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4/5/8(목)
누구 편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에 속한 사람에게 하듯이 말할 수 없고, 육에 속한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 같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젖을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는 여러분이 단단한 음식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러분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있으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 편이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 편이다” 한다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니까? 아볼로와 나는 여러분을 믿게한 일꾼들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각 맡겨 주신 대로 일하였을 뿐입니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은 하나이며, 그들은 각각 수고한 만큼 자기의 삯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건물입니다. <고전 3:1-9>



교회 분쟁의 속살

예전에 수년째 분쟁으로 아픔을 겪던 어느 교회 중직자들과 잠시 좌담한 적 있습니다. 철썩 같이 믿었던 목회자에게 배신당해 상처가 이만저만 아닌 교회였습니다. 그때 한 권사님이 푸념하였습니다. 자신들은 목사님께 잘 보이고자 처음부터 무던 애를 썼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노라고. 사실 담임 목사 눈에 들고자 애쓴다는 말은 어패가 있습니다. 목회자 보다는 하나님 맘에 들고자 힘써야지요. 간혹 “목회자는 주의 종이니 잘 섬기면 복 받는다”는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목회자를 떠받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뜻이야 갸륵하지만 목회자만 주의 종이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주의 종이고 주의 자녀입니다. 물론 목회자나 교인이나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어 협력할 때 교회는 든든히 설 것입니다. 그것마저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담임 목사의 리더십을 존중해야겠지만 마치 천사나 모시듯 추종하는 건 온당치 않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들이 흔히 겪는 주요 분쟁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교단과 개 교회 간의 갈등입니다. 교단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개 교회의 일에 간여하면서 생겨난 분쟁에 해당합니다. 둘째는 담임 목사와 신도들 간의 발생한 갈등입니다. 대개 교회 운영상의 의견 충돌이나 재산권, 혹은 목회자나 교인의 비리 따위를 놓고 갈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는 신도들 간에 파벌이 나뉘어 갈등하는 경우입니다. 파벌이 나뉘는 사유는 두 번째에서 언급한 것들을 포함해 다양할 것입니다.

최근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를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작년 12월 10일부터 11일까지 이틀간 1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글로벌리서치라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입니다. 종교기관 사회적 신뢰도는 가톨릭(29.2%), 불교(28.0%), 개신교(21.3%)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가톨릭과 불교에 비해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도가 7~8% 뒤지고 있는데 3년 전 조사보다 0.04% 올랐으나 여전히 불신이 팽배한 상태입니다. 응답자들은 한국교회 신뢰도 제고를 위해 가장 먼저 개선해야할 점으로 “윤리와 도덕실천운동”을 꼽았습니다. 다행히 사회봉사활동에 있어서는 개신교가 41.3%, 가톨릭 32.1%, 불교 6.8%로 나타나 희망적이긴 합니다. 교회가 사회봉사는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 윤리 · 도덕상 문제가 많아 신뢰가 잘 안 간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파의 난립, 일부 목회자의 부정비리, 교인들의 언행 불일치, 대형교회의 분쟁 따위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교회 내부에서 서로 싸우지만 않아도 지금 부정적 인식을 많이 개선할 수 있지 않겠냐고 보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는 일반 국민들이 국회를 바라보는 시각과도 비슷합니다. 자꾸 “제발 싸우지 좀 마라” 그러는데 싸우지 않고 대화와 타협으로만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린다면 오죽 좋겠습니까?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몸싸움에다 장외투쟁까지 가는 것입니다. 싸움 안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정의로운 일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 침묵만 말고 과감히 싸우기도 해야 합니다. 싸움 자체를 문제시하기보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얼마나 정당하냐를 더 따져 봐야합니다. 오늘날 교회 분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세속 정치판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형태로 싸움이 진행된다는 데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 아닌 세속 권력 투쟁의 장으로 변질되어 극심한 분쟁을 겪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집니다. 교회에서조차 줄 세우고 줄서는 식의 불행한 계파 갈등이 생겨납니다.


후견인 사회를 넘어

고린도 교회가 바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 교회에는 음행, 성도간의 법정 소송, 부활논쟁, 성만찬의 오남용, 결혼이나 은사에 대한 오해, 우상의 제물 따위의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는 교회 내부의 파당 분쟁이었습니다. 이 교회는 생겨난 지 불과 2-3년 밖에 되지도 않았는데 파당이 나뉘어 서로 분쟁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이 같은 갈등을 비롯한 여러 현안들을 해결하고자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고린도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도시국가 중 하나였다가 주전 146년 로마제국에게 정복되어 약 200여 년간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주전 44년 퇴역군인들을 위한 식민지로 재건한 도시입니다. 이곳은 운하를 끼고 있어 국제무역도시로 급성장하였고 상품 제조에 필요한 자연자원도 풍부해 제조업이 크게 발달하였습니다. 고린도는 성공과 부를 얻으려는 상인들로 붐비던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바울은 아테네를 거쳐 고린도에 들어갔고 거기서 장막 제조업을 하던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의 도움을 힘입어 주후 50년경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개척한지 약 18개월 만에 에베소 선교를 위해 떠났습니다. 그가 에베소에 머물고 있을 무렵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찾아와 고린도 교회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고전 1:11). 글로에는 여성인데 바울이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라고 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재력 있는 사업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가 고린도 교회 신자였는지는 분명치는 않지만 그 집안사람들이 고린도 교회와 어떠한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바울에게 들려온 고린도 교회 소식은 파당 분쟁이었습니다. 그리스의 대표적 서사시인 헤시오도스는 ‘에리스’ 곧 분쟁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악한 전쟁과 불화를 조장하는 해롭고 위험한” 에리스와 “인간의 경쟁심을 유발하여 행복한 삶을 누리게 만드는” 선한 에리스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파당 분쟁은 심히 “해롭고 위험한” 에리스였습니다. 그들은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고전 1:12) 하고 서로 갈라져 싸웠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창립자이므로 그를 따르는 교인들이 있다는 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뒤 이 교회를 맡아 목회한 사람은 아볼로입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성서와 수사학에 능통한 순회 선교사였습니다. 아볼로는 그리스 철학과 성서에 해박한데다 웅변솜씨도 뛰어나 고린도 교회 교인들 일부가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아볼로파가 그래서 생겨난 것입니다. 세 번째 언급된 게바는 베드로의 별명입니다. 고린도 교회 내부에 실제 게바파가 있었는지 알기 힘들지만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이자 초기 예살렘 교회 우두머리였음을 감안하면 게바파가 생겨나는 일도 무리는 아닙니다. 여기에다 그리스도파까지 가세하여 네 개의 파당이 교회의 헤게모니를 쥐고자 분쟁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파당이 왜 이렇게 유명 사도들과 그리스도를 내세운 분파들로 나뉘었을까요?

로마제국은 황제부터 노예에 이르까지 후견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가령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로마시민들에게 볼거리, 빵, 집, 물, 현금 따위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황제를 ‘은인’으로 생각하며 그에게 절대 충성과 감사, 갈채를 보냈습니다. 이런 후견인의 수혜관계가 피라미드 형태로 되어 있는 로마제국 전반에 두루 퍼져 있었습니다. 고린도 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류 사회에 진입하고자하는 자는 보다 지위 높은 후견인을 만들고자 경쟁적으로 그들에게 돈을 갖다 바쳤습니다. 종교 단체도 얼마나 지위 높고 재력 있는 후견인을 두느냐를 중시하였고 그게 그들 단체의 존속을 좌우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교회가 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분쟁하였던 것은 후견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던 고린도 지역의 신자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즉 가능한 한 유명 사도에 물꼬를 대야 교회에서 자신들의 명예나 권력 따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이 같은 파당 분쟁을 낳았다는 말입니다. 이는 흘러간 옛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세속적 후견인 관계가 교묘한 형태로 교회에 스며들어 각종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신대원에 입학했을 때 동문모임, 기수모임, 지역모임, 띠별 모임 등 온갖 모임들이 있는 것을 보고 실망스러웠습니다. 목회 현장에 나갔을 때 이 같은 연줄에 따라 끌어주고 밀어주자는 차원에서 이런 모임들이 친교라는 미명하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노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동문모임으로 계파가 나뉘고 거기서 그것을 발판삼아 노회 정치를 합니다. 목사들이 그러니 장로들도 장로모임을 만들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세속 정치와 교회 정치가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입니다.


하늘의 밭과 건물로

사도 바울은 파당 분쟁으로 몸살을 앓는 고린도 교회의 현실을 개탄합니다. 그는 여러분은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이라 잘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영적인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하건만 시기와 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바울은 아볼로와 자신은 단지 하나님이 맡겨 주신대로 일한 ‘일꾼들’이자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 사역을 농사에 비유하여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며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에 따르면 농사짓는 일꾼의 역할은 하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심고 물을 뿌리고 거름 주는 일은 누가 맡든 어지간하면 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농부 자신이 씨앗을 싹트게 하고 자라 열매 맺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햇볕과 바람, 적절한 기온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보기에는 농부의 역할도 중요하긴 하지만 농작물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주님의 교회를 하나님의 밭이자 건물에 비유합니다. 밭을 가꾸는 일꾼들이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동역자일 뿐이지 그 밭의 주인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비유로 “도대체 여러분은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라는 물음을 던지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건물이라면 그 기초를 놓은 사람은 바울입니다. 그 위에 벽돌을 쌓아 올린 사람은 아볼로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놓은 건물의 기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교회로 이루어진 밭과 건물은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나뉘어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맏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입니다. 하나님의 밭이자 조각품입니다. 이 믿음 잘 간직하고 세상 유혹에 흔들림 없이 나아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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