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10/1(목)
다시 뿌린 씨앗  
주님께서 처음으로 호세아를 시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주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 이 나라가 주를 버리고 떠나서, 음란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호세아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였다. 고멜이 임신하여, 호세아의 아들을 낳았다. 주님게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하여라. 이제 곧 내가 예수의 집을 심판하겠다. 그가 이스르엘에서 살육한 죄를 물어서 이스라엘 왕조를 없애겠다. 또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평원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겠다.” 고멜이 다시 임신하여 딸을 낳았다. 이 때에 주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라고 하여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겠다. 그러나 유다 족속은 내가 불쌍히 여기겠다. 그들의 주 나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그들을 구출하겠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활이나 칼이나 전쟁이나 군마나 기마병으로 구출하는 것이 아니다.” 로루하마가 젖을 뗄 때에, 고멜이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로암마라고 하여라. 너희가 나의 백성이 아니며, 나도 너희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세아 1:2-9>


오월의 기억

 내일이면 5.18민중항쟁 35주년입니다. 한 세대를 보통 30년으로 보기에 벌써 한 세대 이상이 흘렀습니다. 보훈처가 재작년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해 큰 논란을 빚더니 올해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국회는 작년 6월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습니다. 한데도 보훈처는 ‘5.18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에서 이 노래의 제창을 불허해 오월단체들과 정부의 기념행사가 나뉘어 치러질 전망입니다. 이런 논란을 보면 현 정권이 5.18을 매우 불편하게 여기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5.18의 역사적 뿌리는 5.16 쿠데타 세력에 대한 저항에 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1960년 일어난 4.19민주혁명을 5.16 쿠데타를 일으켜 총칼로 짓뭉개고 권좌에 올랐습니다. 그마저 부족했던지 1972년 10월 유신헌법을 공포함으로써 대통령 직접선거도 없애고 영구집권의 길을 열었습니다. 독재자 박정희의 온갖 악행이 극에 달했을 무렵 그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김재규의 최후 진술을 들어보면 그가 우국충정에서 거사를 행했음이 드러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박 대통령 각하는 나에게 동향 출신으로, 은인이며 상관입니다. 친형제 간도 그럴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관계입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대통령 한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빨리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안 하고 인위적으로 자꾸 끌다가는 내년 3, 4월이면 틀림없이 민주회복 운동이 크게 일어납니다. 그 때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지금 핵이 없습니다. 정부가 통제력이 없고 국민은 자제력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큰일을 당하면 뭐가 될지 모릅니다.” 1979년 10월, 부마항쟁이 일어났을 때 박정희 오른팔 노릇하던 경호실장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선 3백만 명도 죽였다는데 우리가 여기서 100~200만 명 죽이는 게 대수이겠냐.”며 박정희에게 “탱크로 다 밀어버리자”며 무력진압을 요구합니다. 박정희도 “이번에 일이 나면 내가 발포 명령을 할 텐데 누가 날 어찌하겠냐.”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김재규는 무고한 시민들을 살리고 민주화를 앞당길 의도로 그들을 암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재규의 바람과는 달리 박정희의 적자나 다름없는 전두환이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민주화의 봄’을 군홧발로 짓밟았습니다. 전국 비상계엄령으로 각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지고 민주화 시위 주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광주에는 공수부대 계엄군마저 투입되어 무자비한 시위 진압에 나섰습니다. 그럼에도 광주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는 그칠 줄 몰랐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데도 시민들은 5월 27일 계엄군의 도청진압 때까지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군부 쿠데타 세력이 민주화를 위한 시민들의 거센 저항을 무력으로 잠시 진압했다고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이후로도 광주의 오월 민주화 시위는 10년 넘게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두환과 노태우의 사형 판결을 이끌어냈고 ‘민주화 운동’으로 공식 인정받아 명예회복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친일파와 군사 쿠데타 세력을 계승한 정권이 집권하면서 노골적인 ‘5.18 지우기’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민주화가 다 된 걸로 착각해 오월 민주의 불꽃을 너무 일찍 껐기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민주화와 통일조국을 갈망하며 죽어간 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떠올리며 불행한 역사의 퇴행을 막고 그 불씨를 되살려야 할 것입니다.


혁명의 배신

 북왕국 이스라엘 여호람 왕(주전 851-845?) 때 이스라엘은 길르앗 라못을 차지하고자 시리아와 8년 넘게 전쟁 중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여호람의 부친 아합 왕이 시작했는데 그는 전쟁 중에 화살을 맞아 전사했습니다. 여호람 왕은 유다 왕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고 시리아에 맞섰지만 길르앗 라못을 탈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입니다. 여호람 왕은 전쟁 중 부상을 입어 이스르엘로 피신해 치료받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예언자 엘리사는 선지생도 한 사람을 전장인 길르앗 라못에 보냅니다. 예후 장군에게 기름 부어 그를 왕으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호렙 산에서 예언자 엘리야에게 나타나 “님시의 아들 예후를 왕으로 세워 아합 집안을 심판하라”는 명령을 이미 내리신 바 있습니다. 엘리사는 적당한 기회를 엿보다가 여호람이 부상당해 치료 중임을 알고는 드디어 스승 엘리야의 유언에 따라 그 명령을 이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지생도가 길르앗 라못에 도착했을 때 예후는 다른 장수들과 더불어 작전회의 중이었습니다. 그 익명의 예언자는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며 예후를 잠깐 불러내어 그에게 기름 붓고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니 아합 가문을 심판하라”는 주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런 다음 예언자는 스승 엘리사가 지시한대로 도망치듯 서둘러 그곳을 떠났습니다. 남유다 왕국은 다윗의 후손들이 왕위를 계속 세습하였으나 북왕국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북왕국에서는 어느 왕가도 4대를 넘지 못한 채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아합이 속한 오므리 왕조가 4대까지 이어졌고 가장 번창했던 시기였습니다. 다른 왕들 중에는 즉위한지 겨우 한 달 만에 쿠데타로 살해된 살룸 왕 같은 사람마저 있습니다. 아합의 부친 오므리는 군인 출신으로서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에 올랐습니다. 예후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오므리와 예후의 크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오므리는 우상 숭배자였으나 예후는 아합 가문의 군 장성이면서도 야웨 하나님을 섬기는 자였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온갖 박해로 야웨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매우 드문 상황이었습니다. 만일 예후의 야웨 신앙이 발각되면 그도 왕후 이세벨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지 모릅니다. 이 와중에도 예후가 야웨 숭배자였다는 사실은 엘리사 같은 예언자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주효하였습니다. 예후는 그의 동료 군대 장수들과 예언자 엘리사와 레갑족속 등의 지지를 얻어 왕위에 오르자 아합 가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는 여호람 왕과 유다 왕 아하시야를 먼저 처형한 뒤 곧이어 아합의 왕비 이세벨을 죽였습니다. 아합의 자손 70명도 참수하였고 바알 숭배자들을 신전에 다 모아놓고 군대를 동원해 차례로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열왕기는 아합 가문과 바알숭배자들을 대청소한 예후의 치적을 높게 평가합니다. 그에 대한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좋은 왕의 핵심 기준을 오로지 하나님을 섬기며 우상숭배를 근절하느냐의 여부에 뒀기 때문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앗시리아 제국은 이스라엘 왕 오므리와 아합의 군대 규모가 어떠했는지 특별히 기억합니다. 그러나 열왕기 저자의 시각에서 볼 때는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알 숭배자들을 다 청소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후는 왕위에 오르자 주님의 명령대로 아합과 이세벨을 비롯한 바알 숭배자들을 모조리 색출해 가히 인정청소에 버금갈 만큼 피의 숙청을 단행했습니다. 엘리사를 비롯해 하나님을 섬기 자들이 예후에게 거는 기대가 컸을 것입니다. 그가 왕이 되면 이스라엘이 주님의 복을 받아 태평성대를 누릴 것이라 전망하였겠지요. 하지만 상황은 달랐습니다. 예후는 불필요한 살육을 일삼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척했을 뿐이지 우상 숭배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날이 오면

 예언자 호세아는 예후왕조 4대째인 여로보암2세 때 활동한 사람입니다. 그는 “너는 가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해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음란한 여인’이란 성적으로 문란한 여인을 말합니다. 남편만으론 만족할 수 없어 다른 남자들을 유혹해 불륜을 저지르고 창녀처럼 화대를 받아 챙기는 여자입니다. 호세아는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 고멜은 호세아에게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아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첫째 아들을 이스르엘, 둘째 딸을 로루하마, 셋째 아들을 로암미라고 각각 이름 지어 주십니다. 이들 호세아의 자녀는 살육으로 더럽혀진 이스라엘 땅과 주님께 버림받은 그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주님이 첫 아들을 ‘이스르엘’로 지어주신 까닭은 예후가 이스르엘에서 아합의 집안에 대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육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스르엘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예후 집안을 벌하고 그 왕조를 없애겠다”고 하십니다. 열왕기는 예후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아합의 집안에 대한 살육을 한 것처럼 묘사하지만 호세아는 그 사건을 전혀 달리 봅니다. 예후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에 열심이었던 아합 집안을 심판하고 하나님을 잘 섬겨 보겠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예후왕조는 남편격인 하나님께 충실치 않고 많은 불륜을 저질러 혼례언약을 파기했습니다. 땅은 살육과 강포, 착취로 더럽혀졌고 백성들도 죄악에 물들어 주님이 긍휼히 여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주님은 호세아의 자녀들 이름처럼 이스라엘에 대해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자체가 무서운 심판입니다.

우리는 3.1혁명, 4.19혁명, 5.18민중항쟁, 6월 항쟁과 같이 위대한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지닌 민족입니다. 한 나라가 이처럼 여러 차례의 민중봉기로 지배세력을 뒤흔든 사례는 그 유례를 찾기 힘듭니다. 가령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가 한국과 같이 민주화를 이룬 경험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세월이 흐르면서 민중의 찬란한 민주혁명은 늘 빛이 바랬습니다. 그 고귀한 정신은 다 잃고 껍데기만 남아 희생자들을 욕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은 “그날이 오면 내가 새 언약을 맺어 너를 영원히 아내로 맞아들이고 사랑과 긍휼로 대하겠다.”(호 2:19)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이 땅에 심어서 나의 백성으로 키우고, 로루하마를 사랑하여 루하마가 되게 하겠다.”(호 2:23)고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 날은 “하나님이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온갖 먹을거리에 응답하는 날”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너희는 내 백성이다.”라고 하면 우리는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서로 응답하는 때입니다. 주님과 우리가 거짓 없이 이심전심으로 서로 통하는 날을 의미합니다. ‘이스르엘’은 “주님이 씨를 뿌리신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는 곳이 죄악으로 물들어 병든 땅이라 도저히 회복의 가망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돌이켜 마음을 고쳐먹고 주님의 부름에 성실히 응답하는 삶을 살면 그분은 반드시 우릴 새 언약 백성으로 이 땅에 심어 자라나 번성케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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