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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바위솔
2009/10/16(금)
[기사]"국가가 잘 되면 행복해진다? 더 이상 속지 말자"  
 

"국가가 잘 되면 행복해진다? 더 이상 속지 말자"

[창간 8주년 지방 순회 강연회 : <2> 대구]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기사입력 2009-10-16 오전 10:33:41

<프레시안> 창간 8주년 기념 지방 순회 강연회가 찾은 두 번째 지역은 대구광역시였다. 지난 14일 대구MBC 강당에서는 '경제 성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를 주제로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강연이 열렸다.

프레시안이 주최하고 대구사회연구소가 주관한 이번 강연은 열띤 분위기 속에서 2시간 남짓 진행됐다. 김종철 발행인에 이어서 토론자로 나선 최병두 대구대 교수의 질의와 반박, 그리고 청중의 질문으로 분위기는 더욱더 달아올랐다.

'경제 성장은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한 김종철 발행인은 "자본주의의 모순은 이제 극에 달했고, 기후 변화, 오일 피크 등 세계는 이미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며 "이를 극복하는 길은 밑바닥에서부터의 협동과 공생, 인민의 자기 통치로 이뤄지는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 14일 대구MBC 강당에서는 '경제 성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를 주제로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강연이 열렸다. ⓒ프레시안

다음은 강연 전문.

"한 세기가 더 지났지만 임치수의 소망은 여전히 미해결"

요즘 민생 이야기를 많이 한다. 진보, 개혁 성향의 정치인, 지식인 중에서도 공공연히 '더 이상 민주주의를 이야기해선 먹혀들지 않는다, 어쨌든 경제를 살릴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다음 선거도 가망 없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언제 밑바닥 사람의 경제가 좋았던 적이 있었던가? 민생은 늘 좋지 않았다. 사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잘 사는 늘 잘산다. 문제는 밑바닥 사람들이다. 늘 민생을 걱정하는 사람은 많은데, 왜 밑바닥 사람의 살림은 나아지지 않을까?

해방 후 이북에서 문필 활동을 했던 소설가 박태원의 작품에 <갑오농민전쟁>이라는 대하장편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한 20년 전쯤 남한에서도 출판됐다. 비록 픽션이지만 사실에 상당히 근거를 뒀지 싶다. 1894년 농민혁명이 일어나기 전 30~40년간 조선 각지에서 농민을 주축으로 한 민란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이 소설을 보면, 1862년엔 익산 민란 얘기가 나온다.

농민군 우두머리는 농민 임치수였다. 그가 마침내 붙잡혀서 사형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망나니가 목을 베기 직전에 한 마디 하라고 얘기를 하자, 그는 전라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는 너희 놈들 손에 이 자리에서 죽는다. 그러나 언제고 너희가 우리 손에 죽고야말 날이 반드시 있다는 걸 알아라. 이놈들아 똑똑히 들어라. 이제 우리를 죽이거든 우리의 눈알을 모조리 뽑아 전주성 남문 위에 높다랗게 걸어놔 다오. 앞으로 몇 년 후, 몇십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농군이 모조리 들고 일어나서 너희 놈들을 모조리 때려 잡으려 남문으로 몰려가는 광경을 우리는 기어이 이 눈으로 보고 말 테다."

결국 그의 소원이 이뤄지기는 했다. 갑오년에 전주성이 함락됐으니까. 그러나 그 후에 어떻게 되었나. 조선의 지배층은 자기 백성들 요구를 들어주기보다는 외세에 빌붙어 사는 것을 선택했다. 일본군에 의한 삼남 토벌 작전에 동학군 농민들이 괴멸을 당했다. 본질적으로 이런 역사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 세기가 더 지났지만 임치수의 소망은 여전히 미해결이다.

<금강>을 쓴 시인 신동엽은 우리 역사에서 잠깐 하늘이 맑게 개였던 순간들에 대해서 자주 언급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잠시 개였다가 또 다시 먹구름 뒤덮는 역사가 10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게 우리의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참 비관적이다. 먹구름이 물러난 맑은 하늘을 잠시 보고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고 고통당했나. 그러나 얼마 못가서 다시 먹구름으로 하늘이 닫히는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과연 역사에서 민중의 간절한 소망이 실현된다는 게 가능한가? 예수 때부터 지금까지 2000년 동안 안 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하늘이 맑아진 순간이 잠시뿐이라고 해서,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이 잠깐 동안만 이루어진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포기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인간은 영물이어서 그 잠시 동안의 맑은 하늘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마음 속 깊이 평생 갖고 살면서 언젠가 그것이 다시 실현될 날을 꿈꾸고, 노력하고,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농사를 이렇게 가볍게 아는 정부가 어디 있나"

▲ "민중을 먹여 살리는 것은 경제 성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주주의라는 신념 없이 어떻게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프레시안
나는 우리나라 진보 진영이 과연 충분히 진보적인 정치 세력인지 묻고 싶을 때가 많다. 민중을 먹여 살리는 것은 경제 성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주주의라는 신념 없이 어떻게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삶을 근본적으로 망치는 게 경제 성장 논리라고 생각한다. 보수진영의 경제 성장 논리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효과적인 반론이 없기 때문에 대중들은 근거가 있건 없건 높은 경제 성장을 약속하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에게 표를 주었고, 그 결과로 지금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문제는 이 상황이 좀처럼 개선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4대강 문제, 정말 자다가도 화가 나서 일어나게 되는 문제다. 이것은 엄청난 돈을 써서 할 만한 아무런 타당성과 합리성이 없는 그냥 국토에 대한 전면적인 파괴행위일 뿐이다. 약간의 독립적인 발언을 할 만한 위치에 있는 학자라면 전원이 말이 안 되는 사업이라고 하지 않는가. 수십 개 댐 만들고 콘크리트 제방 쌓고 강바닥 다 훑어내면서 수질 맑아진다는 것은 국민을 전부 바보로 취급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논리이다.

게다가 이 공사 진행하면 주변 농경지가 다 거덜 난다. 지금 벌써 농경지가 수용되고 있다. 팔당 인근 상수원 보호 구역에서 농민들이 수십년에 걸쳐 온갖 시련을 겪고 유기농 단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물에 잠기게 돼 있다. 중앙정부가 하는 국책 사업이니까 협조하라는 게 지역민들의 항의에 대한 정부의 답변이란다. 뭘 협조하라는 것인가. 그 사람들은 그곳이 생활의 근거지다. 그들의 삶이 뿌리 뽑히건 말건 중앙정부 사업이니 결행해야겠다는 국가 권력의 이 횡포를 어떻게 해야 하나.

더욱이 농사를 이렇게 가볍게 아는 정부가 어디 있나. 작년과 재작년 세계적으로 식량위기 사태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빈발할 것이라고 봐야한다. 무엇보다도 세계 전역에 걸쳐 심각하게 농토가 줄어들고 있거나 사막화하고 있다. 그나마 있는 것도 생물연료용 옥수수 단지, 축산 단지, 산업단지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또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앞으로 갈수록 농사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게다가 지난 반세기 이상 농사의 주도권을 쥔 기업농 시스템 때문에 토지가 악질화되어 농경지로 더 이상 적합하지 않는 땅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

"몇 십 년 안 대재앙, 명약관화한 일"

논리적으로 생각해볼 때, 몇 십 년 안에 대재앙이 닥치리라는 건 너무나 명약관화한 일이다. 피크오일은 이미 시작됐다. 현대 산업사회는 기본적으로 석유에 기반한 문명이다. 비단 산업 활동과 경제뿐만 아니라 온갖 정치, 사회, 문화, 심지어 교육에 관계된 일도 석유가 개입되어 있지 않은 게 없다. 농사는 말할 것도 없다.

북한이 1990년대 중반에 끔찍한 대량 기아 사태에 직면했는데, 북한의 식량자급률은 대략 65%이다. 남한보다 월등히 높다. 나머지 35%가 부족하면 대량기아 사태가 나는 것이다. 남한은 25% 식량자급률인데 그나마도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앞으로 석유공급이 원활히 되지 않는 상황이 되면 25% 자급률은 어림도 없다. 90% 이상을 해외에서 식량을 들여와서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으로 나라가 유지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장기적으로 그토록 식량을 대량으로 수입해 먹는 게 도대체 가능하기는 할까. 내가 보기에 어림도 없는 일이다.

첫째, 한국의 수출 산업이 지속적인 흑자를 누리는 게 과연 가능할까? 공황은 이제 시작 단계라고 봐야 한다. 생각 없는 언론은 지금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좀더 객관적인 분석가들에 의하면 본격적인 공황이건 아니건 앞으로 세계경제가 예전처럼 호황을 누릴 가능성은 별로 없다. 지금처럼 자동차와 핸드폰을 팔아서 번 돈으로 해외농산물을 사들여 먹는 패턴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이 하나도 없다.

또 하나는, 설사 그런 기적 같은 일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해외에서 사들여 올 수 있는 식량이 언제까지 있느냐는 거다. 농토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고,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위기에 대비해서 점차 모든 나라가 식량을 무기화할 생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산업 국가 중 한국이 식량자급률 제일 낮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골똘히 생각해야 한다. 우리보다 식량자급률이 낮은 나라는 딱 한 군데, 아이슬란드다. 아이슬란드는 본래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농업국들이다. 유럽국가들, 예컨대 독일과 프랑스는 150% 이상 식량자급률을 기록하고 있다.

▲ "장기적으로 그토록 식량을 대량으로 수입해 먹는 게 도대체 가능하기는 할까. 내가 보기에 어림도 없는 일이다.
" ⓒ프레시안

"국내의 옥토는 황폐화시키면서 해외 농토 확보?"

지금 우리처럼 농업을 등한시하는 나라는 없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엘리트들, 지식인들 중 농업에 진지한 관심 가진 사람이 정말 드물다. 그냥 막연히 먹을거리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해외 농지를 확보하겠다는 전략 외에 아무것도 없다. 대기업들로 하여금 러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민주화되지 않은 국가들의 독재자들과 적당히 협상을 하여 그 지역 민중의 생활 근거지인 농토를 사거나 장기 임대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대우가 마다가스카르 농토의 절반 이상을 99년 임대한다는 프로그램을 그곳 독재정부와 협상을 거쳐서 거의 실현하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자기 농민들의 땅을 사실상 빼앗아 외국자본에 넘겨주면서도 지역민들에게 아무런 의논도 동의도 구하지 않고 협상을 진행하다가 그 사실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등에 의해서 폭로되자, 폭동이 일어났고, 결국 정권이 바뀌는 바람에 대우의 계획은 무산되어버렸다. 비록 실패한 계획이지만, 이것은 사실상 토지강탈 행위이다. 외국의 언론이 이런 각도에서 신식민주의적 정책이라고 비판을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은 이에 대해 이렇다할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가 기사나 논평을 쓰면 기껏 한다는 소리가 외국 사람들이 한국이 잘되는 꼴 보기 싫어서 하는 비판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게 고작이다.

실제로 <조선일보>에서 그런 논평이 나왔다. 서양인들이 한국에 대해 시기심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국익 우선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인간성과 윤리를 아예 망각한 자세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때 우리가 남의 식민지가 되어서 그렇게 인간적인 모욕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아직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이처럼 약육강식의 논리를 거리낌 없이 옹호한다는 것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최소한 역사에서 배운 게 있다면 세계의 양심과 보편주의적 입장에 약간은 서보려는 노력을 해봐야 할 게 아닌가.

국가라고 하면 장기적 생존, 적어도 몇 십 년 정도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식량위기 사태에 대비하여 기껏해야 해외 농토 확보, 그것도 제국주의적인 방법으로 하면서 세계인들의 비웃음을 사는 짓이나 하고 있는 게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국가는 경제 성장을 한다면서 끊임없이 국내의 옥토는 황폐화시키고 있다. 더 문제는 이런 기막힌 사태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이의제기를 하는 정치세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민중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농업"

요즘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들에서 생태, 환경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노동, 여성, 소수자, 환경 등 종래의 주요 이슈에 하나 추가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런데 생태적 위기라는 것은 여태까지 당연시해오던 가치의 위계구조를 전면적으로 뒤집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동안 늘 경시되어 왔던 자립적 농사가 갖는 절대적인 가치이다.

그동안 너무 농업이 붕괴됐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농업이란 자립적인 소농과 그들의 공동체가 살아있는 것을 말한다. 이 나라에서는 수십 년간 영농규모의 확대, 기업농 육성, 기계화, 경쟁력 따위만을 얘기해 왔다. 소농은 퇴출되어야 농업이 경쟁력을 가진다는 논리였다. 김성훈 장관 때 잠시 환경농업 얘기가 나왔다. 사실 이명박 정부만 이런 게 아니다. 역대 정권이 다 그랬다.

▲ "생태적 위기라는 것은 여태까지 당연시해오던 가치의 위계구조를 전면적으로 뒤집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레시안

노무현 대통령이 저렇게 비명으로 갔을 때 물론 마음이 아팠지만, 나는 그가 대통령 재직 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완강하게 밀어붙이던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다. 그 협정은 근본적으로 농업 포기하고 공산품 팔아서 외국 농산물 사먹자는 논리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나 생태계를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무를 방기하고, 궁극적으로는 경제 주권도 미국에 넘기고 말 협정인데도 불구하고 왜 '민주정부'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려는 것인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정부'건 아니건 자본주의 세계경제 체제에 예속되어 무역으로 먹고 살자는 전략을 근본적으로 변경하지 않는 한, 반민중적이고 반생태적인 경제정책 노선에서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상층부 엘리트가 아니라 밑바닥 민중의 처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면,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이 농업이다. 민중이 자립할 수 있는 생존의 양식을 생각하면 농업을 축으로 한 경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생태, 환경을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21세기 최대의 난제인 환경문제를 온전히 극복하는 건 사실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최악의 재앙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급격히 우리의 삶은 생태주의적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 걸 따지면 성장 경제 논리는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지금 시급한 것은 순환 경제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다. 성장 경제의 반대가 순환 경제이다. 밥이 똥이 되고 똥이 밥이 되는 순환의 시스템 말이다. 그러면 자연히 공업 중심이 아닌 농업 중심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결론은 그것이다.

<4000년 동안의 농부>라는 책이 있다. 20세기 초에 서양인이 동아시아에 와서 인분을 거름으로 주는 걸 보고 놀란 경험을 얘기하고 있는 책이다. 자기들 상식으로는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 환경 문제의 큰 원인이 되는 게 배설물 처리다. 그런데 동양사회에서는 인분이 다시 논밭으로 들어가 농지가 쇠약해지지 않고 계속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풍성한 수확을 가능하게 해줬다. 그런 게 순환 경제다.

옛 사람들은 땅에서 뺏어 먹은 만큼 양분을 땅에 되돌려주는 순환농법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인분과 축분이 단지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됨으로써 심각한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어 있을 뿐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써서는 토질의 악질화 내지는 쇠약화는 필연적이다. 땅으로 되돌려주어야 할 인간의 배설물이 지금은 그야말로 똥 취급만 당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서양식 근대산업문명의 논리가 관철된 결과이다. 밀란 쿤데라는 우리나라에서도 꽤 인기 있는 서양 작가인데, 그는 어디선가 "'하느님이 전지전능하다면 인간으로 하여금 똥을 누게 하는 성가신 일을 하게 했을 리는 없다"는 굉장히 어리석은 말을 했다. 서양 근대 지식인의 한계다. 순환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똥을 눈다는 것이야말로 사실은 신의 완벽함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똥이 없다면 세상이 성립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질병이 있다는 게 도리어 자연 질서의 완벽함을 표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사회에는 약자도 있고 장애인도 있기 때문에 돌보고 보살피는 일이 필요하고, 그런 것을 통해서 인간의 삶에 깊이가 형성되고, 우리의 인간성이 풍부해지는 것이다. 비극과 희극이 발생하고, 시와 철학과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석유 끊어지면 고층 아파트 사람들은 똥을 어떻게 처리할까?"

▲ "나중에 석유 끊어지면 저 고층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은 아침에 눈 똥을 어떻게 처리할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지금 우리의 생활에는 장기적인 안목과 그에 따른 합리성이 전혀 없다." ⓒ프레시안
요즘 지식인 사회에서는 지금 이 나라가 파쇼냐 아니냐 그런 토론도 전개되고 있다. 글쎄,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 상황을 파시즘 체제라 말하긴 어려울지 모른다.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국민대중의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리더십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시민들의 실감으로 이 정권이 하도 반민중적인 정책을 거리낌 없이 펴고, 공권력의 힘만으로 우격다짐으로 나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파시스트라는 말을 하게 된다. 나는 이러한 대중적인 언어감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자연하면서 개념의 엄밀성을 앞세우는 태도보다는 지금 민주주의가 얼마나 말도 안 되게 훼손되고 있는지를 파시즘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절박한 대중적 심정에 공감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파시즘이란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강권 내지 폭압 정치로 해소하겠다는 기도라고 한다면, 지금 이 정권의 행태를 파쇼적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별로 이상한 것은 아니다.

실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모순은 이제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고용문제도 복지문제도 결코 해결 안 된다. 진보진영에서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사민주의를 생각하는 모양이고, 국가복지체제의 정비를 지향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복지체제는 기본적으로 경제 성장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게 문제다.

북유럽 모델도 지금 세계경제 위기 상황에서 급격히 퇴조하고 있다. 덴마크 같은 사회민주주의 복지 시스템을 가진 나라에서 이제 실업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한다. 계속적인 경제 성장 이론을 펴는 사람들은 늘 고용 문제를 얘기한다. 성장해야 고용할 수 있다, 서민은 고용되어 노동을 하고 거기서 나오는 임금소득으로 생활하며, 모자라는 것은 국가적 복지 시스템에 의해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전제는 항상 경제 성장과 완전고용의 이상이다.

지금 실업난이 일시적 문제라고 보는 것은 내가 보기엔 착각이다. 축적과잉, 생산과잉의 자본주의 경제에서 더 이상 유효 수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이제 복합적인 위기, 즉 기후변화, 에너지위기, 식량위기가 한꺼번에 결합된 형태로 몰려들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본다. 당장에 석유 생산 정점 사태로 인한 산업문명의 기능 마비 사태가 닥칠 공산이 크다. 석유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의 기본 원료이기도 하다.

<장기 긴급 상황>이라는 어떤 미국 작가가 쓴 책이 있다. 여기에 보면 값싼 석유공급이 중단되는 사태 때문에 조만간 세계의 항공료가 엄청나게 오를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산업문명의 종언을 고하는 카나리아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미 그때는 지구 전체가 비상 상황에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난 20세기 동안 공업화 문제만이 아니라 공업화를 축으로 해서 형성되어온 우리 생활 전반이 석유에 기반하고 있다. 아까 동대구역 내려서 보니까 그새 고층아파트 단지가 또 올라와 있더라. 나중에 석유 끊어지면 저 고층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은 아침에 눈 똥을 어떻게 처리할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지금 우리의 생활에는 장기적인 안목과 그에 따른 합리성이 전혀 없다.

"우리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수십 년간 속아 왔다"

결국 국가는 인간화될 물건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이성을 차리라고 이야기해봤자 국가는 민중의 편이 절대로 되지 않는다. 임치수의 소원을 들어줄 것 같지 않다. 아무리 좋은 말로 이야기하고 간청을 해도 절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국가 권력이 민중의 소리에 순응하는 척 하는 것은 이러다가는 다음 선거에 지겠구나 싶을 때뿐이다.

그래도 국가 권력이 나름대로의 자존심이 있으면 양심 있는 지식인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아예 무시해버린다. 4대강 사업 문제 있다고 아무리 합리적인 지적을 해도 대답도 안 한다. 그냥 묵살하고 기껏 '오해다' '홍보부족이다'라고 한다. 전문가를 향해서 합리적인 설명과 답변을 하지 않고, 내용을 잘 모르는 일반대중을 향해서 엄청난 돈을 들여 일방적인 선전, 광고만 해댄다.

그래도 박정희 때나 군사정권 때는 그 나름대로 지식인의 말을 무서워하고 존중했다. 그랬기 때문에 정권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는 지식인을 잡아다가 때리고, 감옥에 처넣지 않았나. 이젠 아예 무시해버린다. 말 자체가 허망해져버렸다. 지금 창궐하는 것은 거짓말뿐이다. 지식인으로서는 이게 더 견딜 수 없는 상황이다. (웃음)

내가 보기엔 이 정권은 경찰력, 즉 국가의 합법적인 폭력행사가 없다면 당장에 무너질 것 같다.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최소한 자유주의 정부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규칙을 하나도 지키지 않는다. 거기다가 자본은 원래 생리가 돈 버는 데 목적이 있지 공익 사업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자본가 보고, 기업 보고 윤리적 경영을 하고, 사회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해봐야 소용없다. 그 말처럼 어리석은 게 없다. 자본의 폭주를 제어하는 게 본시 국가의 책무라고 하지만, 오늘날 국가와 자본은 결국 한통속이기 때문에 그것도 기대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국가와 자본은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없으면 절대로 인간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늘 민감하게 의식하는 일이다.

▲ 대구에서 열린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강연을 듣고 있는 청중들. ⓒ프레시안

보통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자본의 폭주를 국가 공권력이 제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회에도 진보 정당이 많은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옳지만, 한편 더 생각해보면, 이게 잘되는 일이라면 왜 신자유주의가 나왔겠는가. 예를 들어, 케인스주의가 계속 먹혀들어가는 상황이었다면, 국가의 역할을 부정하는 시장원리주의가 왜 활개를 치기 시작했겠는가.

경제 성장 논리란 결국 지배자,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민중의 자립성을 구조적으로 약화시키고 파괴하는 메커니즘을 심화시킬 뿐이다. 밑바닥 사람들이 거기에 목을 매고 있어서는 영구히 노예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국가가 잘 되고 대기업이 번영하면 뭔가 우리에게도 고물이 떨어지지 않겠나'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수십 년간 속아 넘어가지 않았나. 자본과 국가는 항상 같이 간다. 근대국가는 자본주의 국가다. 폴라니가 순수한 자기조정적인 시장경제는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언제나 국가의 지원, 보호 안에서 자본의 힘은 성장하고 확대되어왔다.

"연대와 협동 통하지 않고는 노예적 삶 극복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국가도 자본도 아닌 길을 찾아야 한다. 폴라니도 얘기했지만, 원래는 산업혁명 시대부터 시작된 소위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 의한 협동조합 운동 같은 데서 활로를 찾아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란 전통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로버트 오웬 같은 협동조합 운동가들을 향해서 야유조로 부른 이름이고, 사회주의 운동이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주도되는 동안 그 중요성이 사실상 은폐되어 왔지만, 분권적 참여 민주주의가 아니고는 세계가 직면한 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게 되었다는 깨달음이 광범하게 퍼진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새삼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앞으로의 세상은 협동과 공생 아니고는 공멸 밖에 없으니 말이다.

폴라니는 "시장의 폭주에 의해 결국 자연과 인간이 황폐화, 피폐화된다. 그때 사회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킨다"고 했다. 그 '사회'가 바로 로버트 오웬 같은 사람이 말하는 연대와 협동에 기반한 결사체이다. 밑바닥 사람들이 자기들끼리의 연대와 협동을 통하지 않고는 노예적 삶을 극복할 길이 없다.

항상 국가 권력은 밑바닥 사람들에게 억압적이다. 그 권력을 조금이라도 순화시키는 데는 밑에서부터의 압력 밖에 없다. 그 첫째 방법은 거리로 나와 데모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 몇 달 동안이나 촛불을 들고 나왔지만 공권력의 탄압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물론 촛불시위는 잠재적으로 우리의 큰 민주적 에너지로 남아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든 언젠가 그 위력이 가시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에 권력이 가차 없는 탄압을 개시하면 도리가 없다. 또 우리는 상시로 거리고 나갈 수도, 시위를 할 수도 없다.

사실 현대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제일 큰 문제가 시민들이 데모를 휴일이나, 근무가 끝난 저녁 시간에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결사적인 데모가 잘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약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게 권력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대학생들이 침묵하고 있는데 결사적인 데모가 가능하겠나?

그러니까 데모만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더 중요한 것은 단순히 저항의 차원을 넘어서 그야말로 대안을 창조해내는 행동이다. 요즘 어디서 들은 애기인데, 우리나라에 지금 대안학교가 6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물론 바람직한 형태로 다 운영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독립적으로 자주적으로 살겠다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은 아이들 더 이상 희생시키지 않고, 노예 생활 안 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적 에너지가 중요하다.

또 귀농, 귀향의 흐름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요즘 취직이 안 되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도시마다 자율적인 세미나, 시민학교, 자치학교가 많이 생기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 노숙자, 교도소 재소자를 위한 인문교양 자치학습 운동도 점점 본격화되고 있다. 그런데 근본은 농촌과 농업이다. 도시 거주자들도 이제는 텃밭 가꾸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한 달 사교육비 몇 십만원 들이지 말고 아이들에게 텃밭 가꾸는 일 가르쳐주면 훨씬 학습도 재미나게 잘 하고 아는 것도 많아지고 자립적인 힘을 기를 수 있다.

▲ "데모만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더 중요한 것은 단순히 저항의 차원을 넘어서 그야말로 대안을 창조해내는 행동이다." ⓒ프레시안

"성미산공동체처럼… 자발적 결사체 만들어 민주주의 실천하자"

마지막으로 서울 마포 성미산공동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례이지만, 성미산공동체는 원래 동네 젊은 여성들의 공동육아에서 출발하였다. 사실 핵가족 시대에 도시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기른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여성들이 상호부조의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공동육아 출신 아이들이 자라서 학교에 가게 되니까 이제는 동네 공부방이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서로 만나고 친해지고, 먹을거리에도 관심이 생겨 도농직거래도 실천하게 되고, 이러다보니 점점 주민의 협업, 자치 모임이 많아지고 나중에는 15개 이상이나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계기는 서울시가 제공했다. 서울시가 성미산에 배수지를 만들겠다고 산을 허물 계획을 발표하자 주민들은 반발하였고, 이를 막아보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지금까지 그저 이용대상으로만 생각됐던 동네뒷산에 대한 애정이 커지기 시작했고, 전문가들을 초치하여 생태조사를 하고, 밤마다 모여서 대책을 숙의했다. 서울시에 항의 방문을 하고, 간청도 했다. 언론에도 알리고, 지역신문도 발행하고, 배수지 공사의 타당성까지 독자적으로 조사했다. 그러다 보니 서울시가 완전히 주먹구구 계산으로 배수지 공사 계획을 했단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서울시가 계획을 철회했다. 이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서 서울 한 가운데서 연대와 협동의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동네의 주민회의 방식이다. 한 주민에 따르면, 그들은 누가 무슨 제안을 해도 쉽게 수긍을 안 하는 전통이 형성됐다고 한다. 마지막 한 명까지 납득해야 일 추진이 훨씬 효과적으로 되는 경험을 한 결과였다. 모여서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게 습관이 됐고, 모든 사람의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밤새워서 회의를 했다는 거다. 환경단체 간사들이 참석해서는 뻔한 결과를 놓고도 결정이 한없이 지연되니까 짜증을 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민주적으로 훈련된 환경단체 간사들도 성미산공동체의 문화를 몰랐던 것이다. 거기서 주민들은 다수결 원칙이 아니라 합의제 민주주의, 즉 구성원 전원의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4~5년에 한 번씩 투표하는 것 외에는 행사할 수 있는 민주적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에는 정치하는 인간들이 어떤 미친 짓을 해도 별 도리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명백한 한계이다.

우리는 모두 성미산공동체처럼 자발적 결사체를 만들어 민주주의를 실천하면 된다. 다만 서울 한복판이기 때문에 텃밭 가꾸는 것 외에 식량을 자급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냐. 나는 이 동네 청년을 개인적으로 몇명 아는데, 평생 다른 데로 이사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자기 동네에서 사는 게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다. 요새 도시에서 자기 동네를 사랑하고, 거기서 사는 게 재미있다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성미산공동체 사람들은 퇴근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동네 라디오방송국도 있고, 지역신문도 발행하고 있다.

▲ "나는 진보 진영 지식인들이 '우리를 진짜 먹여 살려주는 것은 경제 성장이 아니라 민주주의다'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널리 설득력 있게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우리가 공동체라 하면 보통 시골만 생각하는데 서울 도심에서도 이런 게 가능하다는 것을 성미산공동체는 가르쳐준다. 이런 게 전국 곳곳에 무수히 생기면 절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튼튼해지는 거다. 우리가 대통령 잘못 만났다고 속 태울 필요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이 독립하기 전 타운미팅 시스템이 이와 같은 것이었다. 셀던 월린 이라는 미국의 정치사상가에 의하면 미국의 역사상 가장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던 때는 식민지 시절, 뉴잉글랜드 의 타운미팅 시절이었다.

절차적 의미에서 민주주의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투표 자유롭게 하고, 정권 바뀌는 가능성이 있으면 민주주의인지 모르지만, 그런 사고로는 아까 처음에 말씀드린 임치수의 원혼을 절대로 풀어줄 수 없다. 사실 그 원혼을 푸는 데 한 발자국리라도 다가가는 길이 바로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나는 진보 진영 지식인들이 '우리를 진짜 먹여 살려주는 것은 경제 성장이 아니라 민주주의다'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널리 설득력 있게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 민주주의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밑바닥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상호부조의 협동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자율적으로 사는 게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란 인민의 자기 통치를 뜻한다. 복잡한 이론으로 사람 헷갈리게 할 필요가 없다.

/강이현 기자,최형락 기자(사진)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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