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11/30(월)
너 무엇 하느냐?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서,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인 호렙 산에 도착하였다. 엘리야는 거기에 있는 동굴에 이르러, 거기에서 밤을 지냈다. 그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 크고 강한 바람이 주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에 불이 났지만, 그 불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도,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서,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다. 바로 그 때에 그에게 소리가 들려 왔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주님게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라. 그리고 아벨므홀라 출신인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하사엘의 칼을 피해서 도망하는 사람은 예후가 죽일 것이고, 예후의 칼을 피해서 도망하는 사람은 엘리사가 죽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놓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이다.” <왕상 19:8-18>



갈멜산의 낭떠러지

 얼마 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계속되는 경기 부진으로 팬들로부터 “더 이상 추한 모습 보이지 말라.” “이럴 거면 차라리 퇴진하라” 따위의 거센 항의에 시달린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골프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도 ‘타이거 우즈’라는 이름 정도는 대부분 들어봤을 겁니다. 프로 골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오랫동안 세계 1위를 차지한 선수이니 말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우즈는 1997년, 세계 골프대회 중 가장 권위 있다는 마스터스 토너먼트 대회에서 세계 1위를 한 뒤 2014년 5월까지 무려 683주간이나 그 1위를 거의 놓쳐 본 적이 없는 선수입니다. 그는 두 살 때부터 골프를 배우기 시작해 ‘골프 신동’이란 소리를 듣고 자랐고 프로 골퍼로 맹활약하며 긴 세월 골프계 황제로 군림해왔습니다. 이런 우즈가 두 차례의 무릎 수술과 불륜 스캔들로 잠시 골프를 중단하다 2010년 복귀하였으나 실력 부진이 눈에 띄게 계속되었습니다. 급기야 최근 몇 차례의 대회에서는 기권을 하거나 ‘컷 오프 탈락,’ 즉 “1-2 라운드의 성적이 70위 안에 들지 못해 3-4라운드에 출전을 못하는 일”들마저 거듭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랜 세월 골프 황제였던 그의 성적은 세계 랭킹 258위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골프를 그만하고 레스토랑을 차려 운영할 계획이라는데 황제 골퍼치고는 너무 초라한 퇴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공하기보다 더 어려운 일은 그 성공을 유지하는 것”임을 실증해 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목표한 어떤 것을 천신만고 끝에 이루었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잠깐의 성공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가령 다윗은 긴 세월 산전수전 다 겪은 다음 마침내 통일왕국의 왕위에 올랐으나 불과 얼마 안지나 밧세바와의 간통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는 자만하여 해이해진 탓에 지뢰를 밟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예언자를 보내어 다윗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다가 네 아내로 삼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대로 다윗의 밧세바 간통사건은 그와 집안에 큰 올무가 되었습니다. 인생 자체가 마라톤과 같은데 잠깐의 성공과 실패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십시다.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꾸준히 달려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성공했다고 너무 자만하지도 말고 실패했다고 세상 다 끝난 듯 좌절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달려 가야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 시절 혜성 같이 나타난 예언자입니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이스라엘의 가뭄을 선포합니다. “내가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비는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왕상 17:1) 사람들은 “웬 미치광이가 나타나 헛소리하나”하며 처음에는 무시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삼년 육 개월이나 우기가 와도 비가 내리지 않자 엘리야 예언의 위력을 실감하였고, 가뭄과 기근이 극심해지자 다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엘리야를 잡아 죽이고 싶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엘리야는 가뭄이 계속되는 기간 동안 줄곧 숨어 지내야 하였습니다. 드디어 그가 아합 왕을 만났을 때 아합은 “그대가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요?”(왕상 18:18)라고 첫 마디부터 힐난합니다. 이스라엘이 오랜 가뭄으로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아세라 예언자 850명과 갈멜 산에서 대결한 사건은 유명합니다. 이 사건으로 바알-아세라 신이 우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엘리야는 바알-아세라 예언자들을 몰살시켰습니다. 바알 신은 가나안의 토착 농경 신이자 폭풍우의 신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은 풍년과 풍요를 주는 신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신들은 삼년 육 개월 간이나 가뭄에 속수무책이었고, 갈멜 산 대결에서 야웨 하나님과 달리 불과 비도 전혀 내리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누가 참 신을 섬기는지 가리는 대결은 엘리야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이 대결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갑작스레 큰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승리를 기뻐할 겨를도 잠시, 소식을 들은 왕후 이세벨이 대노하여 “내일까지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며 호언장담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엘리야는 이 전갈을 받자 “몹시 두려워하며 급히 일어나 도망쳐”버립니다. 하나님의 예언자가, 그것도 바알-아세라 예언자 850명을 혼로 격파한 예언자가 목숨 하나 부지하겠다며 줄행랑친 겁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도 아닌 시돈 출신의 왕후 이세벨의 칼이 두려워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갈멜 산의 승리로 바알-아세라 숭배를 끝장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현실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갈멜 산에서 거둔 큰 승리가 당장 무색해지는 순간입니다.


동굴 밖으로

엘리야가 어디까지 도망쳤느냐면 유다왕국의 최남단 ‘브엘세바’까지 갑니다. 사마리아에서 브엘세바라면 굉장히 먼 거리입니다. 그는 북왕국 사마리아에서 유다왕국으로 넘어간 것만도 도저히 안심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합 시대 북왕국과 남왕국은 우호관계였기에 더 그랬을 겁니다. 엘리야는 브엘세바에서마저 멈추지 않습니다. 거기에 그의 시종을 남겨 놓고 혼자서 광야로 하룻길을 더 들어갑니다. 엘리야가 처음부터 호렙 산에 가려고 그랬는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는 싸리나무 일종인 ‘로뎀나무’ 아래 앉아 하나님께 “제발 이제 그만 죽여 달라”고 간청하고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그늘 한 점 찾기 힘든 광야 길을 제대로 쉬거나 먹지도 못하고 온 종일 걸었으니 노독과 허기, 갈증이 겹쳐 쓰러진 것으로 보입니다. 폭군 아합 앞에서도,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 850명 앞에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던 예언자가 너무도 급격히,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찬송가 446장 3절 가사에 “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기쁘나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왜 이렇게 추락하고 말았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이세벨의 칼을 더 두려워하여 스스로 주님을 멀리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자, 그것도 아합과 이세벨의 야웨종교 박멸 정책으로 겨우 혼자 남은 ‘야웨의 투사’가 갈멜 산에서 잠깐 승리하자마자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진 모양새입니다. 이제 엘리야는 모든 힘과 의지가 고갈되어 살아 있으나 죽은 자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영적 충전이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주님은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를 깨우시고 그에게 구운 빵과 과자를 주어 기운을 차리게 하십니다. 엘리야는 처음에는 먹고 마신 뒤 다시금 잠이 들고 맙니다. 천사는 다시 와서 그를 흔들어 깨우며 말합니다. “일어나 먹으라. 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았다.” 엘리야는 로뎀 나무 아래를 자신의 무덤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할 만큼 하였으니 여기서 그의 인생은 끝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일어나 먹으라, 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았다”며 새 목적지를 제시합니다. 그곳은 그의 조상 모세가 주님을 만난 곳이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체결한 호렙 산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기운을 차려 밤낮 사십 일을 걸어 호렙 산에 당도합니다. 물론 브엘세바에서 하룻길 광야로부터 호렙 산까지 사십 일이 걸릴만한 거리는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십’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자 시내 산에 올라 사십일을 보냈다는 표현처럼 하나님의 산에 다가서는 상징적 ‘완전수’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는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려다 의분에 못 이겨 살인을 저지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친 바 있습니다. 거기서 사십 년간 목자 생활을 하다가 호렙 산에 올랐을 때 주님을 만났습니다. 엘리야도 비슷합니다. 그는 야웨신앙을 회복시키고자 홀로 싸우다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호렙 산에 이르렀습니다.  

엘리야가 호렙 산의 어느 동굴에 들어가 밤을 지새우는 동안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엘리야는 그간의 상황을 간략히 아뢰며 이세벨의 추격을 피해 여기에 이른 자신의 기막힌 처지를 하소연합니다. 주님은 엘리야를 동굴 밖 산 위에 있으라 하시고 그 앞에 지나가시겠다고 하십니다. 처음엔 ‘크고 강한 바람’이, 두 번째에는 ‘지진’이, 세 번째에는 ‘불’이 나타나 산을 할퀴고 바위를 쪼개고 뒤흔들며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고 그 모든 것이 지난 뒤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고 주님은 앞서 말씀하신 똑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세벨의 칼을 피해 멀리 멀리 달아난 끝에 자신의 내면 동굴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엘리야를 주님은 동굴 어귀로 이끌어내십니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 너의 예언 활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많다.” 엘리야는 스스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판단은 전혀 달랐습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너의 생명을 주관하는 자는 나다. 네게는 아직 남은 사명이 있다. 동굴 밖으로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새로운 시작

조금 힘들고 짜증난 일만 생겨도 세상 다 끝난 것처럼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일을 아직 시작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다메섹의 하사엘을 새 왕으로, 이스라엘의 군사령관 예후를 왕으로,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후계 예언자로 각각 세우라고 엘리야에게 명하십니다. 세 가지 모두 이스라엘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굉장히 중요한 사명입니다. 엘리야는 그의 생전에 마지막 세 번째 사명인 자신의 후계자로 엘리사를 세우는 일만을 겨우 완수하였습니다. 나머지 두 가지는 그의 후계자 엘리사가 수행합니다. 보십시오. 엘리야는 자신의 할 일이 다 끝난 것처럼 행동했지만, 그는 주님의 특명조차 끝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불볕더위가 계속되는 동안 로뎀 나무 아래 쓰러진 엘리야처럼 되진 마십시다. 그런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생명의 양식으로 기운을 차리고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가 막다른 골목이라 생각하는 그 자리는 영적 재충전이 절박한 때입니다. 주님과의 깊은 만남으로 사명을 재확인해야할 시기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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