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조연현
2007/1/2(화)
"서로 섬기려 드니 평화로워요"  
“서로 섬기려 드니 평화로워요”
[여성 수도자에게 길을 묻다] 개신교-남원 동광원 김금남 원장
한겨레 조연현 기자
» 0.5평자리 기도실 앞에선 김원장. ‘당신 탓’이라는 원망 대신 ‘당신 덕분’이라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표석의 글이 동광원 가족들의 ‘행복과 평화의 비결’을 말해주고 있다.
여성 시대다. 이 땅의 영적 선지자들도 21세기를 음양이 전환되는 시점으로 보았다. 즉 남성의 시대에서 여성의 시대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 뜻은 독선, 폭력, 약육강식으로 상징되는 남성성에서 자비와 관용, 포용, 화해 등의 여성성이 시대를 이끌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새시대엔 강력한 힘을 가진 영웅적인 아버지상보다는 관세음보살이나 성모와 같은 어머니상이 절실해지며, 그런 가치가 평화와 행복의 열쇠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치의 전환’이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단지 남성이 쥐던 권력을 여성이 쥔다는 단세포적 의미만으로 오용되고 있다.

과연 새 시대의 화두인 여성성은 어떤 것일까. 남성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여성성으로 평화의 아우라를 풍기는 여성은 없을까. 평생 옹달샘처럼 조용히 살아온 여성수도자에게서 여성성의 영적 가치를 발견하러 길을 나섰다. 당당하면서도, 한 없이 부드럽고 겸손해 주위와 지극한 조화를 이루는 이들의 삶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대우받기보다는 섬기려하고, 이기기보다는 ‘더불어 행복한’ 그 삶의 비밀 속으로 들어가보자. 잇달아 만날 네명의 수도자는 주장이나 말이 아니라 삶으로 행복과 화평의 길을 보여주는 이들이다.

전북 남원시 대산면 운교리. 남한산성 쪽에서 풍악산 솔밭을 향해 오르다보면 양지바른 기슭에 동광원이 있다. 오래전부터 살던 허름한 한옥들과 지은 지 4년 된 양옥집들 예닐곱 채가 어우러져 있다. 이 공동체마을은 ‘맨발의 성자’로 불리는 이현필 선생의 제자들이 사는 여성수도원이다. 이 곳에선 24명의 여성들이 살고, 마을 아랫쪽에서 따로 살아가는 남성 독신 수도자들을 비롯해 이 인근에 사는 동광원 식구들을 합치면 35명이다. 대부분이 70대가 넘은 노인들이다. 이곳에선 여성수도자를 ‘수녀’가 아닌 ‘언님’(언니의 높임말)으로 부른다. 20살 안팎에 들어온 언님들이 있는가하면, 자녀들을 키우고 뒤늦게 수도원에 들어온 이들도 있다. 이곳엔 101살과 98살 난 할머니 수도자도 있어 70~80대는 노인 축에도 들지 않는다.

마을에 들어서자 남원 동광원 김금남(79) 원장이 맞는다. 수줍은 듯하면서도 환한 표정이 긴장감을 한 순간에 풀어놓게 한다. 오기 전 까지만도 전화로 “시골 할머니라서 아는 것도 없고, 말 할 줄도 모른다”면서 손사래를 치던 그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순수한 영성 집단으로 첫손에 꼽힐만한 동광원에 들어온 지 60년 간 한번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산골 옹달샘 같은 언님에게서 샘물을 길어냈다.

-따로 할머니수도자들을 돌봐주시는 분들은 없으세요.

=예, 우리끼리 살아요. 돌보는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우린 서로 돌봐주는 사이예요. 여기선 노는 사람이 없어요. 100살 넘은 할머니도 눈에 보이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하려고 하지요. 자기 눈에 보이는 일은 누구나 자기 일로 여깁니다. 누구든지 자기 힘이 닿는 대로 봉사하려고 하지요.

-원장님도 우리나이로 80이신데, 대부분이 더 연장자이시니, 원장님이 아무래도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손님이 오면 원장으로서 얼마나 수고가 많으냐고 하시는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저는 이 분들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살아간답니다. 저는 그냥 철없는 아이처럼 살아갈 뿐이에요.

-많은 분들이 한 집에서 함께 살아가다보면, 서로 맞지 않아 마음 상하는 일도 일을 텐데요.

=동광원 식구들은 누구도 대접받으려고 하지 않아요. 모두 서로 섬기려고 들지요. 내 위주로 뭘 하려들어야 함께 사는 게 힘이 드는데, 우리 식구들은 서로 섬기니 다툴 일이 없어요. 자기 마음이 평화로우면 다른 사람과도 평화로워지게 되요.

-어떻게 하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나요.

=욕심을 내려놓아야지요. 자기 것이 없어야지요. 내 것을 버려야지요. 버리면 가벼워집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도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사니, 부자가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연료비를 너무 아끼시는 것 같네요. 바닥이 차네요.

=(김 원장이 웃으며 옛 얘기를 꺼낸다) 1949년에 동광원 식구들은 광주 방림동 와이엠시에이 건물에 살다가 쫓겨났어요. 30여명이 한겨울인데도 오갈 데가 없어서 방림다리 밑에 천막 세 개를 치고 살았습니다. 10여명이 한 막속에 들어가다 보니 밤에 발도 뻗을 수 없었어요. 그 추위 속에서 옆 사람의 체온에 의지해 잠이 들곤 했습니다. 탁발하고 시장에서 주어온 푸성귀들을 다리 밑에서 물에 씼어 팔팔 끓여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어요. 육체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영혼의 기쁨이 말할 수 없이 커지는 게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살기를 원치 않지요. 사람들에겐 돈이 하나님보다 더 큰 가치로 다가오고 있어요.

=욕심이 커지면, 괴로움도 함께 커져요. ‘가난이 복’이라는 것을 알아야지요.

-정말 ‘가난이 복’인가요.

=우리 ‘감사할머니’ 보세요.(101살 된 박남금 할머니를 말한다) 밥 먹어도 감사하고, 사람이 와도 감사하고, 가도 감사하고, 늘 감사할 뿐이지요. 며칠 전 할머니 자식이 전화를 해왔어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데 기도를 좀 해달라고요. 그때 할머니가 그러시데요. 내 양심으로는 너 한 사람만 잘 되라고는 기도 할 수 없다. 너도 잘되고,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모두 잘되고, 행복하라고 늘 기도한다고요.(저 할머니보다 더 부자가 있느냐는 듯이 웃는다)

-동광원 식구들은 고아들을 돌보면서도 자기 자식과 고아들을 전혀 구별하지 않고 함께 재우고 먹이며 같은 자식으로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요. 6.25와 여순반란사건으로 부모 잃고 오갈 데 없이 방치된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광주에서 우리가 돌보았지요. 돌보는 아이들이 600명이 넘었어요. 제대로 허가받은 고아원도 아니어서 시청에서 아이들을 모두 다른 고아원으로 분산시켰어요. 가까운 데로 보내면 아이들이 다시 찾아온다며 멀리 순천과 목포로 보내버렸어요. 그런데 며칠 뒤 아이들이 절반 이상이 돌아왔어요. 걸을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을 빼고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며칠 동안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동광원을 찾아왔어요. 먹을 것도 없어 굶기를 밥 먹듯 하는 동광원이 그래도 좋다고.

-(성직자들의 권위적인 모습을 많이 보아왔는데, 동광원 가족들은 그 노구의 몸을 땅에 닿도록 절을 한다) 수도자분들이 어쩌면 이렇게 겸손한가요.

=(이현필) 선생님을 뵌 사람들은 그 분을 성자라고 하지만, 그 분은 늘 “나는 죄인이다, 죄인이다”고만 했어요. 어찌 그토록 훌륭하신 분이 자신을 저토록 낮출까 의문이 많았는데, 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분의 말뜻이 조금은 와 닿아요. 햇볕 아래선 작은 먼지도 잘 보입니다. 정말 빛을 본 사람은 작은 먼지 같은 자신의 모습을 확연히 볼 수 있겠다고요. 그러니 ‘저 잘났다’고 자신을 크게 내세울 수가 없지요.

남원/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김금남 원장은 누구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 따라 60년 수도 외길

남원에서 태어난 김금남 원장은 60년 전인 19살에 어머니, 세 여동생과 함께 동광원에 출가했다. 이현필 선생을 만난 뒤 지리산에서 100일 기도한 그는 이현필 선생을 따르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이현필(1913~64)은 전남 화순의 성자 이세종의 수제자다. 이세종은 성경 한 귀절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뒤 아내를 누님으로 부르면서 화순 천태산에서 순결과 청빈의 수도자로 살아갔는데, 기독교의 성자들로 불리는 최흥종, 강순명 목사 등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현필은 광주와 무등산 일대에서 6·25뒤 고아들과 폐병환자들을 돌보면서 자신도 후두결핵에 걸려 별세했다. 그는 굶주리는 사람들을 돌보면서 자신은 풋나물 외에 거의 곡기를 입에 대지 않고, 맨발로 눈밭을 걷는 고행을 자처해 ‘맨발의 성자’ 또는 ‘한국의 성프란치스코’로 불린다.

그가 설립한 동광원에선 자녀를 데려온 수도자들도 자녀들을 고아의 무리 속에 넣어 똑같이 키웠다. 신발을 벗을 때는 나갈 때를 대비해 바깥쪽을 향해 가지런히 놓도록 했고, 음식물은 전혀 남길 수 없게 했다. 또 신자들이 하루에 밥 한 끼씩을 모아 그것으로 불쌍한 사람을 돕자는 ‘일작운동’을 펼쳤다. 이현필의 제자인 김준 초대 새마을연수원원장은 이런 삶을 새마을운동에 그대로 도입하기도 했다. 이제는 이현필의 자선의 뜻을 이은 광주시 봉선동의 귀일원에서 정신지체자들을 돌보고 있다. 수도자들은 광주와 남원, 화순, 함평, 벽제 등에서 공동체를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가톨릭 광주대교구는 이현필의 영성을 잇기 위해 광주에 독신여성수도원인 ‘소화 데레사 자매원’을 설립했다.

남원 동광원은 광주 등지에서 살던 언님들이 80년대부터 이주해 살고 있으며, 3만여평의 땅을 직접 가꿔서 자급자족해 살아가는 노동수도원이기도 하다.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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