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10/1(목)
성령에 이끌린 삶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하여 두는 것은, 그들이 그러한 일들을 행하는 때가 올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너희에게 말한 사실을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다. 또 내가 이 말을 처음에 하지 않은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서 아무도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고, 도리어 내가 한 말 때문에 너희 마음에는 슬픔이 가득 찼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이다. 죄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 의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너희가 나를 더 이상 못 볼 것이기 때문이요, 심판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지금은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또 그는 나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신 것은 다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령이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요한복음 16:4-15>


악령의 화신들

 고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은 키 크고 용맹하며 잘 생긴 인물이었습니다. 성경은 젊은 시절 사울에 대해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 없었고 키도 보통 사람들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삼상 9:2)고 합니다. 사울의 부친 기스는 암나귀 여러 마리를 키웠는데 어느 날 그들 중 몇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이 암나귀들을 찾고자 사울은 종을 데리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예언자 사무엘을 만납니다. 이때 사무엘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사울의 머리에 기름 붓고 그를 왕으로 세웁니다. 그런 다음 사울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알려주었습니다. 먼저 라헬의 무덤 근처에서 두 사람을 만날 터인데 그들이 “당신 부친께서 암나귀들을 다 찾았고 이제는 아들과 종을 걱정한다.”는 소식을 전할 거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산을 지나 한 성읍에 들어갈 때 “거문고를 뜯고 소고를 치고 피리를 부는 예언자의 무리”를 만날 것이라 했습니다. 이들을 만나면 사울에게도 “주님의 영이 강하게 내려” 그도 소리 지르고 춤추며 예언할 것이고 딴 사람처럼 변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때부터 사울은 주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쟁 도중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오만한 행동을 하였을 때 주께서는 그를 버리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하 장수 다윗이 큰 전공을 세우자 그를 몹시 시기하였고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 자로 여겨 틈만 나면 죽이려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울에겐 종종 악령이 내리 덮쳤고 죽을 때까지 그 악신에 시달렸습니다. 사무엘이 사망한 뒤 블레셋 대군이 길보아 산에 집결하자 사울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해 몹시 당황합니다. 주님은 그를 떠나셨기에 예언자나 꿈을 비롯한 그 어떤 형태로도 사울에게 말씀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있으면 찾아가 상담이라도 받아보련만 그가 사망한 상태라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사울은 자신이 왕임을 숨기고 엔돌 무당을 찾아가 사무엘의 망령을 끌어 올리게 한 다음 그의 조언을 듣고자 합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좋은 소식은커녕 사울과 그 아들들이 전사하고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대패할 것임을 전합니다. 실제로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은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주님의 영이 떠나버린 사람과 그 집안의 비참한 말로입니다. 비슷한 사례가 다윗왕조 중에도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주님을 경외하며 진실하고 선한 삶을 살고자 애쓴 사람입니다. 반면 그의 아들 므낫세는 부친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 안팎에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었고 자신의 아들을 불살라 바치는 인신제사마저 거행하였습니다. 점쟁이나 마술사에 의지하였고 심지어 악령과 귀신을 불러내 묻기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므낫세의 통치기 동안 “죄 없는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 예루살렘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죽은 이들의 피로 흠뻑 젖어 있다”(왕하 21:18)고 성서는 기록합니다. 한 지도자가 악령에 사로잡히면 이처럼 숱한 사람이 무고히 죽거나 고통당하고 나라에 심대한 위기가 닥칩니다. 독일 나치스당의 전신인 톨레협회라는 정치적 신비주의 단체도 악령숭배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속한 자들은 반유대주의와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내세우며 폭동과 테러를 행하였습니다. 또한 나치스당도 만들어 수백만 명의 유대인과 유색인종, 소수자들을 거리낌 없이 인종청소를 한 것입니다. 히틀러도 이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악령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세상을 생지옥으로 만들어 갑니다.


보혜사가 오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긴 고별설교를 전해줍니다. 유월절 전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 주시고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 당부의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꾸 어딘가로 곧 떠나실 예정이라 하시니 저마다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근심하지 말라. ‘서로 사랑하라’는 내 계명을 지켜라. 내가 떠난 뒤에 진리의 영이자 보혜사이신 성령이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다.”(요 14장)는 내용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 다음 “일어나거라. 여기에서 떠나자.”(요 14:31)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또다시 고별설교를 하십니다. 제자들과 더불어 식사하던 장소는 예루살렘의 어느 집인 것 같은데 예수님 일행이 거기를 떠나 다른 곳에 갔는지가 불분명합니다. 이 고별설교는 첫 번째 설교에서 말씀하신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곧 “나는 곧 떠날 예정이다. 슬퍼하지 말라. 너희를 위해 진리의 영 곧 보혜사가 오실 것이다.” 이런 말씀을 약간 형태를 바꾸어 반복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중언부언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실제 그러신 게 아니라 요한복음 기자가 필요에 의해 예수님의 긴 고별설교를 실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 설교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본문에서도 이미 언급한 말씀과 비슷한 내용을 종종 되풀이합니다. 물론 강조하려는 뜻에서 그랬겠지만 요한복음의 독특한 서술 방식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서 아무도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고 도리어 내가 한 말 때문에 너희 마음에는 슬픔이 가득 찼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시몬 베드로는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요 13:36)라고 이미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깜박하셨거나 일부러 모른 체하신 것 같습니다. 그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며 성령의 시대에 대한 기대를 불어넣으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증언하기를 그가 예수님께 세례 줄 무렵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 머리 위에 머무는 장면을 보았다(요 1:13)고 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줄곧 주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런데 진리의 영과 더불어 늘 동행하셨던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 곁으로 떠나실 예정이라니 이 세상은 다시금 어둠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 지경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생명의 빛이자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서두에서 밝혔습니다. 예수님이 고별설교하실 무렵에는 오직 그분께만 성령이 함께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떠나시면 세상은 다시 칠흑 같은 어둠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켜라. 내가 ‘다른 보혜사’를 보내달라고 아버지께 구하겠다.”(요 14:16)고 하셨습니다. 보혜사는 곧 협력자, 대변자, 돕는자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면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의 협력자 역할을 할 것이니 염려 말라고 안심시키십니다. 더욱이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요 16:7)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이 계실 때보다 더 유익한 일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성령이 오셔서 고아 같이 버려진 제자들을 위로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이 세상을 심판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도한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부활의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 “그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요 20:22) 고별설교에서는 자신이 떠난 뒤에 보혜사이신 진리의 영이 오실 것이라 말씀하시고선, 부활하신 다음에는 제자들에게 직접 성령을 불어 넣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에스겔의 마른 뼈 골짜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겔 37:5) 구약에서 성령은 ‘바람’과 ‘숨’으로 알려졌습니다. 성령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란 단어 자체가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진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고 에스겔 마른 뼈 골짜기에서도 생기를 불어넣어 그들을 살리십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스승의 십자가 처형으로 깊은 실의에 잠긴 제자들을 찾아가 하나님이 하시듯 성령의 생기를 불어넣으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성령이 떠나시면 그는 바람 빠진 풍성이나 생기 없는 시신처럼 되고 맙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람개비가 도는 모습에서 바람의 세기와 풍향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이끌려 그 방향에 따라 살아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살전 5:16)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나아가야 진리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진 환란 풍파를 만나도 이겨낼 강인한 영적 힘을 얻습니다. 주님의 영이 없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고 대신 악령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됩니다.

독일의 물리학자 빈프리드 오토 슈만은 ‘가이아의 뇌파’로 불리는 ‘슈만공명’이란 걸 발견했습니다. 태양에서 방출하는 막대한 방사선이 지구를 둘러싼 대기권을 이온화시키고 그 결과 대기권에서 평균 7~10Hz 주파수대의 공명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한데 놀랍게도 이 슈만공명은 인간 뇌파의 평균 주파수와 거의 일치한답니다. 그게 조금만 높거나 낮아도 인간은 엄청난 소음에 시달려 지금처럼 살 수가 없대요. 때문에 우울한 마음과 내면의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은 맨발로 흙길을 걸으면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맨발이 지표면의 흙과 닿으면 슈만공명의 주파수와 맞기에 편안함을 느끼기에 그렇다는 군요. 성령에 따라 행하는 삶도 주님과 영적 주파수를 맞추는 일입니다. 그분이 한량없이 불어넣으시는 성령의 거룩한 숨을 받아들이려면 우리 안의 온갖 잡념을 내려놓고 완고한 마음의 유리창을 열어야합니다.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개방함으로써 성령으로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성령의 주파수에 맞춰 진리의 말씀에 따라 찬미하며 함께 걷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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