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11/30(월)
희망의 문을 열라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왔다. 슬로브핫은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의 가족으로서, 헤벨의 아들이요, 길르앗의 손자요, 마길의 증손이요, 므낫세의 현손이다.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이다. 그들은 회막 어귀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도자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호소하였다. “우리의 아버지는 광야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거역하여 모였던 고라의 무리 속에 끼지는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다만 자신의 죄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가족 가운데서 아버지의 이름이 없어져야 한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 아버지의 남자 친족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때에, 우리에게도 유산을 주시기 바랍니다.
                                                               <민 27:1-4>


차별을 폐하라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여성비하 발언을 하여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진행자가 “후계 달라이 라마가 여성이 될 수도 있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여성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며 그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도 만일 여성이 자신의 후계자가 되려면 “매우, 매우 매혹적이어야 한다(must be very, very, attractive)”고 말했습니다. 진행자가 “달라이 라마로 환생한 여성이 매혹적일 것이란 의미냐?”고 묻자, “달라이 라마가 여성으로 환생한다면 아주 매혹적이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쓸모없을 것이란 의미”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런 달라이 라마 발언이 알려지자 여권 운동가들은 “여성의 리더십 승계 핵심 요건이 어찌하여 외모로 결정되어야 하느냐”며 몹시 실망스럽다는 반응입니다. 하지만 역대 티벳의 달라이 라마 가운데 여성이 한 명도 없었고, 초기 불교에서부터 여성 수도자들에 대한 차별이 심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오늘날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의 경우도 여성은 아예 그 후보자에 오를 수도 없는 구조입니다. 더욱이 수녀는 아무리 학식과 덕망, 탁월한 영성가로 인정받을지라도 사제가 될 수 없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몇몇 보수교단도 여성 목사 제도를 여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고의 깨달음과 진리를 믿고 실천한다는 종교들이 이처럼 시대착오적 성차별 의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아쉬운 일입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나 실질적인 여남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여성의 상속권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문득 한국의 여성 상속권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궁금해 자료를 살펴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재산을 상속할 때 “자녀 균분 상속”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더군요.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가 조선시대에 비해 높았다는 사실은 막연히 알고 있었으나 상속에 있어 남녀차별이 없었다는 점은 그동안 전혀 몰랐습니다. 아들이나 딸이 균등하게 상속받는 상속의 관습은 18세기 중엽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 이후부터는 유교의 가부장제 영향으로 장남을 우대하여 상속하는 관습이 생겼으나 법전의 규정에 있어서는 여전히 남녀 동등한 상속 권리를 보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장남 혼자서 모든 유산을 상속받는 일본의 상속법이 적용되었고 그 결과 “자녀 균분 상속”의 오랜 관습이 깨졌다고 합니다. 장남 위주의 상속과 딸을 차별하는 상속 관행은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대체로 70년대 중후반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고려시대보다 훨씬 후퇴한 상속 관행이 불과 삼십 여 년 전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이는 여성의 권리가 항상 진보하는 건 아니고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굴곡의 과정을 겪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이미 성경에서도 그런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목회서신 중 하나인 디모데전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여자는 조용히, 언제나 순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딤전 2:11-12) 여성 차별적인 매우 악명 높은 구절입니다. 디모데전서는 필자를 사도 바울로 밝히고 시작하기에 이런 대목 때문에 바울을 싫어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바울 이후에 그를 존경하는 자들이 그의 이름으로 기록한 소위 ‘위명문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갖 차별을 없애고자 힘썼습니다(갈 3:28). 불행히도 그의 뜻과는 달리 후대로 갈수록 교회의 여성들을 차별하는 세력이 득세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해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차별적 가르침은 예수님의 복음정신이나 바울의 가르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오히려 역행하는 것입니다. 여성들 스스로 복음정신에 터하여 교회의 그릇된 성차별적 관행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과감한 권리요구

 슬로브핫의 딸들은 소외된 여성들의 과감한 권리 주장과 쟁취에 대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이례적으로 그들 이름을 세 차례나 기록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인구조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의 수를 헤아릴 때 나오는 각 가문의 주요 족보에 나옵니다. 즉 26장 33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에게는 아들이 없다. 그에게는 오직 딸들만 있는데,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이다.” 인구조사에서 언급하는 자손들을 보면 각 씨족의 대표 격인 인물들입니다. 슬로브핫은 요셉의 맏아들인 므낫세의 자손에 속하고 므낫세로 따지자면 ‘현손’ 곧 손자의 손자입니다. 그의 아버지 헤벨도 씨족장인데 그 가운데 슬로브핫만 아들 없이 딸만 다섯 낳았나 봅니다. 그렇다고 딸들의 이름을 굳이 낱낱이 기록할 이유는 없습니다. 므낫세 지파에 속한 자들이 오만 이천 칠백 명에 달하는데 그 가운데 슬로브핫이 딸부자집이라고 해서 그 딸들 이름을 다 알려줘야 할 필요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성서 기자가 슬로브핫이 아들 없이 딸들만 다섯 있었다며, 그 딸들 이름을 미리 슬쩍 알려준 까닭은 오늘 본문에서 그 딸들을 등장시키기 위한 예비 작업입니다. 본문 27장 1절은 다시금 슬로브핫의 딸들 이름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그리고 36장 11절에서 세 번째로 그들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이처럼 민수기가 세 차례나 슬로브핫의 딸들 이름을 말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 이름이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슬로브핫의 다섯 딸’이라고만 하였겠지요.

그들이 대체 무엇을 하였기에 민수기는 세 차례나 그 이름을 거명할까요? 슬로브핫의 딸들 곧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가 한 일은 한마디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산을 자신들에게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산이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분배받게 될 토지를 의미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요구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들이 없이 딸만 있는 집안의 유산은 친족들에게 넘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오직 남자만 상속이 가능한 ‘부계상속’의 전통 때문입니다. 그런데 슬로브핫의 다섯 딸은 “이건 부당하다, 우리 아버지가 단지 아들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유산을 다른 친족에게 넘겨야 한다면 우리 같은 딸들은 어떻게 살란 말이냐?” 이런 주장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그들은 뒤에서 쑥덕거리며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회막 어귀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도자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호소”하였습니다. 강력한 가부장제가 통용되던 시대에 여자들이 그것도 딸들이 나서서 상속의 권리를 주장하였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목숨을 걸 정도의 용기를 내야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슬로브핫의 다섯 딸 가운데 누가 먼저 그런 요구를 하자고 제안하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마음을 합하여 회막 어귀로 나아가 이스라엘의 오랜 유산 상속 관행과는 배치되는 요구를 용감히 하였습니다. ‘회막’은 하나님의 법궤가 모셔져 있고 모세가 주님과 만나는 곳입니다. 말하자면 성전과도 같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회막 앞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이 사안에 대해 주님의 판단을 직접 받아보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모세는 자의적 판단으로 재판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직접 물어 그 결정을 전달합니다. 주님은 슬로브핫 딸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 아들 없이 딸만 둔 채 사망하면 그 유산을 딸들에게 상속시키라고 하십니다. 이로써 슬로브핫 딸들이 요구해 얻은 상속권은 모든 이스라엘 여성에게 두루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즉 그들은 자신들과 그 가족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여성의 대변자 노릇을 한 격입니다. 슬로브핫 딸들의 권리 요구로 아들 없는 집의 딸들도 상속권을 얻었으나 얼마 후 다른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그 딸들이 다른 지파에 시집가면 상속받은 유산이 그 지파로 넘어가 한 지파의 땅이 줄어든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유산을 상속받은 딸들은 자기 지파 내부의 친족들에게 시집을 가야한다는 제한 규정이 생겼습니다. 결혼한다고 해서 여자가 상속받은 재산을 갖고 꼭 남편의 지파로 넘어가지 않고 남편이 여자가 사는 지파로 넘어오면 될 건데 아직 거기까지는 상상하기 힘든 시대였나 봅니다.


문을 열어라

 슬로브핫의 딸들이 살던 고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성들은 남자들의 그늘 아래서 자신들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만 해도 호주제가 폐지된 게 지난 2008년입니다. 그 전까지는 민법상 ‘호주’는 남자만 가능하였습니다. 호주제 폐지 이전의 법령(민법 778조)은 호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일가의 계통을 승계한 자, 분가한 자 또는 기타의 사유로 인하여 가를 창립하거나 부흥한 자는 호주가 된다.” 이 법령에 의하면 여자는 한 집안을 잇거나 창립할 자격 자체가 없습니다. 그저 남편이나 장남에 종속되는 위치에 있는 존재였습니다. 구미 선진국들에서도 결혼하면 부인이 남편의 성씨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해고가 더 쉽게 되고 출산 이후 더 질 나쁜 일자리에 종사해야 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그만큼 여남 평등을 위해 아직 풀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사실 슬로브핫의 딸들의 사례만 해도 그들이 ‘아버지의 이름 보존’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 않았다면 그들의 권리 주장이 관철되었을지 의문입니다. 또한 토지가 남의 지파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결혼을 친족 내부로 제한 당하였다는 사실은 그들이 쟁취한 권익신장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슬로브핫의 딸들은 오랜 관행과 기성체제에 굴종하지 않고 당당히 그들의 권리를 요구하여 그것을 얻어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딸들이 더욱 당당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권리를 찾기를 바랍니다. 단지 개인의 편익만이 아니라 소외된 다른 여성들과 사회의 건강성 회복,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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