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8/18(화)
양보 없는 복음  
그 다음에 십사 년이 지나서,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내가 거기에 올라간 것은 계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유명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달리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달린 일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나와 함게 있는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지만,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몰래 들어온 거짓 신도들 때문에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끼어든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로부터 나는 아무런 제안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든지,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그 유명한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과 같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에게는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신 분이, 나에게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에게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바란 것은 가난한 사람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갈 2:1-10>


고집쟁이 신앙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그의 아내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그 땅에 심한 기근이 들자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거기서 큰 부자가 되어 다시금 점차 이동하여 베델과 아이 지역까지 돌아왔습니다. 그때쯤에는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 거느린 종들과 가축들이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가축을 치니 두 집안의 종들이 서로 다투는 일이 잦았습니다. 같이 살고 싶어도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둘이 떨어져 지내기로 합니다. 양가 목자들의 다툼을 막기 위해서는 별 수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게서 갈라져 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창 13:9) 자신이 삼촌이고 연장자이며 지금껏 보호자 노릇을 해왔으니 좋은 쪽을 먼저 택하겠다고 욕심을 냈을 법도 한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조카 롯에게 우선권을 주어 물과 초지가 넓게 펼쳐진 요단 들판에 살게 배려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양보심이 투철한 사람입니다. 그게 지나쳐서 자기 아내 사라까지 이집트 파라오에게 양보한 적도 있습니다(창 12:10-20). 어쩌다 실수한 게 아닙니다. 그는 그 뒤에도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자기 아내를 또 다시 넘겨주었습니다(창 20장).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 하니 그 미모를 보고 이집트 파라오나 그랄 왕 아비멜렉이 데려갔다가 하나님께 된통 혼쭐이 납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아리따운 그의 아내 때문에 혹시 자신이 죽을까봐 아내를 누이라 속여서 생긴 일인데 이집트와 그랄의 왕들만 하나님께 징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주님의 소명으로 떠돌이 생활하다 생긴 일이라 그런지 하나님은 아내를 궁지에 몰아넣은 아브라함의 잘못은 눈감아 주십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이방 왕에게 순순히 넘겨 줄만큼 비겁하고 못난 사람입니다. 아내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안에서 쫓아내라고 할 때도 아내 말대로 합니다. 하갈은 비록 사라의 몸종 출신이지만 엄연히 아브라함의 후처이고 이스마엘은 그의 큰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비정하게도 사라의 말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물도 없는 광야로 내보냈습니다. 사람 됨됨이로 보면 참 못된 사람입니다. 이처럼 양보 잘하고 비겁하고 비정한 아브라함이지만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있어서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명령이라면 그 무엇이든 순종하였습니다. 오랜 세월 이방세계를 떠돌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한결같은 신앙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이토록 철저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창 15:6).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을 신앙의 선조로 만든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자유를 위하여

흔히 ‘양보는 미덕’이라 말합니다. 특히 운전할 때 ‘되도록 양보하라’는 충고를 많이 합니다. 다른 차량이 새치기 하는 거 얄밉지만 자기가 먼저라고 고집피우며 우물쭈물 비켜주지 않다가 괜히 인명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충돌해봐야 둘 다 손해이므로 어지간하면 피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많은 사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가능한 한 관용하고 양보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평화를 이루는 일이고 건강에도 좋습니다. 하지만 매사에 양보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문을 열어 환기시킬 때도 필요하지만 닫아야할 땐 닫아야하듯 결코 양보하지 말아야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복음의 진리가 여러분에게 머물도록 하려고,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양보(굴복)하지 않았다.”(갈 2:5)고 말합니다. 그는 빌립보서에서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빌 4:5)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실제로 그 자신도 “그리스도의 온유하심과 관대하심을 힘입어”(고후 10:1) 문제투성이 고린도교회를 설득하고 타이릅니다. 바울은 어지간해서는 그리 화를 잘 내는 성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러 교회를 개척하고 섬기는 동안 오래 참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를 몸소 실천한 모범적인 사도였습니다. 이런 바울이 대체 무슨 일로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는 갈라디아 교회가 ‘거짓 형제들’이 전해준 ‘다른 복음’에 너무도 쉽게 속아 넘어간 사실을 알고 무척 놀라고 심히 분개한 상태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세운 교회가 어느덧 ‘다른 복음’으로 변질된 사실을 알고 경악하였습니다. 온갖 고생 다해 교회를 개척했더니 사이비 신천지의 추수꾼 같은 자들이 몰래 스며들어 교인들을 ‘거짓 복음’으로 오염시킨 경우와 유사한 상태라 하겠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다른 복음’ 곧 ‘거짓 복음’에 급속히 오염되자 이를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결연히 정면 돌파를 시도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거짓 형제들’이란 유대교를 믿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신자들로서 율법과 할례를 여전히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만 율법과 할례를 소중히 여기고 지켰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이방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강요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자녀가 되고자 한다면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이들의 말을 곧이듣고 율법과 할례를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여기고 그것을 지키고 행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다”며 “우리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갈 1:8)고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율법과 죄악의 멍에에서 자유를 안겨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고귀한 은혜로 구원의 백성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얻고자 율법과 할례를 지킨다는 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진리와 자유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어리석은 행태였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교회의 분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거짓 복음’에 속지 말라”며 직설적으로 경고하고 나선 것입니다.


복음을 지키라

그는 현지 적응력이 탁월한 선교사였습니다.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전 9:19)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즉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율법에 철저한 나실인의 정결예식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율법 밖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할 때는 자신이 유대인이자 바리새인 출신이면서도 그들과 같이 어울려 먹고 마셨습니다. 이처럼 융통성 많은 바울이었으나 거짓 형제들이 교회에 몰래 들어와 진리와 자유의 복음을 왜곡하는 일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거짓 형제들’이라 말한 자들도 분명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울을 사도가 아니라고 비난하면서 그의 가르침과는 달리 율법과 할례를 구원의 필수조건으로 가르쳤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이방인 신자들에게 율법과 할례를 강요할 때가 많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직접 겪은 ‘안디옥 사건’을 들려주며 복음의 진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는 갈라디아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형제들’을 비롯해 그들을 따르는 신자들과 심지어 사도 베드로를 상대로 진리를 위한 투쟁을 벌입니다.

안디옥 사건을 보면 바울이 복음의 자유를 지키고자 얼마나 담대히 싸웠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한때 교회의 대표적인 박해자였습니다. 회심한 뒤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었으나 여러 교회에서 그는 그다지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고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로서 일찍부터 명성이 높았습니다. 이 사도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를 방문해 바울과 바나바 및 그곳 신자들과 더불어 식사할 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인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베드로는 급히 그 자리를 피하였습니다. 할례 받지 않은 자들과 함께 식사하였다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 외식적 행동을 한 거였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행동은 함께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령 바나바도 베드로처럼 식사를 중단하고 피신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함께 연합하거나 먹지도 말고 같은 행위를 하지 말라”는 율법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베드로나 바나바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 수장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듣자,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피신함으로써 마치 식사를 같이 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 사이에 교리 분쟁이 생길까 염려해서 그렇게 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볼 때 이는 매우 위선적인 태도였습니다. 그는 베드로의 면전에서 과감히 항의하였습니다. 그렇게 충돌하면 자신에게 불리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았음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보다는 하나님의 지지를 얻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복음의 진리와 자유를 지키는 일에 있어서는 상대가 사도 베드로일지라도 면전에서 항의하는 일조차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 5:1) 복음의 진리와 자유를 지키는 데 있어서는 사도 바울과 같은 담대함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그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지지를 얻는데 더 힘써야 합니다. 이처럼 진리의 복음을 위해 “사탄에게 잠시도 틈을 주거나 양보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름   메일   회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답변/관련 쓰기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번호제 목짧은댓글이름첨부작성일조회
686   말문 트인 돌   바위솔   2015-04-26  570
685   마음 문을 열라   바위솔   2015-04-19  675
684   양보 없는 복음   바위솔   2015-04-12  623
683   그를 만나다   바위솔   2015-04-05  741
682   약함에서 오는 구원   이성욱 선교사   2015-03-29  576
681   밀알의 죽음   바위솔   2015-03-22  1147
680   그 빛에 이끌려   바위솔   2015-03-15  629
679   자유인의 법   바위솔   2015-03-08  706
678   ‘아비소스’를 닫아라.   바위솔   2015-03-01  738
677   접붙은 두 가지   바위솔   2015-02-22  693

 
처음 이전 다음       목록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