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도정일
2005/10/7(금)
오늘의 기분 잡치는 소리들  
오늘의 기분 잡치는 소리들
축구와 국가신용등급에만 신경쓰는 한국인들
지식국력은 미국의 5.9% 대학도서관은 세계 바닥권
청소년 208만명 게임중독 국민하루 독서 8분
이런 몰골에도 한국은 희희낙락 중
▲ 도정일/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관련기사]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한국인이 노상 신경을 곤두세우는 국제적 등급순위표는 크게 3가지다. 국가별 축구실력 순위, 국가 신용등급, 국가경쟁력 순위가 그것이다. 이들 순위에서 한국의 등급 화살표가 위아래 어느 쪽을 향하는가에 따라 한국인의 소화상태가 달라진다. 우울지수가 바뀌고 아드레날린 분비량에도 변화가 발생한다. 화살표는 위대하다. 그것이 위를 향하는 날, 한국인의 머리 위에서도 먹구름이 걷히고 갑자기 별빛 찬란한 하늘이 열린다. 고 녀석이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는 순간 상당수 한국인들이 변비에 걸리기도 하고 72시간 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 위대한 화살표들이 최근 상향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은 한국인을 기분 좋게 한다. 소위 국가경쟁력이란 것의 최근 순위에서 한국은 29위에서 17위로 뛰어올랐다고 한다. 뉴욕의 평가회사들도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할 준비들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직 잘 알 수 없는 것은 축구 등급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파란불이 켜질 것 같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새로 부임한 감독을 봐라, 카리스마도 있고 뱃장도 있어 보이던데? 히딩크를 넘어서겠다는 배포까지도 내보이지 않던가? 거기다 일급 코치들까지 합류했으니 2006년 월드컵에서 태극기는 여러 번 위로 위로 올라가지 않겠는가?

그러나 기분 좋은 소리만 할 수 없는 것이 ‘비판적’ 논평자의 운명이다. 그는 이 운명을 엿장수에게 팔아넘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엿장수가 망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엿장수는 엿을 팔아야 하고 논평자는 기분 잡치는 소리를 해야 한다. 기분 잡치는 소리의 자못 위대한(!) 기능은, 의사가 암환자에게 “당신 암에 걸렸소”라고 말할 때처럼, 사회가 무슨 중병에 걸렸는지 따지고 확인해서 발병신호를 내보낸다는 것이다. 좋은 통치자라면 “주여, 기분 좋은 소리만 하는 친구들에게서 저를 멀리 멀리 떼어놔 주십시오”라며 늘 기도해야 한다고 충고한 사람이 있다. 왕년의 탁월한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회란 기분 좋은 소리만 듣기 위해 유아기로 퇴행하기를 거부하는 사회다.

오늘의 기분 잡치는 소리 제1호는 우리의 지식국력이 미국의 5.9%, 일본의 14%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회원국 평가 보고서니까 이것도 일종의 ‘등급순위’다. 이 평가에 사용된 주요 미시지표는 ‘대학도서관’이다. 우리 대학도서관들은 자타가 공인하듯 세계적 수준으로부터는 거의 바닥권에 있다. 자료구입비는 오이씨디(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 중 최하위이고 장서량, 좌석, 인력, 운영비 등 모든 지표가 바닥을 긴다. 연구조사는 지식생산의 기초이고 도서관은 그 연구조사를 위한 기본환경이며 이 환경이 대학의 생명이다. 대학들은 이구동성으로 ‘세계적 대학’이 되겠다고 큰 소리 치지만, 국학 계열을 제외한 인문, 사회, 과학, 기술 분야에서 박사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연구조사가 가능한 대학도서관은 대한민국에 단 한 곳도 없다. 몇 개 대학도서관에서만 겨우 석사 논문이 가능한 정도다.

기분 잡치는 소리 제2호는 우리 청소년 인구의 24.7%, 숫자로는 약 2백8만 명이 온라인 게임에 중독되어 있다는 통계다. 이 수치가 현실을 제대로 잡아낸 것인지 오히려 의심스럽다. 초기 중독증세를 보이는 청소년까지 포함하면 각종 게임에 멍드는 아이들은 전체의 40%를 웃돌 것이라는 추산이 더 맞아 보인다. 게임중독은 노름중독이나 마약중독에 진배없는 파괴적 ‘쾌감중독’이다. 우리가 정보기술 왕국, 게임수출 대국, 문화산업 강국을 내걸고 정신없이 질주하는 동안 ‘우리의 미래’라는 아이들은 선거권도 행사해보기 전에, 성장에 필요한 자양들을 고루 흡수해볼 겨를도 없이, 꽃망울을 채 터뜨려 보기도 전에, 이 놀라운 게임왕국의 그늘에서 창백한 ‘폐인’으로 시들고 있다.

기분 잡치는 소리 제3호는 2004년 한국인의 평일 독서시간이 평균 8분으로 조사됐다는 소식이다. 우리가 하루 화장실 들락거리는데 보내는 시간이 20분 정도라면 (그 이상일 테지만) 8분은 배설용 시간경제 규모의 절반이 채 안 되는 시간이다. 감기 걸린 날 코 푸는 데 드는 시간, 4인 가족 저녁 설거지를 반쯤만 하고 말 때의 소요시간이 약 8분이다. 한국인 상당수가 빈곤국이라 얕잡아 보는 인도의 경우, 그곳 국민의 하루 평균 독서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인도인이 하루의 16분의 1을 바쳐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하루의 180분의 1만 책에 할애한다. 시간의 근검절약이 눈부시다. 2003년 유엔조사 때 우리의 한 달 독서량은 평균 0.8권으로 세계 166위를 기록했지만 그 당당한 기록은 지금쯤 훨씬 당당한 180위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나 싶다. 오늘의 기분 잡치는 소리 중에서도 완벽하게 기분 잡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이런 몰골을 하고서도 태연자약, 희희낙락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중병이 들었는데도 국가와 사회가 병의 위중함을 인식하지 않고 인식하지 못한다. 인식 없는 곳에 정책 있을 리 없다. 사회 전체가 환상적 쾌감중독에 빠져 있다. 대학도서관은 왜 바닥을 기는가? 청소년들은 왜 게임에 빠지고 그 중독현상에는 무슨 대책이 필요한가? 책을 읽건 말건 무엇이 문제인가? 안 읽는다면 왜 안 읽는가? 탄식보다 중요한 것은 원인분석이고 대책과 정책의 강구다. 이 작업이 없거나 모자라는 사회는 잠시 기분 좋기 위해 길게 죽는 사회다.

기사등록 : 2005-10-06 오후 07:46:21기사수정 : 2005-10-06 오후 07: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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