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11/30(월)
너를 택한 이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압제하는 사람은 부자들이 아닙니까? 또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약 2:5-9>


‘헬조선’의 비극

최근 청년들을 중심으로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헬’(hell)은 ‘지옥’이란 의미의 영어 단어고 ‘조선’은 ‘전근대적 왕조사회’나 다름없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비하하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헬조선’은 “생지옥 같은 한국 현실”을 풍자 혹은 야유하는 말입니다. 올해 청년실업률이 10.2%에 달하고 체감 청년실업률은 무려 23%에 이를 정도라 합니다. 8.15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달 서울시에서 “나의 광복”이란 주제로 기념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행사의 하나로 시민들에게 “나의 광복은 ○○이다”는 문구와 설명을 적은 글을 접수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응모한 시민들의 광복에 대한 문구는 무척 다양했습니다. “나의 광복은 게임이다” “나의 광복은 자존심이다” “나의 광복은 여행이다” “나의 광복은 친일청산이다”...그런데 그 많은 문구 가운데 “나의 광복은 출근이다”는 글도 있었답니다. 여느 직장인이라면 “나의 광복은 퇴근이다”라 할 것 같은데 그는 구직을 간절히 원하는 청년이었나 봅니다. 죽자 사자 ‘노오오오력’을 해도 취직도 결혼도, 내 집 마련도, 출산도 힘든 사람들이 “‘헬조선’에서 더 이상 못살겠다, 탈출하자”며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청년들에게 큰 실망과 허탈함을 안겨준 땅콩회항 사건이나 국회의원들의 자녀 취업 청탁 사건이 있었습니다. 누군 재벌의 딸로 태어나 비행기를 회항시키는 갑질 횡포를 해대다 가까스로 구속되었지만 금세 풀려납니다. 국회의원 자녀들은 부친의 전화 한통으로 대기업에 손쉽게 취직합니다. 이런 걸 보면서도 지금의 한국을 신분제 사회가 아니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다수 국민이 지금의 한국은 계층 간의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고 부와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뚜렷하다고 보는 실정입니다. 2012년 대선 당시 최대 화두였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그저 헛공약 말잔치로 끝난 결과 서민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져갑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내전으로 사망한 시리아 민간인 수가 8,681명이랍니다. 하지만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의 자살률로 세계 1위의 자살 국가라, 올해 1~7월까지 한국의 자살자는 시리아 민간인 사망자보다 약 2천 명이 많은 10,354명에 달한다는 계산을 보았습니다. 시리아 내전보다도 더 힘든 현실 속에서 다들 각자도생하느라 발버둥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희망의 보루

이런 참혹한 현실만 탓하고 푸념할게 아니라, 함께 지혜를 모아 남부러워할만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가야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사회적 연대의식이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이 땅의 숱한 교회가 깨어나 그런 희망의 보루 노릇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성남시가 부채탕감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만든 ‘주빌리 은행’이 그 좋은 사례의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계부채가 무려 1천 130조원에 이르는데 그 엄청난 빚더미에 짓눌려 살아가는 시민들에겐 현재 탈출구가 없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온 나라가 얼마 안가 파산할 지경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주빌리 은행은 성서의 희년 정신에 따라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부채를 탕감해 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부실 채권을 원금의 5%에 사들여 채무자가 7%의 원금만 갚으면 빚을 탕감해 주거나 빚 갚을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그냥도 탕감해준다고 합니다. 이런 부채탕감 운동은 ‘희년과 함께’ ‘교회개혁실천연대’ 같은 기독 NGO들이 먼저 시작하였습니다. 김재환 감독이 만든 영화 ‘쿼바디스’의 수익금을 밑천 삼아 학자금 대출로 졸업과 동시에 빚쟁이로 전락하는 청년들의 부채탕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남의 여러 교회도 ‘주빌리 은행’ 설립에 동참해 서민들의 부채탕감을 위한 일에 동참한다고 합니다. 성서의 희년정신에 기초한 이 같은 부채탕감 운동이 전국으로 퍼져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복되고 활기차게 뒤바꾸었으면 합니다.  


기울어진 저울

 야고보서는 신약성서 가운데 유일한 지혜문서입니다. 지혜문서란 구약의 욥기, 전도서, 잠언이나 구약외경인 지혜서, 집회서 같은 책처럼 인생의 여러 처세훈과 격언, 속담, 우화, 현자들의 가르침 따위를 모아 편찬한 책을 말합니다. 신약시대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라는 시급하고 중차대한 당면 목표가 있었기에 지혜문서들을 남길만한 여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가뭄에 콩 나듯 야고보서가 나와 퍽 다행스럽습니다. 구약 지혜문서에서 널리 찾아볼 수 있는 주제의 하나가 ‘부와 가난’입니다. 야고보서도 ‘부와 가난’에 시종일관 관심을 보입니다. 오늘날만이 아니라 이미 성서시대에도 사람이 사는데 있어 재물의 많고 적음이 큰 관심거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재물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을 보인다는 생각은 편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의 경우는 부유한 생활을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가령 하나님은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해주겠다고 부르셨습니다. 실제로 주님은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이집트에 내려갔을 때 “집짐승과 은과 금이 많은 큰 부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창 13:2).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의 아들 이삭, 야곱, 요셉 등 많은 구약의 인물이 하나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부유한 삶을 누렸습니다. 구약의 대표적 지혜문서인 잠언은 “지혜를 얻는 자의 오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왼손에는 부귀영화가 있다”(잠 3:16)며 부귀영화를 누리며 장수하는 생활을 긍정적으로 묘사합니다. 집회서도 “부란 그것이 죄가 아닌 한 좋은 것이고 가난이란 불경한 자가 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집 13:24)고 가르칩니다. 즉 불의한 방식으로 재물을 모았다면 그것은 나쁘지만 성실히 일하여 벌어들인 재물로 부유해졌다면 좋다고 평가합니다. 그렇다고 가난을 ‘악’이라고 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과 ‘경건’을 연결 짓습니다.
그럼 신약성서는 부와 가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칠까요? 예수님은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눅 6:20)고 하셨고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눅 6:24)고 말씀하십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막 10:25)는 유명한 경구도 남기신 바 있습니다. 또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눅 16:19-31)에서, 부자가 그의 집 대문 앞에서 기거하던 거지 나사로를 잘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고통당한다고 말씀합니다. 반면 나사로는 평소 신앙심 깊은 생활을 하였다는 그 어떤 기록 한 줄 없습니다. 그가 단지 거지로 힘들게 생활하였다는 사실 한 가지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데 아무 손색이 없는 것처럼 나옵니다. 이 밖에도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마 11:5)을 그의 메시아적 주요 사명의 한 가지로 보셨습니다. 그는 부자들에게는 재물을 가난한 자들과 나누게 하셨습니다. 부자들에게 만이 아니라 그의 청중들에게도 “너희 소유를 팔아 자선을 베풀라”(눅 12:33)고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그것을 실천한 사람이 바로 삭개오였습니다(눅 19:2).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에 따라 초기 교회는 부의 축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강합니다. 이처럼 ‘자발적 가난’으로 경건한 삶을 추구하던 교회는 야고보서가 기록될 즈음에는 어느덧 세속의 풍조에 물들게 됩니다. 교회에서 부자 신도는 우대하고 가난한 신도는 차별대우함으로써 예수님의 복음과는 딴판인 행태마저 나타났습니다. 야고보는 교회에서 벌어지는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차별대우의 잘못을 강력히 책망합니다. 그는 가난한 자가 진진 강점을 환기시키고 부자들의 악행을 꼬집기도 합니다.


너를 택한 이유

야고보는 “비천한 신도는 자기가 높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자기가 낮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약 1:9-10)라고 권고합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회 모습입니다. 교회에서 가난한 신도는 좋은 대우를 받아야하고 부자는 스스로를 낮춰야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호혜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교회는 아름다운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교회에서 주눅 들거나 차별받는다면, 또 부유한 신도의 목소리가 크다면 교회가 세상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야고보는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약 2:5)라고 묻습니다. 이는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눅 6:20)라고 가르치신 예수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난이 그 자체로 저주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가난한 자의 것이라 하셨고 가난한 자들은 그 가난 덕분에 신앙의 부자가 됩니다. 부자들은 오만하여 하나님을 찾기 힘들지만 가난한 자들은 주님을 섬기는데 유리합니다. 가난을 미화해서도 안 되겠지만 마치 추방해야할 질병이나 저주처럼 여기는 것도 잘못입니다.

주님은 굶주리고, 헐벗고, 옥에 갇히고, 병들고, 귀신들리고, 죄의 짐에 짓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을 주님 나라의 상속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신실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약하고 소외된 그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주님의 구원 손길이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숱한 민족이 있음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셨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수가 많아서도, 신앙심이 깊어서도, 죄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주님이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그들 조상에게 맹세하신 바를 지키려 하셨기 때문입니다(신 7:7-8).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셔서 그 나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신 까닭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가난한 사람은 주님께서 그를 불러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삼으신 사실을 깨닫고 주님 안에서 자신이 높아졌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과정에서 모세와 하나님을 번번이 실망시켰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완악하고 목이 곧은 백성’(신 9:13)이라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이스라엘은 주님 앞에서 스스로 자랑할게 없습니다. 주님의 특별한 은혜에 대해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려야 할 뿐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도 처지가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이 재물은 내 능력과 내 손으로 모은 것이다”(신 8:17)고 속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이 아니라면 우리가 무엇을 하나라도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우리는 가진 소유를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데 인색하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절망스런 이 세계를 바꿀 힘은 예수께서 몸소 실천하신 오래된 오솔길 나눔과 섬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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