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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오강남
2010/8/18(수)
"종교간 평화 없으면 세계의 평화도 없다"-한스 큉  
“종교간 평화 없으면 세계의 평화도 없다”
 

가톨릭 진보진영 대표하는 신학자
교황-교황청 독선 신랄하게 비판
선불교, 전통 요소 재발견에 도움

 

 

한스 큉은 많은 저서를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새롭게 전달했다. 또‘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글로벌 윤리(global ethic)’를 주창하며 종교적 상대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종교 간의 대화 없이 종교 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으며, 종교 간의 평화 없이 세계 평화 또한 있을 수 없다.”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Hans Ku..ng)이 『글로벌 윤리』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돌이켜 보면 1974년에 나온 그의 책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On Being a Christian)』은 30대 초반이었던 필자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큉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 본 ‘인류의 스승’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인물이다. 1928년 3월 19일 스위스 루체른 주 주르제에서 태어났으니 올해가 그의 82회 생일이다.


그는 많은 저서를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새롭게 전달하고 있다. 세계의 여러 종교가 서로 대화를 통해 배우고 돕는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글로벌 윤리(global ethic)’를 주창하며 종교적 상대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그는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안 대학교(Pontifical Gregorian University)에서 1955년까지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1957년까지 파리의 소르본 대학 등에서도 공부했다. 박사학위 논문은 개신교 신정통주의 신학의 대가 「카를 바르트(Karl Barth)의 칭의론(稱義論)에 대한 가톨릭적 성찰」이었다. 여기서 그는 칭의에 대한 바르트의 주장과 가톨릭의 가르침이 여러 면에서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비롯해 교파간의 작은 차이들은 지엽적인 문제들로 이런 사소한 문제로 원수처럼 갈라서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후에 이 논문은 영어로 번역이 되었는데 번역본에는 바르트가 큉의 논문을 읽고 자신의 신학을 잘 이해했다며 보내 온 편지도 함께 수록돼 있다.

 

교단·교파 일치 에큐메이즘 주장

 

그는 1954년에는 사제 서품(敍品)을 받고 1960년 독일 튜빙겐 대학 신학교수가 되었다. 지금은 보수와 진보로 갈린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 즉 요제프 라칭거 (Joseph Ratzinger)도 그의 제안으로 튜빙겐 대학교 신학교수로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라칭거가 학생들의 반발로 튜빙겐에서 물러나 레젠부르크 대학으로 가면서 둘의 관계는 소원해지게 되었고 이후 그가 가톨릭의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대신 라칭거는 보수주의 진영의 수장이 되었다.

 

그는 1962년 교황 요한23세로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위한 신학 분야 전문 자문단의 한 사람으로 지명되어 1965년 공의회가 끝날 때까지 가톨릭 신학의 대가 카를 라너(Karl Rahner)와 함께 가톨릭 신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963년 초 미국에서 행한 ‘교회와 자유’라는 제목의 연설로 그는 미국 가톨릭대학교(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로부터는 금령(禁令)을 받았다. 하지만 인기는 날로 높아져 세인트루이스 대학교(St. Louis University)로부터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백악관을 방문하라는 초청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71년에 나온 『무류(無謬)·미해결의 탐구((Infallible·An Unresolved Inquiry)』라는 책에서 교황 무류설은 인간이 만든 교리일 뿐 절대적일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라는 저서를 통해 예수의 동정녀 탄생은 우리에게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전해 주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여성 사제 제도를 금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관행이라고 비판하는 등 보수 가톨릭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한 지적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결국 교황청으로부터 바티칸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바티칸에 간다면 아마도 16세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했던 것처럼 신념을 굽히지 않고 기존 교단과 다른 길을 가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그는 이를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교황청은 로마 가톨릭 신학자로서 강단에 설 수 있는 자격을 박탈했다.


그러나 다행히 파문당하거나 신부직을 박탈당한 것은 아니어서 튜빙겐 대학 내에 있는 에큐메니칼 연구소에서 1996년 명예교수로 퇴직할 때까지 계속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여기서 에큐메이즘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여러 교단과 교파의 일치를 주장하는 이론으로 그는 단순히 좁은 의미의 에큐메이즘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과 상호 존중을 주장하는 범종교적 에큐메니즘을 주장했다.

 

그는 그리스도교가 견지해오던 배타성이나 우월의식 같은 것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어느 한 종교가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진리를 독점하거나 전매특허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계의 모든 종교는 서로 협력해야 하며 경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선불교와 그리스도교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86년 미국 인디아나 주에 있는 퍼두(Purdue) 대학교에서 열린 제3회 불교-그리스도교의 신학적 만남이라는 모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선불교가 그리스도교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자각하게 하고 또한 본래 전통에서 사장된 요소들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선불교에서 강조하는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필자의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333쪽 이하 참조).

 

진리는 기독교의 전유물 아니다

 

2005년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해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제2차 바티칸 공회의의 결의에 충실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높이 평가하며 변화와 쇄신, 그리고 대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교황은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현대화, 대화, 에큐메니즘 같은 말을 회복, 지배, 순종 같은 구시대적인 말로 대치시키면서 오히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으로의 복귀를 꾀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교회 지도부를 지명하는 기준이 전혀 복음의 정신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상부 정치는 교회 지도부의 도덕적이고 지적인 수준을 위험 수위 이하로 떨어뜨렸다. 진부하고 경직되고 보다 보수적인 지도부가 교회의 영속적인 유산이 되고 말 것이다.” 는 말로 가톨릭 지도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런 비판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2005년 9월 26일에는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만찬을 같이 하며 가톨릭 신학에 대해 격의 없는 토론을 하기도 했다. 물론 토론을 통해 둘의 신학적 견해가 친밀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2008년 발표한 글에서 교황과 자기의 신학은 “천동설을 주장했던 프톨레미의 우주관과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만큼이나 다르다”고 했다. 비교적 최근인 2009년 10월 27일자 영국 가디언지에 기고한 글에서는 현 교황이 영국 성공회 신부를 가톨릭으로 영입하려는 시도를 로마 가톨릭 제국을 복원하겠다는 권력에의 갈증으로 규정하고 그리스도교를 분리시키고 가톨릭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1990년 이후 종교인들의 ‘지구적 책임(global responsibilities)’이라는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글로벌 시대에는 글로벌 윤리(Weltethos)가 요구된다며 세계 모든 종교가 함께 동참하자고 호소했다. 그는 세계 여러 종교에서 가르치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찾아 이를 토대로 세계인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윤리 강령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스스로 ‘글로벌 윤리를 향하여: 시안적 선언’이라는 문서를 작성해서 이를 19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종교 회의(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에서 발표했는데 당시 참석했던 세계 여러 종교 지도자들의 서명을 받아 선언문으로 채택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이 선언문에서 비폭력, 생명 경외, 정의로운 경제 질서, 관용, 진실성, 남녀평등 등에 진보적이고 열린 생각을 폭넓게 담았다. 그리고 그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1995년에는 ‘글로벌 윤리 재단’을 창설하고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지구적 책임을 위해 지구적 윤리를 실천하는 일을 위해 모든 종교는 우선 자기 종교를 절대시하는 대신 스스로를 비판적 시각에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남의 종교를 무조건 배척하는 배타 정신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인간인 이상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념은 결코 절대화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종교 공통분모 찾아 윤리강령 제정

 

그러면서 그는 “세계 어디에서나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며 “종교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힘이 촉발되면 어디서나 지구의 얼굴을 다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영적 힘을 가지고 있다”(Yes to a Global Ethic)고 확신했다.


그는 광범위한 주제로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앞서 소개한 것들 외에도 『그리스도교와 세계종교』, 『신은 존재하는가?』, 『프로이트와 신의 문제』, 『이슬람』, 『유대교』, 『새천년을 위한 신학』, 자서전인 『자유를 위한 나의 몸부림』, 『나는 왜 아직도 그리스도인인가?』 등이 있으며 강연이나 TV 대담 동영상도 있다.

 

이 중 다수는 한국말로도 번역되어 있다. 이런 훌륭한 스승이 서적이나 대중 매체를 통해서 뿐 아니라 우리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함이 느껴진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법보신문 10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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