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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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접속 시대의 그리스도인  
다중 접속 시대의 그리스도인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그 모든 것, 곧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을 버리십시오.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거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대인도,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야만인도 스구디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시요,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골 3: 8~11절



얼마 전에 여천산단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탐문을 해본 적 있습니다. 산단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접촉하여 알아본 결과, 재작년까지는 몇몇 업체들에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지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상당수 있었으나 현재는 경기불황으로 모두 빠져나가고 없다고 하였습니다. 더구나 산단 내에 입주한 업체들의 경우 대다수가 대기업 소속이어서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을 내놓고 고용하기 힘들 거라고도 했습니다. 언젠가 화양면 농공단지 쪽으로 가면 조그마한 중소기업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그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았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나서 그곳까지 찾아가 보았습니다. 농공단지에 도착해보니, 10 여 개 작은 규모의 중소업체들이 들어서 있었고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매우 한적하기까지 했습니다.


지나는 몇 사람의 노동자들에게 집에서 끓여간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외국인 노동자가 이곳에 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중 지게차를 운전하는 아저씨 한 분이 자기 회사 내에 인도네시아 노동자 3명이 일하고 있노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오후 6시에 저녁식사를 하니 그때 오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친절한 안내도 곁들여서. 시간을 맞춰 다시 그 회사를 찾아가 드디어 인도네시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알리버, 주나디, 이스나이니입니다. 모두 이슬람교를 섬기는 무슬림으로 20대의 청년들입니다. 잠깐 시간동안 그들과 대화하면서 친해질 수 있었고 다음날이 모처럼 쉬는 날이라고 해서 초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주나디로부터 아침에 전화가 왔습니다. 사장님이 공장청소를 시켜서 도무지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일은 자주 있었고, 한 달에 겨우 두 번 쉬는 날 중 하루였던 그 날도 무려 오후 3시까지 계속 일을 해야했답니다. 돈을 벌기 이해 먼 이국 땅에까지 온 손님들에게 불법체류자이고 말이 잘 통하지 않음을 이용해 이렇게 못되게 구는 한국인들을 그들은 어찌 생각할까하는 생각에 심히 부끄럽고 답답했습니다.


이후 이들을 가끔씩 만나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인도네시아 말을 습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교본을 빌어 복사해 두었는데 게으른 탓에 아직도 들춰다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 여천은 남도 끝이라 그런지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기 힘들지만, 경기도의 수원이나 안산만 가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노동 목회 훈련을 받을 당시, 다니던 공장에서 만나본 사람들만 하더라도 중국인 한족 출신 청년인 유지명, 몽골 사진사 출신 저먼 등과 조선족 아주머니들이 여럿 있었지요. 여전히 그들은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안산 외국인 노동자선교센터를 방문했을 때 만난 사람들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조선족... 그들은 하나 같이 이주 노동자로 먼 한국 땅에 와서 매우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도 내일의 희망을 품고 하루 하루를 견뎌 내고 있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다중 접속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지는 불과 10 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제아무리 IMF가 터지고 나라 경제 꼴이 말이 아니라고 호들갑들을 떨지만, 아시아 우리 주변 나라들의 형편에 비하면, 그래도 한국은 매우 잘 사는 나라에 속한 게 분명합니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질서와 초국적 금융자본의 전횡 하에 가난한 나라들과 실직 노숙자 및 노동자들의 고통과 설움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눈부신 과학 기술문명의 발달은 정보통신 혁명을 가져오면서 인터넷과 같은 각 나라들의 경계마저 마음대로 드나드는 멀티미디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자본은 자신들의 이익과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경계든지 무너뜨리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기술 문명도 사실은 자본 지배의 의도 하에 운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에게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제러미 리프킨은 최근 『소유의 종말』을 펴내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그 책의 원제는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하여 지난 수백년 산업자본주의사회를 지배했던 개념은 물질적 "소유"였다면 이제 탈산업 자본주의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접속"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접속"은 문화생산이 지배하는 시대, 마지막 자본주의시대를 관통하는 원리로 문화적 자원과 체험을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말한다. 요컨대 접속은 단순히 인터넷 접속의 차원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관계의 핵심 원리로 작동될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가령, 미국 자동차 회사 가운데는 고객이 많은 돈을 들여 개인 승용차를 구입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일정한 비용만으로도 신형 모델 차가 나오면 계속 빌어서 쓰게 하는 전략을 구사하는데 이것이 점점 상용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영구적으로 소유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유치하고 촌스러운 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지요. 글쎄 리프킨의 주장이 얼마나 우리 현실에 타당한 것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매우 큽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중 접속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현실인 듯합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도 피부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조선 혁명가 김 산은 실존인물로 당시 보기 드문 영재였나 봅니다. 그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인물이었습니다. 작가 님 웨일즈가 맨 처음 그를 만나 취재한 것도, 중국의 어느 도서관에서 영어원서를 여러 차례 대출해간 조선인 청년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 산은 그 책에서 자신이 외국어를 잘하는 것에 대해서 "식민지 백성의 설움"으로 표현합니다. 식민지 백성의 망국민으로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녀야했기에 생존을 위해 외국어를 습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식민지 백성이 꼭 아니더라도, 타문화를 이해하고 그들 속에 파고 들어가기 위해 외국어는 막강한 힘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너도나도 선택 아닌 필수인 외국어 배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걸 봅니다. 심한 경우는 영어 발음 교정을 위해 아들의 혓바닥을 수술하는 극성스런 아줌마들도 있다니 참으로 놀랍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1999년『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써서 많은 논란을 일으킨 상명대 중문과 김경일 교수는 최근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는 책을 펴냈습니다. 서평을 읽어보니, 한국이 21세기에 세계 속으로 뻗어 나가려면 어서 속히 유교 문화적 폐습을 벗어나서 오랑캐 생존전략인 멀티컬쳐(다문화), 바이링구얼(2중언어)를 개인과 공동체적으로 구사해 나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법 자극적인 주장들이 많은 걸로 보아 『공자가 죽어야...』처럼 엇비슷하고 뻔한 주장으로 독자를 현혹시키고자 하는 측면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국제화 시대의 불안한 미래의 생존을 위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현대인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습니다. 김경일 교수의 주장처럼 사람들은 타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 다중언어 사용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배낭여행을 떠나고, 어학연수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다중 접속의 시대에 적응해 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부단히 애쓰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시대적 과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알고 보면, 성서에서 사도 바울처럼 멀티컬쳐, 바이링구얼 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한 인물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이방인을 위한 사도를 자처하며 소아시아를 누비며 3차에 걸친 선교 여행을 하였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거의 무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는데, 특히 바울의 주장 가운데는 근간을 흔드는 불순한 요소들이 많다고 생각했기에 더 그랬습니다. 더구나 바울은 예수의 직제자가 아니었고, 한때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대표적 인물이었지 않습니까? 게다가 바울은 역사적 예수를 직접 만나본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최대의 약점이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 야고보와 이방인 교회를 대표하는 바울은 필연적으로 대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할례나 율법에 대해 자유 했으나,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교와의 연속성을 고집하면서 할례와 율법에도 충실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차이가 불거져 촉발된 것이 예루살렘 공의회(행15장)입니다. 여기에 참석한 바울은 거의 죄인처럼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둘러싸여 손에 땀을 쥐며 자신의 주장을 변호해야했습니다. 겨우 야고보는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매어 죽인 것, 피를 멀리하는 것을 주의시킨 다음 할례 논쟁을 종결시켰습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무할례자에 대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불필요한 우월 의식은 계속 되었나 봅니다. 그 실례로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야고보가 보낸 사찰단에게 들킬까봐 식사 도중 자리를 잠시 피한 것을 놓고 사도 바울이 책망하는 걸 들 수 있습니다.(갈2:11~14)


바울이 진실로 위대했던 점은 스스로 율법에 철두철미했던 바리새인이었으면서도 일단 예수를 그리스도로 모신 다음부터는 놀랍게도 그 모든 율법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복음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펼칠 줄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고, 율법의 낡은 경계를 훌쩍 뛰어 넘어 버렸습니다. 물론 곳곳에서 만난 유대인들로부터 갖은 위협과 협박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는 자신의 믿음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아마 바울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당연하고 출신 자체가 유대를 벗어난 길리기아 다소였고,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 헬라철학과 당시 로마문화에 익숙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이 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새로운 지식에 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지식에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주님이 되실 뿐이지 어느 나라 사람이냐 어떤 신분에 속했느냐 남자냐 여자냐 하는 인간의 못된 구별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발견한 하나님의 새로운 모습이요 그 분의 시대적 경륜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이 세계 문화와 한껏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속에서 얼마나 열린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예수 안에서 자유인이 되어있습니까?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접속을 하면서 과연 그들과 함께 대화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기쁘게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오늘 바울이 전하는 말씀처럼, 하나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 질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합당한 지식에 이르고 다중접속의 시대의 방향을 선도해 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210.206.109.209 박인조: 말씀에 귀한 도전 받습니다. 나의 생각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해요!  [08/29-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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