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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바위솔
2015/11/30(월)
해방의 재건축  
해방의 재건축

유대 사람의 유월절이 가까워져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그는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걷어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주님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주겠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에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구요?”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 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요 2:13-22>



파괴와 건설

 최근 <암살>이란 영화가 천 만 관객을 끌어 모아 세간의 큰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일제식민시대 총독부와 군부 수뇌, 매국노 처단, 일제의 주요 시설 폭파 등의 활동을 벌인 ‘의열단’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의열단은 독립을 위해서는 경제, 문화적 실력을 길러야한다거나(실력 양성론) 구미 강대국에 독립을 청원해야 한다(외교론), 혹은 교육을 통해 독립을 준비해야 한다(준비론)는 따위의 온건 ․ 타협 노선과는 달리 ‘민중의 직접적인 무장 폭력혁명’을 추구하는 단체였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제롯당과 비슷한 유형의 급진 민족주의 테러 단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의열단의 단장 김원봉은 경남 밀양 태생으로 우당 이회영이 세운 신흥무관학교 출신입니다. 거기서 배운 폭탄제조법, 군사학 등을 바탕으로 의열단을 조직해 줄기차게 항일 독립운동을 벌인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에드가 스노우의 <아리랑>이란 평전으로 유명한 항일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에 따르면 김원봉은 “고전적 유형의 테러리스트답게 냉정하며 두려움을 모르며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랍니다. “거의 말도 없고 웃는 법도 없이 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일제는 그를 체포하고자 긴 세월 혈안이 되어 있었으나 김원봉은 해방이 되기까지 용케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1922년 겨울, 북경에서 평소 존경하던 단재 신채호 선생을 만나 의열단 활동의 지침이 될 만한 선언문을 써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당시 신채호 선생은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가 외교적 독립 청원을 주장하는 이승만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자 크게 실망하여 뛰쳐나온 상태였습니다. 그도 독립을 위해서는 의열단처럼 무력투쟁만이 최선의 길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신채호 선생은 항일 독립운동 시기 나온 명문의 하나로 손꼽히는 ‘조선혁명선언’(의열단 선언)을 썼습니다. 이 선언문 마지막 5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선언문이 말하는 파괴의 목표는 다섯 가지 곧 이민족의 통치, 특권계급, 경제약탈제도, 사회적 불균형, 노예적 문화사상입니다. 조선이 완전한 독립을 이루려면 이 다섯 가지를 반드시 먼저 파괴해야 한다는 생각 같습니다. “파괴 없이 건설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외세의 간섭과 지배, 특권계급과 경제 ․ 사회적 불평등, 노예적 문화가 판치는 상태에서는 진정한 독립과 해방을 이루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였지만 이 나라 형편을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친일파가 여전히 청산되지 않아 대부분 호의호식하며 살고 국가에 빼앗긴 땅 되찾겠다며 설치는가하면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은 변변한 직업도 없이 힘겨운 삶을 살아갑니다. 일제시대 중국에 망명한 많은 독립 운동가는 여태 국적조차 회복을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 같은 외세의 간섭과 지배는 줄어들 줄 모르고 소수 재벌 중심의 기형적 경제구조와 제도로 사회 불평등은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쓰려는 교육부의 정책에서 보듯 문화적 사대주의와 종속도 갈수록 더 악화되는 추세입니다. 오늘 우리 세대가 해야 할 ‘파괴’는 의열단의 활동과 같이 요인 암살과 건물의 파괴 같은 테러는 아닙니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겨울지 모를 재건축 과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형은 어엿한 독립국가 같지만 내부의 각종 부실공사로 손봐야할 곳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성전

 한국에 일제 식민 지배를 벗어난 감격의 ‘광복절’이 있다면 유대인들에게는 ‘유월절’이 있습니다. 이집트 제국의 노예생활을 하다가 사백여 년 만에 탈출한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큰 명절입니다. ‘유월’이란 ‘넘어감’을 의미합니다. 죽음의 신이 이집트 사람들 장자의 목숨을 앗아갈 때 유대인들은 주님이 모세를 통해 일러주신 대로 문설주에 양피를 발라 그 무서운 재앙을 피하였습니다. 여기서 ‘유월절(페사흐)’이라는 명칭이 생겨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부터 이미 유월절을 지키기 시작합니다. 유월절은 그만큼 오래된 이스라엘 민족 고유의 해방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처음에는 가족별로 양이나 염소를 한 마리씩 잡아 구워먹고 누룩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먹으며 지켰습니다. 그러다가 다윗이 예루살렘에 중앙 성소를 마련한 뒤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의 각 집안마다 대표단을 보내 지켜야 하는 민족의 순례절기로 발전합니다. 남유다 왕국 멸망 이전까지만 해도 유월절은 그저 출애굽의 기쁨을 회고하는 절기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와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한 다음부터는 상황이 크게 변하였습니다. 유월절은 흘러간 옛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다시 한 번 꼭 사무치게 체험하고픈 해방의 절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찾아온 수많은 순례객은 이번 유월절에 뭔가 놀라운 사건이 터져 로마제국 같은 이방의 지배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로마제국은 유월절에 유대인의 폭동이 잦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예루살렘 성전 북쪽 안토니아 요새에 경비대를 두고 삼엄한 경비를 하였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실로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십니다. 성전 뜰에서 양과 소 같은 제물을 팔거나 환전하던 장사꾼들의 탁자를 둘러엎고 채찍을 만들어 성전 밖으로 짐승들을 내쫓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과격한 행동은 보기에 따라서는 유대인들의 폭동을 선동하기 위한 신호탄으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공생애 초반에 예루살렘 성전 청소를 하십니다. 공관복음은 예수님이 공생애 막바지에 단 한 차례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가셨고 그때 성전의 장사치들을 내쫓으신 것처럼 묘사합니다. 예수님의 성전숙청 사건에 대한 보도에서 요한복음과 공관복음 가운데 어느 복음서가 더 사실에 부합한지는 정확히 가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초반이나 막바지의 어느 시점에 성전의 장사치들을 내쫓는 매우 위험하고 과격한 행동을 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는 생후 팔일 만에 부모님과 더불어 성전을 들른 바 있고 열두 살 이후 해마다 유월절을 지키고자 성전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성전의 장사치들을 내쫓진 않았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평범한 유대인처럼 숨죽이며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돌연 장사꾼들의 상을 뒤엎고 소나 양들을 성전 밖으로 내쫓으십니다. 순식간 일어난 일이기에 유대인들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주겠소?”라고 겨우 묻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이 범상치 않다고 생각해 어찌하여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알아보고자 나름 조심스레 묻는 장면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면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과격한 행동을 함부로 제지도 못하지도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만에 하나 예수가 메시아라면, 혹은 하나님의 예언자라면 어쩌나 하는 일말의 두려움과 기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시대의 성전은 헤롯대왕이 주전 20년 건축을 시작해 아직 완공하지 못한 제3성전입니다. 예수님이 성전 숙청을 하신 그 해가 성전 건축에 착공한지 46년째라고 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성전을 짓는데 7년이 걸렸지만 헤롯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성전을 지었습니다. 전체 면적을 평수로 계산하면 42,350평에 달합니다. 완공까지 80여년이 걸렸습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 220년 건축을 하였고 독일의 쾰른 성당은 630년 넘는 공사기간이 걸렸다니 그런 성당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예루살렘 성전 가운데는 가장 크고 화려한 성전이었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헤롯은 이 성전을 짓고자 석재를 운반할 마차 1,000대와 건축 숙련공 1만 명을 동원하였답니다. 이토록 공들여 지은 성전에 대해 예수님이 ‘허물어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시니 유대인들은 기가 막혔던 모양입니다. “짓는데 46년이나 걸린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요?”라고 반문하며 뜨악한 반응을 보입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성전은 46년간 지은 게 아니라 무너지고 또 무너져 내리는 상태였습니다. 겉보기엔 웅장하고 신성해 보였지만 하나님이 머무시기에는 너무도 타락하고 세속적인 건축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몸을 집으로

요한복음은 유대전쟁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이미 허물어진 다음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기에 저자는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며 주님이 부활하신 뒤에야 제자들도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믿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라고 말씀하실 때는 “이게 무슨 말씀일까”하며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의미를 깨달은 것입니다. 실제로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열두 사도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에도 예루살렘 성전을 드나들었습니다. 사도들만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은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 유대교 신앙을 유지한 채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없어진 뒤에야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집’ 곧 성전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성전의 장사치들을 내쫓으신 게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출애굽의 해방정신에서 너무도 멀어져 ‘장사하는 집’이 되어버렸음을 폭로하시고 자기 몸으로써 새 성전을 짓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만 하나님의 성전이신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건물”(고전 3:9)이라고 하였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고전 3:16)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의 성령을 모신 사람들로서 스스로를 성전과 같이 소중히 여기며 명실 공히 ‘하나님의 집’으로 세움 받아야함을 알려줍니다. 밖에 세워진 성전은 아무리 긴 세월 공들여 지어도 한 사람이 그 몸으로 짓는 성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신에 따라 한 평생 몸으로 아름다운 성전을 짓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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