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솔샘교회 오신분들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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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십자가 대신 똥짐을 /권 정 생  

 

 

 

십자가 대신 똥짐을 



  장터 버스정류장에서 노인들이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저토록 핏대를 세워가며 다투는지 궁금해서 가까이 가서 들어보았다. 내용은 고속도로 이야기였다. 지금 이곳 안동지방에선 중앙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그런데 그 고속도로 공사에 드는 비용 때문에 말다툼이 생긴 것이다. 고속도로 공사비용이 1미터당 천만원이 든다는 노인과 1억원이 든다는 노인이 서로 자기주장이 맞다고 다투는데 좀처럼 끝이 안난다.

 

  “땅값 보상하고 인부들 품값하고 시멘또값하고 불도자값하고 땅 돋웃코 산 깎아내는 것 다 보태마 엄청나는데 1억이 든다 카드라.”

  “암만 든다 캐도 1억꺼정이사 안든다. 1메다루에 거진 천만원 든다 카드라.”

  “뭐락 카노, 내가 우리 아 친구한테 들었다. 거기서 일하는데 그마이 든다 카드라.”

  “그 사램이 뭐 안닥꼬, 승용차 타고 댕기매 감독하는 사람이 천만원 든다 카드라.”

  세상이 모두 돈으로 따지는 세상이니 노인들의 말싸움도 결국 돈싸움이다. 그것도 노인들한테는 아예 도움도 되지 않는 말싸움이었다.

 

  노인들만 남은 시골에서 이런 말싸움이라도 해서 화풀이도 하고 심심풀이도 될지 모르지만 좀더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고속도로 공사로 산이 깎여나가고 논밭이 파묻히고 마을의 집들이 헐려나가고 이웃들이 고향을 떠나가는 아픔 같은 것은 왜 말하지 않을까? 너무 기막혀서 아예 얘기조차 하기 싫은 걸까?

 

  그저께 주일은 추수감사절이었다. 교회에서 예배를 끝내고 점심을 함께 먹었다. 추수감사예배도 옛날 아기자기했던 감동은 찾을 수 없다. 해마다 추수감사절이면 그해의 농작물의 십분지 일을 정성껏 바쳤다. 저마다 하얀 종이 쪽지에 품목을 하나하나 적은 것을 장부에 기재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한결같이 맞춤법이 틀리고 서툰 글씨로 적힌 것을 몇가지 적어보면 이렇다.


추수감사

이름  김○○

벼  8말

조  5되

참깨  3되

콩  7되

호박  2개

무 50개

배추 10포기

 

  이 외에도 간혹 감 사과도 있고 달걀도 있고 돼지새끼도 있었다. 콩을 꽁이라고 쓴 어느 여집사님도 있었고 한되를 한대로 쓰기도 했다.

 

  모든 곡식은 종목별로 모아 교회 옆 창고와 뒤주에다 넣으면서 하느님께서 정성을 살피는 게 아니라 교인들의 눈이 한집한집 곡식을 심사하는 것이다. 어느 집 것은 벼에 쭉정이가 섞였고 어느 집 벼는 깔끔하게 손질이 잘되어 정성이 담겼고 어느 집은 콩을 저것밖에 안낸다는 눈치를 주기도 하고 해가 지도록 곡식 갈무리하느라 떠들썩했다.

 

  이렇게 모인 곡식은 교회 전도사님의 식량으로 하고 얼마쯤 남는 것은 팔아서 교회 살림에 보탰다.

 

  이런 추수감사절이 현금으로 바뀐 것이 벌써 십수년이 넘었다. 올해 우리 교회 추수헌금이 총 70만원이 조금 넘는다. 평균 교인수 40명이니 한사람 당 2만원 꼴이다. 쌀로 계산하면 6가마 반이 된다. 올해는 벼농사도 고추농사도 모두가 흉작이다. 하지만 마음의 추수가 더 중요한데 이렇게 현금으로 계산해서 내는 추수감사절은 어딘지 삭막하다. 교회도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돈으로 경영을 하게 된 것이다.

 

  예배 후에 차린 점심도 마찬가지다. 여집사님 두분이 손수 만든 배추 부침개 외에는 모든 게 시장에서 사온 것들이다. 닭튀김과 과자와 밀감…. 전에는 교회 잔치가 있으면 집집마다 올망졸망 음식을 만들어 와서 함께 펼쳐놓고 나눠먹었는데 편리한 대로 살아가는 것에 이렇게 길들여진 것이다.

 

  가을날씨조차 음산하고 추워서 더욱 서글프다. 집사님 장로님들이 양파농사 얘기로 새로운 예배가 시작된 듯하다. 심어놓은 양파논에 비가 계속 내려 질척대니까 비닐덮개를 못해 걱정이고 내년 양파값이 어떻게 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집집마다 거의 3마지기(6백평)씩 심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3마지기 품삯이 25명씩 50만원, 씨앗과 비료, 농약, 비닐값을 계산하니 80~90만원이 들어 합치니 140만원이 된다고 한다. 양파 20킬로들이 한푸대에 4천원씩 받으면 3마지기에 7백푸대를 캐니 280만원이어서 수익이 140만원 정도가 되는 셈이다.

 

  양파농사는 8월에 파종해서 10월에 옮겨심어 이듬해 6월에 캐니까 10개월이 걸린다. 열달이나 걸린 것이 140만원이니, 돈으로 따지면 너무 적다. 고급공무원 월급이 얼마쯤인지? 그것이나마 값이 폭락하면 그냥 내다버려야 하는 농사꾼의 딱한 현실이다.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해서 살아가야 하다보니 농촌 사람들도 이렇게 돈이야기만 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옛날 부자들은 천석꾼 만석꾼이라 불렀지만 지금은 모두 돈으로 따져서 억대부자라고 한다. 심지어 교회의 성공여부도 헌금의 양에 따라 큰 교회가 되고 성공한 교회가 된다. 서울의 몇몇 큰 교회는 한주일 헌금만도 억대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 헌금의 출처가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생각해봤는지 알고 싶다.

 

  우리는 가장 쉽게 모든 물질은 하느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살아있는 모든 목숨에게 필요한 물질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그 무엇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풍요나 교회 헌금의 수량을 가지고 모들쳐서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말해서는 절대 안된다. 모든 물질은 이 세상 모든 생명들이 각자의 몫이 골고루 나뉘어졌을 때 진정한 축복이 되는 것이다. 거기서 사람들도 정당한 자기 몫으로 살면서 다른 목숨들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평화를 이룰 때만이 우리는 하느님께 진정한 감사를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그렇지 않다. 농촌은 농촌대로 도회지는 도회지대로 모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직한 방법으로 물질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듯이 우리는 우리만의 풍요를 누리기 위해 수많은 목숨들을 죽이고 있지 않는가. 공장에서 나오는 독한 공해물질은 하천을 더럽히고 공기를 더럽힌다. 농촌의 농약은 들판을 오염시키고 거기 살고 있는 동물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우리는 그냥 훔치는 것이 아니라 무장강도처럼 이 지상의 물질을 약탈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약탈해온 재물의 일부를 교회에 바친다고 과연 감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지는 고속도로 때문에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은 아무도 모른 채 지나치고 있다. 시골 아스팔트길을 보면 종종 뱀이나 다른 산짐승들이 자동차에 치여 죽은 것을 본다. 비오는 들판 아스팔트 길엔 개구리들이 수없이 차바퀴에 치여 죽어 있다. 아침에 나가보면 그것들의 죽음 때문에 비린내가 진동한다.

 

  우리집 헛간에는 지금 지난 봄에 둥우리를 짓고 알을 품던 노랑 딱새가 알을 깨지 못한 채 사라지고 빈 둥우리만 남아있다. 알이 모두 세개였는데 두개는 없어지고 한개만 남았다. 나는 딱새가 다시 돌아와 알을 품어주기만 기다렸는데 끝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딱새는 어디선가 농약에 중독된 벌레를 잡아먹고 죽어버린 모양이다. 새끼를 깨지 못한 둥우리를 보니 실오라기같이 가는 풀줄기를 물어다 촘촘하게 틀어 만든 둥우리가 사람의 솜씨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풍요로운 삶이란 이런 새 한마리까지 함께 이웃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인간들끼리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건 더럽고 부끄러운 삶이다.

 

  고속도로는 동물들에겐 커다란 수난이다. 산골짜기를 가로질러 건설되는 고속도로의 양쪽에 헤어진 동물 식구들은 그때부터 영원히 이산가족이 되어버린다. 동물한테도 감정이 있는 것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팔려간 송아지를 찾아 목이 메도록 울부짖는 어미소가 있고, 친구를 잃어버린 닭이 목을 길게 늘여 울며 찾아다니고, 기적소리를 듣고 슬피우는 개도 있다. 그들도 이 세상에 태어나 똑같이 새끼를 낳고 키우고 함께 무리지어 살고 있다. 해가 지면 그들도 숲속이나 나뭇가지 둥지에서 잠을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 먹이를 찾아 일하는 건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짐승들의 삶은 사람보다 정직하고 순수하다. 그들은 특별한 종교를 갖지 않았지만 종교 이상으로 하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다.

 

  이곳 골짜기 사내골, 어릿골, 사구지미, 계산골, 거기 가운데 꼬불꼬불 흐르는 골짝물을 사이에 두고 오소리가 건너다니고 산토끼가 이산 저산 뛰어다니고, 멧돼지와 노루와 너구리가 다녔는데 고속도로로 자동차가 씽씽 달리면 어떻게 될까? 한시간에 백마리씩 잡던 가재들은 벌써 사라진 지 오래고 버들치도 등미리도 꾸구리도 없어진 골짝물이지만 이젠 그것마저 영영 사라져버린다.

 

  경제성장이란 도대체 뭘까? 발전이란 것과 건설이란 것은 어떤 것인가? 산이 깎여나가고 골짜기가 사라지고, 마을이 없어지고, 거기 살고 있는 사람도 짐승도 없어지는 게 건설이고 발전이란 말인가?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쇠퇴해가는 농촌교회의 현실을 걱정하는 기사가 있었다. 더러는 헌금으로 농촌교회를 돕기도 하고 집회를 하고 기도를 한다지만 그런 것으로는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다. 진정 이 땅의 농촌과 농촌교회를 걱정한다면 좀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삶이 있어야 한다. 나는 신학(神學)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올바른 신학을 한다면 농학(農學), 인간학, 자연학을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는 추상적이며 관념에 머문 신학을 가르치지 않았다. 입으로 설교하는 목회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목회자가 있어야 한다. 밭을 갈고 씨뿌리고 김매고 똥짐을 지는 농군이 바로 이 땅의 목회자다. 창세기의 하느님나라는 말씀으로 되었지만 지금은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하느님나라가 다시 창조되고 천국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 몸으로 살지 않고 수천만번 주기도문만 외운다고 하느님나라가 이루어지는 건 절대 아니지 않는가.

 

  고속도로 공사비용이 1미터에 천만원이 드는지 1억원이 드는지 그런 문제로 말다툼하는 것처럼 어리석을 뿐이다. 올해도 많은 신학교에 장래 목회지망생들이 입학하려고 할 텐데, 과연 그분들이 하느님나라의 백성을 위하고 인간구원을 바란다면 자연을 가꾸고 농촌을 지키는 농사꾼이 되는 게 좋을 것이다. 양을 길러 젖을 짜먹고 양고기를 먹고 살았던 유대나라에선 목자가 가장 귀한 직업이었다. 그래서 예수님도 스스로 목자가 되셨다. 한국에선 농사꾼이야말로 영육을 함께 살리는 하느님의 일꾼일 것이다. 정말 똥짐 지는 목회자는 없는 것일까? 예수님이 지금 한국에 오신다면 십자가 대신 똥짐을 지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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