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10/1(목)
권세와 복종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치안관들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두려움이 됩니다.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은 여러분 각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나쁜 일을 저지를 때에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공연이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나쁜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진노를 두려워해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생각해서도 복종해야 합니다. 같은 이유로 여러분은 또한 조세를 바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을 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십시오. 조세를 바쳐야할 이에게는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해야 할 이는 두려워하고, 존경해야할 이는 존경하십시오. <롬 13:1-7>



오래된 함정

 일본 개신교 사상가이자 김교신과 함석헌 선생에게 큰 영향을 끼친 우찌무라 간조(1861-1930)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평신도 신학자로서 도쿄에서 매주일 성경을 강의하였는데 김교신 선생은 이 강의를 7년간 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배운 성서 지식을 바탕으로 귀국하여 <성서 조선>이란 잡지를 펴낸 것입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로마서를 깊이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가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본문을 어떻게 해설할지 궁금해 살펴보았습니다. 우찌무라는 바울이 로마서 13장에서 말한 ‘권세복종’은 “사실상 로마정부에 대한 복종을 권면한 것”이라며 당시 로마정치는 “지상의 정치로는 가장 완비된 정치”였다고 평합니다. 로마 ‘완비된 정치’ 덕분에 기독교의 복음도 세계에 널리 전파되었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일본의 정치에 대해서는 “생명재산의 안전, 신앙의 자유, 사상의 자유”등을 보장하는 것을 볼 때 “대체로 비교적 선정(善政)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우찌무라가 로마서를 강의한 때는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시기였습니다. 한데도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가이자 양심으로 손꼽히는 그가 이렇게 제국의 시각에서 무비판적 평가를 내린 사실을 보면 실망스럽습니다. 로마제국과 일본제국의 지배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현실이 전혀 달리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장의 ‘권세복종론’은 불의한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저항의지를 꺾고 지배자들에 대한 국민의 굴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오랜 세월 악용되어왔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의 경우 16세기말부터 17세기까지 왕권신수설에 따른 절대왕정시대를 거쳤습니다. 왕권신수설이란 왕의 권한은 신이 부여한 것이라며 왕의 절대 권력을 주장하는 학설을 말합니다. 이 왕권신수설의 대표적 근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로마서 13장의 ‘권세복종론’이었습니다. 왕권신수설에 의하면 “왕권은 신이 주신 것이라 제한이 없고 신하들은 무조건 복종해야하며 왕권에 저항하는 자들은 그 자체가 신성모독”에 해당합니다. 설령 왕이 폭정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알아서 심판할 일이지 국민이 비판할 권리는 없다고 봅니다. 이는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것”이고 “그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라며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로마서 13장의 권세복종론에 기초합니다. 절대왕정시대만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이 본문을 내세워 그리스도인들의 정치참여나 사회비판을 가로막는 교회 지도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주님을 위하여 복종하십시오. 주권자인 왕에게나, 총독들에게나, 그렇게 하십시오.”(벧전 2:13-14)라고 권고한 베드로전서의 구절도 여기에 활용합니다. 성경에 절대 권위를 두는 사람들은 이런 성경 구절들을 들이대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로 압니다. 권세에 대한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마음으로 삭히며 그저 조용히 기도하는 것을 최선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온 내용이라고 해서 반드시 다 옳은 건 아님을 유념해야 합니다. 가령 앞서 언급한 베드로전서에는 “하인으로 있는 여러분, 극히 두려운 마음으로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선량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만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그리하십시오.”(벧전 2:18)라는 권면도 나옵니다. 이 구절은 과거 노예제도 옹호론자들이 단골메뉴처럼 끌어다 쓰던 악명 높은 본문입니다. 오늘날 이 성경구절을 문자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시대 상황이 변했고 사회의식이나 성경에 대한 이해 자체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현실적 선택

그래도 다른 사람이 아닌 사도 바울의 권고라면 그대로 따라야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물론이고 예수님의 교훈일지라도 그것이 시대적 적실성을 상실했다면 현실의 삶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가령 마가복음 16장 말미에는 부활의 예수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고 나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징들이 따를 터인데, 곧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들며, 독약을 마실지라도 절대로 해를 입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막 16:17-18) 미국 애팔래치아에는 이 말씀대로 실천하려 드는 ‘스네이크 핸들러’로 불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배 도중 살무사 같은 뱀을 손으로 집어 드는 의식을 행하다가 번번이 사망사고를 낸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덮어놓고 무조건 따르다가는 이런 꼴이 되고 맙니다. 왜 그 말씀을 하셨는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깊이 깨닫는 일이 우선입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며 권세를 거역 말고 잘 따르라 권고한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왜 이런 말씀을 하였는지 그 배경과 맥락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그의 생애 말년인 주후 57~60년경 로마서를 썼습니다. 로마교회는 주후 49년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유대인 추방령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 있습니다. 유대인들 내부에서 종교적 분쟁이 일어나자 클라디우스 황제는 그들을 로마 밖으로 추방하였고 이때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도 쫓겨나 고린도 지역으로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주후 54년 네로 황제의 칙령으로 다시 로마로 들어왔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로마서를 쓸 무렵에는 추방당했던 유대인들이
돌아온 지 불과 삼년 가량 밖에 되지 않은 시점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또다시 종교적 분쟁이나 납세 따위의 문제로 당국의 관리들과 충돌을 빚는다면 로마지역 선교는 불가능해지고 신자들의 생존도 위협당할 것입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바울은 로마정부의 권세를 인정하고 세금납부도 충실히 하라고 독려합니다. 공권력의 눈 밖에 나는 일을 최대한 줄이고자 권세복종론과 같은 내용의 권면을 하였으리라고 봅니다. 그는 치안관들과 조세나 관세를 받는 자들을 언급합니다. 그들을 “각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라 추켜세우기도 하였습니다. 네로 황제는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세금에 대한 특혜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헬라인들과 유대인들 간에 사이에 갈등이 생겨났습니다.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교회가 큰 시련을 겪을게 틀림없었습니다. 그것을 감지한 바울은 공권력을 최대한 존중하고 마찰을 빚지 말라고 주의를 당부합니다. 사실 바울은 로마제국과 최대한 갈등을 빚지 않고자 노력하였고 체포되어 로마로 후송되는 과정에서도 로마 관리들의 도움을 여러 차례 받습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뒤 2년간 셋집에 지내면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행 28:30-31)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로마제국에 위험한 세력이 전혀 아님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바울의 친로마적 성향과 복음 전파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고대하는 유대 민족주의자들에겐 몹시 기분 나쁜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틈만 나면 바울의 선교를 훼방하고 그를 죽이려 들었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의해 소요가 일어나곤 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로마제국에 굴복해 적당히 타협했다는 섣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경우도 1차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성읍이 평안을 누리도록 노력하고 그 성읍이 번영하도록 나 주에게 기도하여라. 그 성읍이 평안해야, 너희도 평안할 것이기 때문이다.”(렘 29:7-9)는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바벨론 제국에 맞서 싸우라는 예언 대신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 지역에서 뿌리내리도록 노력하고 성읍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라는 현실적 태도를 취합니다. 바울의 입장도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교가 이제 막 태동하는 중인데 벌써 로마 당국의 눈 밖에 나서 박해의 타깃이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토록 조심했음에도 바울은 로마제국에 의해 사형당하고 맙니다. 그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로마제국의 사형수였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회는 세속의 불의한 권세와 엄격한 정교분리을 내세우며 언제까지나 좋게 지낼 순 없습니다.


복종은 주님께

 비록 사도 바울이 권세들에 복종할 것을 명하였지만 그는 ‘불의한 권세’에 대해서까지 복종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신국론에서 “정의가 없는 왕국은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묻습니다. 강도떼도 두목의 지휘 아래 그들 나름의 조직과 규율, 약탈물에 대한 분배의 원칙을 갖추고 있다며 정의 없는 왕국은 그런 강도떼 집단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생포한 해적 두목을 붙잡아 신문한 적 있는데 그가 “너희는 왜 이렇게 사느냐?”고 하자, 해적 두목이 말했답니다. “해적질 하는 우리는 소규모로 하니 한낱 해적이고, 당신네는 대규모 전쟁으로 무수한 나라를 약탈하기에 제국의 군대일 뿐이지 사실상 행태는 똑같지 않느냐?” 바울이 로마제국을 염두에 두고 권세들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게 틀림없으나 그는 굴종을 가르치진 않았습니다. 그는 “진노를 두려워해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생각해서도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관리들이 그 권세로 사회 질서를 세우고 ‘하나님의 일꾼’다운 역할을 하여 선을 행할 때 그들에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권력자들이 강도떼나 다름없이 폭정과 약탈을 일삼는데도 그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들은 산헤드린 공의회에 끌려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는 가르치지 말라는 명령을 받자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 5:29)며 끝까지 복음 전파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우리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권세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과연 하나님께 권세를 받았는지는 그 권세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사회정의, 국민의 복지와 안전 등을 위해 힘쓴다면 당연히 그들에게 협력하고 따라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공권력을 남용하고 불의를 행한다면 주님이 주신 선한 능력으로 그러한 악에 저항하여 과감히 뿌리 뽑아야할 것입니다. 사도들의 모범처럼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권세를 힘입어 그 선하신 뜻을 행하는 자들을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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