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바위솔
2014/4/26(토)
두려운 전조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덮어 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마태복음서 10:26-31>



AI, 그 대책은?

 지난 17일 정북 고창의 한 저수지의 철새 사체에서 확인된 조류독감 바이러스(H5N8)가 전국으로 급속히 번져 비상입니다. 현재까지 전북에서만 50만여 마리 오리가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조류독감의 유행이 그치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가금류가 살처분될지 모릅니다. 적어도 수백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생매장될 전망입니다. 2010년~2011년 구제역 파동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당시 구제역으로 생매장 당한 돼지나 소 같은 동물이 무려 300만 마리입니다. 안락사에 필요한 약품이 다 떨어지자 상당수를 생매장했는데, 그 작업을 한 사람들 중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 자가 속출했다고 합니다.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소나 돼지 같은 동물은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반려동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농가에서 키우는 소나 돼지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동물들이 산채로 매장되는 데 그걸 보고도 눈 하나 끔쩍 안한다면 그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상태일 것입니다. 조류독감이든 구제역이든 한 번 발병하면 반경 3km 이내 관련 동물들을 살처분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살처분 이유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함이라지만 그게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많습니다. 한국처럼 반경 3km 이내 전염병 관련 동물을 살처분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사람의 안전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수백만 마리 동물을 대량살육 한다는 것은 실로 무서운 죄악입니다.

국내 조류독감은 2003년 처음 발생한 이래 2005년, 2008년, 2011년, 2014년, 이처럼 2~3년마다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2003년에는 592개 농가에서 528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하였고 피해보상금이 1521억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에는 1500개 농가에서 1020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하였고 피해 보상액만도 3070억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다간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같은 전염병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고도 남겠습니다. 당장의 전염병 확산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르나 근본적인 대책은 아닙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 근래 어찌하여 가축 전염병이 빈발하는지 차분히 그 원인을 알아보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야 인류가 지상에 발 딛고 산 이래 계속 있었습니다. 다만 그 규모, 형태, 속도가 예방에 비해 갈수록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어 그 폐해가 심각합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질병을 극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과거에 알지도 못했던 온갖 질병이 속속 생겨나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 산업화와 무분별한 자연파괴가 낳은 부메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가금류나 소, 돼지 같은 가축들이 전염병으로 집단 폐사하는 일이 잦는 까닭을 전문가들은 ‘공장식 대량사육’ 때문으로 꼽습니다. 비좁은 공간에 집어넣고 성장제나 성장호르몬, GMO 옥수수 사료 따위를 먹여 속성으로 키우기에 이들 가축은 전염병에 대한 면역력이 매우 약합니다. 한 번 발병하면 금세 집단 폐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국내의 쇠고기, 닭고기 같은 육류소비가 엄청난데 이런 육식 위주의 식습관부터 고치지 않는 한 지금 같은 가축 전염병의 피해를 막을 방법은 없다고 봐야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AI로 가금류를 살처분한 농가에게 피해 보상금을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보상금을 줘봐야 또 다시 공장식 대량사육을 할 것이므로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이야기입니다. 피해 농가들에rps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나 일리 있는 지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같은 재앙을 피하려면 농민은 가축을 돈벌이 수단 아닌 고귀한 생명체로 바라보며 키워야 하고 소비자는 채식 위주로 식습관을 바꿔야만 합니다.


두려워하라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이스라엘의 여러 고을로 보내셔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고 쫓아내며” 백성들의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치게” 하십니다. 주님이 사람들의 영적, 정신적, 육체적 질병의 치유를 매우 중요한 선교적 과업으로 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제자들에게만 시키신 일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늘 하시던 메시아 사역이었습니다. 마태는 9장의 말미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 주셨다.(마 9:35)”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파송하시기에 앞서 설교를 하셨는데 10장 전체가 그 내용입니다. 그는 당부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진해져라.”(마 10:16) 이 한절 말씀에 ‘양’ ‘이리’ ‘뱀’ ‘비둘기’ 등 네 가지 동물이 나옵니다. 물론 양은 제자들을, 이리 떼는 그들을 박해하는 유대 집권자들을 각각 상징하고, 뱀과 비둘기는 박해에 맞서 제자들이 처신해야할 삶의 태도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고발당하여 법정에 끌려가 신문받고 매질을 당할 것이라 예고하십니다. 심지어 가족에게 배신당해 죽음에 처해지는 일도 벌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같은 무서운 박해를 끝까지 잘 견디라는 당부를 하시지 안타깝게도 그 피할 방도를 일러주시진 않습니다.

본문 단락에서는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는 말을 세 차례나 거듭하십니다. 박해의 시기에 제자들이 두려움에 잠겨 복음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까봐 크게 염려하신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두려움 없이 증언하고 외치는 일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자명한 진실조차 상관이 두려워, 자신이 받을 불이익에 대한 염려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해 상황을 크게 악화시키고 무수한 피해자를 낳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진리를 추구하고 따르는 일은 많은 박해와 불이익을 감수해야하고 무엇보다 ‘소신’과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두려워하지 말아야할 자와 두려워해야할 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밝혀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할 자는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이고 두려워해야할 자는 “영혼과 몸을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입니다. 전자는 불의한 권력자를, 후자는 천지의 창조주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은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은 업신여기고 권력자들에 앞에서는 두려워 벌벌 떱니다. 즉 두려워해야할 대상이 바뀌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닌 사람을 두려워하다 보니 다들 사리사욕의 노예가 되어 부정부패가 판치고 주님의 공의가 바로 서지 않습니다. 빙산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타이타닉호처럼 사회가 파멸로 치달아도 브레이크 걸며 저항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피하지 말고 너희가 모난 돌이 되어 목숨 걸고 외치라”하십니다. 진리를 아는 데 그치지 말고 온몸으로 살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는 앞서 언급한 네 가지 동물에 이어 ‘참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나오는 조류는 까마귀, 독수리, 비둘기, 참새, 암탉과 병아리 등이 전부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마 6:26)는 말씀을 보면 평소 새들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아쉽게도 복음서에는 조류가 모두 다섯 종류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마저 사람 중심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동물을 좋아하십니다. 하지만 그는 주로 사람들 상대로 하셔서 그런지 그 모든 가르침에 등장하는 동물은 사람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소품 정도의 역할에 그칩니다. 본문에 나오는 ‘참새’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마 10:29)이라 하십니다. 1앗사리온은 1데나리온의 1/16입니다. 1데나리온이 10만 원이라면 1 앗사리온은 6천 원 가량에 해당하는 적은 돈에 불과합니다. 참새가 그만큼 하찮게 여김 받던 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며 그의 제자들을 격려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을 지구별의 청지기로 세우셨기에 여타의 동물들보다 귀한 존재로 볼 수야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기에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 않는가 싶습니다.


자연과의 조화

 예수님은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지금 국내 상황을 보면 어떻습니까? 조류 독감으로 한 마리도 아닌 수십만, 수백만 마리 이상의 가금류가 살처분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적용한다면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 이 같은 엄청난 대재앙이 닥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중의 새를 기르시는 하나님께서 왜 한국에 AI 대재앙을 허락하신 것입니까? 이는 청지기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우리 자신에 대한 엄중한 심판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류들이 집단 폐사하고 살처분된다면 우리 인간도 온전할 순 없습니다. 최근 남미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는 ‘부엔 비비르(Buen vivir)' 곧 “자연과의 조화 혹은 생명의 문화”에 대한 추구를 헌법에 명시하여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좋은 삶이란 탐욕에 기초한 성장과 소비 위주의 삶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임을 선언하고 ‘자연에게 그 권리’를 부여한 것입니다. AI로 죽어가는 무수한 조류들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의 두려운 징조를 알아차려야합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주님은 우리의 영혼과 몸, 모두를 대재앙의 지옥에 던져 넣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입구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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