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2/12/31(월)
일어나 가거라  
헤롯이 죽은 뒤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그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요셉이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요셉은, 아켈라오가 그 아버지 헤롯을 이어서 유대 지방의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는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리 지방으로 물러가서,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가서 살았다. 이리하여 예언자들을 시켜서 말씀하신 바,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마 2:19-23>



꿈의 예지력?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어떤 분이 이번 대선을 암시한 듯한 꿈을 꿨다며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해몽을 요청하는 글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TV를 켜놓은 채 자고 있었는데 긴급타전 뉴스속보가 들려와 유심히 들었답니다. 대통령 후보 한 명이 자택에서 괴한의 둔기에 맞아 사망했다는 보도였습니다. 사망 전 영상도 잠깐 보였는데 오른쪽 뇌의 6분의 1정도가 함몰된 상태로 후보가 심히 “처량하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죽어 가고 있어”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살해 전 괴한 두 명은 후보 집 근처에서 폭발사고를 일으켜 주변을 어수선하게 만들었고 그 틈을 타 안방에 들어가 잠자던 후보를 살해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올린 네티즌은 자신의 꿈에 나오는 죽은 후보가 당선된다는 건지 아니면 몰락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속 시원한 해몽을 바랐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사람의 꿈을 어떻게 해몽하시겠습니까? 그냥 쓸데없는 개꿈이라 무시하시는 분도, 예지몽이 틀림없다며 진지한 해몽을 시도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최근 정국을 감안할 때 꽤 흥미로운 예지몽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시민들 가운데는 이번 대선이 득표율 조작에 의한 부정선거라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 사실로 드러난다면 실제 당선자는 잠자다 살해당한 거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지요. 아직 국민 대다수는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대선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한데 며칠 전 개인적으로 우연치곤 너무 희한한 점을 발견해 크게 충격 받았습니다. 12월 10일 보수성향 유명 사이트에 한 네티즌이 “근혜님 목표 득표율 공개!”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내용에다 “51.6% 어떻노? 과반 득표 하면서, 5.16 정신 계승.”이라 썼습니다. 이 사람이 특출한 선견지명이 있어 이런 글귀를 남겼는지는 의문입니다. 장난처럼 썼지만 그대로 된 것을 볼 때 개표율 조작을 위한 어떤 암시가 아니었나 하는 심증을 갖게 됩니다. 부정선거 의혹을 뒷받침하는 각종 자료가 속속 더해져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합니다. 본인은 단지 바람을 적었는데 놀랍게도 그대로 됐다거나 예지몽으로 그 사실을 알았다고 둘러댈지도 모르겠습니다(그는 51.6%를 ‘꿈의 득표율’이라 합니다). 하지만 구체적 득표율을 제시해 적중한 점은 선뜻 납득하기 힘든 일입니다.


꿈의 지시를 받아

물론 성서도 ‘예지몽’이 있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성서에서 말하는 꿈은 전반적으로 해몽을 필요로 하는 상징적인 내용이지 정확한 수치까지 제시하는 구체적인 예고가 아닙니다. 미래를 내다보고픈 갈망이야 대부분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꿈을 잘 해몽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아낼 수 있다면 미리 적절히 대처도 하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수십 년 꿈을 연구한 사람에게도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고대에는 해몽가나 점성가들이 널리 각광받았으나 지금은 이 같은 시대도 아닙니다. 성서 자체에서도 신약시대로 넘어오면 구약시대와 달리 꿈 이야기가 현격히 줄어듭니다. 더욱이 <유다서>의 경우, 거짓교사들에 대해 말하기를 “이 사람들도 (소돔과 고모라 성읍의 사람들처럼) 꿈꾸면서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모독하고 있습니다.”(유 8)라고 꿈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몽사몽간에 본 환상을 잠깐 언급하며 그것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 하지 않도록 자세한 이야기를 삼갑니다(고후 12:1-7).

반면 마태복음은 신약성서 가운데 꿈 이야기를 가장 많이 언급하고 꿈을 영적 계시의 한 수단으로 봅니다. 하지만 마태는 꿈을 예수님의 탄생과 수난 이야기에서 제한적으로 언급할 뿐이고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는 묘하게도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의 천사가 요셉과 동방박사들에게 나타나 어찌해야할지 지시했다고 합니다. 또 빌라도의 아내의 경우에는 예수님에 관한 흉몽을 꾸었다고 했습니다(마 27:19). 빌라도 아내의 꿈은 곧 안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암시이지만 예수님 탄생 이야기에 나오는 꿈들은 모두 천사의 지시를 담은 ‘계시적 행동지침’입니다. 이는 메시아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며 아주 특별하게 탄생했음을 알려주기 위한 마태의 독특한 문학 장치에 속합니다. 즉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기보다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 과정에서 나타난 신비한 사건입니다. 마리아의 약혼자인 요셉은 아기 예수와 관련한 모두 네 차례의 꿈을 꾸었습니다. 네 번의 꿈에서 주님의 천사는 임신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 했고, 이집트로 피신하라 했으며, 이집트에서 다시 유대로, 유대에서 갈릴리 지방으로 가라 지시합니다. 요셉은 천사의 지시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순순히 지시에 따를 뿐입니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머나먼 이집트까지 여행하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불평 한 마디 없습니다.    


암흑의 땅에서

요셉은 왜 아내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나야 했습니까? 폭군 헤롯 왕이 메시아로 태어난 아기를 죽이려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베들레헴과 그 주변지역의 두 살 이하 사내아이를 모조리 학살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이처럼 억울하게 죽는데 주의 천사가 아기 예수만 피신시킨 건 심한 차별 아니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죽도록 방치하고 예수만 살려냈다고 볼게 아니라, 오히려 바로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가는 아기들을 위해 예수를 살려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제국과 헤롯의 무자비한 학정에 시달리며 괴로이 살아가던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오셨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의 처형 시간은 약 삼십 여년 늦춰진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폭력이 난무한 어둠의 현실을 전복시키고자, 죽어간 유아들을 대표하여 부모를 따라 이집트 망명길에 오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묘한 하나의 역설을 발견합니다. 이집트야말로 전통적으로 ‘암흑의 땅’인데 예수님 가족은 그곳으로 피신하였습니다.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나 예수님 가족은 역으로 과거 가나안 땅으로 불리던 이스라엘 땅에서 도망쳐 이집트로 들어갔습니다. 이집트를 은신처로 삼았던 것입니다. 과거 아브라함이나 여로보암 같은 사람들도 기근이나 정치적 망명을 위해 이집트에 간 바 있습니다. 예수님 가족이 이집트에 내려간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마태는 예수님 가족이 헤롯 왕이 죽을 때가지 이집트에 머물러 산 이유를 호세아서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라 말합니다.

호세아서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호 11:1) 엄밀히 말하면 마태가 인용한 호세아서의 이 문구는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은 아닙니다. 출애굽 사건이 발생한지 수백 년 뒤에 주님이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님 가족이 이집트에 갔다가 헤롯 왕 사후에 돌아온 일을 두고 호세아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라 설명합니다. 이는 다소 억지스럽지만 예수님의 탄생과 그 가족의 행보가 철저히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헤롯 왕의 통치기에는 이집트보다는 유대 땅이야말로 숨통 막히는 암흑의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족은 이스라엘을 떠나 이집트로 피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헤롯 왕이 죽자 꿈속에 나타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출애굽 사건을 재연하고 있으나 거창한 게 아니고 예수 가족만 귀국하는 단출한 장면입니다. 헤롯왕은 부끄럽게도 아기 예수를 정치적 라이벌로 여겼습니다. 그 아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그의 왕권은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큰 두려움에 잠겨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는 마침내 죽었고 예수님 가족은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옵니다.


나사렛 사람

사실 마태복음은 예수님 고향을 ‘나사렛’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흔히 예수님 부모가 본래 살던 곳을 나사렛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탄생 이야기의 영향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은 마리아와 요셉이 호적 하러 나사렛을 떠나 예루살렘 근처의 베들레헴에 갔다고 나옵니다. 마태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는 예수님 부모가 처음부터 ‘베들레헴’에 살고 있었다는 듯 묘사합니다. 이집트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나사렛에 대해 한 마디 언급조차 없습니다. 천사가 꿈에 나타나 “헤롯 왕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고 지시하자 요셉은 가족을 데리고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먼저 돌아가려 시도합니다. 그러다 그는 헤롯 왕의 아들 아켈라오가 아버지를 이어 유대를 통치하는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베들레헴에 가기를 두려워합니다. 지금껏 천사의 지시대로 군말 없이 움직이더니 이상히도 요셉은 이 대목에서 머뭇거립니다. 천사는 다시 나타나 갈릴리 지방으로 가라고 정정해 지시합니다. 그때서야 요셉은 가족을 데리고 갈릴리 나사렛에 들어가 살았다고 했습니다.

유대 땅으로 가라는 천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머뭇거리던 요셉이 낯선 땅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나사렛’은 구약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자란 일을 두고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하신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 주장합니다. 하지만 구약 어디에서도 이 구절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태는 대체 어디서 이 구절을 인용했을까요? 그는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란 사실을 어찌하든 의미부여하여 부각시키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랐다는 점은 그가 특별하게 태어나셨으나 극히 평범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사셨음을 의미합니다. 천사는 요셉에게 거듭거듭 ‘일어나 가라’고 지시합니다. 그 새 출애굽의 마지막 종착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골 동네 나사렛이었습니다. 예수님 가족은 이집트를 떠나 이스라엘 땅으로 왔으나, 헤롯 사후에 유대는 그의 아버지 못지않게 폭군이던 아켈라오 손아귀에 있었습니다. 그를 피해 갈릴리 지방 나사렛에 들어가 살았지만 갈릴리는 헤롯의 또 다른 아들 안티파스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사악한 세속 정치권력을 떠나 평안히 살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천사는 ‘일어나 가라’며 거듭 출애굽을 요구했고 마침내 나사렛이란 작은 시골마을에 들어가 살게 했습니다. 이 같은 새 출애굽을 위해 오늘 우리가 떠나고 내려놔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비록 삶의 여정이 때로 평범하고 지루하고 시시해 보이더라도 실망 마십시오. 여기까지 이끄신 그분의 손길을 떠올리며, 다가오는 새해에도 ‘나사렛 사람’ 예수의 길을 뚜벅뚜벅 걷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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