리는 주인은 사람이지만 그 종들은 말하는 짐승이자 재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자신이 자유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고자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원해서 모든 이들을 위한 노예의 삶을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줄곧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도직이 교회를 지배하기 위한 게 아니라 실은 모든 이들을 섬기기 위한 직분임을 환기시킵니다. 바울은 왜 뜬금없이 “많은 사람을 얻고자 자진해서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전혀 이상하거나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한 그 말씀의 원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막 10:45)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이 가르침대로 만인을 위한 종을 자처한 것이지 자의적으로 처음 그런 주장을 펼친 게 아닙니다.  


만인을 얻고자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더 높으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냐, 시중드는 사람이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눅 22:27) 세상의 왕들은 백성들 위에 앉아 군림합니다. 권력자들은 백성 위에서 세도를 부리며 지배하려 듭니다. 하지만 예수님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서 으뜸이 되는 원리는 이 세상의 익숙한 풍경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십니다. 가장 으뜸이 되려는 자라면 먼저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하는 ‘상선약수’ 곧 물이 흐르는 원리와 유사합니다. 물은 다른 사물보다 더 높아지려 다투지 않습니다. 바위나 자갈, 흙이 가로막으면 그것을 에돌아 아래로 흘러갑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최대한 낮춤으로써 마침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다가 됩니다. 바다가 바다인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바다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그런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나라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람에게 자신을 맞춰서 그들과 같이 되었노라고 말합니다. 강한 자에게는 강한 자가 되고 약한 자에게 가면 약한 자가 되었습니다. 율법이 있는 자에게 가면 율법을 잘 지키는 자가 되고 율법 없는 자에게 가면 그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기회주의자이거나 줏대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그의 심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새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앞세워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고 먼저 눈높이를 맞춰 마음 문을 연 다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이 같은 섬김의 선교를 펼쳤기에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자기 비움의 성육신적 선교는 오늘의 교회를 다시 살리는 길입니다. 교회는 특정 민족이나 계층만을 위한 기관이 아닙니다. 만민을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으로 섬기어 주님 나라의 백성으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 나라의 봉사대입니다. 이 사명을 기억하며 더 열심히 섬김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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