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바위솔
2015/11/30(월)
비밀의 관리인  

사람은 이와 같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 관리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신실성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서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나는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내가 의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아무것도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어둠 속에 감추인 것들을 환히 나타내시며, 마음 속의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고전 4:1-5>



사악한 감시자

 최근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큰 충격과 파장을 낳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IT업체인 ‘해킹팀(Hacking Team)’과 고객들이 주고받은 메일, 프로그램, 음성파일 등을 담은 400GB 분량의 방대한 자료가 누군가의 해킹으로 인터넷에 공개된 사건입니다. 이 업체의 주요 고객 가운데는 한국의 국정원이 들어 있습니다. 국정원은 이탈리아 ‘해킹팀’에게서 RCS(원격제어시스템)이란 해킹 프로그램을 불과 얼마 전까지 수년째 구입하였습니다. 그것으로 무차별 도감청과 해킹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가령 스마트폰을 가진 시민들에게 인기 높은 ‘애니팡’ 같은 게임에 몰래 악성 코드를 심어 그 안의 정보를 죄다 훔쳐 가는 식입니다. RCS 방식의 해킹은 심지어 휴대폰을 꺼놓고 있어도 원격 제어로 그 안에 있는 사진을 맘대로 삭제하거나 사진을 찍어 그 파일을 가져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배터리를 휴대폰에서 분리하지 않는 이상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니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 아닙니까? 국정원은 그들이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은 고작 ‘20명 분량’이고 그마저 ‘남파간첩’을 잡기 위한 용도라 “일반 시민을 상대로는 해킹을 한 적이 없다”고 발뺌합니다. 이는 거짓임이 금세 들통 났습니다. 국정원이 구입한 RCS 해킹 프로그램은 50건에 달하고, 그중 한 회선만으로도 타겟을 바꿔가며 수많은 사람의 휴대폰이나 컴퓨터 따위를 해킹할 수 있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간첩조작,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 등 여태 무엇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된 게 없습니다. 여기에 국정원의 무차별 해킹 시도까지 더해졌으니 갈수록 태산입니다. 위키리크스(WikiLeaks:세계 각국의 비밀 정보들을 수집해 폭로하는 사이트로 잘 알려진 비영리 기관)는 이번에 공개된 해킹팀의 자료 중에서 이메일만 따로 추출해 검색 가능하게 한 군데에 모아놓았습니다. 덕분에 일반인도 누구든 키워드나 관련 이메일로 검색이 가능합니다. 저도 몇 가지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는데 몇몇 중요해 보이는 메일이 있었습니다. 가령 국정원의 대표 메일 아이디가 ‘데빌엔젤’(devilangel)인데 그 단어와 ‘2012’를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무려 231건의 메일이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는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국정원이 해킹팀에 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들도 있습니다. 해킹팀 대표는 자신들이 개발한 해킹 프로그램을 “지구상에서 가장 사악한 기술”이라고 공공연히 선전합니다. 그들은 독재와 인권 탄압으로 악명 높은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이나 군대, 경찰 등을 상대로 해킹 프로그램을 판매해왔습니다. 그 ‘사악한 해킹 기술’이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인권탄압에 악용된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돈벌이에 눈이 먼 나머지 마치 탄저균을 개발해 퍼뜨리듯 여러 나라에 사악한 프로그램을 고가에 판매하는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처럼 “칼을 쓰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는 법”(마 26:52)입니다. 이번에 ‘해킹팀’이 오히려 누군가에게 해킹 당함으로써 이 진리를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독재 권력의 감시견 노릇을 하느라 적국이 아닌 자국민을 상대로 끊임없이 감시와 통제를 하는 국정원, 그들이라고 결코 예외는 아닙니다. 그들의 끔찍한 악행이 드러날수록 국정원은 국민에게 철저히 외면 받아 끝내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어리석은 지혜

오늘 본문 말씀에 앞서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리석은 것”이라 단언합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뒷받침하고자 “하나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제 꾀에 속게 하시고, 교활한 자들의 꾀를 금방 실패로 돌아가게 하신다.”(욥 5:13)는 욥기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사실 이 명언은 욥의 세 친구 가운데 가장 연장자로 알려진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욥을 책망하며 들려준 말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몰라서 이 성구를 인용한 게 아닙니다. 오늘날도 흔히 그러지만 신약시대 유대인들은 성경을 본문의 맥락과 상관없이 인용해 사용하는 일이 예사였습니다. 욥기 결말부에서 하나님께서 욥의 세 친구가 ‘올바로 말하지 않았다’(욥 42:7)고 판정하셨다는 이유로 그들 주장을 다 배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만 남겨 놓고 다 뺀다면 그건 더 이상 성경이 아닙니다. 욥기는 지혜문서이기에 곳곳에 훌륭한 지혜의 경구가 새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제 꾀에 속게 하신다”는 엘리바스의 격언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이 말 자체는 옳은데 욥기의 맥락에서 보면 역설입니다. 욥에게 해야 할 말이 아니라, 엘리바스 자신에게 해당하는 말이니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에 눈이 가려져 욥의 항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이 틀렸음을 모르고 욥이 하나님께 큰 죄를 저질러 고난을 받는 줄 알고 그를 함부로 책망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이 세상의 지혜’에 눈 먼 사람들이 다 그러합니다. 스스로 똑똑한 줄 아는 자들, 곧 지혜 있다는 자들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어리석은 짓을 행하였습니다(고전 2:8). 총독 빌라도나 대제사장 안나스, 가야바 같은 사람을 그 좋은 사례입니다. 그들은 권력과 학식을 갖춘 엘리트 계층에 속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면서도 그게 최선이고 현명한 처사라고 자부하였습니다. 가령 대제사장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민족 전체가 망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에게 유익하다”(요 11:50)며 예수님에 대한 십자가 처형을 밀어 붙였습니다. 예수를 그대로 뒀다가는 로마제국이 쳐들어와 그들의 땅과 민족을 약탈할 위험이 있으니 예수를 처형하는 게 옳다는 논리입니다. 유대 집권자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님의 신성을 수호하려면 마땅히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 중에는 실제로 그렇게 확신한 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믿진 않았으나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라 생각한 자들도 있었으리라 봅니다. 어떤 입장이었든 간에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하는데 그들 모두 한통속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세상 지혜의 큰 어리석음으로 봅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감춰진 비밀을 깨달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 세상은 이미 심판받았다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알 수 있듯,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헛것’으로 만드시기에 그 지혜로는 주님의 생각(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멸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신실한 관리인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어느덧 교만하여 서로 잘났다며 분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파,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등 네 개의 파벌로 나뉘어 서로의 분파가 더 우월하다며 다투었습니다. 바울파에 속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 이 교회를 개척하여 그들을 양육한 장본인임을 내세웠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바울에게 세례 받은 사실을 강조하며 그것을 권위로 내세웠던 모양입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나는 여러분 중에 그리스와 가이오 밖에는 아무에게도 세례 준 일이 없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고전 1:14)라고 밝힙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웅변가이자 전도자입니다. 수사학으로 잘 단련된 아볼로의 설교에 매료된 신자들 중에는 아볼로파를 자처하며 바울을 노골적으로 폄훼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볼로에 비하면 바울의 설교는 유치한 수준이라며 함부로 평가하는 부류들이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변호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고전 2:1-2) 나머지 게바파는 베드로야말로 예수의 수제자임을 내세워 그를 추종하였을 것이고, 그리스도파는 실체가 없거나 신비주의 경향의 한 분파로 추정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파당분쟁을 ‘세상의 지혜’를 따르다가 생겨난 결과라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마저 세속의 권력과 지혜 따위를 놓고 누가 크냐는 문제로 다투는 일은 옳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지혜를 뒤집고자 ‘십자가의 지혜’를 내세워 강조합니다. “십자가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라며 십자가의 예수를 전하는 일이 전도자 본연의 사명을 환기시킵니다. 바울이 생각할 때 아볼로나 그는 물과 거름을 주어 성도를 양육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고전 3:9)입니다. 그런데 사도인 그들을 주님께서는 “마치 사형수처럼 세상의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 내놓으셨고” “세계와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로 만드셨다(고전 4:9)고 합니다. 이는 그 당시 볼 수 있었던 원형 경기장의 검투사를 연상시키는 말씀입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십자가의 예수를 전하고자 애쓰는데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을 마치 구경거리나 되듯 감시, 대조하며 함부로 평가한다는 사실을 지적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사람은 이와 같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으로 보아야 한다”고. 그가 여기서 말한 하나님의 비밀이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즉 사람들 눈에 어리석은 실패로 보이는 그 분의 죽음이 온 세상을 살리는 하나님의 큰 은총이자 구원의 선물임을 깨우쳐 줍니다. 사실 사도 바울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이자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관리인 곧 청지기는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처리하는 일꾼입니다. 감시와 평가는 우리를 청지기로 쓰시는 주님이 하십니다. 우리의 얕은 ‘세속의 지혜’로는 주님의 크신 지혜와 선물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의 지혜’를 마음 깊이 잘 간직하십시오. 그리고 그 지혜를 부지런히 행하고 전하는 복음의 신실한 일꾼들이 다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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