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11/30(월)
공평한 저울을  

그 때에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도 왕을 맞으러 내려왔다. 그는, 왕이 떠나간 날부터 평안하게 다시 돌아오는 날까지,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아 입지 않았다. 그가 예루살렘에 와서 왕을 맞이하니, 왕이 그에게 물었다. “므비보셋은 어찌하여 나와 함게 떠나지 않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높으신 임금님, 저는 다리를 절기 때문에, 나귀를 타고 임금님과 함께 떠나려고, 제가 탈 나귀에 안장을 얹으라고 저의 종에게 일렀으나, 종이 그만 저를 속였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임금님께 가서 이 종을 모함까지 하였습니다. 임금님은 하나님의 천사와 같은 분이시니, 임금님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처분하시기를 바랍니다. 제 아버지의 온 집안은 임금님에게 죽어도 마땅한 사람들뿐인데, 임금님께서는 이 종을 임금님의 상에서 먹는 사람들과 함께 먹도록 해주셨으니, 이제 저에게 무슨 염치가 있다고, 임금님께 무엇을 더 요구하겠습니까?” 그러나 왕은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어찌하여 그 이야기를 또 꺼내느냐? 나는 이렇게 결정하였다.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어 가져라!” 므비보셋이 왕에게 아뢰었다. “높으신 임금님께서 안전하게 왕궁으로 돌아오시게 되었는데, 이제 그가 그 밭을 다 차지한들 어떻습니까?” <삼하 19:24-30>



기울어진 추

 얼마 전 정부와 지자체가 수산시장 등을 중심으로 ‘추석대비 저울특별점검 서비스’를 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수산물 거래를 할 때 상업용 불량저울을 사용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해마다 높아지기 때문에 점검에 나선 것입니다. 저울의 스프링이나 영점 등을 조작하여 상품 값을 높여 받는 상인들이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나 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상인들이 저울로 고객을 속이는 일이 종종 벌어졌던 모양입니다. 주전 8세기에 활동한 예언자 아모스는 유다왕국의 부유한 상인이 가난한 백성들을 상대로 벌이는 악행을 다음과 같이 고발합니다. “빈궁한 사람들을 짓밟고, 이 땅의 가난한 사람을 망하게 하는 자들아, 이 말을 들어라! 기껏 한다는 말이, “초하루 축제가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 수 있을까?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낼 수 있을까? 되는 줄이고, 추는 늘이면서, 가짜 저울로 속이자. 헐값에 가난한 사람들을 사고 신 한 켤레 값으로 빈궁한 사람들을 사자. 찌꺼기 밀까지도 팔아먹자” 하는구나.”(암 8:4-6) 초하루 축제나 안식일 같이 종교제의를 위해 공식적으로 쉬어야 하는 날조차 귀찮아하며 오로지 백성들을 속여 갈취하는 데만 골몰하는 자들의 사악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긴 외침입니다. 그들은 돈 버는 재미에 나라에 망조가 든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상인들이 저울을 속여 상거래 질서가 무너지면 빈부격차가 심화되게 마련인데 그런 나라가 골병들어 망하지 않고 배겨 나겠습니까? 이런 경제문제는 신앙생활과도 직결됩니다. 악덕 기업주나 상인이 공의로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갖기란 불가능합니다.  

요즘 한국의 개신교를 ‘친미’를 넘어 ‘숭미와 수구의 아성’이라 지탄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승리주의, 물량주의, 성공주의 신앙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사회적 비판도 많습니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개신교 신앙의 병리 현상이 최근 들어 갑작스레 심해진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문제의 연원을 추적해 보면 그 뿌리가 상당히 깊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일제 강점기에 항일운동과 민족 계몽운동의 요람과 같은 역할을 한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교세가 불과 십만도 안 되었음에도 3.1운동을 주도하였고 안창호, 조만식, 김규식 등 수많은 민족 지도자도 배출하였습니다.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님이 지적하듯 전국 방방곳곳에 한글성경을 보급해 한글을 보편화시키는데 중요한 기여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1930년대 중후반 일제의 강요에 굴복해 각 주요 교단이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해방될 때까지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졌을 때는 장로교에서만도 군용기와 기관총 구입비 15만 원(현재 환율 가치로 약 30억 가량)을 헌금하는 등의 부일협력에 앞장섰습니다. 해방 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자, 지난날 부일협력에 대한 철저한 참회도 없이 유무형의 수많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가령 전국의 여러 교회가 적산(敵産), 곧 일제가 국내에서 갖고 있던 수많은 부동산을 헐값에 불하받아 예배당을 세우는 특혜를 얻었습니다. 서울의 영락교회, 경동교회, 도림교회 같은 대형교회를 비롯한 전국의 여러 교회가 그런 수혜를 입었습니다. 원래 일본의 신사나 천리교 사원 같은 시설이 예배당이나 신학교로 속속 탈바꿈한 사실에 대해 당시 교계의 한 신문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자 ‘기독교의 승리,’ ‘교회의 광명’이라 평하였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불교나 천도교 같은 이웃종교들이나 비종교인들이 볼 때 이는 권력의 횡포이자 종교편향 정책이고 기독교의 오만입니다. 교회가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성찰을 게을리 한 결과 지금처럼 많은 지탄을 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스스로 공정하고 엄격한 자를 들이대지 못할 때 그 종교는 부패하고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뒤바뀐 주인

 다윗 왕은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예루살렘에 자신의 왕궁을 건설한 뒤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였을 때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에게 닥친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시련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사랑하는 아들’에게 쫓겨 몽진을 떠나야 하였고 민심도 다 잃었습니다. 압살롬의 군대와 싸워 겨우 승리하였지만 그 전쟁으로 아들 압살롬을 잃는 큰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다윗과 그의 군대는 마치 패잔병처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압살롬 군대와 싸워 이긴 뒤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사울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만난 장면입니다.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저는 장애인입니다. 사울 왕과 그의 아들들은 길보아 언덕에서 블레셋 군대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다 모두 전사하였습니다. 이 소식이 이스르엘의 왕궁에 전해지자 유모는 다섯 살 난 므비보셋을 업고 허겁지겁 도망치다 아이를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이 사고로 므비보셋은 두 다리의 뼈가 부러져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였습니다.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잃었고 두 다리마저 장애를 입었으며 왕족임을 숨긴 채 로드발에 있는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얹혀살아야 했습니다. 그가 성장하는 동안 다윗 왕은 삼년의 기근을 핑계로 사울의 후궁 리스바가 낳은 두 아들과 사울의 딸 메랍의 다섯 아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사울 가문에서 남은 자라고는 두 다리를 저는 므비보셋 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은 왕권을 확립한 뒤 사울 집안의 종 시바의 소개로 므비보셋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끌려와 벌벌 떠는 므비보셋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네 부친 요나단과을 생각해서 네게 은총을 베풀고 싶다. 네 할아버지 사울 왕이 갖고 있던 토지를 너에게 모두 돌려주겠다. 그리고 너는 언제나 나의 식탁에서 함께 먹도록 하여라.”(삼하 9:7) 다윗 왕의 이런 뜻밖의 호의에 므비보셋은 뛸 듯이 기뻤을까요? 표면상 언뜻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므비보셋의 대답을 보면 가시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종이 무엇이기에 죽은 개나 다름없는 저를 왕께서 이렇게까지 돌봐주십니까?”(삼하 9:8) 므비보셋이란 이름 뜻은 “수치를 없애는 사람” 혹은 “수치스러움의 사람”입니다. 그는 실제로 ‘죽은 개나 다름없이’ 한 평생 수치스런 삶을 살아야 하였습니다. 장애만이 아니라, 왕족이면서도 전혀 인정받지 못한 채 숨어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를 다윗 왕이 갑자기 불러 호의를 베푼다는 데 그것도 내심 미덥지 않았을 겁니다. 차라리 조용히 살게 놔두었으면 하는 바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윗 왕은 사울 가문의 종이던 시바에게 땅을 경작하여 므비보셋의 식량을 대고 집안일을 돌보라고 지시합니다. 그런데 압살롬의 반란이 일어나자 시바도 그의 주인 므비보셋을 배신합니다. 그는 황급히 피란을 떠나는 다윗 일행에게 과일과 빵, 건포도 뭉치 등을 갖다 주며 다윗에게 므비보셋에 대해 모함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이 “이제야 이스라엘이 자기 할아버지 나라를 자신에게 되돌려 줄 것”이란 기대를 하며 예루살렘에 남아 있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다윗은 시바의 말을 곧이듣고 “므비보셋의 재산을 네가 모두 가져라”(삼하 16:4)고 합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그는 므비보셋을 만나 시바가 전에 그에게 한 말이 거짓이었음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시바를 처벌하고 므비보셋 재산을 되돌려주는 대신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어 가져라”며 매우 신경질적인 처분을 내립니다. 아무리 아들 압살롬을 잃은 상태이고 왕권 회복을 위해 넘어야할 산이 많아 중압감이 컸다고 해도 므비보셋 재산에 대한 다윗의 즉흥적인 결정은 틀림없는 잘못입니다. 자신이 왕임을 내세워 남의 집안 부동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한이 있다는 듯 행세하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저울

 다윗 왕의 이 같은 처사는 폭군으로 유명한 이스라엘 왕 아합보다 못합니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몹시 탐내었으나 그 땅이 조상대대로 내려온 기업임을 알고 차마 강탈하지 못하고 한동안 머뭇거렸습니다. 반면 다윗 왕은 통일왕국의 왕이 되자마자 사울 왕의 토지를 함부로 몰수하였습니다. 나중에 그 땅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었지만 다시 빼앗아 므비보셋의 시종 시바에게 주었으며 그것을 또 다시 반으로 나누게 하였습니다. 토지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왕인 자신 맘대로 몰수하고는 돌려줬다가 또 빼앗고 나누는 일을 합니다. 그럼에도 사무엘서는 “다윗이 왕이 되어서 이렇게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에, 그는 언제나 자기의 백성 모두를 공평하고 의로운 법으로 다스렸다.”(삼하 8:15)며 너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그것은 사무엘서가 얼마간 다윗 왕실의 눈치를 보며 기록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역대기서는 사무엘서에 비해 더욱 심하게 다윗 왕을 미화합니다. 다윗은 그의 친구 요나단과 맺은 사랑의 맹세를 생각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성의껏 잘 돌봐주었다고 항변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므비보셋 입장에서 역지사지해 보면 그것은 다윗이 자신의 관용과 후덕함을 널리 선전하기 위한 위선적 수법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므비보셋이 장애가 없었더라도 다윗이 그렇게 후대하였을까요? 더욱이 자기 집안 몰살시킨 원수와 식탁을 늘 같이 해야 하였던 므비보셋의 심경은 얼마나 비참했을까요? 그는 자신이 다윗의 볼모이자 애완견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윗은 시바의 거짓이 들통 났음에도 공정한 재판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어 가져라!”고 명하며 므비보셋의 억울함을 끝내 풀어주지 않습니다. 잠언에서 현자들은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정확한 저울과 천평은 주님의 것이며,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분이 만드신 것이다. 왕은 악행 하는 것을 역겨워하여야 한다. 공의로만 왕위가 굳게 설 수 있기 때문이다.”(잠 16:11-12) 희년기념주일을 맞이하여, 혹시 우리 자신도 다윗처럼 자신의 편익에 따라 마음대로 조정하는 불량 저울을 갖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십시다. 하나님은 “너희는 바른 저울과 바른 추와 바른 에바와 바른 힌을 사용하여라.”(레 19:36)고 명하십니다. 주님의 이 명령 따라서 개인적으로 다소 불이익이 있더라도 생활 속에서 늘 부지런히 ‘공평과 정의’를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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