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11/30(월)
칼의 벌판에서  

어느 날, 넬의 아들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마하나임을 떠나 기브온으로 갔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도 다윗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서서, 서로 맞붙게 되었다. 한 편은 연못의 이쪽에, 또 한 편은 연못의 저쪽에 진을 쳤다. 그 때에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다. “젊은이들을 내세워서, 우리 앞에서 겨루게 합시다.‘ 요압도 그렇게 하자고 찬성하였다. 젊은이들이 일어나서, 일정한 수대로 나아갔는데,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쪽에서는 베냐민 사람 열두 명이 나왔고, 다윗의 부하들 가운데서도 열두 명이 나왔다. 그들은 서로 상대편 사람의 머리카락을 거머쥐고, 똑같이 상대편 사람의 옆구리를 칼로 찔러서, 모두 함께 쓰러져 죽었다. 그래서 기브온에 있는 그 곳을 헬갓핫수림, 곧 ‘칼의 벌판’이라고 부른다. 그날에 싸움은 가장 치열하게 번져 나갔고, 결국 아브넬이 거느린 이스라엘 군대가 다윗의 군대에게 졌다. <삼하 2:12-17>


휴전선 무력충돌

 지난 8월 4일 오전 7시 40분경, 경기도 파주의 DMZ에서 두 차례 지뢰가 폭발해 수색하던 국군 두 명이 심한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폭발사고가 난 곳은 남측 추진철책 통문 바로 앞입니다. 이 통문은 수색 병력이 작전을 위해 종종 드나드는 곳입니다. 그런데 북한군이 정전협정을 어기고 몰래 목함지뢰를 매설해 이 같은 폭발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정부는 이 사건을 북한군의 도발로 규정하고 책임자 처벌과 사과를 요구하였으나 북한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하였다는 동영상 증거가 있으면 내놔보라고 합니다. 이렇게 남북한 양측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는 가운데 국군은 대북 심리전을 위한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지 11년 만에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17일부터는 ‘을지 프리덤가디언(UFG)'이란 한․미 군사훈련도 개시한 상태입니다. 그 사이 20일(목)에는 경기도 연천군 DMZ 야산에 북측이 4발의 포격을 가했습니다. 군사분계선 부근의 민통선 주민들은 북한이 쏜 포격 소릴 들은 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군의 포부대에서 북한의 포격을 감지하였고 이에 대해 국군은 자주포 29발로 대응하였습니다.

이 같은 남북한의 군사충돌로, 북한은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였고 남한의 국방부는 ‘진돗개 하나’(국지전 방어를 위한 최대 비상경계 태세)를 발령하였습니다. 급기야 북한은 어제 오후 5시까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개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처럼 일촉즉발의 군사충돌로 치닫던 양측은 판문점 고위급 회담을 열어 가까스로 협상의 물꼬를 텄습니다. 지난주가 광복 70주년인데 최근 남북의 긴장 고조는 하나님과 독립운동가, 온 세상 앞에서 심히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광복 70년이 다되도록 화해, 교류, 협력은 못할망정 대체 왜 이러고 있는지 답답할 노릇입니다. 가장 오염이 덜하고 평화로워야할 ‘비무장지대’가 어느 덧 지뢰폭발과 폭격, 대북 심리전 확성기의 소음으로 시끄럽습니다. 구약외경 지혜서에는 “불의한 자가 분노하며 지혜에게 등을 돌리더니 광분하여 제 동기를 살해한 탓에 죽어 없어지고 말았다.”(지 10:3)는 구절이 있습니다. 남북한이 이런 때일수록 광분을 가라앉히고 함께 헤쳐 나갈 하늘의 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갈라진 왕국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길보아 언덕에서 블레셋 군대에 맞서 격전을 벌이다가 그의 세 아들과 함께 사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떠난 상태임에도 국왕으로서 어떻게든 이스라엘을 지켜내고자 몸부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조가에서 “원수들을 치고 적들을 무찌를 때에, 요나단의 활이 빗나간 일이 없고, 사울의 칼이 허공을 친 적이 없다.”(삼하 2:22)고 노래하며 두 용사의 죽음을 애도하였습니다.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였으나 온 이스라엘이 곧바로 다윗의 수중에 들어가진 않았습니다. 물론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유다 지파에 속한 헤브론에 수도를 정하고 거기서 유다 지파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전투에 능한 장군 출신이라 사울 왕과 그의 세 아들이 없는 온 이스라엘을 장악해 왕이 되기란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았습니다. 사울에게는 이스보셋이란 아들이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또 사울 왕의 오른 팔 노릇을 하던 아브넬이란 군사령관도 건재하였습니다. 더욱이 열 지파의 백성들도 다윗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사울은 자기 세 아들과 함께 목숨 바쳐 블레셋 군대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습니다. 반면 다윗은 블레셋 가드왕 아기스의 수하에 들어가 한동안 봉신 노릇하던 자입니다. 비록 다윗이 다시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선뜻 맞아들이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유다 지파만이 같은 혈육이라고 다윗을 왕으로 겨우 인정하였을 뿐입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데 무엇보다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아브넬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일찍부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추격을 받으며 십 광야에 은신해 살 무렵입니다. 그곳 주민 가운데 어떤 사람이 사울 왕에게 다윗이 은신한 곳을 밀고하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다윗은 군벌생활을 하였기에 그를 따르는 부하들을 먹여 살리느라 노략질을 많이 하였습니다. 다윗의 은신처를 사울 왕에게 밀고한 주민은 그 피해자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울이 군대를 이끌고 다윗의 은신처 근처에 진을 쳤을 때 다윗은 두 명의 부하를 이끌고 한밤중 사울의 진에 틈입합니다. 가서 보니 아브넬과 군졸들이 누워 있는데 그 중앙에 사울 왕은 창을 땅에 꽂아 놓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다윗의 부하 아비새가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라며 당장 창으로 찔러 한 번에 죽이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주님께서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운 자를 함부로 죽이다간 큰 벌을 받는다며 말립니다. 대신 사울의 창과 물병만을 들고 빠져나왔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다윗은 산에 올라 큰 소리로 아브넬에게 호통 칩니다. “아브넬아, 네가 언제까지 잠만 쿨쿨 자려느냐? 네가 잠자는 사이 네 상전인 왕을 범하려고 군인 한 명이 진에 침투하였다. 자, 보아라. 여기 네 상전의 물병과 칼이 있다. 네 상전이 왕을 죽이러 진에 들어간 자가 있는데도 너와 경비병은 그것도 모르고 대체 뭘 하였단 말이냐? 왕을 지켜드리지 못하였으니 너와 경비대는 죽어 마땅하다.”(삼상 26:15-16) 아브넬은 다윗의 이런 호통에 간담이 서늘하였을 것입니다. 다윗의 외침은 “경호의 책임을 물어 아브넬을 사형에 처하라”고 사울 왕을 압박하는 말입니다. 아브넬이 사울 왕이 사망하였다고 해서 그런 다윗을 어찌 대신 왕으로 섬기겠습니까? 그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다윗에 맞섰습니다.


피로 물든 벌판

갈라진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군대는 기브온에서 첫 접전을 벌입니다. 유다의 군대의 지휘관은 요압이었고 이스라엘 군대는 아브넬이 통솔하였습니다. 요압 장군은 다윗의 누이인 스루야의 둘째 아들입니다. 아브넬은 사울 왕과 할아버지가 같은 사촌지간이었고요. 따라서 요압과 아브넬이 기브온에서 벌인 전투는 좁게 보면 다윗과 사울 집안의 자존심을 건 혈전이고 넓게 보면 이스라엘과 유다 지파의 동족상잔 전쟁이었습니다. 두 왕국의 군대는 영역을 넓히고자 시도하다 기브온 연못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브온의 큰 연못’은 예레미야서에서도 언급합니다(렘 41:12). 실제로 고고학 발굴에 의해 주전 12세기경 건설된 기브온의 성벽 흔적과 커다란 둥근 수장고가 존재하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군대가 왜 하필 기브온 연못가에서 싸웠을까요? 기브온 족속은 가나안 원주민으로서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과 일찍부터 화친을 맺어 살아남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길갈에 진치고 있던 여호수아 장군을 만나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비록 얕은 속임수를 쓰긴 하였지만 무자비한 살육전을 피하고 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 지혜로운 처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와 이스라엘 군대는 어리석게도 바로 그 기브온 땅에서 동족 간에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을 벌입니다.

먼저 아브넬의 제안에 따라 양측에서 열두 명의 전사가 단도를 들고 싸우게 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서로 상대편 사람의 머리카락을 거머쥐고, 똑같이 상대편 사람의 옆구리를 칼로 찔러서, 모두 함께 쓰러져 죽었다.”(삼하 2:16)고 했습니다. “무슨 싸움을 이처럼 무식하게 할까? 너무 비현실적이다.” 이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에서 두 전사가 서로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단도로 서로의 배를 찌르는 장면을 그린 부조가 발견되었습니다. 즉 이게 고대의 전쟁 방식 가운데 하나였던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의 사례가 그렇듯, 고대 근동의 전쟁은 양측 군대에서 가장 싸움 잘하는 자를 뽑아 서로 육박전을 벌이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아브넬과 요압이 열두 명을 뽑아 내보낸 까닭은 “누가 열두 지파를 차지할 것이냐”를 다투는 전쟁이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렇게 24명이 죽어 그 피가 기브온 연못을 적시는 데서 시작한 유다와 이스라엘 군대의 혈전은 아브넬이 휴전을 제안하자 겨우 끝났습니다. 아브넬은 요압에게 휴전을 제의하며 말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싸워야 하겠소? 이렇게 싸우다가는, 마침내 우리 둘다 비참하게 망하고 말지 않겠소?”(삼하 2:26). 왜 이런 생각을 양측이 큰 피해를 보고 나서야 하는 것일까요? 전쟁은 그 참혹한 파괴와 살상 피해를 생각할 때 아무리 이겼다고 해도 이긴 게 아닙니다.


칼을 거두라

 본문은 유다와 이스라엘 군대에서 뽑힌 24명의 전사가 서로를 칼로 찔러 함께 죽은 기브온의 벌판을 ‘헬갓핫수림’ 곧 ‘칼의 벌판’이라고 전해줍니다. 함께 살 길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서로의 자존심 대결을 벌이다가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고야 휴전한 이 어리석은 전쟁을 떠올리며 후세에 두고두고 교훈을 얻으라는 취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의 한 동네가 그들을 맞아들이지 않자 야고보와 요한은 “저 버르장머리 없는 동네, 다 불살라 버릴까요?”라고 말하며 몹시 분개합니다. 자신들의 누이를 건드렸다고 세겜 족속을 대대적으로 살육한 야곱의 두 아들, 시몬과 레위를 보는 듯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시고 그냥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눅 9:55-56). 겟세마네에서 체포되실 때 베드로가 칼을 빼어 저항하자,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다 망한다.”(마 26:52)며 그를 제지하신 적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 부르실 것이다.”(마 5:9)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끝까지 ‘비폭력 평화’의 길을 고집하셨고 그런 삶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하십니다. 십자가의 희생으로 평화의 길을 내신 예수님을 따라 어리석은 전쟁의 망령을 떨치고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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