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07/05
그 이름을 위하여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하려고 하는 까닭은 너희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져서, 가는 곳마다 더럽혀 놓은 내 거룩한 이름을 회복시키려고 해서다.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면서 내 이름을 더럽혀 놓았으므로, 거기에서 더럽혀진 내 큰 이름을 내가 다시 거룩하게 하겠다. 이방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내가 내 거룩함을 밝히 드러내면 그때에야 비로소 그들도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너희를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 데리고 나아오며, 그 여러 나라에서 너희를 모아다가, 너희의 나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맑은 물을 뿌려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 너희의 온갖 더러움과 너희가 우상들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며,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 그때에는 내가 너희 조상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살아서,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에스겔 36:22-28>



좋은 이름 남기라

 요즘 제 주변에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재판받거나 구치소에 갇힌 분들이 계십니다. 한 분은 교계 인터넷 신문 편집인인데 어느 대형교회 재정담당 장로의 자살사건 의혹을 보도했다가 교회 측에 의해 고소당했습니다. 또 다른 두 분은 18대 대선무효소송 대표 원고로서『대선부정선거백서』를 책으로 펴냈다가 선관위 직원들과 법무부장관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1년 간 옥살이를 하고도 여전히 재판 중입니다. 최근에는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서 활동하던 한 지인이 현 정권 비선 실세로 알려진 J모씨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구속당해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방송의 시사 풍자개그까지도 규제하는 상황에서 보듯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심히 위축된 상황입니다. 민주사회라면 권력자나 권력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과 감시, 견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양심과 사상, 표현의 자유도 마땅히 보장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사건건 트집 잡아 ‘명예훼손’이라며 고소 ․ 고발을 남발하고 그것을 빌미로 벌금형도 아닌 실형을 살게 한다면 과거 유신독재 시절과 다를 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선진국일수록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을 없애는 추세입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유난히 명예훼손에 대한 가혹한 규제와 처벌을 합니다. 그만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나라여서일까요? 아마 꼭 그렇진 않을 것입니다. 권력자들이 비판의 봉쇄를 위해 관련 법령을 더 강화하고 검찰과 경찰, 사법 당국이 거기에 코드를 맞추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물론 사람에게 명예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떤 명예를 얻고 지켜야 하는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성경도 명예를 재물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가령 잠언은 “많은 재산보다는 명예를 택하는 것이 낫고 은이나 금보다는 은총을 택하는 것이 낫다”(잠 22:1)고 합니다. 또한 전도서의 코헬렛은 “명예가 값비싼 향유보다 더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더 중요하다.”(전 7:1)고 말합니다. 구약 외경 집회서는 “네 이름에 주의를 기울여라. 이름이 황금덩이 천 개보다 오래 남는다. 행복한 삶은 그 날수가 정해져 있지만 좋은 이름은 영원히 남으리라.”(집 41:12-13)고 교훈합니다. 이처럼 성경은 “황금보다 귀한 명예로운 삶을 살라”하고 죽을 때 세상에 “좋은 이름을 남기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는 인간의 욕망은 매우 뿌리 깊습니다. 오동도만 가보아도 아름드리 동백나무에 괴발개발 이름을 새겨 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한의 절대군주였던 김일성, 김정일 부자만 해도 명산대처의 기암괴석 같은데다 자신들의 이름을 큼지막이 새겨놓았습니다. 그들은 자랑스러웠는지 모르나 그 이름들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흉물스레 훼손된 경우입니다. 반면 나라에 큰 공을 세우거나 본이 될 만한 인물들의 이름을 기리고자 정부나 지자체가 거리에 그 이름이나 호를 붙인 사례들도 있습니다. 가령 서울에는 세종로, 을지로, 도산로 등이 있습니다. 세종대왕, 을지문덕, 도산 안창호를 기리는 이름들입니다. 창신동 평화시장에는 전태일 거리도 있습니다. 여수에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충무로가 있습니다. 광주시 남구에는 오방로가 있는데 이는 오방 최흥종 목사를 기리는 도로입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이자 나환자의 친구였습니다. 목회자의 호를 딴 도로는 ‘오방로’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선한 업적들로 좋은 이름을 남긴 사람이라면 본인은 물론, 자자손손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이 칭송할만한 선한 삶으로 ‘좋은 이름’을 남기는 데 있어서는 주저 말고 더 열심히 추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예회복

 사람에게만 ‘명예’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도 그 거룩한 이름의 보존에 깊이 관심 기울이신다는 사실을 일러줍니다. 십계명과 주기도문만 보아도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 가운데 세 번째 계명에서 “너희는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출 20:7)고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마 6:9)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사람들에 의해 더럽혀지거나 함부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신(神)이신데 속 좁은 인간처럼 왜 그깟 이름에 집착하실까?”라고 생각할 분이 혹시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인간이 그저 문자로 표기하거나 말로 언급한 ‘이름’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주님의 인격과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으로 다른 신들과 구별되고 찬양과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르는 자들은 당연히 그분을 경외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아야 비로소 그분을 찬양하고 섬기며 영광을 돌립니다. 가령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난 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셋이란 아들을 주셨습니다. 셋이 자라나 에노스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기 시작하였다”(창 4:26)고 나옵니다. 뒤집어 말하면 그 전까지 사람들이 하나님 이름을 몰랐고 예배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주님의 인격과 능력이 서려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과정에서 걸핏하면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고 불순종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시려다가도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애써 눌러 참으셨습니다. 이방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셨는데 단번에 멸하시면 주님의 명성에 금이 가기 때문이었습니다(겔 20:14). 그분은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내 백성이니 나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레 22:32)고 당부하십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언약에 충실한 선민다운 삶을 살라고 요구하십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언약을 파기한 채 우상숭배와 폭력, 살육으로 땅을 더럽히면 그 땅이 토해낼 것이라는 경고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주님의 경고를 망각하고 온갖 우상을 섬기고 무고한 자의 피를 흘려 주님이 주신 거룩한 땅을 더럽혔습니다. 주님의 경고는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멸망하여 온 백성이 뿔뿔이 흩어졌고, 남유다 왕국도 백 삼십여 년 뒤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수만 명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에스겔서는 예언자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기에 주님의 부름과 계시를 받아 기록한 책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맑은 물을 뿌려 정결하게 하고 다시금 한데 모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그 죄 값을 다 치렀고 회개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이유를 “너희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져서 가는 곳마다 더럽혀 놓은 내 거룩한 이름을 회복시키려고 해서다”(겔 36:22b)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이스라엘을 옛 유대 땅으로 귀환시켜 다시 재건하시겠다는 뜻을 밝히십니다. 주님이 그 명예를 얼마나 중시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았던지 시편 의 한 시인도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시 23:3)고 노래한 바 있습니다.


그 이름을 거룩히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본래 이 절기는 보리와 밀 추수를 다 끝내고 주님께 예물을 드리고 함께 잔치하는 감사의 절기입니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 예루살렘을 방문할 무렵이 바로 오순절 곧 맥추절(칠칠절)이었습니다. 그는 오순절에 맞춰 예루살렘 성전에 들러 예물도 드리고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금도 전달하고자 예루살렘에 간 것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맥추절은 한 해의 상반기 추수 감사를 위한 큰 절기로 지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 전쟁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그 땅에서 쫓겨난 이후 그 의미가 사뭇 달라졌습니다. 맥추절은 단지 보리와 밀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은 사실을 기념하는 절기로 변화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자 그들을 맑은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시고 각 사람 속에 주님의 새 영을 넣어두어 그들의 돌 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교는 이 예언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성취되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을 모신 우리는 ‘부드러운 마음’을 품고 주님의 백성답게 그 말씀에 충실히 살아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회복하시고자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영과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분명히 인식하였듯,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분이 보살피시는 자녀입니다. 주님 스스로 그 거룩한 이름을 회복하기 위한 행동을 하시듯, 주님의 자녀인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고 잘 받들어 영광스럽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 이름으로 거짓 맹세와 우상숭배에 빠져든다면 이는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만들고 이 땅에 화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주의 영에 힘입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면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을뿐더러 우리도 이 땅에 ‘좋은 이름’을 남기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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