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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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발자취


욥 13:24~28


겨울에 흰 눈이 수북히 쌓이고 나면, 그 누구도 걸어보지 않은 눈 위를 맨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고픈 마음이 문득 일어납니다. 한 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발자국이 여전히 따라오고 있는지를 확인하고는 안심합니다. 하지만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발자국은 이내 점차 함박눈에 뒤덮여 보이지 않습니다. 아쉽고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습니다. 무심한 한낮의 햇볕과 또 다른 사람들의 무수한 발자국들 속에, 남기고자 했던 자신의 발자국은 결국 언젠가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이와 같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티끌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이리 저리 바람과 파도에 휩쓸려 다니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 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무던 애를 씁니다. 거대한 동상이나 기념비 하다 못해 유명한 명소의 나무에 남몰래 새겨놓은 이름 석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자신의 대에 기필코 무얼 이루고자 하여 거창한 사업을 꾸미는 사람들도 다 이런 경우에 속한다 하겠습니다. 옆에서 보기에 그렇게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은데도 자신은 그렇지 않는가 봅니다. 계획했던 바를 성취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이 무섭게 일 벌레처럼 일을 합니다. 이런 사람의 경우, 그의 주변 사람들을 매우 힘들게 만드는 것을 종종 봅니다. 언젠가는 평안히 쉬는 때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며 사람들에게 약속도 하지만, 세월은 금새 흘러 그를 백발로 만들어가고 그 모든 약속들을 무색하게 합니다.


경로당을 방문해 보면, 하루 종일토록 그곳에서 잠을 주무시거나, 10원짜리 고스톱으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잘 찾아오지 않고 관심 밖이 되어버린 노인들, 인생의 어두운 그늘을 그들의 얼굴에서 읽습니다. "나이 마흔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꿈꾸었던 드높은 이상이 불혹(不惑)이 된 얼굴을 통해서 드러나고 말 것이라는 경고로 들립니다. 나무들이 모진 겨울을 지내고 나고 나면 나이테가 어김없이 생기듯이 인간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은 주름을 남겨 줍니다. 그러므로 얼굴을 통하여 그의 인생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욕망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걸 말합니다. 이 욕망은 끊임없이 생성되며 물 흐르듯 관심의 방향에 따라 흐르는 것입니다. 에릭프롬이 <소유냐 존재냐?>라는 물음을 제기했듯이, 인생의 행로에서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 것이냐는 바로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소유를 추구하는 인간은 자신의 주변을 대상화시킵니다. 그리하여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식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을 인격으로서 존중되어야 마땅할 "너"가 아니라 수단에 불과한 "그것"으로 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분명히 죄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돈버는 기계나 말못할 짐승처럼 대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이 철저히 파괴된 관계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소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망칠 뿐만 아니라, 남들의 인생까지도 황폐화 시키게됩니다. 욕망은 무조건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욕망 그 자체에 선악의 가치를 매길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욕망을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흐르도록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애쓰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영원을 사모하는 인간의 본성'(히11:16)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다 못해 전두환씨가 광주댐 근처 마을을 방문하고 세웠다가 두고두고 욕먹는 자신의 공적비만 해도 속뜻은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오래 자신의 이름이 사람들 가운데 칭송되며 빛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영원한 천국과 극락을 추구하는 종교인들의 갈망도 다 마찬가지의 바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속절없이 흩날리는 낙엽처럼 끝나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 끝자락에 다다랐습니다. 물론 하루를 24시간으로 정해 놓고 일,월, 년을 나누어 헤아리는 시간은 인간이 계절의 변화의 주기에 맞춰 만들어낸 창작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 해가 다 지났다고 해서 특별히 아쉬워할 필요도 없고, 많은 의미 부여를 해가며 호들갑을 떨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멈춰 서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한해 두신 인생의 날이 그 기한을 다해 가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불교적인 세계관을 통해 보면 시간이야 늘상 주어지는 것이요 회귀하는 것이라 그다지 급할 것도 없고 모순도 역설도 불안도 그다지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적 세계관은 역사의 완성 즉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므로 시간을 깊이 성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내 보내고, 나에게 부여해준 시간들을 어떻게 가꾸어 갈 것이냐를 스스로 물어야합니다. 추하게 살아갈 것인지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했던 어리석은 부자처럼 스스로에 대해 부요한 자로 살 것인지 하나님에 대해 부요한 자로 살 것인지(눅12:21)를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심판은 우리가 걸어온 인생의 걸음들을 결산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이때, "나는 무엇을 남겼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였습니다"라고 자신의 빛나는 업적을 주님 앞에서 자랑을 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7:21~23)


이처럼 주께서는 우리가 행한 무슨 거창한 업적을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았나 알아보시기 위해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너는 세상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금껏 살다왔니?"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속의 욕심을 비우는 게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빈 마음에 "하나님의 꿈"을 담아야 합니다. 자신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성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다고 말합니다.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17:3)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너무나 잘 알기에 자신의 세상에서 나온 욕심을 하찮게 여깁니다. 왜냐면 세상의 욕심들은 모두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욕심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육신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의 자랑거리"(요일2:16)입니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야합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 삶의 근본을 차지해서는 곤란합니다. 우리 삶의 무게 중심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부르신 뜻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자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심을 기억해야합니다.


본문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은 하찮은 우리 인생을 굽어 살펴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내딛는 걸음걸음을 일일이 세고 계십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때로 지구촌의 엄청난 많은 인간들 가운데 우리 자신이 한낱 초라하게 여겨질지라도, 어마 어마한 우주 공간 속에서 우리 존재가 먼지 같이 보일지라도 그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같이 작은 인간에게 영원을 품을 수 있도록 해두셨기 때문입니다. 영원이라고 해서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삶의 순간 속에서 예수가 보여주신 진실된 인간의 삶을 묵묵히 걸어가는 게 바로 영원으로 향하는 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시간이 마치 자신의 소유인 듯, 물질과 지식이 모두 자신의 것인 듯이 착각을 하며 살지나 않았는지, 조용히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얼룩지고 추한 모든 것들을 불태워 묵은 세월 저편으로 묻어버리고, 새해를 맞아 하나님을 향한 힘찬 걸음을 새롭게 내딛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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