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이름: 황현산
2010/3/6(토)
[삶의창] 30만원으로 사는 사람  
[삶의창] 30만원으로 사는 사람 / 황현산
한겨레
»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한국 시와 외국 시를 함께 읽는 수업 중에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시만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조금 생각해 보다가 짧게 대답했다. 많지는 않지만 있다. 다시 묻는다. 얼마를 버는가? 질문이 얄궂다고 대답을 피할 수는 없다. 시인마다 다르다. 어떤 시인은 시도 쓰고 길지 않은 산문도 써서 한 달에 평균 30만원을 벌고 그것으로 생활한다. 학생들은 무슨 농담이 그러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사실을 말한 것이지 농담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대답은 사실을 다 말한 것도, 정확하게 말한 것도 아니다. 그 시인이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어야 한다. 그는 구차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친구가 많으며, 그와 친분이 있는 것을 영예로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시인들이 쓰는 시의 주제는 각기 다르고, 쓰는 기술도 다르지만, 그들이 시의 길에 들어선 계기나 방식은 거의 같다. 한 젊은이가 어느날 문득 자신에게 ‘시 같은 것’을 쓸 수 있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재능이 매우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막연하게 느낀 이 재능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그가 이제까지 이루려 했던 일의 가치보다 비교할 수도 없이 더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안다. 순결한 그 젊은이는 자기가 꿈꾸어온 좋은 삶도 그 가치를 저버리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에 그 재능은 일종의 의무가 된다. 그는 떨면서 그 의무를 이행하기 시작한다. 서정주가 그렇게 시인이 되었고 김수영이 그렇게 시인이 되었다.

젊은 시인은 이 세상의 모든 어둠을 일시에 밝게 비춰줄 한 광채의 존재를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서 보았으며, 자신이 그 빛을 본 첫 번째 사람이 아니란 것도 배워서 안다. 그래서 그는 착하고 진실한 삶이 저기 있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비루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날마다 묻게 된다. 어쩌면 그가 쓰는 시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는 제가 좋아하는 말을 골라 이리저리 조합했을지 모른다. 제가 무엇을 썼는지 자기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에 제목을 붙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진지할 것이 없어 보이는 말장난을 할 때조차도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는다. 그는 자기 자신도 누구도 속인 것이 아니다. 그는 벌써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보았기에, 그가 쓰는 말들이 그 포기할 수 없는 것과 늘 새롭게 관계를 맺기에, 그의 시는 이 모욕 속에서, 이 비루함 속에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고 생각하려던 사람들을 다시 고쳐 생각하게 한다.

인간이 수수천년 사용해온 말 속에는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고통과 슬픔이, 그리고 희망이 들어 있다. 제가 쓰는 말을 통해, 그 길고 깊은 어둠 속에서 그친 적이 없이 빛났던, 그리고 지금도 빛나는 작은 불빛들을 저 광채의 세계와 연결하려는, 또한 그 세계가 드문드문이라도 한 뼘씩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던 시인에게 30만원과 300만원의 차이 같은 것은 없다. 그의 용기는 당신이 한순간이라도 꿈꾸었던 세계가 허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로 결심한 사람의 용기이다. 어떤 파락호라도 그 용기를 욕되게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무슨 시인론을 펼치려던 것이 아니었다. 우리 문화예술위원회가 한국작가회의에 주어야 할 지원금을 붙들고 앉아서 어떤 모욕적인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고 한다기에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 벌 받는다. 도장 찍으라고 한 사람이 벌 받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벌 받는다.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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