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바위솔
2015/2/17(화)
평화의 나라  
평화의 나라

이것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두고, 계시로 받은 말씀이다. 마지막 때에,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모든 산 가운데서 으뜸가는 산이 될 것이며, 모든 언덕보다 높이 솟을 것이니, 모든 민족이 물밀듯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백성들이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 2:1-4>



아름다운 나라

한국은 불행히도 미국과 소련 등 외세에 의해 해방되어 반쪽짜리 해방을 맞았습니다. 1945년 8.15 해방과 동시에 분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김구, 여운형, 김규식 등 민족지도자들을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통일된 자주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갖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미 ․ 소 양국, 유엔, 반통일 세력들의 분열 책동으로 남한은 1948년 5월 10일 끝내 단독선거를 치르고 맙니다. 선거를 불과 석 달 앞두었을 때 백범 김구는 “삼천만 동포에 읍고함”이란 호소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통일하면 살고 분열하면 죽는 것은 고금의 철칙이니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남․북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 민족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넣는 극도로 악하고 흥측한 위험일 것이다...삼천만 자매형제여! 한국이 있고야 한국 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고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또 무슨 단체도 있는 것이다.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김구의 피를 토하는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분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국가들 중에서 오스트리아(55년), 베트남(76년), 독일(90년), 예멘(94년) 모두 차례로 통일하였고 이제 우리나라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았습니다. 이념의 시대가 끝난 지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남북이 38선에서 총부리를 겨누며 대치한 상태입니다.

김구는『백범일지』에 수록된 ‘나의 소원’이란 글에서 “우리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아닌 높고 새로운 문화로 남에게 행복을 주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하늘이 이 민족에게 부여해준 소명이라고 여깁니다. 그가 보기에 인류의 불행은 자연과학과 물질적 부, 무력의 힘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인의 ․ 자비 ․ 사랑의 정신과 마음이 크게 모자라 정치 ․ 경제 ․ 사회적으로 불평등과 불합리가 판치는데 사랑과 평화의 수준 높은 문화만이 이를 극복할 대안이라고 말합니다. 각 나라가 과학․기술, 군사력, 경제력에서 어떻게든 우위를 차지하려 밤낮 없이 경쟁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때에 최고의 문화국가를 이루기 원했던 김구의 소원은 세상 물정모르는 사람의 한가한 몽상같이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쟁의 광기가 횡행하던 20세기 중반 임시정부의 수장으로 독립운동을 펼치며 이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무력과 재력 경쟁에 여념 없는 지금의 세계도 끊임없는 전쟁과 불평등, 환경오염 따위로 갈수록 불행의 진창으로 빠져드는 형세입니다. 가령 이라크 수니파 반군(이슬람국가 IS)이 최근 이라크 내 기독교인들을 무차별 학살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라크는 시아파 이슬람국가였으나 국민 전체가 무슬림이었던 건 아니고 약 3%가량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들은 4세기경부터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무슬림과 공존해온 칼데아 정교회 신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순수 이슬람국가를 세우려는 수니파 반군들이 개종을 거부하면 ‘인종청소’라 할 정도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기에 더 이상의 예배가 불가능해졌고 다들 정처 없이 피란길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전쟁 없는 평화 ․ 공존의 길은 막연한 꿈이 아닌 절박한 소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화의 상상력

예언자 이사야도 본문에서 웅대한 평화의 상상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는 주전 8세기 아하스, 히스기야 왕이 통치하던 남유다 왕국의 예언자입니다. 그의 시대는 앗시리아 침략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유다는 아하스 왕의 친 앗시리아 정책으로 겨우 연명하던 시절입니다. 그러나 앗시리아 제국은 신흥 바벨론에 의해 영토를 조금씩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빠른 성장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히스기야 왕 때 앗시리아의 왕 사르곤 2세가 전투 중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앗시리아는 큰 충격을 받아 혼란에 빠졌고 내부적으로 권력다툼이 일었습니다. 사르곤 아들 산헤립이 후계자가 되었으나 그 사이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국가들과 반 앗시리아 동맹을 결성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반란연합에 가입하지 말라고 히스기야에게 경고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처음에는 듣는가 싶더니 앗시리아가 이내 멸망할 줄 알고 반란에 가담하였습니다. 그러자 앗시리아 왕 산헤립은 내부 반란을 추스른 다음 대군을 이끌고 출동하여 남유다 주요 도성을 모두 정복하였습니다. 반란연합에 가입한 다른 나라들도 모두 항복을 선언하였고 남유다 왕국의 예루살렘만이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포위당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에 대해 세 차례나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다 결국 주전 701년 예루살렘 성이 끝내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처형되진 않았으나 나라가 거덜 난 채로 더욱 무거운 세금을 물어야 하였습니다. 이처럼 이사야 시대는 국내외적으로 몹시 소란스러운 격동기였습니다.

이사야는 사면초가에 빠진 예루살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도성 시온이 외롭게 남아 있는 것이 포도원의 초막과 같으며, 참외밭의 원두막과 같고, 포위된 성읍과 같구나.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얼마라도 살아 남게 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마치 소돔처럼 되고 고모라처럼 될 뻔하였다.”(사 1:8-9) 그는 앗시리아 군대에 의해 주요 성읍들이 죄다 짓밟히고 마침내 예루살렘마저 함락되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예언자로서 해명을 요구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사야는 적군 앗시리아의 군사력이 강대했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는 북왕국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성읍에 악행이 끊이지 않았기에 이 같은 주님의 심판이 임한 거라고 말합니다. 공의와 정의가 충만해야할 성읍에 살인자들이 판치고 지도자들은 뇌물이나 좋아하며 판결을 굽게 하고 가난한 자들의 호소는 귀전으로 흘리는 모습(사 1:17, 21-23)에 대해 질타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체다카)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체아카)뿐이다”(사 5:7)고도 말합니다. ‘울부짖음’이란 폭력에 희생당해 억울한 자들의 호소요 탄식소리가 아닙니까?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불의와 폭력, 억압을 주님이 보시고 그 백성에 대해 몹시 진노하셔서 다윗의 성과 성전까지도 심판하시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는 “손에 피가 가득한”(사 1:15c) 이스라엘의 죄악과 그에 대한 주님의 심판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내일의 새 희망도 제시합니다. 그중 하나가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이사야는 “마지막 날이 이르면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산, 곧 시온 산이 우뚝 솟아올라 그리로 만방의 백성들이 그리로 몰려오는” 환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민족들 사이의 분쟁과 갈등을 직접 개입하여 판결하시기에 불의가 발 뻗힐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군인들의 필수 무기인 칼과 창을 농기구로 바꿔 쓴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사야는 “나라와 나라가”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의 무기나 군사훈련이 필요하지 않는 평화의 나라를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급으로 8월 8일 현재 민간인 1800명이 사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5년간 한국은 이스라엘에 무려 227억 상당의 무기와 탄약을 수출하여 왔음이 드러났습니다. 그 중에 100억여 원 상당은 폭탄, 수류탄, 어뢰, 미사일 부속품 등의 가격에 해당합니다. 최근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는 이런 사실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의 무기수출 중단을 촉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에 의한 팔레스타인 2천여 민간인이 사망한데 대해 무기를 수출한 한국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길을 걷자

오늘 본문과 거의 유사한 내용이 미가서 4장 1-4절에도 나옵니다. 이사야와 미가는 동시대에 활동한 예언자들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처한 상황을 공유하며 공동의 메시지를 전했던 것 같습니다. 두 예언자는 모두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무기나 군대 훈련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들에 따르면 마지막 날 시온은 전쟁이나 군사훈련과 전혀 무관한 ‘평화의 왕국’입니다. 미가에 의하면 이 평화의 왕국에서는 사람들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산다”(미 4:2)고 하였습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풍성하고 안전한 삶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들이 어리석은 군비경쟁과 군사훈련에서 벗어나 이와 같이 풍요롭고 안전한 생활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은 이사야와 미가의 이 같은 예언에 부합한 상태인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평화는커녕 오히려 각종 분쟁의 중심지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예루살렘 병’이란 이상한 병마저 존재합니다. 이 병은 “구약이나 신약 성서의 인물과 자신을 강하게 동일시하거나 예루살렘의 정신병적 에피소드에 희생되는 사람”이라고 정의됩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의 대체적인 증상은 “흥분, 무리에서 이탈, 성서 구절을 외치거나 큰 소리로 읽고자 하는 욕구, 예루살렘 성지 중 한 군데에 집착, 성지에서 설교를 행함” 따위 등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1969년 이 병에 걸린 호주의 로한이란 청년이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긴다며 이슬람 사원 알 아크사에 불을 질러 아랍인들의 폭동을 유발한 적 있습니다. 이 사건 말고도 예루살렘을 둘러싼 무수한 충돌과 갈등이 존재합니다. 이사야나 미가가 예언한 평화로운 왕국의 중심지여야 할 곳이 갈등의 화약고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시온 산이 다른 어떤 산보다 높이 솟아 으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시온 산은 성전이 있는 곳을 말하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성전은 없고 무슬림 사원 알 아크사가 서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사야 예언은 평화를 낳기보다는 시오니즘을 강화시키는 구실이 되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오늘 평화의 나라 예언은 반드시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에 실현될 평화 왕국을 뜻한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사야와 미가는 주님의 말씀(가르침)을 배우고 익혀 그 길을 따르는 자들에 의해 평화의 나라가 세워질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칼과 창을 보습과 낫으로 바꾸고 군사훈련을 하지 않음으로써 평화의 세계를 실현합니다. 광복 69주년 8.15남북평화주일을 맞이하여, 이 나라가 주님이 가르치신 평화의 길을 따라 실천함으로써 조속히 민족의 염원인 남북의 평화통일과 화해를 이루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문화대국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이름   메일   회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답변/관련 쓰기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