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홍세화
2006/1/4(수)
젊은이여 시대에 불온하라  
그대는 대학 수학능력 시험을 마쳤다. 그동안 "대학 가서 미팅 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라는 구호를 당연한 말인 양 받아들였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자아실현의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데 있다면, 그것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전제한다. 그러나 그대에게 타자는 더불어 사는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 대상이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대는 노동의 가치를 능멸하는 반교육적 환경에 있었다는 점을 성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그대가 이미 '나를 배반하는 의식'을 내면화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우리나라 헌법 제1조는 말하고 있지만, 그대는 공교육 과정을 통해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으로서 민주적 시민의식과 공공성의 가치관을 형성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이래 이 땅의 뒤틀린 역사는 지속되고 있다. 아무리 사회 구성원들이 물신주의에 오염되어 경제동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나라의 기본을 농락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유신체제 시절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여덟 분에 대한 재심이 결정된 이 시간에도 우리는 참담한 역설 앞에 서 있다.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자의 후광을 입은 사람이 걸핏하면 국가 정체성을 문제 삼는 적반하장이 관철되고 있지 아니한가.


민주적 시민의식과 공공성의 가치관을 형성하지 못한 채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의식마저 지닌 그대는 앞으로 대학에 입학하든 아니하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관심을 갖는 대신 오직 소유를 위한 집착에 머물기 쉽다. 정치적 동물인 인간으로서 비판정신과 인문정신을 함양하는 대신 토익점수, 학점, 취업준비에 매몰되기 쉬운 것이다. 또 그대는 앞으로 '탈정치'를 자랑스럽게 말할지 모른다. 그것이 그대가 혐오하는 정치를 온존시키는 강력한 힘이 된다는 점조차 모른 채.


젊음에겐 인간의 존엄성 회복과 사회정의에의 열망이 있어야 한다. 오염되지 않은 인간 영혼의 자유로운 활보가 가능한 세상을 꿈꾼다는 것만으로도 젊음은 언제나 희망의 근거다. 사회 양극화에 관한 말만 무성할 뿐, 그것을 극복하려는 구체적 행동이 잘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 서게 된 그대에게 시대에 불온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젊음이 우리 희망의 거처이기 때문이다. 억압과 불안을 지배의 주요 기제로 하는 사회일수록 자유와 저항은 그 자체로 불온이다.


수능을 마친 그대에게 우리 현대사를 공부할 것과 함께 두 가지를 간곡하게 당부한다. 첫째는 인간성의 항체를 기르라는 것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주의는 밀물처럼 일상적으로 그대에게 압박해 올 것이다. 그대는 끊임없이 물질과 보이는 것의 크기로 비교당할 것이다. 그것에 늠름하게 맞설 수 있으려면 일상적 성찰이 담보한 탄탄한 가치관이 요구된다. 부디 '세계와 만나는 창'인 책을 벗하라. 둘째는 자기성숙의 모색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열화된 대학에 입학하려는 경쟁으로 자기성숙의 과정을 마감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에게 허용된 삶의 길이에 비하면, 수능은 아주 작은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은 일생 동안 오직 두 번 긴장한다. 대학입시 때 한 번, 그리고 임용이나 취직할 때 한 번의 두 번뿐이다. 만약 그대가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고 한다면, 죽는 순간까지 자기성숙의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자신의 삶일진대, 부끄러움은 없고 뻔뻔함이 판치는 사회에서 젊음은 이 시대에 '불온하라!'


12월 29일자 한겨레 신문 <홍세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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