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3/6/8(토)
나를 얻으라  

주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던 그 태초에, 주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는 나를 데리고 계셨다. 영원 전, 아득한 그 옛날, 땅도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세움을 받았다. 아직 깊은 바다가 생기기도 전에, 물이 가득한 샘이 생기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아직 산의 기초가 생기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주님게서 아직 땅도 들도 만들지 않으시고, 세상의 첫 흙덩이도 만들지 않으신 때이다. 주님께서 하늘을 제자리에 두시며, 깊은 바다 둘레에 경계선을 그으실 때에도, 내가 거기에 있었다. 주님게서 구름 떠도는 창공을 저 위 높이 달아매시고, 깊은 샘물을 솟구치게 하셨을 때에, 바다의 경계를 정하시고, 물이 그분의 명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고, 땅의 기초를 세우셨을 때에, 나는 그분 곁에서 창조의 명공이 되어, 날마다 그분을 글겁게 하여 드리고, 나 또한 그분 앞에서 늘 기뻐하였다. 그분이 지으신 땅을 즐거워하며, 그분이 지으신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아이들아, 이제 내 말을 들어라. 내 길을 따르는 사람이 복이 있다. 내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고, 그것을 무시하지 말아라. 날마다 나의 문을 지켜 보며, 내 문설주 곁에 지키고 서서, 내 말을 듣는 사람은 복이 있다. 나를 얻는 사람은 생명을 얻고, 주님께로부터 은총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놓치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해치는 사람이며,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잠 8:22-36>



지혜의 실종

 하비콕스라는 미국의 신학자가 있습니다. 서른여섯 살 때 현대 도시문명을 ‘하나님의 선물’이자 ‘성숙의 과정’이라 적극 평가한 <세속의 도시>라는 책을 써서 일약 세계적인 신학자가 된 인물입니다. 그는 이 책을 출간한 1965년부터 하버드대 신학부 교수로 부임해 정년퇴임한 2009년까지(44년간) 가르쳤습니다. 하버드대와 한 평생 같이한 사람이지요. 1980년 초반, 콕스는 대학 측으로부터 일반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수의 윤리’를 강의해달라는 ‘이색 제안’을 받습니다. 하버드대라면 그저 미국 최초의 대학이자 세계적인 명문대로만 막연히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애초 이 학교는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신학대학에서 출발했고 설립자인 존 하버드도 청교도 목사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버드대는 종합대로 변모했고 명문 사립대로 자리 잡는 동안 어느덧 기독교적 색채는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콕스의 ‘예수의 윤리’ 강의가 개설되기 전까지 거의 70여 년간 이 대학의 일반학과에는 ‘예수’ 관련 강의가 전혀 개설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학 당국은 사회 각 분야에 흩어져 살아가는 동문들의 삶을 알아보다 ‘윤리의식 부재’를 발견하고 큰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 각계 지도층이 되어 명성이나 재물을 얻은 자들은 많은 데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불법, 비리, 부정에 연루돼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똑똑한 학생들이 “남이야 죽든 말든 상관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와 출세에 여념 없는” 냉혈한들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버드대는 전교생에게 한 학기 동안 윤리과목을 필수로 듣게 했고 ‘예수의 윤리’도 그 중 하나로 개설된 것입니다. 최근에는 아비리그(미 동부 8개 명문대)에 드는 미 대학의 졸업생들이 자발적으로 “개인의 이익을 고객과 사회의 이익보다 앞세우지 않겠다”는 식의 윤리서약을 하는 추세입니다. 바람직한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쉽게도 현재 한국의 대학 가운데는 윤리 과목을 필수로 개설하거나 스스로 윤리서약을 하는 학생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로지 ‘돈벌이와 생존, 성공’만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 마냥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취업’을 외쳐대고 있습니다. 교과부의 대학평가 기준 자체도 학생들의 취업률로 따지는 통에 교수들까지 학생들 취업 알선에 동원되는 상황입니다. ‘학문과 진리의 전당’이라 불리던 대학에서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적 사고를 찾아보기 힘들어진지 오래입니다. 대학 자체가 철저히 기업화되어, 꼭 필요하지만 돈벌이에 별 도움 안 되는 학과들을 없애거나 기괴한 이름으로 통폐합시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 CBS 변상욱 대기자가 방송에서 “요즘 대학이 ‘취업종편학교’가 되었다”며 개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모 대학은 국어국문학과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과를 ‘한국어문학과’로 통폐합했답니다. 국어국문학과와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학과는 전혀 다른 분야임에도 대학 측에서는 학생이 줄고 취업이 안 되는 학과들이라 대학 경쟁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다보니 “심리철학상담과”까지 생겨났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대학에서 기초학문을 연마하며 인생의 지혜를 닦는 곳이 아니라 취직을 위한 무슨 자격증 취득 학원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돈벌이를 위해 양심과 영혼을 팔고 지식 상인들로 전락한 학자들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학자가 곧 현자였지만 지금은 학자라고 반드시 현자는 아닙니다. 그들 상당수가 현재 지혜를 내동댕이쳐 자신과 사회를 망치는 어리석은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초청

 유대인의 오랜 신비주의 전통 가운데 카발라(히브리어로 ‘전승’)라는 게 있습니다. 이 구전 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카발라의 선구자에 속합니다. 그는 바벨론 수도에 살면서 “이 혼란스러운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갖고 그 해답을 얻고자 자연과 인간의 궁극적 목적을 깊이 탐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자연이 우연히 생겨난 게 아니라는 사실과 인류에게 창조주가 부여한 중요한 사명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이르는 머나먼 여행길에 올랐고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히브리어로 바벨은 ‘혼란’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혼란의 도시 바벨론을 떠나 창조주의 지혜를 따르는 새로운 길을 걸어간 것이지요. 카발라에서는 인간이 가진 네 단계의 욕구를 말합니다. 첫째 의식주, 성, 가정을 위한 육체적 욕구. 둘째 부를 향한 욕구. 셋째 권력과 명예를 향한 욕구. 넷째 지식에 관한 욕구가 그것입니다. 첫 단계 욕구는 모든 피조물이 공유하는 것이고 두 번째에서 네 번째 단계의 욕구는 인간만이 갖는 욕구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욕구는 앞서의 것들과 본질적으로 다른데 이는 오로지 영적인 만족을 얻기 위한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가슴 속에 영적 성장을 위한 씨앗이 심겨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해 계속 추구하다보면 ‘세속적 쾌락’이 아닌 ‘영적인 기쁨’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지혜를 통해 기쁨과 행복을 주고자 하십니다. 하지만 받아야하는 사람 편에서 원하지도 않고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면 주시려 하다가도 크게 실망해 그냥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잠언 8장 서두를 보면 지혜와 명철이 네거리에서 또는 마을 어귀 성문 곁에 서서 이렇게 외친다고 했습니다. “어수룩한 사람들아, 너희는 명철을 배워라. 미련한 사람들아, 너희는 지혜를 배워라...너희는 은을 받기보다는 내 훈계를 받고 금을 선택하기보다는 지식을 선택하여라. 참으로 지혜는 진주보다 좋으며, 네가 갖고 싶어 하는 그 어떤 것도 이것과 비교할 수 없다.” 이른바 ‘지혜의 초청’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화된 지혜(호크마)는 여성형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큰길가에 서서 ‘어수룩한 사람’곧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을 향해 “내게 지혜와 명철을 배우라”며 초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지혜의 여인이 초대하나 7장과 9장에는 창녀로 변장한 음녀 또는 어리석은 한 여자가 “어수룩한 사람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말합니다. “내 남편은 돈을 두둑이 가지고서 먼 여행을 떠났으니 나랑 같이 사랑에 빠져 즐깁시다. 훔쳐서 마시는 물이 더 달고, 몰래 먹는 빵이 더 맛있는 법입니다” 이렇게 두 여자가 어수룩한 자들을 두고 경쟁하듯 초청을 하고 있습니다. 어수룩한 자들 가운데 그나마 영적 분별력을 조금이라도 지닌 자는 지혜의 여인을 따르지만, 세속의 쾌락에 빠져 그마저 없는 자는 어리석은 음녀에게 홀려 넘어갔다가 끝내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세상에는 분명 하나님의 지혜도 있으나 지혜로 가장한 악마의 어리석음도 존재합니다. 에덴에서 간교한 뱀이 하와를 꾈 때 했던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고 묻습니다. 뱀이 선악과 한 나무만 금지된 사실을 모르고 이 말을 했겠습니까? 잘 알면서도 하와가 어찌 대답하는지 보려고 떠본 것이지요. 동산 한 가운데 있는 선악과만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했다하니 뱀이 말합니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서 하나님처럼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악마는 어수룩한 자들을 이처럼 지혜로 사탕발림된 어리석음의 길로 유혹합니다. 이게 바로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 박사를 꾄 방식이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음녀가 잡아끌며 유혹하는 길은 겉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입니다. 문만 열면 금방이라도 명성과 부와 권력을 얻어 행복이 쏟아질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치명적인 파멸의 독이 서려 있습니다. 한때 인류는 과학적 지식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과학과 기술발달이 행복을 안겨 주었나요? 생활은 편리해졌을지 모르나, 자연이나 생명보다는 황금을 더 중시하는 이기주의의 만연으로 삶이 더 팍팍하고 우울해졌습니다. 거짓 지혜에 속은 탓입니다.


복된 길을 따라

지혜는 창조주가 자신을 제일 먼저 지으셨다고 소개합니다. 하나님이 맨 먼저 지혜를 만드시고 창조의 명공인 그 지혜와 더불어 세상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순은 순금 진주보다 지혜야말로 가장 귀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지혜의 기원과 소중함을 노래한 지혜의 찬가로서 성서 지혜문학의 공통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구약외경 지혜서는 지혜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지 7:26-28) 잠언에서 지혜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지음 받은 존재이고 지혜서는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골로새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골 1:15-16a) 또한 고린도전서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고전 1:24)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이자 성육신하신 지혜라 보고 있습니다. 잠언에서 지혜가 어수룩한 사람들을 초청하듯 예수님도 사람들을 초청하십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을 가볍다.”(마 11:28-30) 이 세상에 많은 지식이 있으나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참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그분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걸을 때 생명과 구원의 은총을 얻고 진정한 행복을 얻습니다. 이 복된 길을 따라 함께 걷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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