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4/05/4(일)
부름 받은 아이  
어린 사무엘이 엘리 곁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이다. 그때에는 주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엘리가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였다. 그는 이미 눈이 어두워져서 잘 볼 수가 없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이른 새벽,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환하게 밝혀져 있을 때에, 주님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그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고서, 곧 엘리에게 달려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도로 가서 누워라” 하고 말하였다. 사무엘이 다시 가서 누웠다.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얘야,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도로 가서 누워라” 하고 말하였다. 이 때까지 사무엘은 주님을 알지 못하였고,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난 적도 없었다. 주님께서 사무엘을 세 번째 부르셨다.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소년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고, 사무엘에게 일러 주었다. “가서 누워 있거라. 누가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이 자리로 돌아가서 누웠다. 그런 뒤에 주님께서 다시 찾아와 곁에 서서, 조금 전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에게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 그것을 듣는 사람마다 무서워서 귀까지 멍멍해질 것이다. 때가 오면, 내가 엘리 집을 두고 말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루겠다. 엘리는, 자기의 아들들이 스스로 저주받을 일을 하는 줄 알면서도, 자식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그 죄를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집을 심판하여 영영 없애 버리겠다고,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엘리의 집을 두고 맹세한다. 엘리의 집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도 영영 씻지 못할 것이다.” <사무엘상 3:1-14>



버림받은 제사장

사사기에는 천하장사로 잘 알려진 사사 삼손을 끝으로 사사가 더 이상 사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사시대가 끝났느냐하면 그건 아닙니다. 사무엘서는 삼손 이후, 두 사람의 사사가 더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바로 엘리와 사무엘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왕정이 들어서기 전까지 과도기 상황에서 사사생활을 하였기에 이전 사사들과는 구분됩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들은 가나안, 미디안, 암몬, 모압, 블레셋 등 외부의 적들이 침략했을 때 민병대를 이끌고 나가 전쟁을 벌이는 군사령관의 역할을 주로 도맡아합니다. 평시에는 재판을 하거나 제사장의 역할도 하지만 사실 이는 거의 드문 일입니다. 그러나 엘리와 사무엘 때에 이르러서는 분위기가 크게 바뀝니다. 그들에는 전장을 누비는 군사령관이라기보다는 제사장이나 선지자의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엘리는 전형적인 제사장에 머물며 사무엘의 등장을 예비하는 조연 역할을 합니다. 엘리가 어떤 계기로 사사로 부름 받았고 그 직무를 어떻게 수행하였는지 성서는 거의 지면을 할애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보다 훨씬 더 짤막히 언급되는 사사들도 많습니다. 엘리는 사무엘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조연이라 해도 사사 중에는 제법 비중이 큰 인물입니다. 사무엘서는 그가 어느 지파 누구의 후손인지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왕기(왕상 2:27)와 역대기(대상 24:3)를 살펴보면 그가 레위지파 아론의 후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는 ‘하나님의 집’(회막)이 있던 실로에 머물며 한 평생 제사장으로 섬겼습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나쁜 짓을 하거나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일은 없습니다. 엘리는 40년간 사사생활을 하며 98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이렇게 긴 세월 사사로 있으면서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힘들게 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그의 결정적인 흠결은 자녀교육에 실패하였다는 점입니다. 엘리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주님을 업신여기며 온갖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제사장의 규정을 무시하고 백성의 제물을 강탈하는가하면 회막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을 겁탈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엘리는 아들들에 대한 추문을 듣고 그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꾸짖었지만 아들들이 듣지 않자 더 이상 어찌하지 못하고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 때문에 주님은 한 예언자를 보내 엘리 집안을 망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책망이 이렇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나보다 네 자식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이 나에게 바친 모든 제물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다가, 스스로 살찌도록 하느냐?”(삼상 2:29) 엘리가 주님의 이 말씀을 듣고 그때라도 철저히 회개하고 아들들 단속을 하였더라면 혹시 기회가 더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 선지자가 전하는 주님 말씀을 거짓 예언이라 여겼는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습니다. 진정 자식들을 소중하게 여겼다면 아들들이 당장 악행을 그치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을 텐데 엘리는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러니 하나님도 그를 떠나시고 맙니다.


소년의 예언 소명

아기를 낳지 못했던 한나는 아들 하나만 주시면 그 아들을 평생 주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얻자 젖 뗀 다음 엘리에게 데려가 주님의 집에서 자라게 합니다. 소년 사무엘은 성전에 거처를 두고 늙은 엘리 제사장의 각종 시중을 들며 생활하였습니다. 주님이 처음 부르셨을 때 사무엘은 언약궤가 있는 성전의 잠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때 사무엘의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리다’했고 그 행동으로 보아 아마 10대 안팎이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누운 성전에는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타오르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등불은 언약궤 앞 휘장 밖에 켜서 제사장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꺼지지 않게 잘 보살펴야하는 불입니다(출 27:21). 엘리가 사무엘 잠자리를 그 근처에 마련해 둔 것을 보면 이 등불지기를 맡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세시대 이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지성소의 언약궤의 덮개 위에 임재하신다고 믿었습니다(레 16:2). 실제로 주님은 모세와 말씀하실 때 지성소의 언약궤 가운데 나타나신 바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자신이 얼마나 신성한 장소에 기거하는지도 잘 모른 채 지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까지 그는 “주님을 알지 못했고 주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난 적도 없었기”(삼상 3:7) 때문입니다. 더욱이 엘리가 사무엘에게 충실히 신앙교육을 시킨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사무엘은 성전에서 일하는 아이였지만 한 번도 주님을 체험해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사무엘을 주님은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은 엘리가 부르는 줄 알고 세 차례나 엘리에게 달려갔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 사무엘도 엘리도 하나님 말씀에 얼마나 둔감한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엘리는 늙고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는 상태였고 그즈음에는 주님의 말씀과 환상도 드물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요셉의 시대 같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꿈같이 간접적인 표징으로 말씀하시던 시대도 있습니다. 모세를 부르시기 전까지 주님이 오랜 세월 침묵하시는 간극도 존재합니다. 사사시대에도 사사가 아직 등장하지 않아 이스라엘이 주의 말씀을 듣기 힘들었던 시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예언자들을 보내어 필요한 말씀을 주시지만 때로 이처럼 침묵도 하십니다. 엘리는 주님께서 말씀이나 환상으로 계시해 주시는 일이 드물게 되었는데도 이에 대해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늙은 고목처럼 자신은 이제 수명이 다되었으니 죽을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서인지 주님을 애타게 찾지도 않았습니다. 갑작스레 나타나 사무엘을 부르신 주님을 엘리나 사무엘이 금세 못 알아보는 건 어쩌면 당연하였습니다. 엘리는 사무엘이 세 번씩이나 자신에게 달려오자 그제야 주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임을 알고는 사무엘에게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 가르칩니다. 이처럼 그는 육신으로만 나이 늙고 눈이 어두웠던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그러하였습니다. 주님은 엘리와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익명의 선지자나 소년 사무엘 같은 사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말씀의 등불지기

엘리는 영적으로 어두워진 상태였으나 사사인지라 주님이 말씀하시면 어찌해야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무엘에게 또 다시 주님이 부르시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라고 가르쳐줍니다. 사무엘이 그렇게 하자 주님은 앞서 선지자를 보내 말씀하신 내용과 대동소이한 엘리 집안에 대한 심판예고를 하십니다. 엘리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받을 짓을 하는 줄 알면서도 자식들을 책망하지 않았으니 그 집안을 영원히 심판하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엘리는 아들들의 잘못을 책망한 적 있습니다. 그는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이놈들아, 당장 그쳐라! 주님의 백성이 이런 추문을 옮기는 것을 내가 듣게 되다니, 두려운 일이다. 사람끼리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중재하여 주시겠지만, 사람이 주님께 죄를 지으면 누가 변호하여 주겠느냐?”(삼상 2:24-25)며 나무랐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정도로 결코 만족하실 수 없었습니다. 엘리는 그의 두 아들이 말을 듣지 않고 악행을 계속하는데도 더 이상 책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튿날 엘리는 사무엘을 불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을 것입니다. 주님이 사사인 자신이 아닌 어린 사무엘과 말씀하셔서 그 아이를 불러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였겠습니까? 더욱이 그 말씀은 자신의 집안에 대한 멸망 예고였습니다. 그럼에도 엘리는 “그분은 주님이시니 그분께서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며 일체 더 이상의 군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엘리는 이처럼 나름 신앙적으로 훌륭한 면모를 지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이 어둡고 몸까지 무거운 노인이 되었을 때 주님의 심판 예고에도 정신 차리지 못할 만큼 영안이 어둡고 흐려져 있었습니다. 100세 가까운 노인이라 어쩔 수 없지 않았겠냐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는 120세에 사망했는데 그때까지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신 34:7)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후 4:16)고 말씀합니다. 나이 들어 늙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영적으로도 늙고 눈이 어두우며 비둔해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부르셔서 예언하게 하십니다. 그가 단지 나이가 어려서 부르신 게 아닙니다. 사무엘은 비록 주님을 잘 알지는 못하였으나, 그는 주님의 등불을 지키며 그 누구보다 주님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왜 이런 사람을 들어 쓰시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한국교회는 불과 130여년 선교 역사임에도 벌써 조로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영적인 감각이 무뎌져 주님의 이상을 보지 못하고 진리의 말씀을 예민하게 깨닫지 못한 채 헤매고 있습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예언을 업신여기지 말라”(살전 5:19-20)고 하였음에도 그 소명과 열정이 싸늘히 식어가고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가 병들어 죽으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이 사회도 오염되어 같이 망하게 됩니다. 이 푸른 오월에 우리 자신부터 영적인 각성과 쇄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진리의 등불을 환히 밝히며 예언자적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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