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4/5/8(목)
자유의 언약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모으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귀담아 듣고, 그것을 익히고 지키십시오. 주 우리의 하나님은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언약을 우리 조상과 세우신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모두와 세우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산 불 가운데서, 당신들과 함께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당신들이 그 불을 무서워하여 산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주님과 당신들의 사이에 서서, 주님의 말씀을 당신들에게 전하여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신명기 5:1-10>



‘3.1혁명’ 정신

어제로 3.1절 95주년을 맞았습니다. 3.1운동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 3월 1일부터 석 달여 기간 동안 전국에서 200만 여명이 참가한 거국적 만세시위입니다. 이 시위로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에 의해 사망한 사람이 무려 7,509명이고 구속자는 4만 7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최근 학계, 종교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3.1혁명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란 단체가 발족되어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들은 학술대회를 열고 ‘3.1운동’은 1948년 제헌헌법 당시 이승만 등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라며 제헌헌법 초안에 있던 그대로 ‘3.1혁명’으로 고쳐 부르자고 제안합니다. 그 이유는 3.1운동을 계기로 비로소 ‘전제군주제’를 마감하고 ‘민주공화국’의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이는 단순한 ‘저항운동’이 아닌 ‘혁명’에 해당하므로 그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려면 ‘3.1혁명’이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로 시작합니다. 1948년 제헌헌법 전문도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삼일운동의 독립정신 계승”에 기초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건 빈말이 아닙니다. 1919년 4월에 공포된 상해임시정부의 임시헌장 선서문은 첫 문장에서 “민국(民國) 원년(元年) 3월 1일 대한민국은 독립을 선언함으로부터”라고 언급합니다. 즉 3.1 독립선언으로 대한민국의 독립과 자유가 안팎에 선포되었음을 전제로 임시정부를 수립한다는 사실을 명시합니다. 이 임시헌장의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못 박습니다. 또 5조에서는 “대한민국의 인민으로 공민 자격이 있는 자는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있음”이라 규정합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대한제국’과 ‘중화민국’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제는 황제의 나라가 아니라 인민의 나라임을 국호로써 알 수 있습니다. 국호 대한민국에 비해 ‘민주공화국’이란 표현은 매우 독창적이고 선진적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유럽(1920년 2월, 체코슬로바키아 헌법)이나 중국(1920년대 중반)보다 먼저 나라의 정치제제가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합니다. 더 이상 황제, 귀족 따위가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인민이 주인으로서 함께 다스리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상해 임시정부의 임시헌장 제8조는 “대한민국은 구(舊)황실을 우대함”이라 규정해 왕정체제를 완전히 떨쳐버리진 못하는 한계를 보입니다. 하지만 3.1 운동을 계기로 상해임시정부가 들어서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과 “대한민국 모든 인민의 평등과 자유”를 선포하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수천 년 이어지던 왕정체제가 드디어 ‘3.1혁명’으로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이 혁명이 없었다면 한국의 근대 민주국가 수립은 한참 더 지체되었을지 모릅니다. 함석헌 선생은 3·1운동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3·1운동은 시대를 가르는 사건이었다. 이전의 역사는 정치인, 지배자, 영웅들의 역사였으나 이제는 씨알과 민중이 주체가 되는 역사뿐이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운동 자체가 화산 터지듯 너무 커서 누가 주인이나 공로자 될 수 없다”고도 합니다(『인간혁명』). 우리는 이 고귀한 정신을 너무 쉽게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해방의 언약

성경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서 십계명을 두 차례 언급합니다. 지면이 넉넉해 그런 게 아닙니다. 거듭 강조해야할 만큼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토라 곧 모세오경에다 한 번 더 넣었겠지요. 두 가지 십계명 내용을 잘 대조해보면 약간씩 다른 대목도 있습니다. 가령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하는 이유를 출애굽기 십계명에서는 하나님이 6일간 천지창조 하시고 7일째 쉬셨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반면 신명기의 십계명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할 때 주님이 구출해 내셨으므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열째 계명에서 출애굽기 십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너희 이웃의 아내나..”(출 20:17) 이렇게 적고 있으나 신명기 십계명은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못한다. 이웃의 집이나..”(신 5:21)이렇게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십계명은 ‘집’을 더 중시하지만 신명기 십계명은 집보다 아내를 우선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일부 세부 내용에 차이가 있으나 계명의 줄거리는 대동소이합니다. 하지만 출애굽기의 십계명과 신명기의 십계명이 기록된 시기는 적어도 60~100년 이상 간극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떤 게 먼저 나왔겠습니까? 물론 출애굽기의 십계명입니다. 출애굽의 십계명은 아내를 재산처럼 취급하며 집을 더 중시하지만 신명기의 십계명은 아내를 재산보다 더 중시하지 않습니까? 그것만 봐도 시대적 인식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계약법전이나 신명기법전 따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입니다. 고대에는 강대국이 약소국에게 불평등 조약을 강요하였습니다. 봉신국들은 제국들이 요구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각국이 맺는 ‘자유무역협정(FTA)’만 하더라도 말이 좋아 ‘자유무역협정’이지 그게 과연 ‘자유로운 무역’입니까? 강대국들은 제 나라의 기간산업이 침해되지 않도록 이런 저런 구실을 들어가며 다 보호하고 약소국들에게 ‘문 열라’고 강요하는 심히 불평등한 협정이지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맺은 십계명 언약은 이와 전혀 달랐습니다. 표면상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일방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한 주님께서 지켜야할 의무 규정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리겠으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정도 약속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리할 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십계명 언약으로써 우상을 타파하고 주님과 이웃을 잘 섬기라고 요구하십니다.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폭력과 거짓, 탐욕에 의해 가로채거나 해쳐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대체 이런 요구를 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또 그 언약 상대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십계명의 서두를 보면 하나님은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밝히십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지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막연히 하늘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히브리들을 광야로 이끌어내어 그의 백성을 삼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들이 다시는 짐승 같은 노예로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어떠한 절대군주나 영웅, 신들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서로에 대해서도 힘이 좀 세다고 폭력으로 지배하거나 남의 것을 함부로 가로채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모두 자유민으로서 서로 신뢰하고 배려하며 함께 어우러져 살라고 요구하십니다. 독일 구약학자 크뤼제만은 십계명 언약의 대상을 “법적, 종교적 권리를 가진 성인 남자들, 특히 자유농민들”로 봅니다. 이 시대는 아직 이방인이나 노예, 여성에 대한 동등한 권리 보장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성인인 남자 자유농민들’이 주님과 이 같은 언약을 맺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신분제가 당연시되던 시절, 문명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자유농민들에게 그 어떤 나라도 상상치 못했던 야웨신앙 중심의 젖과 꿀이 흐르는 새 나라를 건설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기억함

이스라엘은 주님과 맺은 시내 산 언약들을 오랜 세월 잊고 살았습니다. 앗시리아 침략으로 북왕국이 멸망하자 북왕국에서 활동하던 예언자, 제사장들은 대거 남유다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들은 히스기야 왕 재위시절 개혁을 돕다가 히스기야가 사망한 뒤 은신한 것으로 보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왕이 되자, 야웨 유일신 신앙을 가진 자들을 탄압하고 친앗수르 정책을 펴며 각종 우상숭배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는 12살에 즉위하여 무려 55년이나 통치하며 하나님을 철저히 배신하였습니다. 주님의 신실한 종 요시야 왕이 즉위하였을 때에야 야웨 신앙은 복구됩니다. 대제사장 힐기야는 성전수리 공사를 진행하던 중 헌금궤에서 주님의 율법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발견합니다. 이 책이 바로 신명기 법전으로 알려졌습니다. 신명기 법전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계약법전에 대한 회고입니다. 모세가 ‘요단간 동쪽 모압 땅에서’ 주님과 맺은 시내 산 언약을 다시금 회고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은 그 보다 훨씬 후대인 므낫세 왕 차하(주전 697-642)에 기록된 책으로 추정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옛 시내 산 언약을 그들의 새로운 상황에 비추어 다시금 되새겼습니다. 그들이 믿는 주님은 어떤 분이며, 그들이 추구해야할 신앙과 가치는 무엇인지 환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 노예였던 그들 조상을 이끌어내어 자유민이 되게 하셨고 주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언약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에게도 주님은 ‘3.1혁명’을 통해 이 나라가 ‘자주독립국’임과 우리가 ‘자유민’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우리가 3.1절지키는 것은 선혈들의 그 고귀한 정신을 이어받아 다시는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함입니다. 일제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집트 파라오 압제 하에서 히브리들을 해방시키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주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며 광복과 새 조국 건설을 고대하였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는 법”입니다. 3.1혁명 정신을 되새기며, 주님과 언약을 갱신함으로써 복된 나라를 이루고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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