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11/30(월)
돌아온 영혼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니, 헤롯왕이 그 소문을 들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세례자 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 그 때문에 그가 이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하고, 또 더러는 말하기를 “그는 엘리야다” 하고, 또 더러는 “옛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그런데 헤롯이 이런 소문을 듣고서 말하기를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살아났구나” 하였다. <막 6:14-16>


스승의 환생?

티벳불교에는 ‘린포체’와 ‘뚤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린포체’는 ‘보배’를, 뚤꾸는 ‘환생한 라마(스승)’을 각각 뜻합니다. 기독교에서는 다소 낯설지만 힌두교와 불교는 환생신앙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전생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짐승이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입니다. 이런 환생신앙에 의하면 축생, 곧 짐승으로 태어나는 자들은 전생에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전생에 ‘탐욕을 많이 부린 자’는 돼지로,  ‘남을 많이 속인 자’는 여우로, ‘피에 굶주린 자’는 호랑이로 태어난다는 식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으로 태어난 경우는 전생에 그런대로 괜찮게 산 결과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티벳불교는 사람이라고 다 똑같이 보지 않습니다. 사람 중에서도 ‘린포체’와 ‘뚤꾸’로 태어난 사람은 일반인과는 근본 차원이 다르다고 봅니다. 일반인은 전생에 자신이 행한 소행에 따라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린포체와 뚤구는 자진해서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른바 ‘원력수생’ 願力受生)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승려로서 수행을 잘 하여 붓다의 경지에 올랐지만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고자 자원하여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가령 현재 티벳불교 신자들은 그들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텐진 갸초)를 자비의 보살인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깁니다. 달라이 라마 자신은 스스로 생불이라고 주장하진 않지만 티벳인들은 그를 절대 지존으로 숭배합니다. 1983년 달라이 라마의 첫 번째 스승이 81세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그 뒤 1년 8개월 만에 달라이 라마는 참선 중 그의 스승이 환생하였음을 깨닫고 그를 찾아보라합니다. 측근들은 그해 태어난 티벳인 유아 6백여 90명에게 1백 8가지 시험을 치러 ‘텐진 초광’이란 아이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를 환생한 달라이 라마 스승으로 공식 선포하고 ‘링 린포체’란 칭호를 부여하였습니다. 링 린포체는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한 적 있습니다. 동화작가 이현주 목사가 2002년 그를 만나 인터뷰한 기사를 보니 ‘린포체’라고 그 또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불경 말고 일반 책은 어떤 책을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경전만 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라 다른 책은 전혀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20년 과정으로 혹독한 경전 공부를 한답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재미있었던 일이 있었냐?”고 물으니, “용인 애버랜드에서 놀이기구를 처음 타봤는데 정말 재미있었다.”고 답하더군요. 당시 나이 17세라 청소년으로서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이 인터뷰를 보면서 ‘린포체’나 ‘뚤꾸’로 알려진 사람은 평생 안정된 생활과 추앙을 받겠지만 평범한 아이들이 응당 거쳐야할 과정을 경험하지 못해 불행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진정 그들 스스로 전생에 그런 삶을 살기 원했다면 괜찮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무척 고역일 것입니다.


두려운 소문

사실 성서에서도 민간에 널리 퍼져 있던 ‘환생’ 신앙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대표적인 한 사례입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이 붙잡혀 투옥된 뒤 갈릴리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체포하여 옥에 가둔 자는 갈릴리와 베레아의 영주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는 헤롯대왕이 그의 후궁인 사마리아 출신 여자 말다케와의 사이에서 낳은 다섯째 아들로 주전 20년에 태어났습니다. 헤롯대왕은 극악무도한 살육을 일삼은 폭군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데 있어 가족이든 일반 백성이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로마제국을 등에 업고 절대군주로 군림하면서도 혹시 자신이 권좌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늘 시달렸나 봅니다. 헤롯대왕의 병적인 의심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마리암네와 세 아들마저 살해할 정도 중증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헤롯의 아들이 되느니 차라리 돼지가 되는게 낫겠다.”고 빈정거렸습니다. 이 와중에도 안티파스는 요행히 살아남았습니다. 후궁의 아들이자 다섯째였으나 영토의 삼분의 일을 분배받아 무려 35년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생애 내내 갈릴리와 베레아를 다스린 영주입니다. 유대를 통치한 헤롯 아켈라오가 일찍 폐위된 사실로 미루어 안티파스는 아주 노련히 통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큰 두려움과 위협을 안긴 두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나사렛 예수가 바로 그들입니다.  

요한은 헤롯 안티파스가 그의 본처를 버리고 이복형제 헤로디아와 결혼한 사실을 큰 죄악으로 여겼습니다. 안티파스의 본처는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4세의 딸입니다. 안티파스가 나바테아 왕의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 이유는 국방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나바테아 왕국은 그의 영토와 마주하고 있었기에 언제든 전쟁 발발의 위험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정략결혼으로 그런 위험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기 원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본처인 나바테아의 공주와 이혼하고 이복형제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하자 상황이 급변하였습니다. 나바테아의 아레타스 왕은 자신의 딸을 소박 놓은 안티파스에 대해 대노하여 보복전을 벌였고 헤롯은 이 전쟁에서 패합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터지기 직전 세례자 요한은 나바태아와 베레아의 국경에서 헤롯과 헤로디아의 결혼을 규탄하는 집회를 계속하였습니다. “왕이야 누구와 결혼 하든 말든 왜 참견할까?” 이런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워낙 프라이버시를 강조하는 시대라 요한의 규탄이 사생활 침해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예언자입니다. 참 예언자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목숨처럼 여깁니다. 요한은 헤롯이 율법을 어기고 버젓이 근친혼을 하는 꼴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어 규탄에 나섰습니다. 당시 세례자 요한은 선풍적인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누리던 예언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국경에서 불온한 발언을 연일 쏟아내니 요한의 입을 틀어막는 게 급선무라 여겼는지 그를 전격 체포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독재자들의 수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못하게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예언자들을 잡아 옥에 가두기에 급급합니다. 그러면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진실을 가리면 가릴수록 그 폭발력은 더 커지는 법입니다. 헤롯은 세례자 요한을 마케루스 감옥에 가두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안 되었던지 어느 날 요한을 목 베어 죽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누구입니까? 그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모세가 오리라던 그 예언자, 예언자 엘리야의 환생 등으로 알려졌습니다. 예수님마저도 세례자 요한을 ‘오리라’고 예언된 그 ‘엘리야’라 보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을 염두에 두고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런데, 그를 두고 기록한 대로,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막 9:13)는 말씀을 하십니다. 안티파스는 요한의 참수로 감히 더 이상 그의 비판자가 없으리라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동안 요한을 따르던 백성들도 구심이 없어 뿔뿔이 다 흩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딴판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큰 권능과 이적을 행하며 갈릴리 전역에서 활동한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그 소문 내용인즉 “세례자 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 그 때문에 그가 이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라는 거였습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은 한 번도 이적을 행한 바 없습니다. 그는 정화를 위한 물세례를 베풀었고 예언자로서 활동하였지 기적술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안티파스는 그 소문을 듣고 몹시 당황합니다. 예수님을 엘리야의 환생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엘리야의 환생이고, 예수는 요한의 환생”이란 사람들의 통속적 주장이 널리 퍼졌고 급기야 헤롯 안티파스마저 그것을 믿었습니다. 이는 신약시대 유대인들도 환생 신앙에 익숙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영적인 계승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시며 둘씩 짝지어 갈릴리 전역에 파송하셨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들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이름이 갈릴리 모든 지역에 자연스레 퍼졌습니다. 그동안 안티파스는 예수님에게 전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누구인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죽은 세례자 요한의 환생”이란 소문이 떠돌자 안티파스는 몹시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을 목 베어 죽인다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요한은 죽었을지 모르나 그의 분신들이 예수를 비롯해 여럿으로 대거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네 복음서는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을 훨씬 능가하는 분임을 애써 강조합니다. 청출어람이란 말처럼 실제로 그러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이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의 환생”으로 여겼다는 사실은 예수님과 요한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고리입니다. 그들 눈에 비친 예수는 세례자 요한과 유사한 면이 많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예수님과 요한을 연결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요한의 환생이었는지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서는 ‘환생’ 신앙을 이방종교에 영향 받은 통속적 신앙의 산물로 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를,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의 이미지를 상당히 닮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의도하였건 백성들의 착각이든 간에 세례자 요한과 예수는 사람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엘리야와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이는 ‘영적 계승’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언자 엘리사가 그의 스승 엘리야와 유사하듯 엘리야와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가슴과 정신 속에 선구 모델에 대한 씨앗들이 있어 그것이 발아되어 나타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고을마다 다니며 전파함으로써 헤롯 안티파스를 간담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요한을 참수하고 나자 돌연 그의 분신 여럿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우린 이 시대 권력자들에게 과연 어떤 존재입니까? 예수처럼 진리를 외치고 살아냄으로써 이 시대의 ‘뜨거운 감자’ 같은 취급을 받습니까? 예수의 영혼과 정신을 자신 안에 가득 채워 그를 닮은 자로 존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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