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11/30(월)
불씨를 잠재우라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두해를 지냈는데도, 왕의 얼굴을 한 번도 뵙지 못하였다. 압살롬이 요합을 왕에게 보내 보려고 요합에게 사람을 보냈으나, 요압은 압살롬을 방문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 다시 사람을 보냈으나, 그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그러자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을 불러다가 지시하였다. “내 밭 곁에 요압의 밭이 있다. 그가 거기에 보리 농사를 지어 놓았으니, 너희는 가서, 그 밭에다가 불을 질러라.” 그래서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다. 그러자 요압이 압살롬의 집으로 찾아가서 따졌다. “어찌하여 종들을 시켜, 나의 밭에다가 불을 질렀습니까?”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였다. “이것 보시오. 나는 이미 장군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좀 와 달라고 부탁을 하였소. 장군을 임금님께 보내어서, 나를 왜 그술에서 돌아오게 하였는지, 여쭈어 보고 싶었소. 여기에서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그 곳에 그대로 있는 것이 더욱 좋을 뻔 하였소. 이제 나는 임금님의 얼굴을 뵙고 싶소. 나에게 아직도 무슨 죄가 남아 있으면,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더라고 말씀을 드려 주시오.” 그래서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서, 이 일을 상세히 아뢰니, 왕이 압살롬을 불렀다. 압살롬이 왕에게 나아가서, 왕 앞에서 얼굴이 땅에 닿도록 절을 하자, 왕이 압살롬에게 입을 맞추었다. <사무엘하 14:28-33>



반란의 불씨

지금부터 38년 전 11월 11일 밤 9시 15분경이었습니다. 마침 한국과 이란의 월드컵 축구경기가 한창이라 많은 시민이 응원을 하느라 여념 없었습니다. 이때 전북 이리역에서 엄청난 폭발음과 섬광이 비치더니 12만 이리시가 순식간 생지옥으로 돌변했습니다. 역사 주변의 60여 가구가 살던 한 마을은 통째로 사라졌고 이리역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집들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반경 1km 이내 집들도 반파되었고 4km 이내 집들은 창문이 다 깨졌습니다. 어찌나 큰 폭발이었던지 30km 밖 전주에서까지 폭발음이 들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다이너마이트나 전기뇌관 40톤을 실은 화물열차가 화재로 폭발한 거였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이리역 폭발사고’입니다. 이 사고로 59명이 사망하고 185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경상자까지 합한 인명 피해는 1,402명에 달합니다.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하여 ‘익산시’로 바뀌어 ‘이리역’은 ‘익산역’이 되었습니다. ‘이리역’이란 이름은 사라졌으나 이리역 폭발사고의 큰 충격과 후유증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이 무시무시한 폭발 직접 원인은 양초 한 자루에서 시작했습니다. 호송원이 촛불을 켜놓고 술에 취해 잠든 사이 이 촛불이 화약상자에 옮겨 붙은 것입니다. 그 호송원은 겨우 살아남았지만 그 과실 책임으로 10년의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사실 사고 원인을 보면 그 호송원만의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화약화물의 경우 규정상 중간에 정차하지 않고 직송하게 되어 있었으나 관리자들의 안전 불감증과 무사안일로 그런 끔찍한 참변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열차가 하도 오래 출발하지 않자 호송원은 화가 나 술을 마셨고 촛불을 켜 놓은 채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최근의 세월호 침몰이나 메르스 사태도 알고 보면 ‘별 일 없겠지’라는 안전 불감증이 그 피해 규모를 눈덩이처럼 키웠습니다. 조금만 더 빨리 대처했더라면 하면 아쉬움이 큽니다.

다윗 왕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실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소년시절에 사사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아 차기 왕으로 지명 받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왕위에 오른 건 십 수 년이 지난 서른 살 때였습니다. 왕이 되었다고 곧바로 온 이스라엘을 통치한 것도 아닙니다. 헤브론에서 2년간 유다의 왕으로 통치하다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왕이 죽은 뒤에야 비로소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가로챌까봐 그를 끊임없이 죽이려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계속 피해 다니다 막다른 궁지에 몰리자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는 블레셋 가드로 망명합니다. 거기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입에 거품을 물며 미친 체한 적도 있습니다. 요컨대 왕위에 오르기 전 다윗은 소년 시절에는 목동생활을 하며 맹수들과 맞섰습니다. 장군으로 전쟁터를 누비며 목숨 걸고 싸워야 했으며, 수년 간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다녔습니다. 한동안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의 장군으로 활동하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온갖 고생을 다하다 마침내 왕위에 올랐고, 더 이상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한 어떤 위기도 겪지 않았느냐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최대 위기를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사울 왕 같은 자신의 원수나 외부의 적들과 맞서 싸우다 겪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그를 죽이려 한 사건이야말로 다윗 일생일대의 가장 큰 위기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 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진 까닭은 비단 압살롬이 악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윗의 우유부단한 일처리가 그 반란의 불씨를 키운 측면도 상당합니다.


잘못된 화해

다윗과 압살롬의 갈등은 큰 아들 암논의 범행에서 비롯합니다. 다윗은 여덟 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들 말고도 후궁이 많았지만 성서는 이 여덟 명 부인이 낳은 19명의 아들만 다윗의 자식으로 기록합니다. 그 가운데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이 낳은 암논이 큰 아들이고, 둘째는 아비가일이 낳은 아들 길르압이며, 셋째는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가 낳은 압살롬입니다. 다윗은 사울보다 훨씬 강력한 왕권을 갖춘 왕이었습니다. 그의 후계자 반열에 오른 왕자들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유력한 후보자였던 큰 아들 암논이 자살골을 넣고 말았습니다. 이복 여동생이자 압살롬의 친동생인 다말에게 홀딱 반해 상사병이 날 지경에 이르더니 급기야 다말을 완력을 써 겁탈하고는 집에서 내쫓아버렸습니다. 이스라엘 족장시대까지만 해도 이복 여동생과의 결혼이 큰 흠결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알고 보면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는 다른 이복 오누이 사이였습니다(창 20:12). 하지만 출애굽 사건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비록 이복 오누이 관계라도 결혼은 금기시 되었습니다. 암논은 다말을 성폭행하여 이 금기를 어겼을 뿐 아니라 그 책임을 회피하고자 다말을 자신의 집에서 내쫓음으로써 평생 시집도 못 가게 해놨습니다. “다말은 자신의 오빠 암살롬 집에서 처량하게 지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삼하 13:20). 다윗은 이 사실을 알고 분개하였으나 후계자가 될 큰 아들이 저지른 일이라 그런지 묵인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압살롬은 복수의 칼을 갈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2년 뒤, 그는 모든 왕자를 ‘양털 깎는 행사’에 초대해 잔치하던 중 부하들을 시켜 암논을 살해하였습니다. 이 자리에 압살롬이 극구 다윗 왕까지 모시려한 사실을 볼 때 어쩌면 그는 부친 다윗까지 죽이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암논을 죽인 뒤 압살롬은 어머니 고향 그술로 도망쳐 거기서 3년을 살았습니다. 암논이 죽었으니 그 다음 유력 후계자는 둘째 아들 길르압이지만 웬일인지 그는 왕위 계승 후보로 일절 거론되지 않습니다. 무슨 지병이나 장애가 있어 왕위에 오르기 적합하지 않았거나 사고로 일찍 사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다윗의 여러 아들 중 왕위를 이을 우선권은 누가 봐도 압살롬에게 있었습니다. 다윗 왕도 압살롬을 애타게 그리워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압살롬에게 선뜻 돌아오라고 하지를 못했습니다. 압살롬이 저지른 형제 살인과 왕이라는 다윗 자신의 체통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군대장관 요압은 다윗을 오랫동안 가까이 서 모신 충신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지혜로운 한 여인을 내세워 다윗을 설득해 압살롬을 돌아오게 했습니다. 요압이 압살롬의 귀국을 추진한 까닭은 다윗 왕에 대한 충성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다윗 이후의 미래 권력을 위한 포석으로 남들보다 선수 쳐 공을 세우려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돌아온 지 이태가 지나도록 그를 불러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요압을 만나 부왕에게 말을 전하게 하려고 두 차례나 하인을 보내 그를 오라고 불렀으나 요압은 외면합니다. 당연히 다윗 왕의 눈치를 보느라 그랬을 겁니다. 마침내 압살롬의 분노는 폭발하고 맙니다. 그는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제야 요압이 나타나 항의하자 “이럴 거면 뭐 하러 나를 그술 땅에서 불러왔느냐”며 왕을 뵙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제야 다윗과 압살롬의 만남이 이루어져 화해의 입맞춤도 하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이때부터 압살롬은 사병을 양성해 거느리고 다녔고 아침마다 예루살렘 성문 앞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과 상담하며 조용히 반란을 준비합니다.


패배한 승리

당시의 왕은 최고의 권위를 지닌 재판관으로서 여러 송사를 재판하였습니다. 지방의 장로나 재판관들이 먼저 재판하였지만 그것에 불복하는 사람은 예루살렘까지 찾아가 왕의 판결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이 열두 지파 수많은 백성의 억울한 사연을 상세히 듣고 재판하기란 애초 불가능한 일었습니다. 압살롬은 이 틈새를 노려 무려 4년간이나 성문 앞에서 민원상담을 했습니다. 그는 민원인이 찾아와 절을 하면 잡아 일으켜 입을 맞추고는 그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었습니다. 백성이 왕자에게 절하는 행위는 ‘복종’의 표시였으나 입맞춤을 한다는 건 같은 신분의 ‘친구’나 ‘형제’로 대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 백성들로선 당연히 압살롬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고 돌아가 그에 대해 칭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압살롬이 다윗 왕과 달리 백성을 존중할 줄 알고, 출애굽의 평등정신을 잘 지키며, 억울함을 풀어주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을 것입니다. 그가 헤브론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스라엘의 마음이 모두 압살롬에게 기울어질” 정도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다윗은 북쪽 열 지파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게 아니었습니다. 북쪽 열 지파는 뚜렷한 대안이 없어 그를 왕으로 인정하면서도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막상 왕이 되자 강제노역과 과중한 세금, 주변 나라와의 잦은 전쟁 따위로 백성들을 너무 힘들게 하였습니다. 대다수 백성에게 압살롬은 다윗에 비해 월등히 인물로 보였습니다. 압살롬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다윗은 가련하게도 소수의 용병과 신하들만 이끌고 서둘러 도망쳐야 했습니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무혈 입성하였고 그의 반란은 크게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윗이 가장 신임하던 책략가 아히도벨마저 압살롬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압살롬은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당장 다윗 왕을 추격해 그를 죽여야 한다”는 아히도벨의 제안을 듣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용병을 끌어 모아 반격할 시간적 여유를 주고 말았습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제안을 거절한 이면에는 “차마 아버지를 죽일 순 없다”는 혈육의 정도 크게 한몫했을 것입니다. 끝내 양측 군대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졌고 압살롬은 요압 장군의 투창에 전사하고 맙니다. 압살롬의 죽음으로 그의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군대는 승리를 했으면서도 기쁨 대신 죄인처럼 슬픈 얼굴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다윗 왕이 압살롬의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에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고 처절히 울부짖었습니다(삼하 18:33). 그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겨우 진압하였으나 그 쓰라린 상처는 너무도 깊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을 뿐 아니라, 왕으로서의 권위마저 크게 흔들렸습니다. 당장 그의 출신지인 유다지파마저 다윗을 다시 왕으로 세울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유다 지파가 그 지경이니 나머지 지파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압살롬의 반란 이후 얼마 안가 다윗은 열 지파가 중심이 된 세바의 반란을 겪습니다. 이는 그만큼 다윗의 왕권이 약해졌음을 드러냅니다. 다윗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야 자신의 실책에 대해 크게 두고두고 후회하였을 것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암논을 엄중히 처벌하였다면, 압살롬을 일찍 만나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면, 민심을 얻고자 더욱 신경 썼더라면, 이런 후회와 아쉬움이 남았겠지요.


불씨 다스리기

요압 장군이 다윗을 설득하고자 동원한 지혜로운 여인은 자신의 자식을 ‘남은 불씨’에 비유합니다(삼하 14:7). 그런데 같은 장에서 압살롬이 요압의 보리밭을 불 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다윗 왕이 그의 ‘남은 불씨’였던 아들 압살롬을 외면하고 방치함으로써 머지않아 무서운 재앙의 화마가 덮칠 것임을 상징하는 은유가 아닐까 합니다. “불씨 하나가 숯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고 죄인은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려고 숨어 기다린다”(집 11:32)고 했습니다. 그 불씨를 일찍 알아차려 재앙을 막는 사람은 집안을 살리고 그 주변도 평화롭게 할 것입니다. 다윗의 가장 큰 패착은 본인은 신앙 좋은 왕으로서 하나님 자비의 날개 그늘 아래 있다고 여기면서도 자녀들에 대해 너무 냉정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그에게 무서운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각자의 불씨는 무엇인지 돌아보십시다. 그 불씨를 잘 다스려 가정과 교회, 모두의 구원을 함께 이루는 아름다운 솔샘 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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