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4/9/3(수)
가서 눈을 씻으라  
예수께서 가시다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우리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낮동안에 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곧 온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뒤에, 땅에 침을 뱉어서,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시고, 그에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갔다. 이웃 사람들과, 그가 전에 거지인 것을 보아 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니냐?” 하였다. 다른 사람들 가운데는 “이 사람이 그 사람이다”하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또 더러는 “그가 아니라 그와 비슷한 사람이다”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눈을 뜨게 된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그가 대답하였다. “예수라는 사람이 진흙을 개어서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였소.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소.” 사람들이 눈을 뜨게된 사람에게 묻기를 “그 사람이 어디에 있소?” 하니, 그는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요한복음 9:1-12>



누구 죄 때문에?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은 눈먼 사람들을 여럿 고치십니다. 벳새다의 맹인(막 8:22-30)과 여리고의 바디매오(막 10:46-52)를 고치셨고,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도 성전 뜰에서 ‘눈 먼 사람들’을 고쳐주십니다(마 21:14). 오늘 요한복음 본문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맹인 한 사람을 고치셨다고 전해줍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장애인과 병자가 있습니다. 사복음서는 그 가운데서 예수님이 눈 먼 사람을 고치신 이적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룹니다. 여리고의 맹인 거지였던 바디매오가 눈뜬 이적이 가장 유명합니다. 하지만 사복음서의 맹인이 눈뜬 이적들 가운데 요한복음의 맹인 이야기만큼 상세히 보도되는 이적은 없습니다. 요한복음은 9장 전체를 할애하여 한 맹인이 눈뜬 이적과 그 뒤 발생한 논란을 다룹니다. 바디매오처럼 이 맹인의 실명이 적혀 있었다면 그의 이야기가 훨씬 더 세상에 널리 알려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한이 맹인의 이름을 익명 처리한 데에는 그럴만한 중요한 사정이 있었으리라 봅니다. 요한복음에서 베일에 가려진 인물로 등장하는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와 유사한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즉 맹인의 이름을 괄호 침으로써 이 사람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보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키기 좋게 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날 때부터 한 맹인을 보았습니다. 그는 선천성 맹인이자 앉아서 구걸하던 거지로 소개됩니다. 제자들은 이 맹인을 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오늘날 우리가 볼 때 제자들의 이 질문은 뜬금없고 터무니없어 보입니다. 장애와 죄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약시대 유대인들의 상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이 날 때부터 눈먼 상태라면 그것은 누군가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천벌 받은 결과라 여겼습니다. 십계명만 봐도 그와 같은 인과론적 운명이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신들과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자들에 대해 주님은 “그 죄값으로, 본인 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리겠다”(출 20:5)고 하십니다. 또한 모세는 주님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는 자들은 저주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가 열거하는 저주받은 자들 가운데는 “미친 사람과 눈먼 사람”이 들어 있습니다(신 28:28). “당신들은, 마치 눈이 먼 사람이 어둠 속에서 더듬는 것처럼, 대낮에도 더듬을 것입니다.”(신 28:29)라고도 덧붙입니다.

토라(율법)가 이 같이 언급하기에 예수님 제자들이 선천성 맹인을 두고 “누구의 죄 때문에 저런 장애를 입고 태어났느냐?”고 묻는 건 당연합니다. 실로암 탑이 무너져 18명의 인부가 죽었을 때도 유대인들은 그 인부들이 죄 값을 받아 사망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눅 13:4). 제자들이나 일반 유대인들만 질병, 장애, 사고 따위와 죄를 연결시킨 건 아닙니다. 예수님도 베드자다 못가에 있던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을 때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네가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그리하여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여라.”(요 5:14). 이처럼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인과론적 운명론은 심지어 예수님에게까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반드시 유대인들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닙니다. 요즘도 장애아를 둔 부모는 평생 ‘죄인’처럼 살아야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 빛을 본 사람

 성결교에서 펴내는 신앙잡지인 <활천>(1924년 0호)은 ‘소경 김영수 형제’를 소개하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김영수(22세)는 경북 군위읍 출신으로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습니다. 그래도 배움의 기회를 얻어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덕분에 일어를 능숙하였고, 15세에 경성맹아원에 입학하였으나 사정상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 건달들과 어울리며 술과 노래로 허송세월하다가 18세부터 점집을 차려 돈벌이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찬미소리에 이끌려 예배당을 드나들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 하면서 영수는 점차 자신이 하는 일이 주님 앞에 죄인 줄 깨닫고는 점치는 일을 그만 두려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점을 가르치고 돈을 벌라고 시키니 쉽게 그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갈수록 그 마음에 갈등이 심하였습니다. “불의한 직업을 버리고 다른 직업을 찾으라”는 주님의 책망과 “지금 점치는 일을 그만두면 죽을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두 마음이 투쟁하였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전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눈이 떠진다.”고 부모를 설득하였습니다. 눈이 떠진다니 부모도 더 이상 점치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눈이 뜨이는 이적이 일어나지 않자 그의 부모와 형님이 심히 핍박하였습니다. 굶기기도 하고 추운 겨울에 불도 넣어주지도 않았습니다. 견디다 못해 자살까지 하려 했으나 주님 음성을 듣고 그만 둔 일도 있었습니다. 이후 영수는 확실한 중생체험을 하였고 한 선교사의 도움으로 성서학원에 다니는 중이라 적혀 있습니다.

이 같은 영수 형제의 삶은 본문의 맹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에 맹인이 되었냐?”고 물었지만, 주님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이 맹인이 주님의 명령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그 눈을 씻자 ‘눈이 밝아지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고쳐준 분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실로암 못은 예루살렘 성 밖 기혼샘에서 지하 수로로 물을 끌어와 저장하는 저수장입니다. ‘실로암’은 히브리어 ‘실로아’(보냄)에서 나온 말로 “보냄 받은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요한이 맹인의 이름에는 침묵하면서 실로암 못과 그 뜻을 밝힌 까닭은 예수님과 연결시키기 위함입니다. 눈을 뜬 사람은 자신을 고쳐준 예수님을 처음부터 메시아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일컬어 ‘예수라는 사람’(11)→‘예언자’(17)→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33)→ ‘주님’(38) 등으로 각각 호칭을 달리합니다. 이는 맹인이던 그가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영적인 눈이 떠가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는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고 보게 되었을 때만 해도 예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자신을 고쳐준 분이 누구인지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인자’이자 ‘주님’이심을 알고는 유대인들로부터 회당에서 출교까지 당하면서도 그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6)고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유전되는 게 아니라,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여 그 빛을 차단하는 일들 모두가 죄짓는 악행에 속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맹인이었다가 눈뜬 사람은 마침내 예수님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에 자신을 개방하여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어둠을 몰아냄으로써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맹인이 아니면서도 ‘눈뜬장님들’이 많습니다.
네 눈을 씻으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요 9:39).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영적인 맹인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밝히 보고 있다고 착각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가까이 만나면서도 여전히 캄캄한 암흑 속에서 헤매었습니다. 서양속담에 “보려고 하지 않는 자가 가장 지독한 맹인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해가 중천에 떴어도 눈을 질끈 감고 뜨지 않으려는 자들에게는 그 빛이 다 소용없습니다. 선천성 맹인이던 자가 고침 받아 보게 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바리새인들은 애써 그 이적을 덮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맹인이자 죄인인줄은 모르고 예수님에 대해 “우리가 알기로 그 사람은 죄인이다”(요 9:24)고 하였습니다. 맹인이다가 눈뜬 사람보고 “네가 완전히 죄 가운데 태어났는데도 우릴 가르치려 드느냐?”(요 9:34)며 그를 출교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만 영적 맹인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맹인이었다가 눈뜬 사람의 부모들도 바리새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 사람들 앞에 불려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던 그대들의 아들이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고 신문 당하자, “잘 모르겠으니 아들에게 직접 물어보라”며 대답을 회피합니다. 그들은 진실을 증언하다 자신들이 회당에서 출교당할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실락원>으로 유명한 17세기 영국시인 밀턴은 한창 때인 43살 때 지나친 독서로 눈을 혹사시켜 완전히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앞을 못 보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총을 아주 많이 느끼고 있고, 바라다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밀턴은 요한복음 9장의 맹인과 자신을 동일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비록 실명하였지만 “내면의 빛으로 가득차서 인류가 천국의 영역을 볼 수 있게 만드는 빛을 내뿜었다”(헬렌 켈러)고 평가됩니다. 왜 사복음서는 맹인들이 눈뜬 이적을 모두 기록하였을까요? 물론 눈먼 사람을 보게 하는 일은 메시아가 행하는 사역이자 중요한 표징 가운데 하나입니다(사 35:5; 마 11:5).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에 태어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 대부분은 그를 못 알아봤습니다. 눈이 있으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되 듣지 못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가려져 있습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여 내면의 눈을 맑게 하지 않고는 그를 볼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네 더러워진 눈을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라” 말씀하십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여 진실한 회개로써 영안이 밝아져 내면의 빛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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