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5/8/18(화)
소망의 원천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가 전해 들은 것이 아니냐? 너희는 땅의 기초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지 못하였느냐? 땅 위의 저 푸른 하늘에 계신 분께서 세상을 만드셨다.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메뚜기와 같을 뿐이다. 그는 하늘을, 마치 엷은 휘장처럼 펴셔서, 사람이 사는 장막처럼 쳐 놓으셨다. 그는 통치자드을 허수아비로 만드시며, 땅의 지배자들을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드신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풀포기와 같다. 심기가 무섭게, 뿌리를 내리기가 무섭게, 하나님께서 입김을 부셔서 말려 버리시니, 마치 강풍에 날리는 검불과 같다.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너희가 나를 누구와 견주겠으며,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 40:21-31>



뿌리 얕은 신앙

 작년 6월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2011년 장로로서 교회 특강 때 행한 발언으로 뜨거운 논란을 낳다가 끝내 낙마하였습니다.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와 분단이 된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며 조선 민족이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한 DNA를 갖고 있다”고 비하했는데, 이런 과거 발언들이 총리 임명의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문씨의 이 같은 발언은 일제식민지 시대 언론인 및 교육가이자 기독운동가였던 윤치호의 일기를 언급하며 나왔습니다. 좌옹 윤치호(1865~1945)는 18세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근 60여 년간이나 일기를 썼고 그중에 54년간은 영어로 일기를 썼습니다. 그 방대한 분량의 일기가 번역된 것은 불과 2천년 초반입니다. 번역자는 친절하게도 일제식민지 기간의 일기에서 주요 부분만 발췌한 책도 발간하였습니다. 그 제목은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인데 이는 윤치호 사상의 핵심을 잘 드러냅니다. 그는 부친을 따라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갔다가 일찍부터 서구문명에 눈을 뜬 사람입니다. 일본의 눈부신 발전에 자극받아 부지런히 영어를 익힌 덕분에 한때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였습니다. 하지만 갑신정변이 일어나 중국 상해로 피신하였고 거기서 선교사 알렌이 세운 중서학원을 다니며 기독교로 개종합니다. 중서학원 졸업 후에는 알렌 선교사의 후원을 받아 미국에 유학해 밴더빌트대와 에모리대에서 공부하고 귀국하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정계에 나가 관직생활을 하거나 주로 교육 · 언론 · 기독운동에 종사하며 조선의 계몽과 발전에 나름 기여합니다. 그러나  ‘105인 사건’(1911)에 연루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소한 뒤부터 적극적인 친일로 돌아섰습니다. 3.1운동 때는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약한 인종이 강한 인종과 함께 생활하려면 그들의 선의를 입어야 한다”며 조선의 독립 불가론을 펴기도 했습니다.

윤치호는 식민지 조선인들이 “노예근성, 부정직, 죽은자 같은 무기력성”으로 자기개발에 실패해 하나님의 벌을 받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힘이 곧 정의”라는 신념으로, 강자인 서구문명국이나 일제가 조선 같이 열등한 비서구문명국을 지배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습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상에서 열등한 민족의 멸망은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조선 같이 열등한 나라에 태어난 자신의 생을 ‘불명예’로 보았고 나라를 선택해 태어날 수만 있다면 일본을 택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했습니다. 크리스천이자 장로였지만 그의 신앙은 사회 정치와는 무관한 개인 윤리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윤치호는 구약성경의 하나님을 “비문명적 잔인한 신”이라며 거부하였습니다. 그는 역사를 주관하고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윤치호는 “힘이 곧 정의”라 믿으며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출애굽 사건을 일으키시고 이스라엘 민족의 흥망성쇠를 섭리하신 구약성서의 하나님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나 봅니다. 그가 8.15 광복이 그렇게 올 줄 알았다면 혹시 달리 생각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윤치호는 국제정세에 너무 밝았기에 공의의 하나님을 못 믿고 강자의 논리에 굴복한 무력한 지식인에 머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는 대표적인 한 사례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도 윤치호와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세속의 힘인 돈과 권력을 숭배합니다. 하나님을 사소한 영역에 놔둔 채 실제 삶의 현실과는 무관하게 만듭니다. 신앙의 뿌리를 잘못 내렸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는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의 침공으로 남유다 왕국이 멸망한 뒤(주전 586년)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이 포로 끌려갔습니다. 느브갓네살은 그 이전 597년에도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항복시키고 여호야긴 왕을 비롯한 예루살렘의 왕족, 제사장들과 고관들 등 유력인사들을 대거 끌고 갔습니다. 그게 1차 바벨론 포로입니다. 이즈음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던 예레미야는 포로기간이 길어질 것임을 알리며 바벨론의 유대 포로민들에게 거기서 땅을 일구며 정착하라고 예언합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기간은 60년 가까이 지속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나라는 멸망하여 예루살렘은 여우같은 들짐승이나 거니는 폐허로 변하였습니다. 그나마 그 땅에 남은 백성이라고는 ‘암하레츠’ 곧 “땅의 사람들”로 불리는 바닥사람들이 전부였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유대 백성들이 황폐한 예루살렘의 상태를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잃고 머나먼 메소포타미아까지 끌려가 생활하는 동안 매일 죽을 맛이었을 것입니다.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이 얼마나 큰지는 과거 우리나라도 겪어봤기에 알고 있습니다. 가족과 집, 직장이 있으면 뭐합니까? 나라 잃은 백성은 어디를 가나 찬밥신세인데 말입니다. 가령 손기정 선수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하였으나 가슴에 일장기를 단 채 단상에 올라야 했습니다. 이게 식민지 백성의 기막힌 현실입니다. 시편 137편의 시인은 바벨론 포로생활의 단면을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 강변 버드나무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 두었더니, 우리를 사로잡아 온 자들이 거기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 한 자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 보라고 하는구나. 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이 얼마나 한 맺힌 시편입니까? 이처럼 바벨론의 유대 포로민들은 기약도 없이 비통하고 절망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들의 신앙도 점차 흐지부지 되어 갔습니다. 무수한 나라를 복속시켜 지배하는 바벨론의 신들이 위대해 보였고 그 신들에 비하면 하나님은 너무 작고 무력해 보였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았고, 설령 계신다고 해도 바벨론의 신들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힘없는 변두리의 신 같이 생각되었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제2이사야’는 바로 이와 같은 바벨론 포로기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는 27절에서 당시 유대 포로민들의 불평과 불만의 소리가 무엇이었는지를 전해줍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주님은 나의 사정을 모르신다,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주지 않으신다.”였습니다. 주님이 살아계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관심을 두신다면 왜 이렇게 기나긴 포로생활이 지속되는 거며 사회 부조리가 판을 치느냐는 탄식입니다. 이스라엘은 포로생활을 하며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잃어버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없으니 제사는 중단되었고 주님을 찬양하던 노래도 그쳤습니다. 있는 거라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주님에 대한 불평과 불만, 탄식뿐이었습니다. 이때 제2이사야는 깊은 실의에 잠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포로귀환의 서광이 비치고 있음을 전합니다. 그는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사 40:1)는 주님 말씀으로 그의 예언을 시작합니다. 아울러 이스라엘 포로민들에게 하나님이야말로 창조주이시자 역사의 주인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는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질문을 거듭하며 이스라엘이 까맣게 잊어버린 하나님 신앙의 부활을 촉구합니다.


시냇가의 나무처럼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만드셨고 땅의 기초를 놓으셨으며 사람이란 그분 보시기에 ‘메뚜기와 같이’ 극히 보잘 것 없이 미미한 존재라 말합니다. 더욱이 주님 앞에서 지상의 통치자들이나 지배자들은 허수아비나 쓸모없는 사람일 뿐이라고도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이지 다른 신이나 통치자들이 주님을 대신하는 게 아님을  명토박아둡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시는 시편에 여러 편 나오고 욥기에서도 하나님의 창조 위업을 노래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익히 아는 바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은 창조주 하나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기 어렵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포로생활을 하면서 몹시 피곤하였고 무기력해졌습니다. 그런데 제2이사야는 “하나님과 이방의 우상들과는 견줄 수조차 없다”며 “하나님은 하늘의 모든 별을 창조하셨고 그 천체를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의 모든 별’은 오늘날 밤하늘의 별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점성술사들에 의한 오랜 별자리 연구가 지속되었습니다. 주전 1500년경 별자리의 12궁도가 만들어진 것도 기나긴 세월 별자리 관측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태양신 마르둑을 비롯한 바벨론의 여러 신도 별자리와 관련 있습니다. 고대 수메르나 바벨론에서는 신년초가 되면 지구라트 신전의 층계탑 꼭대기에 마련된 신당과 신방에서 ‘성혼례’ 의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이때 왕과 여사제가 혼례를 치르고 한해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데 그런 예식도 전갈자리나 황소자리 같은 별자리의 움직임에 따라 행해졌습니다. 즉 바벨론 사람들에게 별은 그냥 별이 아니었고 신들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제2이사야는 그 모든 별들조차 하나님이 지어내셨고 그 천체의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고 함으로써 주님이 바벨론의 신들을 능가하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면서 어느덧 제국의 신앙에 오염되었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며 공의를 세우시는 하나님을 차츰 의심하고 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 바벨론 제국 도시들의 한복판에 우뚝 선 거대한 지구라트들과 여러 신들에 매료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2이사야를 보내셔서 그들의 감긴 눈을 띄워주시고 위로하시며, 피곤하고 지친 몸에 새 힘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이사야는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고 선포합니다. 아무리 건장한 장정이라도 젊은이라도 삶의 희망이 없이는 시들시들 병들어 쓰러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우리 소망의 원천을 하나님께 두라고 합니다. 그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오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공의의 주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 깊숙이 뿌리내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늘 푸르름을 간직합니다. 거센 세파가 몰아쳐도 결코 꺾이지 않는 능력을 얻습니다. 우리 모두가 오직 하나님을 우리 소망의 원천으로 삼고 주님께 깊이 뿌리내리는 참된 신앙인의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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