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10/1(목)
이렇게 일러주어라  
나중에 당신들의 자녀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명하신 훈령과 규례와 법도가 무엇이냐고 당신들에게 묻거든, 당신들은 자녀에게 이렇게 일러주십시오. “옛적에 우리는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로 있었으나,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그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가 보는 데서, 놀라운 기적과 기이한 일로 이집트의 바로와 그의 온 집안을 치셨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시고, 우리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이 땅으로 우리를 데려오시고,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명하여 지키게 하시고, 주 우리의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셨다. 우리가 그렇게만 하면, 오늘처럼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가 잘 살게 하여 주실 것이다.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 그가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충실하게 지키면, 그것이 우리의 의로움이 될 것이다.” <신 6:20~25>



어린이 해방

 캐나다에 크레이그 킬버그란 열두 살 먹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신문에서 읽을 만한 만화를 찾다가 파키스탄 소년 이크발 마시흐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크발 마시흐도 열두 살의 소년인데 4살 때 카펫공장에 팔려가 거기서 목숨 걸고 탈출한 10살 때까지 하루 14시간씩 노예노동에 시달렸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크발 마시흐는 부모가 진 1만 4천 원 정도의 빚 때문에 카펫공장에 팔려가 하루 종일 일하고 25원씩 갚는 착취를 당했습니다. 그는 공장에서 탈출해 세계 각처를 돌며 자신처럼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을 구출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1994년 리복 국제인권재단에서 ‘행동하는 청년상’을 수상하였으나 이듬해 괴한에 의해 살해당하였습니다. 크레이그 킬버그는 이크발 마시흐 같은 어린이들이 세계 각처에 무려 2억 5천 만 여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는 당장 장난감 같은 것을 팔고 용돈을 모아 파키스탄에 갈 여비를 마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부모님도 그가 방학동안 파키스탄을 방문할 수 있도록 여비를 보탰습니다. 마침내 킬버그는 파키스탄에 가서 노예노동에 시달리던 한 소년과 소녀를 인터뷰하였고 그것을 캠코더로 찍어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가 캐나다에 돌아가 언론에 알린 이 내용은 상당한 파장을 낳았습니다. 반 친구 11명도 그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이리하여 킬버그는 <어린이에게 자유를 Free The Children>이란 단체가 만들어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을 구출하는 일을 본격화하였습니다. 이 단체는 현재 어린이들이 운영하는 세계 최대의 단체이며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백만 명에 달하는 어린이들을 도왔다고 합니다. 한 어린이의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킨 놀라운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크레이그 킬버그는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이 단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크발 마시흐나 크레이그 킬버그 같은 어린이가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친구들을 구출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할 때 어른들은 과연 무엇을 하였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작년(2014)에 발표된 글로벌 노예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의 약 3천 600만 명의 어린이가 여전히 현대판 노예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동노동까지 포함하면 2억 명 넘는 어린이들이 고통스런 노역에 시달리는 상황입니다. 가령 서아프리카 버냉 같은 나라에서는 어린이가 불과 2~3만 원에 나이지리아나 가봉 같은 나라로 노예로 팔려나간다고 합니다. 노예노동이 가장 심한 나라는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우즈벡 등 5개국이며 이들 나라는 전세계 어린이 노예노동의 61%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에도 현대판 노예가 무려 9만 여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작년 신안의 장애인 염전 노예 실태가 세상에 알려져 큰 충격을 던져준 바 있습니다. 이런 염전노예가 가능하였던 것은 염전 업주와 경찰의 유착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제인권단체 워크프리(walk free)가 작년에 폭로한 바에 의하면 대우인터내셔널(연간 매출액 17조)은 우즈벡에서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목화밭에 강제 동원해 일을 시켜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나 방글라데시 같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나가 있는 한국의 많은 업체가 어린이 노예노동으로 돈벌이에 여념 없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과연 우리가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돌아보고 참회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마 18:5)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사회적으로 가장 연약하고 소외받던 어린이들을 자신을 영접하듯 대우하라 명하십니다.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어린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이 세계는 결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인은, 어린이 해방과 구원을 위해 관심 갖고 기도하며 힘써야 합니다.


기억의 전승

어린이를 사회적 억압과 사슬에서 해방시키는 일은 반드시 무슨 거창한 인권단체를 만들어야만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돌보는 아이들에게 출애굽 정신을 가르치는 일도 그런 해방과 구원사역의 하나라 볼 수 있습니다. 이크발 마시흐나 크레이그 킬버그의 사례가 잘 보여주듯 어린이 한 명만이라도 출애굽 정신으로 철저히 무장된다면 그가 백 명, 천 명, 만 명, 더 나아가 수백 수천 만 명의 어린이까지도 구원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출애굽 사건을 흘러간 옛 이야기로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려는 시각 자체를 경계하고 비판합니다. 출애굽 사건은 오늘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전승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저자들이 누차 강조하는 바입니다. 기억하지 않는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게 마련입니다. 한국이 쓰린 역사를 자꾸 망각하기에 일본과 중국 등 주변 나라들이 동북공정이나 교과서 날조로 역사를 자꾸 왜곡, 미화하지 않습니까? 이러다간 다시 나를 빼앗기고 식민지 노예로 전락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현실은 기억과 망각의 교차점에 놓입니다. 반드시 기억해야할 일을 망각하면 그만큼 역사는 퇴보하고 맙니다. 가령 지난 2008년 한국자유총연맹이란 단체가 서울 남산 자유센터에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상”이란 3m 높이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4.19혁명 때 시민들이 끌어내린 이승만 동상이 다시 건립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약 반세기가 흐른 사이 사람들이 4.19 정신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12년에 걸친 이승만의 독재와 전대미문의 3.15 부정선거 따위를 다 잊어버렸기에 이런 일이 생겨났습니다. “미련한 자는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 한다”(잠 26:11)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행위를 늘 옳게 여기고 반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기억하라”라고 거듭 당부합니다. 가령 신명기 5장 15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기억하여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으므로,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한다.” 8장 2절에서는 “당신들이 광야를 지나온 사십 년 동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또한 24장 22절에서는 “당신들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때를 기억하십시오. 내가 당신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신명기에는 유사한 다른 구절들이 더 나옵니다. 그 공동된 핵심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을 주님이 이끌어 내셨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곧 출애굽 사건과 시내산 언약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신신당부가 바로 신명기의 주요 가르침입니다. 모세는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출애굽 사건 때 행하신 일들을 당신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명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바로의 노예로 이집트에서 살 때 주님께서 그들을 이끌어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셨음을 가르치라는 당부입니다. 이처럼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라고 거듭 주의를 주었건만 출애굽 세대가 다 죽고 나자 이스라엘은 그것을 망각하였습니다. 사사기는 이 사실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세대 사람들도 모두 죽어 조상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이 죽은 뒤에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삿 2:10) 이렇게 출애굽 전승의 기억이 단절되자, 사람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주변 나라들의 우상숭배에 빠져들었고 하나님의 매서운 회초리를 자초합니다. 부모가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반드시 자녀도 그러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가령 히스기야는 신앙의 모범이라 할만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므낫세는 아버지와는 딴판으로 부친이 헐어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바알의 제단을 쌓았으며 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열심히 섬겼습니다(왕하 21:3). 히스기야가 자식에게 신앙을 제대로 전수하지 않았기 에 이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의 신앙은 본받을 만하였으나 자녀교육에는 실패하였기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우리의 의는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이런 일들을 기억하여 두어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종이다. 내가 너를 지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사 44:21) 주님은 우리를 손바닥에 새겨 놓고 기억하신다고 했습니다(사 49:16). 우리는 그의 시선을 결코 피할 길이 없습니다. 시편의 시인이 노래하였듯 바다 속 깊은 곳에 들어가도, 우주 저 멀리 날아가도 주님은 늘 우리 곁에 머물러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릴 떠나신 적 없고 구원의 언약을 이루고자 하시는데 우리가 자꾸 그분을 잊고 떠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은혜를 베풀어 잘 먹여주시자 배불러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힘든 고난을 겪을 땐 하나님을 간절히 찾다가도 편안해지자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는 식으로 주님을 업신여깁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규례와 법도, 즉 우리가 주님의 모든 언약을 잘 지키고 그분을 경외하면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고 잘 살게 해주실 것”이라 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 그가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충실히 지키면, 그것이 우리의 의로움이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이루는 일은 그 모든 명령을 충실히 지키는 것임을 일깨워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전통 안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신앙선조들이 전달해준 언약의 말씀에 기초해 주님을 믿고 섬깁니다. 이 신앙전승은 각 시대마다 새롭게 재조명, 재발견되어 생생한 구원사건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낡은 옛 이야기로 전락해 누구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세가 거듭 당부하듯,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모든 언약의 말씀을 주님 앞에서 충실히 따르십시오. 출애굽과 같은 놀라운 구원사건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도 꼭 전승하여 그들이 제2의 출애굽 사건 주인공이 되게 하십시오. 이처럼 구원과 해방 사건에 솔선수범하여 열심히 참여함으로써 주님의 의를 함께 이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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